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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Nov 13. 2023

열정의 조건, 그리고 크루

수영장에서 건진 철학 39

힘 좋은 남자

앞서, 새로 합류한 30대가 있다고 했다. 덩치가 있다. 키는 나보다 좀 커 보이는데, 180센티미터 정도 되지 않을까? 몸무게도 나보다 최소한 15킬로그램에서 20킬로그램 정도 더 나가 보인다. 팔도, 다리도 묵직해 보인다. 손도 발도 두툼하다. 덩치가 좀 있는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에겐 인기 있을 타입이다. 90년대였다면, 나보다 열 살 정도 많은 사람이라면 듬직한 맏사위감이라고 할 것이다.     


그는 연한 푸른빛이 들어간 투명한, 비교적 알이 작은 편인 수경을 쓰는데, 그의 묵직한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내가 쓰는 짙은 색의 미러 수경을 쓰고 있다면 얼핏 마피아처럼 보일지도. 아마 그도 그걸 알기에 그렇게 투명한 수경을 선택했는지 모른다.   

   

최소한 일 년 넘게 수영을 한 것 같은데 여전히 5부 수영복을, 그것도 약간 사이즈가 큰 수영복을 입는다. 해수욕을 하고 나오는 중년 남자의 허벅지에 감긴 헐렁한 서퍼 쇼츠처럼, 스타트 연습을 하는 금요일이면 어김없이 그 두툼한 허벅지에 수영복 밑단이 살짝 감겨 있곤 한다. 고급반 남자들한테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수영복의 품이다. 색깔도 검은색이다. 보수적인가?


힘으로 가는 건 한계가 있다.

그는 힘이 좋다. 자유형과 접영도, 평영과 배영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뒷 주자를 한 적이 있는데 킥이 일으키는 물보라에 앞을 볼 수 없었던 건 당연하고 접영을 할 때는 그 킥의 진동이 몸으로 느껴졌다. '야, 힘 좋구나.', 절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 그의 실력을 제대로 알게 된 건 영법의 정교함을 만드는 드릴 시간이었다. 그는 어떤 영법의 드릴을 하던 강사에게 지적받거나 붙잡혀 교정을 받았다. 자유형을 할 때는 물잡기가 안 됐고, 접영을 할 때는 몸 전체로 웨이브를 타지 못했으며 심지어 평영을 할 때는 평영 킥을 차는 대신 접영 킥을 찼다. 아마 평영 킥이 안 돼서 아예 포기를 했던 것 같다. 그는 영법마다 그 영법의 핵심이랄 수 있는 몇몇 기술의 디테일의 부족함을 체력과 힘으로 메우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힘들어하는 게 보인다. 그가 수영을 앞으로 더 오래 하고 싶다면 영법을 섬세하게 다듬어야 할 것이다. 다른 수준의 수영을 하고 싶다면, 그야말로 고급반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누가 봐도 폼 나게 수영을 하고 싶다면 달라지고자 하는 열정이 있어야 할 것이다. 강사가 고쳐주려고 붙잡을 때마다, 그 열정에 기꺼이 답해야 할 것이다.


내가 강사의 코칭에 귀 기울였던 것도, 그 코칭을 받아들였던 것도 나 자신의 한계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단계로 나아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자유형의 스트로크에 집착했던 것도, 접영의 상체 움직임에 신경 쓰고, 평영의 킥에 대해 쉴 새 없이 고민했던 것도 같은 이유였다.


우선은 내 체력의 한계를 먼저 절감했다. 우리 반에서 나이가 많은 축에 들고 수영 경력은 상대적으로 짧다 보니 이래저래 체력이 앞에 주자보다 떨어진다. 게다가 다리 근육량이 많아서 킥을 많이, 부정확하게 차면 찰수록 더 빨리 체력이 떨어진다. 반면 손과 발은 크다. 이런 상반된 이유들로 한 번을 잡아도 제대로 물을 잡고 한 번을 차도 정확하게 차야 될 필요를 느끼고 열심히 다듬고 있는 것이다. 나 자신의 장단점을 잘 알기에, 아니 어쩌면 젊었을 때의 객기가 없기에 디테일에 더 신경 쓰는지도 모른다.


강사의 열정

이것도 지금의 강사가 없었으면 가능하지 않았다. 혼자 영상을 보는 걸로는 한계가 있다. 스스로 교보재가 되어 보여주는 사람, 드릴을 시켜 놓고 손과 팔의 각도를 잡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이 "다듬음"은 불가능하다. 강사는 가슴과 등을 사용하는 법, 어깨가 아니라 견갑골을 사용하여 팔을 돌리는 법, 수영에서 복근을 비롯한 코어의 중요성, 접영 킥에서 발등만큼 중요한 발바닥을 사용하는 법을 꼼꼼히 가르쳐 줬고 지금도 틈날 때마다 잡아주고 있다.      


종종 강사는 우리에게 세트를 시켜놓고 풀 사이드의 중간쯤에 서서 우리를 내려다보곤 한다. 금요일엔 매번 그렇다. 스타트를 해 수영을 하여 반대쪽에 도착한 뒤 풀 밖으로 나와 풀 사이드를 걸어 출발 지점으로 돌아간다. 이때 강사는 위에서 볼 때 맘에 안 들었던 사람을 붙잡고 동작을 다듬어준다. 고급 B반의 아줌마 중엔 이게 귀찮아서 강사가 서 있는 반대쪽 사이드로 돌아가는 사람도 있고, 강사 역시 교정의 효과가 잘 안 나타난다고 생각하는지 붙잡는 사람이 드문데 유독 A반 사람들은 자주 잡힌다. 가는 사람을 붙잡아 놓고 상체와 팔, 등의 움직임을 교정해 주고 시범도 보여준다. 얼마 전 강사가 이런 말을 했다. 다들 좋아지셔서 기분도 좋고 보람도 느낀다고. 그 덕에 우린 더 디테일한 코치를 받고 있다.      


물론 안 그런 반도 있다. 앞서 글에서 귀여운 누님 이야기를 했었다. 그 누님은 자기 반 강사가 폼이나 영법에 대해서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고, 가르쳐 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내가 농담으로 “말해도 안 들어서 그러는 거 아네요?” 했더니, “그렇긴 해. 우리 반 아줌마들이 말을 안 들어.”, 농담이었는데 진실이어서 당황했다. 그러고 보니 그전에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핀 수영을 할 때 턴 동작을 가르쳐줄 때였다. 서로 위험할 수 있으니 끝에 블레이드 부분이 플라스틱으로 된 롱핀 대신 부드러운 실리콘  숏핀으로 바꾸시라고 강사들이 요청을 할 때였다. 그래서 나도 올봄에 숏핀으로 바꿨다. 그런데 누님의 반은 다들 말을 안 들어서 숏핀을 바꾼 사람이 얼마 안 된다고 하소연한 적이 있다. 누구는 숏핀으로 바꾸고 누구는 롱핀을 계속 쓰면 속도의 차이가 난다. 당연히 뒤에 가는 사람도 앞에 가는 사람도 신경이 쓰인다. 바꿀 때 같이, 같은 시기에 바꿔 주는 것이 서로에게 좋고 매너다.


이런저런 일들이 쌓여서 그 강사는 코칭의 열정을 잃어버린 듯하다. 세트만 시켜 놓고 놔둔다. 물론 그는 우리 반 강사를 할 때도 디테일하게 잡아주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보기 힘들고 참고 넘어가기 어려운 폼은 이런저런 말을 해주곤 했었는데 요즘엔 그런 말을 할 에너지도 잃어버린 모양이다.     


열정의 호응

배우는 사람의 열정은 가르치는 사람의 열정과 호응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가르치는 사람이 열정적이면 당연히 배우는 사람도 그러해야 한다. 배움의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 따라주지 않는, 따라올 가능성이 없는 학생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교육은 공교육에서나 가능한 일이지만 그마저도 요즘엔 그렇지 않은 학교도, 선생도, 학생도 흔하다.      


사설 학원이나 스포츠 센터 같은 곳에선 더하다. 거금을 내고 받는 PT도 회원님이 자주 나오고 강사의 말에 고분고분 따르고 식단을 엄격히 지키는 회원에게 강사도 가르칠 맛이 난다. 그 회원을 더 편애하는 건 당연하다. 반면 자기 먹고 싶은 거 다 먹으면서 운동은 일주일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고 시키는 운동은 힘들다고 중간중간에 쉬어 버리는 회원은, 강사로써는 당연히 가르칠 의욕이 사라진다.      


이런 이유로, 학원을 오래 다녔다고 해서 그 학원에서 가르치는 분야의 실력이 느는 것은 아니다. 아이가 방과 후 교실에 보내 음악 줄넘기와 바이올린, 방송댄스를 배우게 해 보니, 최근에 영어 학원을 보내니 더 확실히 알게 됐다. 수영도 마찬가지다. 앞서 다른 글에도 썼듯이 수영을 오래 해도 발전이 없는 사람이 있다. 하던 데로 하고 몸에 익은 데로 한다. 이런 사람은 희한하게 늘 같은 속도로만 수영을 한다. 더 느리게도 빠르게도 하기 힘들어한다. 그 속도 자체도 인이 박힌 것이다. 뭔가를 꾸준히 하지만 하던 데로, 하던 관성에 떠 밀려하는 곳에 열정이 들어올 수는 없다.


난 열정이 없는 사람이다. “열정, 열정, 열정”을 외치는 산악회 회원들하고는 완전히 결이 다른 사람이다. 다행히도 좋아하는 일로 약간의 돈을 벌고 있고, 잘 나가는 아내 덕에 그럭저럭 삶을 꾸려가고 있는 것에 감사해하며 살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 있던 열정은 맥주에 대한 열정이었는데 요즘엔 새로운 맥주를 찾는 열정마저도 사라져서 그저 맑고 깨끗한 라거나 마시고 있다. 다행인 건 아직 책을 향한 에너지는 남아 있다는 것, 그리고 수영을 향한 에너지는 제법 강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열정이 남아 있는 부분은 발전하려 한다. 발전시키고 싶은 분야는 당연히 열정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오르고 싶은 수준이, 혼자서 다다를 수 없는 경지라면 내 얼마 안 되는 열정만으론 다다를 수 없다. 그럴 땐 당연히 함께 운동하는 사람, 함께 일하는 사람, 같은 길을 가는 사람, 또 우리 강사와 같은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들의 열정을 끌어내고 그 열정을 유지시키는 건 배우는 사람의 배우려는 자세, 미련 없이 지금의 나를 버리고 기꺼이 변하겠다는 의지, 눈빛과 집중하는 태도로 드러나는 그 자세와 의지다.     

젊음은 언젠가 사라지지만 열정은 유지할 수 있다. 어떤 분야든 당신이 그 열정을 유지하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그 열정에 기름을 부어줄 좋은 코치를 만나고 좋은 동료들을 만나고 격려해 줄 사람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꾸준히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는데 게으르지 않고, 그 기술을 서로 나누며 서로가 서로에게 자극이 되어주고 그 열정에 호응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요즘 젊은 친구들의 크루가 이런 열정의 상호작용의 대표 사례 아닐까? 당신에겐 크루가 있나? 그러고 보니 나하고 같이 수영하는 사람들도 일종의 크루구나. 마지막 한 세트가 남았을 때 검지 손가락을 들어 보이면서 서로에게 힘을 북돋아 주는 열정의 수영 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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