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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Dec 03. 2023

수영이 정신건강에 좋은 이유

수영장에서 건진 철학 44

마니아를 걸러내는 겨울이라는 필터

11월의 마지막 날, 추웠다. 이젠 슬슬 진짜 수영에 미친 사람만 수영장에 나온다. 게다가 이 날은 목요일, 드릴의 강도가 높거나 체력 훈련을 하는 날이다. 아니나 다를까 웜업을 할 때는 전통의 2번, 젊은 아빠, 통통한 총각과 나, 그리고 귀여운 글래머 아줌마뿐이었다. 하~ 오늘, 또 죽어나겠구나 싶었다. 그러나 웜업이 마무리될 때쯤 1번이 합류했고, 덩치 좋고 힘 좋은 삼십 대와 날씬한 젊은 엄마가 합세했다. 이 정도라면 할만하다. 라인업이 정리 됐다. 1번엔 1번, 2번엔 젊은 아빠, 3번엔 전통의 2번 아저씨, 4번엔 힘 좋은 삼십 대 총각(이 역시 유부남인지 모르나, 내 눈엔 어쩐지 총각으로 보인다.), 5번엔 통통한 청년, 6번엔 나, 그 뒤로 젊은 엄마와 글래머 아줌마가 붙었다.       


강사는 배영의 물 잡기와 킥 실력을 동시에 향상시키는 드릴을 먼저 시켰다. 옆으로 누운 자세로 킥을 하면서 한 손은 차렷 자세로 허벅지에 붙이고 한 손은 앞으로 뻗어 손만 좌우로 흔들면서 앞으로 가는 드릴을 시켰다. 이걸 몇 세트 한 후 강사는 접영 드릴로 넘어갔다.      


앞서 글에도 말했지만 드릴은 각 영법의 세부 기술을 다듬는 부분 기술의 반복이다. 축구로 말하면 패스, 슛, 삼각 패스, 코너킥 연습 같은 부분 전술 같은 것이다. 모든 강사가 이 드릴을 시키는 건 아니다. 막상 시켰는데 회원들이 소화를 잘 못하면 시킬 수가 없다. 심지어 꼰대 같은 회원들은 이런 걸 왜 하냐고 은근히 불평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 반엔 새로운 드릴이 계속 적용되고 있다. 강사가 말했듯이 강사가 말한  이해하고 흡수하여 몸으로 해 보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가르치는 사람 기분이 좋을 수밖에. 그 결과 오늘도 드릴의 연속인 것이다.      


강사의 욕심엔 끝이 없고

접영 드릴을 하기 전, 강사는 이게 욕심일 수 있다는 전제를 붙인 후 말을 이었다. “회원님들이 잘하시니까, 이제 입수 킥하고 출수 킥의 종류가 좀 달랐으면 좋겠습니다.”, 이게 뭔 소리야, 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입수 킥은 엉덩이를 위로 툭 쳐주시는 느낌으로 하체 전체로 물을 꾹 누르시면서 들어가는데, 잘하고 계세요. 그런데 출수 킥은 스트로크를 도와서 추진력을 만들어줘야 하니까 무릎을 조금 굽히시면서 발등으로 물을 탁, 스냅을 주면서 차서 나오셨으면 좋겠어요. 힘차게. 사실 선수들은 들어갈 때나 나올 때나 빵빵 차주거든요.”  

   

아, 그러니까 우리 강사님 말씀은 부드러운 돌핀 킥은 이제 마스터하셨으니 나오실 때는 그야말로 돌고래처럼 퐁 솟아올라 앞으로 갈 수 있도록 출수 킥을 짧으면서도 탄력적으로 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이시구나. 오케이 알았어, 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나를 중심으로 앞뒤 사람들의 얼굴을 보니 약간의 난감함이 스쳤다. 뒤에 서 있던 젊음 엄마와 글래머 아줌마를 보며 말했다. “야, 이거 건강하려고 수영하는데, 이러다 치매도 안 생기겠어. 이렇게 머리를 써야 하나?”, 두 여자가 웃음을 터뜨렸다.      


일단 한 팔 접영을 하면서 이 킥을 적용해 보라고 했다. 1번 출발. 걱정하는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일단 앞으로 갑시다.”, 다시 빵 터졌다. 리듬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물을 잡는 순간과 무릎을 접는 타이밍을 맞추는 것이 의외로 까다로웠다. 하나의 영법에 다른 형태의 킥을 차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물론 영법마다 속도를 다르게 할 때마다 쓰는 근육과 그 강도를 달리해서 차긴 한다. 또 접영을 할 때도 입수할 때랑 출수할 때랑 약간 느낌이 다르게 차기도 한다. 그러나 의식적으로 다른 종류의 두 킥을 번갈아 차는 건, 다시 말하지만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 아니다.  

  

알아서 하는 반에겐 운동을 던진다.

매달 말일엔 십 분에서 십오 분 정도 일찍 끝난다. 35분에 끝나면 20분 정도 자유 수영을 하다 간다. 그런데 강사는 35분쯤에 세트를 던져줬다. “백 미터 접영 세트를 하실 건데요. 25미터씩 가고 오실 때는 한 팔 접영, 다시 가실 땐 두 번에 한번 호흡하시고 오실 땐 한 번에 한번 호흡 접영. 이거 네 세트 하실게요.” 이렇게 세트를 던져 놓고 총총총. 1번은 강사의 지시 사항을 2번, 3번과 다시 점검, 숙지한 뒤 힘차게 출발했다. 그렇게 세트를 끝내고 1번의 수고하셨다는 멘트를 끝으로 운동이 끝났다.      


자유 수영을 잠시 하다 남자 세 명이 레인 반대쪽에 모이게 됐다. 젊은 아빠, 힘 좋은 삼십 대, 그리고 나. 접영 킥의 리듬에 대한 토론으로 대화가 시작됐다. 서로 다른 형태의 킥을 하는 것의 어려움, 킥의 타이밍-물을 잡는 순간에 할 것인지, 스트로크가 끝날 때쯤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수영 초보 때 입었던 부상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고 이 이야기는 다시 자유형 롤링의 중요성으로, 이 주제는 다시 우리 반의 수준과 운동 강도에 대한 이야기로, 이 이야기는 자연스레 1번의 무지막지한 체력과 템포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이야기를 한참 하고 있는데 귀여운 글래머 아줌마가 다가왔다. “이 킥은 어떻게 하는 거예요.”, “아니 우리도 지금 그거 갖고 토론하고 있다니까요.”, 내가 답을 했다. 이후 서로의 엇갈린 이해를 바탕으로 한 설명이 이어졌고 시범을 보여 달라는 아줌마의 부탁에 사람 좋은 젊은 아빠가 나서서 보여줬다. 결국 우리는 젊은 아빠를 1번으로 한 팔 접영을 하면서 킥의 리듬을 찾는 시간을 잠시 가져야 했다.


함께하는 운동

강습이 끝나자마자 통통한 총각에게 물었다. “다음 달에 등록했어요?”, “아, 네.”, “오케이, 우리 총각들이 열심히 나와야 좀 할 만 하지.”, 통통한 총각이 싱긋 웃었다. “맞다. 총각들이 많이 나와야 편하지.”, 전통의 2번 아저씨가 맞장구를 쳤다. 좀 전의 토론이 끝난 후에도 두 남자에게 다음 달 등록 여부를 물었다. 둘 다 등록했다고 한다. 다행이다.      


수영은 고독한 운동이다. 그러나 외롭지는 않다. 나처럼 고독한 사람들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수영이 정신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첫 번째 이유다. 나 혼자 힘든 것이 아니다. 1번도 숨을 헐떡이고 맨 뒤의 주자도 숨을 헐떡인다. 서로의 운동을 위해 나름의 전력을 다하고 있다. 네가 가면 나도 간다. 이런 마인드가 우리를 묶어준다. 그래서 1번이 제일 싫어하는 건, 바퀴를 잘 못 세서 자기가 한 바퀴 더 돌 때 아무도 쫓아오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1번이 가면 “응? 아직 안 끝났나?”하고 다들 따라간다. 나를 포함해 몇몇은 1번이 수경을 올릴 때까지 수경을 올리지 않을 정도다.      

운동엔 머리가 필요하다.

수영이 정신 건강에 좋은 두 번째 이유는 머리를 써야 하기 때문이다. 이건 모든 운동이 공통이다. 어떤 운동을 하든지 머리를 굴려야 한다. 상대가 있는 운동이라면 더 그래야 한다. 축구나 농구 같이 상대 팀과 실력을 겨루는 경우라면 전술과 전략, 개인적인 기술과 트릭이 필요하다. 그마저도 상대에 따라 바꿔줘야 한다.      


마라톤이나 수영 같은 기록경기는 다른 차원의 두뇌 활동이 필요하다. 몸을 어떻게 써야 최소한의 체력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낼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수영 영상들을 보면 아주 사소한 것을 두고도 격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물을 잡을 때 손가락을 벌리는 것이 좋냐, 오므리는 것이 좋냐. 벌린다면 얼마나 벌리는 것이 좋냐. 킥을 찰 때 두 다리의 각도는 몇 도가 이상적이냐. 무릎을 구부리는 것이 좋냐 펴는 것이 좋냐. 하이 엘보우가 좋냐, 그냥 팔을 쭉 당기는 것이 좋냐. 논쟁은 끝도 없다.


체대를 나왔거나 선수 경험이 있는 강사들은 운동 역학과 운동 생리학적인 고민 끝에 강습 스케줄을 짠다. 고급반을 맡은 강사는 회원들이 소화하면 할수록 신이 나서, 우리 강사처럼 새로운 드릴을 뜬금없이 던져주기도 한다. 이걸 소화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예전엔 운동을 한다고 그러면 머리가 나쁘거나 공부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말해 무식하고 무지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실제로 필자의 학창 시절 운동부는 수업에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다니던 "국민"학교 - 한글 프로그램에서 국민학교를 오타로 인식하고 자꾸 자동으로 초등학교로 바꿔서 부득이하게 따옴표를 쳤다. - 엔 핸드볼 팀과 축구팀, 육상 팀이 있었는데 이 친구들은 거의 수업에 안 들어왔다. 5학년 때인가, 6학년 때 짝이 핸드볼 선수였는데 한 달에 한 번 보기도 힘들 정도였다.      


그러나 요즘엔 어디 그런가? 선수가 어느 수준 이상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일반인 하고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신체 능력을 갖춰야 하는 건 기본이고, 여기에 상상을 초월하는 인내심, 상대의 수를 읽어내는 두뇌 회전, 경기 흐름을 읽어내는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동호인 수준에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강사나 코치의 조언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몸으로 실천하는 건 상당히 수준 높은 두뇌 활동이다. 정보와 지식을 머리로 받아들여 뇌의 지령을 통해 몸을 움직이는 것이니 말이다. 어르신들이 동네 공원에서 게이트볼이나 파크 골프에 열심인 것은 단순히 신체의 건강을 위해서만은 아닌 이유다.


함께 가는 사람들

재미있는 건, 우린 여전히 서로의 나이와 이름을 모른다는 거다. 당연히 직업도 모른다. 젊은 아빠의 애가 딸이고 이제 막 13개월이 지났다는 것도, 그 아기가 결혼 7년 만에 시험관 시술을 통해서 어렵게 얻은 귀한 딸이라는 것도 얼마 전 샤워장에서 잠시 대화하다 알았을 정도다.      


그런데도 다음 달 등록 했냐고 서로 확인한다. 꽉 차게 등록해 봐야 돈은 스포츠센터가 벌고 등록한 회원이 적게 나오든 많이 나오든 강사가 주문하는 운동량은 같은데도 물어보게 된다. 나보다 젊은 남자들에겐 요즘 자주 나오는 덕분에 운동이 좀 편해졌다는 말을 종종 건넨다. 당연히 빠지지 말고 자주 나오라는 압박이 담긴 말이다. 젊은 친구들도 그렇게 알아듣는다.      


우리는 수영장 밖에선 완전한 타인이다. 이 밖을 나가면 어디로 어떻게 가서 뭘 하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물속에서만큼은 서로의 리듬을 느낀다. 거친 숨소리를 듣는다. 힘찬 킥이 만든 물보라를 본다. 마지막 한 세트가 남았다고 서로에게 격려한다. 1번이 수경을 올리면 모두 수경을 올린다.      


육아와 직업 때문에 이 수영장의 다양한 시간대의 반을 경험한 젊은 아빠가 그랬다. 이렇게 수준이 고른 반은 처음이라고. 1번을 따라서 이렇게 열심히 하는 반은 처음이라고. 덕분에 자기도 실력이 는 것 같다고. 힘 좋은 삼십 대도 비슷한 말을 했다. 수영을 시작한 뒤, 그동안 는 수영 실력보다 이 반에 있는 지난 두 달 동안 더 많이 수영이 늘었다고.      


상투적이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간다. 그 함께 가는 사람이, 가장 앞에 가는 사람이 탁월하다면 더 빨리, 더 쉽게 간다. 당연히 우리의 길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 직업이 아닌 취미를 언제 끝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 있을까? 오늘의 찬바람을 가르고 수영장에 갈 뿐이다. 다음 날도 다들 감기에 안 걸리고 멀쩡하게 나오길 바랄 뿐이다. 그저, 지금 한 번의 스트로크에 집중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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