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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스로이스의 여신과 주말에 터질 불꽃과의 관계

진지하게 야한 농담들 42

by 최영훈

왜 다들 그 차를 찾는 건가?

우연히 일본의 "그렇고 그런" 게시판에 들어가게 - 진짜다. 일부러 들어간것도 아니고, 갈 방법도 모르고, 아는 곳도 없었다. 어쩌다 우연히..- 됐다. 유독 "롤스로이스"라는 말이 자주 눈에 띄었다. 알아서 한글로 번역해주는 친절한 게시판의 번역의 오류라고 넘어가기에도, 일본 남자들이 이 차를 좋아하나 보다 하고 넘어가기에도 지나치다 싶을만큼 자주 눈에 띄어서 검색을 해 봤다. 롤스로이스라고 치자 그 옆에 연관 검색어가 같이 뜨는데 그중에 “자세”가 있다. 자세? 다시 “롤스로이스 자세”라고 검색했다. 체위였다. 그리고 그 유명한 시미 켄 선생이 연관 인물로 떴다.


시미 켄이 누구던가. 왕년에 야한 것 좀 본 남자라면 누구나 아는 이름, 이제는 국경을 넘어 한국에서도 왕성히 활동하고 있는 그 남자 아닌가. 따라붙은 설명은 이렇다. 이 체위는 시미 켄이 만들었으며 가장 추천하는 체위다. 남녀 모두 극상의 쾌감을 느낄 수 있고.... 그 이유는... 계속 설명이 이어진다. 시미 켄이 말하길, 이 자세의 가장 큰 장점은 남자의 두 손이 자유로워서 그 손으로 많은 걸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해부학적으로... 그만하자. 궁금한 사람은 찾아봐라.


이 자세의 본질

별로 새롭지는 않았다. 해 봤던 자세였다. 아하, 이 체위를 롤스로이스 자세라고 부르는구나. 여하간 일본 애들 같다 붙이는 거 하나는, 하고 반응할 정도로 익숙한 자세였다. 이 체위의 본질에 대해, 시미 켄이 말하지 않은 것이 있다. 왕년에 봤던 일본의 포르노에서 이 자세를 많이 하고, 게시판에서도 이 자세를 많이 언급하는 진짜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이 자세는 근본적으로 노출을 위한 자세다. 아니, 다 벗고 하는 섹스, 그 자체가 노출 아냐? 하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포르노에는, 그리고 오감을 자극하는 섹스를 위해서는 전략적인 노출이 필요하다. 시각적인 자극을 극대화하는 노출 말이다. 이 자세는 여자의 상체 노출을 극대화시킨다. 롤스로이스의 엠블럼 여신보다 더 상체를 올려 세운다. 남자는 그 여성의 상체 뒤에 숨는다. 이건, 당연하게도, 대부분의 포르노가 남성 소비자를 위한 상품이라는 증거다. 결국, 포르노에서 남성의 신체는 침대보다 무가치하다. 오직 여성의 신체만이 전시된다. 최근까지 말이다. 이 경향은 특히 일본에서 강하다.


미국의 포르노에는 근육질의 잘 생긴 남자가 등장할 때가 있다. 브랜드와 레이블에 따라선 오히려 남자가 더 눈에 띌 때가 있을 정도다. 반면 일본의 "제품"에선 좀처럼 그런 남자를 찾아보기 힘들다. 요즘엔 있나? 시미 켄 정도가 최상 아닐까? 마르거나 뚱뚱하거나 평범한 남자, 옷을 입고 지나가면 그저 옆집 아저씨나 동네 청년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주로 나온다. 다시 말하지만 일본 포르노에선 남자는 상품성이 없는 존재다. 결국 여자만 전시 된다. 롤스로이스 자세는 그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자세다. 이 자세를 진짜로 시미 켄이 만들었다면 그는 비즈니스 마인드가 뛰어난 사람이다.


열광의 이유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일본의 젊은 남자들은 왜 이 체위를 많이 언급할까? 만약 시미 켄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정말 여성의 쾌감을 위해서일까? 아니다. 당연히 "보기" 위해서다. 이전에 썼던, <아메리칸 사이코>에서 크리스천 베일이 거울을 보며 도취됐던 것과는 다른 맥락에서의 "봄"이다. 이 영화에선 오로지 여성을 정복하고 다루고 지배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기 위해 거울을 사용했다면 롤스로이스 체위는 나와 함께 즐기고 있는 여성 뿐만 아니라 그 현장도 관람하기 위해서다.


물론 이를 위해선 해결해야 될 문제가 있다. 현실에선 포르노에서처럼 카메라가 없다. 이 체위가 포르노에 많이 나오는 건 여성에 대한 3자적 노출이다. 즉 섹스를 하는 사람이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하지 않는 타자가 보기 위해서 이 체위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이 체위를 한 많은 남자들은 “어, 생각보다 별론데”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 체위는 궁극적으로 “보면서” 해야 그 효과가 배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이 체위가 신체적으로 엄청난 쾌감을 안긴다고 하더라도 일상적인 공간에서 하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시각적인 자극이 중요한 남자들이 잘해야 여자의 등이나 보는 체위를 할 리가 없잖아? 결국 롤스로이스 체위는 제삼자 입장에서 보거나 하는 도중에 봐야만 그 의미가 획득되는 체위다.


거울의 가치

그래서 모텔이 존재한다. 다른 글에도 썼듯이 거울방이 있는 모텔 말이다. 그렇다. 이 체위는 거울 앞에서 해야 한다. 카메라를 설치했거나 누군가에게 촬영을 부탁한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남자도 여자를 봐야 하고 여자도 자기 자신을 봐야 한다. 남자는 완전히 달라진 여성의 신체를, 여성 또한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자신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들이 신체를 더 변화시키고 쾌감을 증폭시키고, 그 쾌감이 더 신체를 변화시키고 그 변화가 더 쾌감을 증폭시키고.... 결국, 성과 중심의 섹스엔 이 체위는 들어올 수 없다. 욕구 해소를 위한, 그런 단순 행위엔 이 체위가 불필요하다. 이 체위는, 그러니까 관람용이라니까.


불꽃놀이보다 롤스로이스

앞서 말했듯이, 난 이 체위를 한 적이 있다. 언제, 어디서 했는지 가물거릴 정도로 오래전 얘기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이 체위를 위해선 몇 가지 신체 조건이 필요하다. 해보면 알 테니 구구절절 말하진 않겠다.

아, 다시 생각해 보니 여자의 등을 본다는 것은 뒤에서 그녀를 꼭 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흠... 생각해 보니 이것도 좋다. 굳이 그녀의 앞모습을 보지 않아도 그녀의 벗은 몸을 꼭 안을 수 있다는 것이. 그래서 내가 이 체위를 언제 누구랑 어디서 했는지 정확히 기억해내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이 체위를 하는 동안 그녀를 꼭 안았었기에.


금요일이다. 토요일의 부산엔 불꽃축제가 열린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폭풍우 급의 비가 예보되어 있다. 불꽃축제 따위라니. 이 가을에 할 것이, 볼 것이 그렇게 없단 말인가. 차라리 불꽃보다 단풍이 낫다. 조용히 산을 걷고 저녁엔 뜨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가을에 만들 수 있는 최고의 불꽃 아니겠나.


롤스로이스의 앞에 꽂힌 엠블럼의 이름은 “환희의 여신”이다. 명차의 가장 앞에서 사람의 시선을 가장 먼저 받는 존재에게 어울리는 이름이다. 그리고 오늘 밤, 한 사람의 품에서 최고의 희열을 느끼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이름이기도 하고. 오늘, 그 환희를 느끼는 당신은 여신이다. 불꽃 따위는 보지 않아도 된다. 그 불꽃보다 더 화려하고 눈부시고 폭발하는 섬광이 점멸하는 순간을 누군가에게 선사했다면...바로 당신이 불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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