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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Nov 22. 2023

해야 될 걸 제대로 해야 하는 이유

수영장에서 건진 철학 41

다른 근육이 일을 하고 있다.

요즘 수영을 하고 나면 특이한 부위가 뻐근하다. 강사가 말한 대로다. 제대로 된 자유형 스트로크를 하면 광배근 주변 근육이 일해야 한다. 해부도를 보니 겨드랑이를 중심으로 그 뒤를 받치고 있는 근육이 광배근이고 그 밑에 근육이 전거근이다. 전거근 밑에서 갈비뼈를 감싸고 있는 근육은 사근이다. 이 근육들이 발달하고 있다.     


운동이 되는 근육은 또 있다. 왕년에 누군가에게 섹시하다는 말을 들었던 전완근. 팔꿈치와 손목 사이엔 워낙 자잘한 근육이 많으니 그걸 다 따로 부르기보단, 그냥 편의상 전완근으로 퉁치고 넘어가자. 지금은 해부학 시간이 아니니. 자, 여하간 손목과 팔꿈치 사이에 있는 하박 전체 근육이 요즘 많은 운동을 하고 있다.


정확한 폼의 가치

결론적으로 50분가량 정규 강습 시간이 끝나고, 연습 풀에서 한 팔 자유형과 접영으로 몸풀기를 해도 어깨에 통증은 없다. 접영을 메인으로 해도 마찬가지다. 강사의 지시대로, 코치대로 하면 어깨는 그저 돌아갈 뿐 크게 일을 하지 않는다. 견갑골을 비롯한 등근육이 팔을 물에서 빼내어 앞으로 던지는 것까지 책임진다. 팔은 앞으로 뽑혀나가는 견갑골을 따라 돌아가고 나중에 손이 따라 물속으로 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어깨는 회전 운동의 축 역할을 할 뿐이다. 그러니 당연히 접영을 하고 나도 어깨가 아니라 견갑골과 등이 뻐근하다.    

 

강사는 지난 1년 간 정확한 폼을 가르치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자유형과 접영에 공을 많이 들였다. 애초에 평영은 속도가 크게 나지 않고 아마추어 수준에선 영법 자체도 그렇게 격하지 않기 때문에 부상이 발생하지 않는다. 배영도 마찬가지다. 배영을 자유형처럼 빨리, 또는 오래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결국 동호인 수준에서 발생하는 부상은 대부분 자유형과 접영에서 발생한다. 강사가 자유형과 접영의 정확한 폼을 만들기 위해 특히 공을 들인 이유다.      


평생 하는 수영을 위해

처음 수영을 배울 땐 어깨를 중심으로 물을 끌어올린다. 마치 양쪽에 달린 물레방아 모양의 바퀴를 증기엔진의 힘으로 돌려 나가던 19세기의 증기선처럼 말이다. 몸의 전면도 상, 하체 할 것이 수영장 바닥을 향한 채 앞으로 나가는 것이 초보 시기의 수영이다. 쉴 새 없이 킥을 하는 건 물론이다.      


이땐 당연히 어깨에 무리가 온다. 강사는 무리하지 말라고 하면서, 천천히 돌리라고 신신당부를 하지만 대부분의 회원들은 힘차고 빨리 돌린다. 그렇게 해야 물에 가라앉지 않고 앞으로 빨리 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시기엔 실제로 그렇고 말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어느 때 강사는 팔을 접으라고 한다.


모든 운동이 다 그렇듯이 수영 또한 부상 없이 평생 즐기기 위해선 정확한 폼을 익혀야 한다. 단지 멋있어 보이기 위해서 완벽한 폼을 익히는 건 아니다. 정확하고 완벽한 폼을 익히지 않으면 특정 부위를 무리하게 사용하게 된다. 또는 낼 수 있는 속도나 힘을 다 못 내기도 한다. 예를 들어 투수가 어깨와 팔만 이용해 던지면 부상은 당연하고 구속도 나지 않는다. 하체와 상체의 움직임이 동반되어야 자신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를 낼 수 있다. 수영도 마찬가지다. 더 오래, 더 멀리 수영하기 위해선 해야 될 자세를 정확히 해서 써야 될 근육을 써야 한다.


해야 할 것

십 대로 접어든 딸을 보며 드는 생각이 있다. 오십 대를 사는 나 자신을 보며 드는 후회가 있다. 뭔가를 분주히 하는 것보다 해야 될 것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생의 어느 순간 꼭 해야 될 것을 하지 않아서, 배워야 할 것을 배우지 못해서 많은 시간 돌아서 왔고 더 많은 수고를 들여야 했고 그래서 만약 했다면 겪지 않아도 됐을 후유증을 겪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됐다.      


모든 부모가 그렇듯 자식은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저녁이 되면 같은 말을 한다. “해야 할 것이 있으면 해.” 그게 숙제든, 독서든, 시험공부든, 학원 과제든 내일로 미뤄선 안 되는 것, 조금 더 나은 나를 만들어 줄 무엇이라면, 해야 되고 해야만 하는 것이라면 미루지 않고 하길 바라며 딱 한 번 말한다.      


제대로 해야만 하는 이유

해야 될 것을 그냥 하는 것과 그것을 제대로 하는 것에도 차이가 있다. 헬스를 해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모든 동작에는 타깃 근육이 있다. 물론 한 동작에 여러 근육이 동원되어 그 근육들 모두를 운동시키는 동작이 있고 하나의 근육을 위해 고안된 동작이라 하더라도 신체의 다른 부위는 그저 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특정 동작은 특정 근육을 운동시키기 위한 최적의 동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동작을 제대로 해야 그 근육에 자극을 줄 수 있다. 벤치 프레스를 하는데 팔만 두꺼워진다면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다.    

  

마치 광고의 기획과 비슷하다. 광고는 근본적으로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 타깃 고객을 대상으로 한다. 그에 맞게 메시지가 설정되고 크리에이티브와 매체, 매체 시간 등을 설정된다. 이것이 제대로 설정되어야 소위 광고 효과라는 것이 발생하고 이 효과의 발생을 위해 최소한 비용과 시간을 썼을 때 우리는 효율적인 광고 집행이라고 한다.      


결국 해야 할 것은 해야 하고, 그것은 정확히 해야 한다. 그 정확함과 제대로 함은 효과와 효율을 높여준다. 수영에서든, 인생에서든. 그렇지 않으면 낭비를 하게 된다. 책은 붙잡고만 있지 집중을 하지 않거나 지금 해야 될 무엇 대신 그저 마음에 끌리는 무엇을 하는 바람에 나중에 허둥댈 수도 있다. 결국 시간, 힘은 물론이고 어쩌면 인생의 어느 한 시기를 온전히 놓쳐버릴 수도 있다.      


더 길고 먼 수영, 혹은 인생

수영을 배우고 얼마 후, 처음으로 자유형 25미터를 완주하면 뿌듯하다. 50미터를 하면 기분이 좋다. 이후 백 미터, 이백 미터를 하게 되면 뭔가 다른 차원의 수영을 하는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지금의 강사 같은 사람이 등장해서 폼을 갖고 이러쿵저러쿵 하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당연하다.


오늘만 수영하고 말 건 아니다.  좋아하는 수영을 오래, 무리 없이 안 다치고 하기 위해선 꼭 배워야 할 폼이 있다. 몸을 다루는 법이 있다. 자세의 정석이 있다. 그걸 배우지 않으면, 겨우 몸만 유지하거나 심폐지구력만 유지하는 수준의 수영만 하게 된다. 결국 역설적이게도 수영을 하면 할수록 헛짓한 것이 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오늘만 살고 말 것도 아니다. 종종 만나곤 하는 20, 30대 후배들을 보면 늘 뭔가를 하고 있고 분주하다. 그 "함"에, 그 분주함에 뿌듯해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 “함”에 들뜨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해야만 하는 것인지, 내가 살고 싶은 내가 되기 위해 해야 될 것인지 성찰해봤으면 한다.


해야 될 걸 하고 있다면 제대로 하고 있는지, 나를 성장시키고 다른 차원의 나를 만들 수 있게끔 공들여하고 있는지, 인생이라는 긴 항해를 헤쳐 나가기 위해 꼭 필요한 겉과 속의 근육과 그 강한 힘을 만들고 키우고 있는지 돌아봤으면 한다. 어쩌면 누가 봐도 제법 괜찮은 오십 대였다면 이런 말을 못 했을지도. 나와 같은 실수를 누군가는 반복하지 않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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