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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Nov 17. 2023

동호인이 넘을 수 없는 선수의 벽

수영장에서 건진 철학 40

앞서 종종 얘기했듯이 강사는 단거리를 여러 세트 시킨다. 50미터 열 개, 백 미터 열 개 식으로 말이다. 이전에 고급반을 맡았던 강사는 장거리를 시키곤 했다고 한다. 그 강사뿐만 아니라 그 앞에 강사들도 장거리 훈련을 선호했었던 모양이다. 이 수영장에서 나보다 오래 수영을 한 내 앞선 주자들, 그러니까 1번과 2번, 3번은 현 강사에게 약간의 불만이 있었다. 운동량이 적다고 말이다. 그런데 정말 우리 강사는 운동을 적게 시키고 있는 걸까?     


강사의 목적과 케일럽 드레슬

최근에서야 강사의 목적을 눈치챘다. 최근에 거울을 보면 신기했다. 따로 헬스를 하지 않는데 체형이 변하고 있었다. 좀 마른 듯해서 몸무게를 재보면 변화가 없다. 대신 광배는 더 넓어졌고 허리는 잘록해졌다. 소위 치골이라 부르는 장요근과 그 위의 근육이 더 발달했다. 당연히 아랫배도 눈에 띌 정도로 들어갔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그냥 수영을 열심히 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얼마 전 우연히 이 선수의 사진을 보고 나서 혹시 하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물론 그전에도 TV나 유튜브를 통해 이 선수의 시합을 본 적이 있지만 이렇게 몸매가 눈에 들어온 건 처음이었다. 화려한 문신과 함께. 혹시나 해서 이 선수의 다른 영상을 찾아봤다. 헬스를 그야말로 미식축구 선수  버금가게 하는 영상이 있었다.      


몸에 근육이 많으면 조금만 운동해도 소비하는 에너지가 많아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지만 쉽게 지치기도 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근육의 크기를 줄이면 파워와 순간 스피드는 떨어지지만 에너지 손실을 막을 수 있고 긴 시간 운동할 수 있다. 수영 선수들, 특히 단거리 선수들은 근육과 그 힘, 거기에서 나오는 스피드를 탑재한 뒤 수영으로 심폐지구력을 키우고 있었다. 강사가 우리 반을 처음 맡았을 때 한 이야기가 바로 이런 과정이었다.      


무의미한 동호인의 장거리

강사가 우리 반을 맡고 나서 처음 한 이야기가 고급반이 됐다고 장거리를 무조건 도는 건 의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강사의 장거리 오더가 떨어지면 1번은 페이스를 조절한다. 말을 들어보면 장거리를 할 때는 이 속도에 가장 적합한 3번 아줌마가 1번을 섰다고 한다. 결국 속도를 늦추고 천천히 돈다. 실제로 나도 산책하듯이 수영을 하면 1킬로미터 정도는 할 수 있다. 지겨워서 문제지... 이 수영을 강사는 무의미하다고 본 것이다.   

   

우선,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자. 우리가 살면서 그렇게 길게 수영할 일이 있겠나?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건 사고다. 또 하나의 문제는 앞서 말했듯이 체격과 근력의 문제다. 단거리 육상 선수와 장거리 육상 선수의 몸을 비교해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결국 장거리를 잘하기 위해선 몸을 슬림하게 만들어야 한다. 근육의 크기를 줄이고 체격을 줄여야 한다. 이 과정에서 파워는 손실된다. 강사가 원하는 건 이게 아니었다.    

  

강사는 우리의 몸을 만들고 있었다. 우선 폼을 제대로 만들고 수영에 적합한 몸을 만드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었다. 장거리를 돌려 오래 걷기의 수준, 가벼운 조깅 수준으로 심폐지구력을 높이기보단, 수영 동호인이 갖춰야 될 멋진 폼과 체격을 만들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이 이후에 정말 빠른 속도로 뛰는 마라톤 선수들과 같은 차원이 다른 심폐지구력을 만들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수영을 오래 해도 배가 나오고 근육이 붙지 않는 건 의미 없는 장거리 때문이라는 걸 강사는 알고 있었다. 결국 건강을 위한, 다이어트와 체형관리를 위한 운동으로써의 수영은 심폐지구력 이전에 힘찬 수영에 적합한 체형을 만들어 줄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수영만 하고 사나? 살면서 다양한 운동과 활동을 하면서 여러 근육을 사용하지 않나? 하다못해 침대 위에서라도 말이다. 게다가, 그래도 몇 년간 수영을 했는데 몸매가 초급반 사람과 비슷해서야 되겠나? 달라 보여야 하지 않겠나? 강사는 이 차이도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결국 이 모든 목적을 이루기 위해선 당연히 단거리를 빠른 속도로, 일정하게 반복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전문가 나셨네, 전문가 나셨어.

최근 재미있는 일을 겪고 있다. 하나는 어느 작가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 카피의 70퍼센트를 훅 날려버린 한 관청의 과장에 관한 것이다. 전자의 사건은 이렇다. 페이스북 친구인 A작가가 다른 SNS를 통해 아는 B작가의 책을 분석하는 글을 요즘 올리고 있다. 분석이라기보다는 "이런 책은 쓰지 마시라." 하는 안 좋은 사례의 제시라고 보는 것이 더 적합하다. 그런데 책 본문을 찍은 사진과 그 내용을 분석한 글을 보면 밑도 끝도 없는 비난은 결코 아니다. 내가 봐도 민망할 정도니 말이다.      


왜 이런 책이 세상에 나왔을까? 문제의 첫 번째 원인은 B작가가 자신의 직장/직업/전공과는 상관없는 분야의 전문 서적을 출판했다는 점이다. 두 번째 원인은 그 관련 지식을 잡다하게 읽은 자기 계발/개발 서적과 인터넷에서 가져왔다는 것이며, 정말 큰 문제는 글 솜씨가 형편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B작가의 SNS를 들여다보면 부끄러워하거나 민망해하는 기색이 없다. 우리가 알만한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은 저 정도 자존감은 있어야 하는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후자의 일은 좀 특이한데, 우리 팀이 맡은 프로젝트가 일의 주관과 진행은 특정 재단이 하는데 제작비의 절반 이상은 관청이 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일의 담당자는 재단 사람인데 돈을 주는 관청에서도 사람이 나와 회의에 참석했다. 이후 두 차례 정도 함께 회의를 했고 그 과정에서 카피 시안이 확정 됐다.


일은 이 뒤에 발생했다. 회의에 참석했던 두 명의 공무원이 확정된 카피 시안을 들고 가, 상관인 과장에게 보여줬는데 과장이 말하길 "쭉 영상만 가다가 끝에 카피 몇 줄 나오는 게 더 좋지 않아?", “영상은 말이야. 둘이 마주 보고...”, 이렇게 과장의 말 한마디와 영상 디렉팅으로 인해 피와 콘티가 날아가 버렸다. 재단 담당자 말로는 그 양반이 연극영화과를 나왔다고 한다. 참고로 연극영화과는 예술대학 소속이고 광고홍보학과는 사회과학대학 소속이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후, 재단 담당자와 세 번째 미팅을 하는 데, 담당자가 너무 미안해했다. 그래서 내가 그랬다. "뭐, 과장님이 하라는 대로 하면 우린 편합니다. 그렇게 줄인 카피와 제안한 영상은 과장님이 책임지시면 됩니다. 한 십 년 전이었으면 저나 감독이나 열받고 스트레스받았을 텐데 이젠 그러려니 합니다. 이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른 사람 중에선 자신을 전지전능한 존재로 착각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젠 그러려니 하죠. 놔두세요. 대리님도 너무 스트레스받지 마시고."     


동호인은 모로는 선수의 차원

수영을 아무리 오래 한 동호인이라 해도 선수 출신 강사의 코칭 의도를 다 알기는 어렵다. 당연하게도 수영으로 붙으면 답이 안 나오고. 뭐든 취미로 오래 하면 그것이 업인 사람과 견줄 수 있다고 착각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건 그야말로 착각이다. 동호인은 그 업에 생계를 걸고 있는 사람하고는 경쟁할 수 없다. 내가 아무리 들뢰즈나 라캉이나 푸코를 열심히 읽어도 철학자가 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난 그저 취미가 독서인 사람이고 철학이 업인 사람들은 거기에 인생을 건 사람들이니까.      


수영을 업으로 하거나 했던 사람은 동호인과는 근육 자체가 다르다. 당연히 심폐지구력도 다르다. 비교 자체가 안 된다. 수영을 오래 하고, 천오백 정도는 쉬지 않고 돌 수 있는 동호인이라도 그 몸이 초급반 사람과 큰 차이가 없는 것은 천오백 미터를 경쟁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박태환처럼 말이다. 그 거리를 시합으로 가는 선수는 그 거리를 산책하듯 가는 동호인과는 신체와 정신적인, 모든 면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앞서 말한 철학도 같은 맥락이다. 철학이 업인 사람은 소위 제대로 된 단계를 밟는다. 나처럼 뜬금없이 꽂혀서 라캉을 읽거나 갑자기 들뢰즈나 하이데거를 읽지도 않는다. 고대 그리스 철학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철학자가 되기 위한, 철학자로 살기 위한 뇌의 근육을 만들어 간다. 그들은 철학의 선수인 것이다. 나 같은 철학 “동호인”이 아무리 철학이나 인문학 책을 많이 읽어도 선수처럼 될 수는 없다.      


다시 말하지만, 자기와 관련 없는 분야에 관한 책을 낸 B작가도, 내가 영상을 좀 아니까 이렇게 영상을 진행하고 카피를 이렇게 하라는 관청의 과장은 착각에 빠진 사람들이다. 어느 정도 오래, 어느 수준 이상 하고 알면 그 분야의 “선수”가 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다.      


감독에겐, "과장이 해달라는 대로 해주고 돈이나 받읍시다."라고 말했지만 감독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 이 사태는 의외로 심각해질지도 모른다. 뭐, B작가의 사태야..... 내가 그 사람의 지인이라면 책이 안 팔리길 기도할 뿐이다. 책이 안 팔려서 이 사람의 밑천이 그야말로 "뽀롱"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그러나 난 제삼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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