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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Dec 29. 2023

화폐라는 짐승 : 북클럽 자본 3권 - 고병권

동해선에서 읽은 책 73

이제 겨우 3권

그렇다. 이제 겨우 3권이다. 총 열두 권인데 말이다. 다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의심도, 다 읽고 말겠다는 의지도 없다. 현재 내겐 4권과 7권이 있는데 들어오는 데로 읽어나갈 생각이다. 마르크스의 <자본>을 읽을 계획도 없다. 글쎄... 그건 훨씬 나중의 일이다. 안 읽을 수도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학, 특히 마르크스 경제학에 관심을 기울이는 건...


경계, 상품, 공동체

자본주의는 인류 역사 전체로 봤을 때 젊은 경제 시스템이다. 예수가 성전 밖의 잡상인들의 테이블을 둘러엎은 시기를 자본주의의 기원으로 봐도 불과 2천 년 정도 된 것이고, 십자군 원정을 위한 자금 마련과 이를 위한 대부 및 관련 금융가의 등장을 그 기원으로 봐도 천년 남짓이다.


그전까지, 고병권이 지적했듯이, 우리는 공동체의 경계 안에서 물물을 교환했다. 교환 이전에 자급자족을 하고 남은 것들은, 보드리야르가 지적했듯이, 타자와 공동체를 위해 탕진해야 했다. 마음의 표현이자 지위의 표현이었다. 이 사태의 왜곡이 호화 결혼식, 돌잔치... 뭐 그런 것이다. 그러니까 애초에 그런 잔치들은 남은 것들의 나눔이었지 분수에 넘치는 퍼포먼스가 아니었다.


남은 것을 다른 이의 남은 것과 등가적인 가치 판단에 의거해 교환한 역사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맥주를 예로 들면 독일에서 집에서 만든 맥주를 본격적으로 동네의 권역에서 팔기 시작한 것은 13세기부터다. 참고로 <맥주, 세상을 들이켜다>라는 책에는 이런 과정이 상세히 나온다. 어찌 됐든, 우리가 당연시하는 화폐는 공동체와 공동체의 경계에서 낯선 이와의 교환을 위해 탄생한 것이다. 그전에 상품이 존재했고...


화폐가 만든 세상, 공동체의 붕괴와 개인의 소멸

쉽고, 단순히 말하면 화폐는 상품의 가치를 드러낸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상품에 들인 노동의 수고와 마음 씀이 줄어들지 않아도 이 상품의 가치는 떨어질 수 있다. 또 당연하게도 우리가 요즘 보듯이 들어가는 건 똑같아도 들어가는 것의 가치 변동에 의해 상품의 가격이 올라가기도 한다. 치킨처럼 말이다. 여기서 생산자, 판매자, 소비자... 이 교환과 관련된 개개인의 무력감이 발생한다. 시장의 결정에서 제외된 존재들, 심지어 시장의 결정으로 인해 발생한 이익에서도 소외된 존재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시장의 실패에 대한 피해, 그 유탄은 온몸으로 받아내며 살아야 하는 존재들.


"여기서 우리는 상품사회, 부르주아 사회의 중요한 단면을 볼 수 있습니다. 앞 장에서 말한 것처럼 이제 공동체는 없습니다. 생존은 철저히 개인에게 맡겨져 있습니다. 아무도 곁을 돌보지 않습니다. 누군가 굶어 죽는다면 그 자신의 책임입니다.... 생존은 혼자서 해결해야 하는데 운명은 그가 통제할 수 없는 사회적 관계에 달려 있습니다.... 각자 도생하라, 그러나 운명은 함께 맞는다! 이런 겁니다. 고병권, 북클럽 자본 3권, 화폐라는 짐승, PP.120-121


매개된 사회성

고병권은 화폐가 만든 사회를 화폐로 매개된 사회성이라고 불렀다.

"상품과 화폐는 '매개적 관계', 이렇게 불러도 된다면 '매개된 사회성'입니다. 사람들은 상품과 화폐를 통해 관계를 맺습니다. 한편으로는 독립해 있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상품과 화폐를 매개로 묶여 있는 것이죠.", 같은 책, 같은 페이지.


이런 사회성을 갖춘 사회에선 화폐로 측정할 수 없는 것은 없다. 얼마 전 공항에서 경험했듯이 돈만 지불하면 열두 살짜리를 혼자서 비행기에 태워 텍사스에 보낼 수도 있고, 놀이공원에서 줄을 안 설 수도 있다. 당연하게도 자기 차가 있으면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보다 출퇴근 시간을 줄일 수도 있으며, 부산에선 바다가 보이는 객실을, 경주에선 보문 호수가 보이는 객실을 예약할 수 있다.


관건은, 고병권이 지적했듯이 관계와 매개의 문제다. 화폐와 상품으로 매개되지 않은 사회성과 사회의 가능성, 그것이 없는 관계 형성의 가능성의 모색이다. 저자가 책 후반부에서 대안 화폐나 대안 경제 시스템을 운영하는 공동체에 대해 말한 것은 그 현상들이 이러한 모색 끝에 도출된 하나의 대안이기 때문이다.


이 쓸모없는 것의 쓸모

카피라이터로서, 또 홍보 영상 작가이자 기획자로서의 삶은 내부자의 삶이다. 관공서와 기업의 정책과 비전과 상품을 살피고 그것을 알릴 수 있는 효과적인 메시지를 수립한다. 이것은 말 그대로 돈이 매개된 삶이다. 그들은 나와 감독을 비롯한 관련 전문가의 능력을 돈으로 구매한 것이고 우리도 돈 값을 하려고 애를 쓴다.


반면, 그 외의 글쓰기는 아무런 목적도, 욕심도 없는 유희다. 하루에 - 최근 며칠간은 몇천 명이 갑자기 봤지만 - 백여 명 정도가 내 글을 보고, 그중 몇몇은 "좋아요."를 누른다. 난 그들이 무슨 생각으로 그 표시를 남겼는지 알 수 없지만, 그들이 아무런 대가 없이 그 행위를 했다는 건 알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모종의 동지애,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또, 그런 느낌을 바탕으로 또 돈이 안 되는 글을 취미 삼아 쓰고 있고...


개인적으로, 요즘 젊은 친구들이 너무 쓸모와 필요에 함몰되어 있는 건 아닌지, 합목적성(인스타그램 사진 찍기조차도)의 노예가 된 건 아닌지 걱정이 되곤 한다. 다들 자유롭게 산다고들 하는데 상당히 부자연스러워 보인다고나 할까? 물론 내 걱정이 가 닿을 젊은 친구들이 주변에 없기에 그저 혼자만의 궁상으로 끝난다.


그래도 이 걱정을 조금 더 이어 말하자면, 가끔은 외부자의 삶, 시선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외부자가 되면 낙오자가 될까 걱정하는 친구들도 있는 듯한데, 인생 전체로 보면 또 그렇지도 않다. 물론 뭐, 내가 그런 말 할 입장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여하간, 고병권의 이 시리즈는 이 당연한 경제 시스템을 외부자의 시선으로 보게 한다. 전체를 읽지 않더라도 아무것이나 한 번쯤은 펴 읽어 볼만한 이유다.


사족...

이 책은 앞선 글에도 말했듯이 아즈마 히로키의 책 보다 먼저 읽었다. 그러나 업로드는 안 했었는데 앞선 글에서 이미 언급이 됐기도 했고, 또 송년 인사와 새해 인사를 겸하는 글에 어울리지 않나, 내 맘대로 생각하고 이렇게 올린다. 일 년 내내 수영, 야한 농담, 자녀교육, 영화와 책, 일과 일상 등, 여하간 나에 잡다한 글을 읽어주신 쓰기와 읽기의 동지 여러분께 감사를 드린다. 새해가 되어도, 뭐 크게 달라질 게 있겠나? 다들 건강하시라. 연애를 해야 될 분들은 연애도 많이 하시고, 사랑을 해야 될 분들은 사랑도 많이 하시고... 내 덕담은 이 정도다.


진짜 마지막 사족...

어제 수영이 끝난 후, 라커룸. 2번 아저씨가 내게 물었다. "내일도 와요?", "아, 예, 뭐 연말이라고 딱히... 애들도 아니고... 그리고 저녁반이라면 또 몰라도.", 아저씨가 동지를 만났다는 듯한 만족한 미소를 띠며 점퍼의 지퍼를 올렸다. 그래서... 이 업로드가 끝나면 난 수영장에 간다. 올해의 마지막 수영... 다시 한번 덕담을 하자면, 새해엔 어떤 운동이라도 하셔서 더 건강하셔라. 그래서 애인과 부인한테 더... 그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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