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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Nov 25. 2023

나이가 숫자에 불과하긴... 개뿔.

수영장에서 건진 철학 43

회원의 나이대

1번과 2번 아저씨는 나와 나이가 비슷한 걸로 추정(?)하고 있다. 1번은 나보다 적게는 대여섯 살, 많게는 열 살 정도 어려 보이고 2번은 나와 비슷하거나 나보다 두세 살 많은 것 같다. 어디까지나 액면가로 감정한 것이라 확실하지 않다. 그야말로 추정. 확실한 거 하나는 우리 수영장의 이 시간대의 남자들 중에서 머리칼이 희끗희끗한 사람은 나를 포함해 두 사람 밖에 없다는 것. 그중 한 분은 중급반의 의심할 여지없는 어르신. 어쩌면 내가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을지도 모르겠다.     


내 앞에 서는 유일한 여자인 날렵한 아줌마는 40대로 추정된다. 수영을 워낙 오래 해서 몸에 군살도 없고 피부도 하얀 데다가 오목조목한 이목구비를 갖춘 어려 보이는 얼굴이라 추정의 범위는 더 넓다. 사실 남자들의 여자 나이의 추정은 대체로 이렇다. 내 뒤의 여자 회원들 중에선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은 없다. 대체로 4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 사이다. 이 또한 추정이지만 서로서로 말을 놓지 않으면서도 편하게 얘기하는 걸 보면 여성 회원들의 연령 분포도는 대체로 좁은 범위인 것으로 보인다.      


젊은 회원의 합류

반면 최근 합류한 남자 회원들은 젊은 편이다. 오자마자 얼마 안 되어 2번 아저씨에게 2번 자리를 물려받은 늘씬한 젊은 아빠와 저번 달에 등장한, 뒤에서 따라가면 그 발차기가 만든 물보라로 앞이 안 보일 정도인 덩치 좋고 힘도 좋은 남자는 30대 중반으로 보인다. 여기에 이번 달에 새로 합류한 청년이 두 명이 있는데 한 명은 그야말로 영락없는 미쉐린 타이어 캐릭터인 비벤덤 같은 몸매인데 힘과 체력을 앞세워 잘 따라오고 있고, 다른 한 명은 중급반에서 올라온 대학생으로 아줌마들 사이에서 제법 처지지 않고 잘 따라오고 있다. 이 중 통통한 청년은 꾸준히 나온다. 늘 나오는 데다가 체력과 힘도 좋고 속도도 좋아서 내 앞에 서라고 했다.    

  

이번 주 목요일, 체력과 드릴을 중점적으로 다듬는 날의 라인업은 이랬다. 1번엔 늘씬한 젊은 아빠, 2번엔 전통(?)의 2번 아저씨, 3번엔 에이스 아줌마, 4번엔 힘 좋은 삼십 대 중반 아저씨, 5번엔 통통한 청년, 6번이 나였다. 내 뒤로 아줌마 세 명이 섰다.      


웜 업으로 개인 혼영 두 세트를 한 후, 강사는 75미터 열 개를 시켰다. 절반까진 앞사람의 속도를 따라갔다. 그러나 이 속도로 계속 가다가는 나머지를 못 돌 것 같았다. 결국 속도보단 폼을 유지하기로 결정하고 아줌마들 뒤에서 그녀들의 속도에 맞춰 나머지를 돌았다. 반면 통통한 비벤덤 청년은 쉬지도 않고, 페이스를 떨어트리지도 않고 잘 돌았다. 얼굴에 표정이 없는 건지, 힘든지가 않은 건지 얼굴색의 변화도 없었다. 강습이 끝난 후에도 몇 바퀴 더 돌고 가더라.


나이의 체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헛소리다. 나이는 나이다. 여러 운동을 통해 육체적으로 나이의 무게와 노화를 절감해 왔다. 삼십 대 초반에는 이십 대 대학생들과 농구를 하면서, 삼십 대 중반에는 잠시 몸담았던 교회 축구팀에서 뼈저리게 느꼈다. 젊은 사람과 나란히 있으면 더 숨길 수 없다. 사십 대 초반에는 대학 강의실에서, 또는 우연히 학생들과 함께 찍은 사진에서 느꼈다. 하다못해 요즘엔 아이 때문에 참석한 학부모 모임에서도 느낀다.      


수영장은 말할 것도 없다. 분명 영법의 디테일한 기술은 내가 낫다. 통통한 청년은 평영 킥이 잘 안 돼서 평영을 할 때마다 접영 킥으로 대신한다. 힘 좋은 삼십 대 중반 아저씨는 접영을 할 때마다 강사도 놀랄 정도로 웨이브 없이 다리의 킥 파워만으로 상체를 들어 올려 앞으로 간다. 드릴을 할 때는 이런 단점들이 더 크게 보인다. 한 팔 자유형이나 한 팔 접영을 하면 두 사람 다 속도가 나지 않는다. 풀부이를 끼고 팔만 이용해 자유형을 하면 간격이 급격히 좁혀져 속도를 줄여야 할 정도다. 그런데 막상 본격적인 세트에 돌입하면 둘 다 지치지 않고 잘만 간다. 부족한 기술정도야, 하며 비웃는 느낌이다.  

   

젊음을 보며 나이 듦을 생각한다.

다른 글에서 나이 듦에 대해 썼지만 요즘 이런 청춘들과 수영을 하다 보니 더 자주 나이에 대해, 나이 든 것에 대해, 잘 나이 드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여자는 모르겠지만, 내 주변의 남자들 중엔 나이가 든 후, 자기 연민에 빠지거나 자기 과시가 부쩍 늘어난 사람이 있다. 나이 들수록 하지 말아야 할 것인데 나이가 들수록 늘어나니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민망하다. 젊었을 때야 그럴 수 있다 쳐도 어느 정도 살만큼 살았으면 되돌릴 수 없는 과거의 영광을 들춰보는 것도, 되돌릴 수 없는 과거의 실패와 상처를 헤집어가며 과거의 자신을 부둥켜안고 우는 것도 할 짓이 아니다. 과거의 영광은 누가 묻기 전까진 입을 열어선 안 되며, 과거의 나를 부둥켜안고 우는 건 청승맞다.     


나정도 나이가 든 남자라면 당연히 객기를 부려서도 안 된다. 객기는 쓸데없이 쏟는 혈기다. 주제 파악 못한 혈기의 내지름이자 나섬이다. 물론 젊었을 때야 봐줄 수 있다. 그러나 자식의 키가 어느덧 나만해진 남자 어른이 그러면 보기 흉하다. 객기를 부리지 않으려면, 당연하게도 주제 파악을 할 줄 알아야 한다. 그걸 못하면 아무 때, 아무 데서나,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저도 모르게 객기를 부리게 된다. 사내체육대회와 아이들 운동회가 많은 가을이면 정형외과가 바빠지는 건 이렇게 주제파악을 못하고 사는 뭇 남자들 때문이다.       


주제 파악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들면 오만도 없다. 당연히 후회도, 한탄도 없다. 후회와 한탄은 결국 자기부정에 불과하다. 앞서 말했듯 회고와 영광의 재조명은 누가 물었을 때나 해야 한다. 누군가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는 영사기처럼 누가 묻기 전까진 과거의 필름을 돌려선 안 된다.      


나이 든 사람의 책무

그렇다면 나이가 들수록 해야 될 건 뭔지, 궁금함이 남는다. 두 단어로 함축하면 성찰과 비판이다. 젊었을 때는 멋모르고 이 사회의 여러 조건들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열심히 살아왔다. 그러나 나이 들어 보니 그것의 당연하지 않음이 눈에 보인다. 과거의 것과 지금의 것, 그리고 앞으로 올 것에 대해 의심의 시선을 보낸다. 이 시선, 이 조망을 통해 얻어진 통찰을 차곡차곡 정리해 다음 세대에게 전달할 책임감과 의무감이 느껴진다. 물론, 다시 말하지만, 묻기 전엔 말하지 않는다. 대신 어딘가에, 어떤 형태로 기록을 남긴다. 묻는 이에겐 최대한 친절하게 자세히 답한다.      


결국, 내 나이가 가장 진보적이며 가장 비판적이어야 할 나이라고 본다. 우리 또래가 특정 시대에 특별한 사회와 정치 상황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래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인류 보편적으로 이 나이가 되면 그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나이가 된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과거의 고찰을 통해 발견한 앞선 세대가 저지른 과오에 대한 반성과 우리 세대가 겪은 시간에 대한 회고를 바탕으로 한 성찰, 그리고 이런 것들을 바탕으로 나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다음 세대가 맞이할 미래에 대한 통찰이 농축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기 때문이다.      


시선의 범위

수영은 하는 도중엔 뒤를 볼 수 없는, 아니 보지 않는 운동이다. 그저 옆 레인과 앞사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턴을 할 때, 딱 그때, 뒷사람을 볼 수 있다. 앞에 가는 사람과의 간격을 느끼지 못하고 바짝 따라잡아 그 사람의 발을 치는 건 하수의 실수다. 앞사람과의 간격이 넓어졌는데 그 간격을 좁혀 유지할 생각을 안 하는 것 또한 하수의 실수다. 앞사람과의 간격은 벌어졌고 뒷사람과의 간격은 좁혀질 만큼 자신의 페이스가 떨어졌는데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내 뒷사람들의 페이스까지 떨어뜨리는 사람 또한 하수다.      


고수는 주제 파악을 한다. 자신의 위치를 알고 가야 할 때와 멈출 때, 앞사람을 따라잡아야 할 때와 뒷사람을 먼저 보내야 할 때를 안다. 함께하는 사람들 모두가 실력이 좋아져야 나 또한 실력이 좋아진다는 걸 안다. 어찌 보면, 수영장에서든 인생에서든 고수는 나는 물론이고 내 앞과 뒤, 옆, 그리고 모두를 볼 수 있는 사람인지도. 나이가 들면 겨우 보이는 것들 인지도. 더 멀리, 더 많이, 더 깊이 보려면 더 긴 세월이 필요한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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