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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Dec 22. 2023

다이어트에 성공한 청년을 보며

수영장에서 건진 철학 46

내가 남에게 자랑할 수 있는 복이 있다면 크게 세 가지인데, 하나는 여복, 하나는 자식복, 그리고 하나는 운동이 잘 받는 체질이다. 이 매거진은 연애 이야기와 자식 자랑이 주 내용이 아니니 마지막 복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자.     


타고난 체질

언젠가 이야기한 것 같은데, 아직까진 거울에 맨 몸을 비춰보는 것이 부끄럽지 않다. 그렇다고 뭐 그게 엄청 크다거나 엄청난 근육질이거나 하진 않다. 그저 나올 땐 나오고 들어갈 땐 들어간 몸뚱이다. 정작 다른 사람이 들으면 열받는 부분은 이런 몸매를 유지하는데 엄청난 노력을 들이진 않는다는 것이다.


평생 다이어트를 해 본 적도 없고 식이요법이나 음식을 가려먹지도 않는다. 당연히 무지막지하게 운동을 열심히 한 적도 없다. 헬스를 한창 할 때도 정확히 하루에 딱 한 시간만 했다. 생각해 보니 대학 다닐 때 농구와 축구에 미쳐 있을 때를 제외하면, 삼십 대에 마라톤과 스포츠 클라이밍에 미쳐 있을 때도 그랬다. 선을 넘는 광기를 보이진 않았다.      


이런 체질과 함께 부모가 물려주신 운동 신경 덕분에 어떤 운동을 시작하는 데 있어서 주저한 적이 없다. 하고 싶은 운동이 있으면 그냥 했다. 좀 복잡하거나 전문가의 강습이 필요한 종목은 약간의 돈을 들여 배우면 됐다 (이 또한 염장 지르는 대사구나). 이렇게 먹고 마시고 운동해도 몸이 유지되는 건 소위 근육이 잘 붙는 체질인 데다가 그 근육이 유지가 잘 되어서 기초 대사량이 높기 때문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좀 더 염장 지르는 말을 하자면, 이런 체질 덕분에, 앞서 말했듯 이 나이 먹도록 살이 쪄서 고민한 적도 없다. 살이 빠져서 다른 이의 걱정을 산적은 있어도.


운동이 필요한 사람이 운동을 하기 힘든 이유

비교적 통통한 체형인 아내와 처남과 오래 알고 지내다 보니 운동의 시작이 다들 나처럼 그렇게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게다가 어느 정도 수준 이상으로 살이 쪄서 운동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일수록 운동을 결심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도 알았다. 왜 그럴까?     


일단 어느 정도 살이 찌면 어떤 운동을 하던지 몸에 무리가 온다. 게다가 쉽게 지친다. 결국 아무리 간단하고 가벼운 운동을 해도 부상을 당하고 체력이 바닥난다.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 당연히 자괴감이 든다. 혼자 꾸준히 운동하기에는 의지가 약하다고 판단되고, 애초에 운동에 취미가 없기에 제대로 된 운동을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당연히 누군가에게 운동을 배울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학원 같은 곳이라도 등록해서 운동을 배우겠다는 결심도 쉽지 않다. 얼마 전 아내는 농담반, 진담반으로 필라테스하는 사람은 날씬한 사람뿐이라고 했다. 오죽했으면 방송을 통해 개그우먼 김민경이 필라테스를 하는 것을 보고 용기를 얻은 뒤, 필라테스 학원에 등록한 여성들이 있었겠나. 헬스든, 폴 댄스든, 마라톤이든, 필라테스든 살을 빼기 위해 운동을 하러 간다면 그 몸 그대로 가면 되는데 다들 그게 쉽지 않은 것이다.      


눈치 안 보이는 수영장

수영장은 조금 다르다. 살집이 있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중년의 아줌마 아저씨만 그런 것이 아니다. 청년들 중에서도 그런 친구들이 있다.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 의외로 수영장은 몸을 가리기 좋은 곳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살이 쪘다고 생각하는 여자 회원은 최대한 몸을 가릴 수 있는 수영복을 입는다. 심지어는 거의 래시가드와 다를 바 없는, 얼핏 보면 반팔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은 듯 한 수영복을 입고 올 때도 있다. 현재 내 앞 시간인 열 시 반에도 한 명 있고, 내 시간 대에도 한 명 있다. 전자는 나보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아주머니, 후자는 이제 막 이십 대에 접어든 듯한 아가씨다.


설령 화려한 수영복을 입고 온다고 해도 상관없다. 누누이 말했듯이 강습 내내 물속에 있기 때문이고, 다른 반 사람들도 운동하느라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수영장은 의외로 여성이 남에 시선 안 쓰고 운동할 수 있는 장소중 하나다.      


사실 생각해 보면 남자 수영복이 몸매를 가리기엔 더 곤란한 면이 있다. 여자 수영복 디자인의 다양함에 비해 남자 수영복은 하의 하나여서 몸매를 가리는 것이 더 어렵다. 몸에 엄청나게 큰 문신이 있지 않는 이상 반팔 래시가드를 입고 수영을 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런 래시가드를 입으면 살이 쪄서가 아니라 문신 때문이라고 오해를 받기 좋다는 말이다.


때문에 살이 찐 남자들은 두툼한 상체의 살을 적나라하게 보여줄 수밖에 없다. 뱃살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팔뚝과 등과 목과 허벅지 살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살이 찐 남자들의 대부분은 아저씨다. 청년 중에는 거의 없다. 그러나 최근 우리 반에 한 명 들어왔다. 앞선 글에서 말한 통통한 청년.      


부끄러움을 이겨낸 청년

저번 주 스타트 연습을 하는 금요일, 난 그 청년 뒤였다. 내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그 청년의 옆구리가 눈에 들어왔다. 당연하게도. 그러다 그 청년의 튼 살이 눈에 띄었다. 청년의 옆구리엔 급격히 살이 쪘을 때 남은 흔적, 튼 살의 흔적이 아주 적나라하게 남아 있었다. 그 청년에겐 지금보다 훨씬 비만이었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용감하다고 생각했다. 이어서 그 청년이 어떤 운동을 처음 시작했을지, 그 운동을 처음 했을 때 어떤 마음으로 시작했을지, 운동으로 이어진 그 절박함의 동기는 무엇이었을지, 어떤 이유로 수영이라는 운동을 선택했을지, 수영을 선택하면서 수영복을 고르면서 얼마나 많이 고민을 했을지 상상했다.      


이날, 강사는 스타트해서 자유형 킥 네 개, 접영 네 개, 평영 네 개, 자유형 대시 네 개를 시켰다. 그때마다 이 청년은 망설임 없이 뛰어들어 잘 갔다. 그런데 뒤이어 출발한 나와 거의 동시에 물 밖으로 나왔다. 청년이 약간 큰 사이즈의 수영복을 입고 있어서 물에 뛰어들 때의 충격으로 약간 흘러내린 수영복을 수습하는데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신경 쓰여서 금요일엔 안 나올 만도 한데, 생각해 보면 그 청년은 금요일에 빠진 적이 별로 없다. 여자 회원과 달리 남자 회원이 빠지는 경우는 전날 과음했을 경우나 몸이 안 좋았을 때, 또는 갑자기 일이 바빠졌을 때여서 언제 빠지는지 가늠이 안 된다. 그래서 설령 스타트를 할 때마다 살짝 내려가는 수영복이 신경 쓰여서 금요일마다 빠진다고 해도 눈치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그 청년은 거의 빠지지 않고 나왔다.      


내가 보기에 그 청년의 다이어트는 진행 중인 것 같다. 다이어트의 목적이 뭔지는 몰라도 어찌 됐든 그 다이어트의 일차 목표는 성공했고 현재는 다음 단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중인 듯하다. 그 일차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튼살의 흔적이 훈장처럼 남은 현재의 몸매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가늠이 안 된다. 아니, 그전에 그 다이어트에 도전하기 위해, 그 도전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큰 결심을 했으며, 얼마나 단호한 의지를 갖고 실행했을지부터 가늠이 안 된다. 그러나 어쨌든, 그는 성공했고 오늘도 내 앞에서 수영을 했다. 아주 멋지고 우아하게.


악순환의 구조

운이 좋아서 유전자의 축복을 받아 이런 몸을 갖고 태어났다. 열 살 이후, 속상하고 슬픈 일이 있을 때, 스트레스를 받을 때, 여하간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운동을 거의 매일 했다. 그 운동이 내 몸을 만들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몸은 아직도 운동을 좋아한다. 딸도 마찬가지다. 다행히 운동도 좋아하고 그 운동의 효과도 잘 나타나는 몸을 갖고 태어났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체질적으로 살이 잘 찌고 운동이 맞지 않은 사람이 있다. 게다가 팍팍한 삶이 주는 스트레스를 자극적인 음식으로 해소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저런 요인들이 한데 엮어져 손 쓸 새도 없이 살이 쪘을 것이다.      


아내를 포함하여 여러 사람에게 건너 들으니 살이 쪘다고 느끼는 순간 악순환이 시작되는 듯하다. 그 순환의 구조는 다음과 같다. 살이 쪘다. 옷이 맞지 않는다. 스트레스를 받는다. 풀기 위해 먹는다. 더 찐다. 옷이 더 맞지 않는다. 사태가 심각해서 운동을 하기로 결심한다. 걷거나 뛰어보기로 한다. 당연히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고 뼈마디가 아프다. 스트레스를 받는다. 다시 먹는다. 더 찐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개인 PT나 필라테스, 수영 같은 운동을 전문적으로 배워보기로 한다. 적당한 운동복을 찾는다. 레깅스나 탱크톱, 화려한 수영복을 검색해 본다. 모델들은 죄다 예쁘고 날씬하고 잘 생겼고 몸짱이어서 내가 입어도 저리 보일까 의심이 되지만 일단 주문을 한다. 내가 입으니 이상하다. 스트레스를 받는다. 다시 먹는다. 더 찐다....     


나를 구할 결심

다른 글에도 썼지만 신체는 하나뿐이다. 지금이라도 잘 수습해서 건강하게 만들어 남은 세월 잘 굴려먹으며 써야 한다. 그러니 남에 눈치 볼 필요 없다. 예쁘게 보일 필요도, 멋지게 보일 필요도 없다. 남에 시선이 정 신경 쓰이면 수영장에 등록해라. 다들 물속에서 죽기 살기로 수영을 하고 있어서 당신의 몸매는 거들떠도 안 보니까. 아마 강사가 시키는 대로 이 악물고 반년만 하면 슬슬 몸매가 달라지는 것이 눈에 보일 것이다. 아니 한 3개월만 열심히 하면 살 빠지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      


수영이 아니어도 좋다. 무슨 운동을 하든 남 신경 쓰지 마라. 또, 고통 없고 힘들지 않은 운동도 찾지 마라. 바르기만 해도 살이 빠지고 붙이고만 있어도 식스팩이 만들어진다는 광고도 믿지 마라. 몸짱이 될 필요도 없고, 프로필 사진 찍는 걸 목표로 삼을 필요도 없다. 다시 말하지만 몸뚱이는 하나뿐이다. 잘 만들어, 잘 쓰다가 죽을 때 버리고 갈 딱 하나의 몸뚱이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작심하라.


달이 바뀌고 해가 바뀌면 다들 하나씩 결심할 것이다. 그 결심을 행동으로 옮길 것이다. 그러다 행동이 힘들어서, 행동의 결실이 금방 나타나지 않아서 운동이든 뭐든 때려치운 적이 있을 것이다. 아니, 심지어 지금의 내가 부끄러워서, 맘에 안 들어서, 지금의 나는 운동의 공간, 도전의 현장엔 어울리지 않다고 지레짐작하고 자신을 방에 가둬 두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시작부터다. 시작부터 할 일이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그리고 그 시작을 매일 하는 것이다. 매일 하다 보면 달라지는 것이다.   


오늘, 다음 달 수영장 등록 기간이어서 등록을 했다. 등록을 하고 집에 걸어오는데 불쑥 내가 내년 1월 달 치를 결제했다는 걸 깨달았다. 열흘 남짓, 앞서, 새해를 준비한 것이다. 나답지 않게 말이다. 그 청년도 등록했으려나? 내일 가서 물어봐야지. 아마 등록했을 것이다. 등록하지 않았다면 엄청 험한 운동으로 갈아탈지도. 크로스핏 같은 운동 말이다. 뭘 하든, 그 청년의 몸만들기는 현재 진행형일 것이다.    


설마 몸짱이나 바디프로필을 꿈꾸는 건 아니겠지? 지금의 몸매를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날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 몸매를 벗어던지고 탈바꿈하겠노라고 결심했던 첫날이 있었을 것이다. 그날의 그 결심은 얼마나 단호했을까?   또 모른다. 그 청년이 언젠간 화려한 색의 숏사각 수영복을 입고 스타트 라인에 서는 날이 올지도. 그 청년하고 함께 할 일 년이 기대된다. 내일 가서 꼭 물어봐야지. 다음 달 등록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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