벌써 학생회장을?

딸 바보의 시간이 끝난 뒤 52

by 최영훈

지역마다 겨울방학 기간이 다르다. 딸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왔던 안산의 초등학생은 2월 내내 겨울방학이 이어진다고 했다. 부산의 초등학교 중엔 1월 말에 겨울 방학이 끝나고 일주일 정도 학교에 다니다가 2,3 주 정도의 봄방학이 있는 학교가 있다. 이것도 학교마다, 학년마다 달라서 나와 함께 수영을 하는 남자 중학생은 3월까지 겨울방학이 이어진다면서, 2월에도 수영을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딸의 초등학교에선 겨울방학의 개학과 봄방학 전, 이 짧은 일주일 간 학생회장 선거가 치러진다. 몇 년 전 새로 부임한 교장 선생님의 철학이 반영된 듯. 쓸데없는 선거 운동과 화려한 벽보 및 피켓을 금지하고 그저 동영상을 통한 정견 발표와 포스터 네 장, 그리고 전교생이 방송을 통해 그 영상을 보고 바로 전자 투표. 아주 심플하면서도 검소하면서도 효과적이면서 효율적인 선거 시스템 아닐까?


시간의 흐름

1학년 때, 학생회장 선거는 입학 후, 3월에 치러졌다. 그때 처음으로 학생회장 유세를 본 딸은 자기도 학생회장에 나가겠다고 했다. 우리 집안은 대대로 감투와 연이 없다며 말릴 수도 있었지만 모든 꿈이 꾼다고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선거에 나간다고 다 이기는 것도 아니니, 아무 생각 없이 그러라고 했다.


그러다, 3학년 이후(딸의 학교에선 1, 2학년 땐 반장이 없다.) 두 번의 반장을 하고 학교 및 학생회 선후배와 두루 친하게 지내면서 권력의 상층부/중심부에 가까워지는 딸을 보며 '설마'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5학년 때는 반장 일을 좀 힘들어하기에 그냥 자기 공부나 하겠지 싶었으나...


나가지 말까?

미국에서 돌아온 딸은 이틀 뒤 개학을 맞았고, 바로 출마 여부부터 결정해야 했다. 돌아온 다음 날 저녁을 먹다가 그 얘기가 나왔다. "나가지 말까?", "왜?", 내가 물었다. "약간 걱정되기도 하고, 떨어지면 좀 그렇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딸은 말끝을 흐렸다. 내가 무심히 말을 이었다. "야, 난 또, 그랜드 캐니언을 보면서, 야 이 대자연에 비하면 부산, 그 조그만 촌동네 초등학교 학생회장 같은 건 참 하찮은 거구나, 하는 생각이라도 들었는 줄 알았네. 그런 생각이 들어서 안 하겠다고 하면 뭐 그러라고 하겠는데, 그 과정이나 결과가 두려워서 안 할 필요는 없어. 떨어지면 그냥 조용히 살면 되지. 그런, 편한 생각으로 해."


그 후 며칠, 딸은 공약이나 슬로건 개발에 빠져 좀 심각했다. 그런 딸에게 지나가듯 한마디 했다. "어이 딸, 생각이 많고 깊고 진지한 건 괜찮은데, 걱정이 많을 필요는 없어. 지금 할 수 있는 걸 해. 나머지는 엄마랑, 아빠랑, 정 일손이 모자라면 삼촌도 불러서 도와줄게."


고인력의 낭비

학교에서 제시한 포스터 규격은 절묘했다. 교장 선생님의 철학이 반영된 듯. 최대한 디자인 요소가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그걸 방해하는 구조였다. 사진을 붙이는 공간이 절대적으로 크고 나머지 공간은 좁고 작았다. 결국 슬로건 한 줄, 공약 몇 개 정도 쓰기에도 지면이 빠듯했다. 포스터 따위에 돈 쓰지 말라는 교장 선생님의 의중. 그 교장 선생님이 오기 전 치렀던 학생회 선거는 아주 요란했으니까. 현재도 많은 학교에서 그렇게 요란하게 선거를 치르고.


첨부된 규격을 보고 포스트잇 띠지로 어림잡은 뒤, 적정한 글자 크기와 그에 따라 글자수를 가늠해 봤다. 그 후 딸은, 그동안 생각한 공약을 정리해서 가져왔고, 함께 살펴봤다. 공약 네 개를 두 개씩 나눠 각각 범주화해 주고, 그것에 이름을 붙여줬다. 여기에 맞게 대략의 슬로건 방향을 정해줬다. "야, 이제 다 끝난 거야. 어른들 선거였으면 이쯤 되면 디자인팀에 넘기고 인쇄소에 넘어가지.", 그렇게 내 임무를 끝내고 아내가 당 떨어졌다고 해서 바닐라 라테를 사러 나갔다.


있는 듯 없는 듯의 미덕

이런 미덕을 최우선으로 삼고 학교를 다녔던 아빠 입장에서는 참 요란스럽게 학교를 다니는 딸이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뭐라 하지 않는다. 얼마 전 신년 회식 자리에서 이제 막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아들을 둔, 마흔이 넘은 조감독에게 이런 말을 해줬다. "내가 애를 키우면서 스스로 다짐한 게 있는데, 나도 마흔이 넘어 애를 봤으니까. 그때, 내가 살아온 상식과 경험으로 아이의 꿈과 미래를 판단하지 말자. 이런 다짐을 굳게 했죠. 00 씨도 그래야 할 거예요."


이런 신념을 지키는 것이 의외로 쉽지 않았다. 그래도 의논해 오지 않는 일이라면 이런저런 잔소리를 하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심지어 글쓰기나 독서에 관해서도 말을 아끼고 있다. 다만 안전과 건강, 시간 활용에 관해서만 한마디 할 뿐이다. 뭐, 솔직히 그 나잇대 나에 비해 딸의 독서 수준과 글쓰기 실력은 압도적으로 우월하니 내가 뭐라고 할 수도 없지만.


여하간 그렇게 됐다. 조만간 학교에 포스터가 붙을 테고, 다음날 아침에 영상이 나오고 투표를 하고 바로 결과가 나올 테지. 그러면 올 한 해, 그러니까 초등학교의 마지막 1년을 어떻게 보낼지가 결정 날 듯하다. "회장 떨어지면 반장도 나가지 말고 그냥 조용히 살아. 운동이나 하면서." 했으니 말이다.


어제, 정리를 하다 딸의 지난 학년들의 방학 숙제를 함께 봤다. 바로 어제 일 같았다. 딸은 자기 숙제를 보면서, "와, 나 1학년, 2학년 때는 방학 숙제 엄청 열심히 했네. 반성해야겠네." 하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그렇게 약간은 뻔뻔한 십 대, 6학년을 코 앞에 둔 소녀가 됐다. 학생회장 따위야, 그저 결과를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남은 초등학교 1년을 보내길 바라는 마음이다. 어제, 잠자리에 누웠을 때, 아내가 물었다. "될 것 같아?", "될까 걱정이다.", 아내는 피식 웃고 말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