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공약 발표 영상을 찍으면서, 몇 번의 NG에도 아쉬워했다. 완벽하려 했다. 그래서 눈물도 보였다. 그런 딸에게 한마디 했다. “딸, 스트레스받기 싫으면 스트레스받을 일을 않하면 돼. 그러나 왕이 되고 싶으면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지.”, 딸은 마음을 다잡고 촬영을 끝냈다.
선거일이 다가오자 딸은 힘들어했다. 남학생이 더 많은 이상 딸에겐 쉽지 않은 승부다. 지침 상 유세 활동도 못했다. 당연히 어른들 선거와 같은 토론도 없었다. 내가 상대보다 낫다는 걸 증명할 방법은 없다. 솔직히 인기투표다. 뭐, 트럼프 같은 사람도 대통령이 되는 시대가 아니던가?
선거가 있던 날, 결과를 기다렸다. 수영을 하고 나왔는데도 이렇다 할 메시지가 없다. 보통, 애들이 하교하는 시간에 주요 공지가 오니 두시쯤이면 학교 관련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공식 통보가 있으리라 예상했다. 공식 결과는 딸을 통해 전해졌다.
딸은 결국 선거에 졌다. 남학생이 대략 30여 명 정도 많은 데다가, 형이 학생회장이었던 연년생 동생은 버거운 상대였다. 선거 며칠 전, 난 솔직히 딸에게 내 예상을 말해줬다. “세인이가 이긴다면 박빙, 네가 이긴다면 제법 차이가 클 거야.” 내 예상대로 표는 여덟 표 차이. 남학생 표를 제법 많이 흡수했지만 졌다. 딸은 좀 울었고 속상해했지만, 그 이후 이어진 방과 후 교실과 영어 학원 스케줄을 소화했다. 저녁으로는 딸이 좋아하는 마라탕을 먹었다.
쉰이 넘은 아빠에게 초등학교 학생회장 같은 건 봄날의 소풍 같이 한 없이 가벼운 것이다. 지역의 축협이나 농협 조합장 선거와 기초 및 광역 의원, 심지어 단체장 선거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해 본 카피라이터 아빠 입장에서는 학예회와 다를 바 없는 이벤트에 불과하다.
한편으론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애가 학생회장이 되면 애가 바쁜 게 아니라 부모가 바빠진다. 당연히 회사의 중역인 아내가 따로 시간을 낼 수는 없고, 그 몫은 당연히 한가한 아빠의 몫이었을 것이다. 나보다 열 살은 더 어린 엄마들과, 그 엄마들보다 열 살은 더 어린 선생님을 마주하고 이러쿵저러쿵 회의를 한다는 건, 생각만 해도....
물론 딸이 회장이 하고 싶다고 했을 때부터, 심지어 5학년 때부터는 적당히 각오도 했다. 뭐, 나온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니, 일단 결과가 나온 뒤에 대책을 궁리해 보자, 뭐 이런 생각이었다. 그러니 선거에 진 것이, 내 입장에서나 아내의 입장에서나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졌잘싸는 없다.
그러나 다행이고, 괜찮은 패배는 없다. 졌잘싸라는 단어는 궁색하다. “국민”학교 1학년 때부터 운동장에서 수 없이 많은 승부를 해왔지만 져도 괜찮은 승부는 없었다. 차라리 공부라면 괜찮다. 그건 승부라기보다는 개인적인 성과다. 그러나 스포츠와 선거는 상대와 나, 둘 중 하나는 패배의 쓴잔을 마셔야 한다. 그 쓴잔이 싫다면 승부에 나서지 않으면 된다.
딸은 두려움 없이 도전해 왔고 몇 번의 승리와 패배를 맛봤다. 승리를 당연시하지도 않고 패배에 절망하지도 않는다. 뭔가에 다시 도전한다면 그건 패배를 감수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만큼 강해졌다는 의미다. 지는 사람은, 역설적이게도 질만큼 강하다는 의미다. 승부하지 않는 사람은 질 일도 없다.
과거, 한때, 라디오 방송 PD를 꿈꾸며 무수히 많은 방송국에 시험을 봤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학의 석사 학위가 세상에서 힘께나 쓸 줄 알았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내 착각이었다. 계속 떨어졌고 떨어졌다. 그 뒤로 별의별 일을 다 하다가 어찌어찌 카피라이터로 풀렸고 대학 강사도 겸업하다가 지금에 이르렀다.
지금 난 경쟁에서 물러나 있다. 감독의 실력과 명성에 기대어, 아내의 직장에 기대어 그렇게 안온한 삶을 살고 있다. 수영장에서도 그렇고. 이 나이에 새삼 여자를 꼬시기 위한 경쟁도 하지 않는다. 굳이 내가 하는 경쟁이 있다면 중고 서점에 새로 들어온, 내 가슴을 뛰게 한 그 책을 경쟁자를 뿌리치고 먼저 사려는 경쟁 정도다.
이런 아빠가, 필드에서 벗어나 사이드라인 바깥에 서 있는 아빠가 한창 필드에서 치열하게 투쟁 중인 딸에게 해줄 말은 없다. 나에 승부와 딸의 승부가 같지 않은데다가, 나는 패배가 더 많았으나 딸은 승리가 더 많다. 가끔 작전타임을 불러 마음을 가다듬게 하고 하프 타임엔 전반을 돌아보게 할 뿐이다. 한 게임이 끝나면 적절한 휴식을 통해 회복을 시켜주고 지나간 승리와 패배를 복기하고 받아들이게 할 뿐이다.
아빠 입장에서는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학창 생활을 하고 어른이 돼서도 그렇게 살기 바라지만 딸은 그런 삶을 거부한다. 게임이 끝나면 다른 게임을 생각한다. 도전이 끝나면 다른 도전을 희망한다. 마치 히말라야의 8천 미터 이상 고봉을 모두 정복하려는 등반가처럼, 대륙마다 가장 높은 산을 정복하려는 탐험가처럼, 하나의 탐험이 끝나면 그다음 탐험을 계획하는 그런 사람처럼 딸은 이제 다른 도전 목표를 세웠다. 6학년 반장. 흠... 물론 속이 어떤지 나로서는 다 알 수 없지만, 딸은 다시 담담히 일상으로 돌아갔다. 전날 흘린 눈물의 여파로 약간 눈이 부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