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데 하기 싫은 이유와 머스탱 쉘비와의 관계
진지하게 야한 농담들 46
이게 말이 되나?
섹스가 하고 싶은데 섹스가 하기 싫다. 그러니까 하고 싶은 욕구는 있는데 귀찮다는 얘기다.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으면 ‘좋구나.’하는 기분이 들면서 푹 잠들고 싶은 생각만 든다. 뭐,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이 아내는 지난 이십여 년 간 눕자마자 잠드는 이런 삶을 일관되게 살아왔기 때문에, 남편이 그냥 잔다고 해서 눈치를 주진 않는다.
잘해야 한 달에 한 번쯤 흐릿한 신호를 보낼 때가 있는데, 도시의 경계를 막 넘었을 때, 여전히 그 도시의 FM 주파수에 맞춰져 있는 자동차 라디오가 경계 너머에서 보내는 주파수를 잡기 위해 애쓰는 것처럼 내 쪽에서 적극적으로 감지해 줘야 의미가 발생할 만큼 그 신호는 흐릿하다. 모른 척하고 있으면 그 신호는 금세 잠의 세계로 넘어가면서 사라진다.
섹스가 하기 싫어도 섹스가 잘 되던 때가 있었다. 몇 살까지일까? 삼십 대 중반? 하고 싶을 때 할 사람이 없어서 곤란하던 십 대를 지나 이십 대에 제법 잘 맞는 파트너 몇몇을 만나 나름 열심히 했다. 그러다 삼십 대에 들어서서 생계와 사회와 현실의 무게와 미로를 헤매면서 섹스에 대한 욕구는 서서히 우선순위에서 점점 밀려났던 것 같고, 그나마 있던 체력 또한 섹스보다 더 생산적으로 보이는 - 그러나 인생 전체로 보면 전혀 생산적이지 않았던 - 일에 써야 했다.
배터리는 방전 직전?
그래도 사십 대까지는 제법 그 욕구에도, 그 욕구를 현실로 만드는 힘에도 여력이 있었다. 이렇게 그나마 있던 여력도 오십 대가 되니 시들해진다. 다시 말하지만 섹스가 하고 싶은데 섹스가 하기 싫다. 요즘 내 상태가 딱 이렇다. 이렇게 나이가 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찌 보면 이런 현상이 순리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까 기능이 상실되기 전(사실 뭐, 예전 같지는 않지만 아직은 구동이 되니 기능이 떨어지기 전이라고 써야 하나?)에 의욕이 먼저 떨어지고, 그다음에 기능이 떨어지고 상실되고 결국... 뭐, 그렇게 되는 것 같다. 아직 진행 중이라 언제, 어떻게 결말이 날지는 모르겠다.
여전히 애쓰는 또래들
물론 기능을 연장하고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이런저런,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도 있다. D-Day를 잡아놓고 장어를 때려 먹는 사람도 있고 남진 선생님이나 이만기 씨가 모델로 등장하여 광고하는 전립선에 좋다는 영양제를 한 움큼 털어 먹는 사람도 있다. 유산소 운동이 정력에 좋다고 해서 평생 안 하던 운동을 오십이 넘어 시작하는 사람도 있고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십여 년 전, 마흔 즈음에 처음 수영을 배웠을 때는 수영만 하고 나면 섹스가 하고 싶었다.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근육의 긴장을 풀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수영장에서 집까지 걸어가는 것도 귀찮을 정도다. 섹스는 개뿔... 다시 말하지만 수영장에서 바람이 나는 건 수영을 대충 하는 인간들에게나 해당되는 얘기다. 아니 애초에 그런 여유도 없다니까. 자자, 얘기가 벗어났다. 다시...
여하간 많은 중년의 사내들이 자기 나름의 노력을 기울인다. 그게 잘 안 되는 것이 돈을 못 벌어다 주는 것만큼 치명적이라고 여기는 여자를 아내로 둔 남자들이 이렇게나 많은 걸까? 신혼 때부터, 좋게 말하면 담담하고 사회과학적(?)으로 말하면 거의 섹스리스에 가까웠던 부부였던 내 입장에서는 이런 내 또래 남자들의 고군분투가 애처로우면서도 이제 그만 좀 편해져도 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다들 애쓸 만큼 썼잖아?
오래된 기계에 대한 예의
다른 글에도 썼지만 아직 겉보기엔 멀쩡하다. 마치 자동차 박물관에 전시된 클래식 카 같다고 해야 할까? 보기엔 좋지만 막상 움직이지는 않는, 설령 움직인다고 해도 시동 거는 거 자체부터 쉽지 않은, 설령 시동을 걸었다고 해도 벤츠의 스마트보다도 속도도, 힘도 떨어지는 그런 자동차 말이다.
아니, 그럼 도대체 운동은 왜 하는 거야? 하고 묻는 소리가 들린다. 이게, 그 이유가 그러니까, 흠... 사용하지 않더라도 관리를 해줘야 수명이 연장되는 기계하고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까 어떤 기계든 연차가 쌓이면 쌓일수록 기계의 구동시간보다 정비 시간이 길어지는 것과 비슷하다. 응? 아직 뭔 소리인지 모르겠다고.
자, 생각해 봐라. 트랜스포머에 나오는 쉐보레 카마로나 <식스티 세컨즈>에 나오는 - 이 영화엔 67년형이 나온다. - 셸비 머스탱의 2024년형을 샀다고 치자. 이 명차, 오래 타고 싶은 것이 당연하다. 당연히 타고 다니는 내내 정기 점검을 받을 것이다. 타이어도 주기적으로 갈아줄 것이다. 그러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점검 주기도 짧아지고 소모품 교체 주기도 빨라진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도색 유지를 위해서 별의별 약품으로 도배도 해줘야 한다.
여기서 정말 중요한 게 있는데 이 차가 아깝다고 해서 가만히 모셔두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까 말했잖아. 세워두는 전시용 차를 다시 달리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아주 아주 오래 공을 들여야 한다고. 그러니 성적인 기능은 물론이고 몸의 전체적인 기능을 위해서라도 적당히 움직여줘야 한다.
딜레마의 해답?
물론 사람은 자동차와는 다르다. 아니 자동차도 그렇지만 어느 순간 한계에 달하는 순간이 온다. 그야말로 박물관 전시용으로 전락하는 순간이 온다는 것이다. 그러니, 결론적으론 자동차는 달릴 수 있을 때 달려야 하고 사람은 할(?) 수 있을 때 열심히 해야 한다. 뭐든 말이다.
자, 그래서 다시 앞의 첫 문장의 딜레마를 다시 생각해 보자. 섹스가 하고 싶은데 섹스가 하고 싶지는 않다는 문장 말이다. 이 문장의 앞 절은 심적인 바람이다. 후자는 이 심적인 바람의 육체적 실현이다. 마음은 그런데 몸을 그렇지 않은 것이고, 마음은 굴뚝같은데 몸은 따라주지 않는 형국이다. 그런가?
현재는 오래된 셸비 머스탱과 같은 상태다. 일단 가끔 달릴 수 있고 달리다가 타이어와 엔진에 열이 좀 오르면 제법 속도도 나고 파워도 나지만 그렇다고 예전처럼 드리프트를 하거나 경찰과 추격전을 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다. 그렇다고 은퇴해서 박물관에 가기엔 조금 이른 것 같고.... 뭐 그런 상태다.
기분이 어떠냐고? 뭐, 딱히.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이 같이 사는 사람이 거기에 그렇게 목메는 사람이 아니라니까. 게다가 아직 읽지 못한 책도 많고... 아, 그리고 박물관으로 물러난 후에 들여다보려고 아직 동양 철학엔 손도 안 대고 놔뒀다. 아, 그렇다고 동양 철학이 그 기능이 다한 노인네들이나 공부하는 거라는 말이 아니고... 여하간 그렇다는 말이다. 일종의 보험 같은 거라고나 할까? 김용옥 선생한테는 좀 미안하지만.
아, 사족을 달자면... 크리스마스고 송년의 밤이고 어디 갈 생각하지 말고 부지런히 그거나 해라. 추운데 백화점 따위 같은 곳이나 번화가 같은 곳에서 헤매지 말고, 추워 죽겠는데 다음 날도 뜰 게 뻔 한 해를 보겠다고 쓸데없이 새벽같이 일어나서 발 동동 구르며 해맞이하지도 말고.
크리스마스와 한 해의 마지막 날을 멋지게 보내는 데 그것보다 더 좋은 게 있나? 잘 나갈 때 한 번이라도 더 달려야지. 안 그래? 아 물론, 짝이 있는 사람 한정... 없는 사람은 뭐, 어디든 나가시라. 그러니까 반대로 하라고. 커플들은 따뜻한 곳에 있고 솔로들은 나가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