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영훈 Jan 12. 2024

현대사상입문 - 지바 마사야

동해선에서 읽은 책 75

다시 펼쳐 본 지도

언젠가 말했듯이, 뭔가를 찾기 위해, 또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순례, 또는 모험을 나설 때 우리는 지도를 챙겨갔다.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말이다.


단적으로 말하면, 등산을 할 때, 천 미터는 고사하고 해발 오백미터도 겨우 넘는 산을 오를 때도 초행자는 잠시 길을 잃을 수 있다. 방향표지판은 듬성듬성 있고 정상은 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을 수 있으며 계곡의 물소리 또한 들리지 않을 수 있다. 숲이 깊어, 해도 보이지 않는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그때, 우리는 시야가 탁 트인 곳을 찾아 올라 잠시 멈춰 지도를 꺼낸다. 나의 위치를 확인한다. 다시 오른다.


지바 마사야의 이 책은 그런 책이다. 내가 지금까지 어떤 책을 읽어 왔고, 왜 그런 책을 읽었으며, 읽을 수밖에 없었으며, 그 책들을 통해 내가 알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으며 앞으로 그 무엇을 더 깊이 알기 위해 어디로 가야 할지 알려주는 책이다. 그런 책인데 심지어 재미있다.


그 재미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 데 하나는 "자, 그렇다고 치고 넘어갑시다."류의 말이 자주 나온다는 것이다. 이 원고의 근본이 대학 강의였다는 것을 저자의 후기를 통해 알고 난 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이 말투랄까, 글투는 재미있다. "아니, 아니, 지금은 그것까지 알 필요 없어. 그런 건 일단 넘어가자고." 하는 육성이 들린다.


두 번째 재미는 명료한 분석이다. 그러니까 데리다, 들뢰즈, 푸코를 중심으로 현대사상, 엄밀히 말하면 프랑스 현대사상을 논하면서 이들의 큰 형님 격인 니체, 프로이트, 마르크스에 대해 설명하고 이어 라캉과 르장드르, 레비나스까지 언급한다. 분명 등장하는 인간, 그러니까 쪽수가 많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야, 몇 명 안 돼, 너라면 한방으로 해결할 수 있어."라고 해서 의기양양하게 두들겨 패주러 갔는데 생각보다 많은 쪽수가, 그것도 건장한 인간들이 나온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지바 마사야는 이 상황에서 느긋하게 등장해서  "아, 걱정 마. 내가 말이야 이 인간들의 급소를 정확하게 알고 있어. 이 인간들의 급소가 말이야." 하면서 능청스럽게 이들을 관통하는 사고의 흐름을 툭툭 짚어내 준다.


근대에서 근대 이후로

난 서른다섯까지 전형적인 근대적 인간이었다. 근대적 인간은 편하다. 걱정할 게 없다. 종교가 있고 현실을 믿으며 보이는 것을 믿는다. 존재와 주체의 의미는 확고하다. 관건은 저것이 무너질 때, 스스로 그것을 무너뜨린 후 새롭게 나를 정립하려 할 때 문제가 생긴다는 것.


세계와 철학도 저 근대를 의심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철학적으론 칸트 이후라고 다들 그런다. 그 뒤의 철학들은 칸트에 반대하거나 칸트의 철학에 무엇을 더하거나, 더 나아가 칸트의 철학으로부터 탈주하거나.. 여하간 그런 식으로 진행되어 왔다. 지바 마사야가 다룬 인물들은 저항과 탈주의 공범들이다.


철학이 하는 일, 해야 될 일?

엄밀히 말하면 철학이 아니라 철학 책이 하는 일엔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본다. 하나는 제품 설명서, 하나는 사용 설명서다. 자, 우리가 자동차를 샀다고 치자. 스마트폰으로 생각해도 된다. 한국 사람 특징이 지독하게도 제품 설명서를 보지 않는 것인데 - 아내도 그렇다. 그런데 우리 딸도 그렇다. 이건 아주 거시적인, 그러니까 어떤 민족적인 유전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다. - 제품 설명서엔 대체로 스펙이 적혀 있다.


그러니까 자동차로 말하면 배기량이 어떻고 소재는 뭐고, 브레이크는 뭐고... 스마트폰으로 말하면 하드가 어떻고 통신 방법이 어떻고.. 뭐 그런 거 말이다. 그런데 그런 걸 안 보는 이유가 뭔가? 결국엔 사용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아무리 제품에 대한 정보가 많아도, 그 제품의 사양과 기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그것이 나에 실질적 사용으로 어떤 형태로 전환되는지, 그것이 어떻게 실생활에 응용되는지, 와닿지 않으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말이다.


대체로 우리가 배우거나 읽은 철학과 그 책들은 제품 설명서에 가까웠다. 그러니까 소크라테스는 불라불라... 플라톤은 불라불라... 들뢰즈는 불라불라... 성질 급한 한국 사람들은 당연히 묻게 된다. "그러니까. 그걸로 뭘 할 수 있는데?"


이쯤 해서 등장해하는 것이 바로 사용설명서다. 예를 들면..."자, 철학 A는 말입니다. 인생의 이런 국면을 이렇게 생각하고 이런 식으로 사는데 도움이 됩니다."식이다. 그러니까 구체적으로는 "자, 데리다는 끊없는 차이와 오독에 대해 말했거든요. 그러니까 상대방의 문자나 메시지를 오해하는 건 당연합니다. 왜, 남자 친구랑 전화나 카톡으로 싸우다 보면 꼭 우리 얼굴 보고 얘기하자고 말하죠? 그거 데리다적으로 보면 약간 파롤 중심적인 사고입니다. 자기가 직접 말하면 흔들림 없는 진실이라고 믿게 할 수 있다고... 뭐 그렇게 자신만만한 겁니다. 데리다라면 웃기고 자빠졌네 했을 겁니다."


지바 마사야의 이 책은 제품 설명서일 뿐만 아니라 사용 설명서이기도 하다. 게다가 어떤 제품을 추가해서 달으면 성능이 좋아지는지 관련 참고 서적도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다. 그러니 돈 있고 열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철학 스펙을 고기능적으로 튜닝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핵심은 사용이다. 람보르기니에 대해서 잘 아는 것과 그것을 잘 모는 것은 다르니까. 지바 마사야는 이 사용에 대해서도 아주 친절하게 말해주고 있다. 자신의 학생한테 강의한 내용이니 오죽할까?


공통의, 모종의 위기감

언젠가 말했듯이 최근 몇 년 간 읽고 있는 일본의 세 학자, 사사키 아타루, 아즈마 히로키, 지바 마사야는 나와 동년배다. 얼마 전 읽은 히로세 준도 마찬가지고.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공통점인 것이 데뷔작이자 박사 논문으로 일본을 완전히 뒤집어 놓은 뒤 꾸준히 내놓는 책은 상당히 대중적인 책이라는 것이다. 왜 그럴까?


아마도 동일본 대지진 이후, 편 가르기에 열중하고 배타적 혐오에 치중하고 있는 후배, 그러니까 청춘들에게 "야, 야,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 인생 하루이틀 살고 말 것도 아닌데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좀 진지하게 인생에 대해, 우리에 대해, 그리고 철학에 대해 함께 생각 좀 해보자.", 이런 안타까움을 글로 쏟아내고 있는 것 같다. 아즈마 히로키는 교수까지 때려치우고 출판사와 인문 토론 공간을 만들었을 정도니까...


우리도 그런 시대에 살고 있고, 그렇기에 저런 학자들이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최근에 읽은 몇몇 학자들의 책에선 그런 안타까움이 행간에서 읽히기도 했다. 예를 들어 박찬국 교수님, 권택영 교수님 같은 분들...


그러나 뭐랄까... 일본의 저들의 나이를 감안하면 두 교수님의 연배는 좀 높다. 그래서 직접적이지 않다. 결국 70년대 태어나서 90년대 인문학을 공부한, 4, 50대 학자들이 좀 나서줘야 하지 않을까?


4, 50 대란 애매하니까... 노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젊은이도 아닌 나이랄까? 몇 시간 서서 얘기해도 버틸만한 체력도 있고 대학이 그나마 대학 다울 때 공부를 해서 학문의 깊이랄까 그런 게 그 앞세대와 견줄만하면서도 뒷세대하고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그러면서도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화해 간 이 시대와 사회의 물결을 온몸으로 겪기도 했고....


내가 좋아하고 읽었던 학자들로 예를 들면 이진경은 환갑이 막 넘었고, 고병권은 나와 동년배며 백상현도 액면가로 보면 그렇지 않을까 짐작 - 백상현에 대한 정보는 의외로 적다. -되고, 여기에 서동욱은 나보다 약간 나이가 많다.


물론 이들은 이미 철학의 사용 설명서와 같은 책을 많이 냈다. 관건은 이것을 대중이, 특히 우리보다 어린 친구들이 읽어줬는지가 문제.... 그래서 바라건대 이들이 모종의 위기의식, 그러니까 앞서 말한 일본 학자들의 위기의식을 더 절실하게 가져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서...


"야, 야, 지금 니들이 니들끼리 싸울 때가 아냐. 여혐이니 남혐이니, 무슨 MZ니 꼰대니 하며 입에 거품 물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자 이리 와바... 인생이란 말이야.." 하는 듯한 그런 책들을, 그런 강연들을 더 많이 해주길 바라고 있다. 의외로 이론적으로 훌륭하게 하는 사람들은 이미 차고 넘치니...


사족...

아니, 농담이 아니라, 지바 마사야는 진짜, 진짜로 이 방면에 전혀 문외한인 사람을 위해 이 책을 썼다. 그러니까 개뿔 아무것도 몰라도 이 책을 읽을 수 있다는 말이다. 아, 물론 좀 알면 더 좋겠지만 몰라도 상관없다는 말.


들뢰즈의 <니체와 철학>, 아즈마 히로키의 <존재론적, 우편적>을 읽다가 이 책이 손에 잡혀서 후루룩 읽었는데... 뭐랄까... 덕분에 앞에 두 책의 윤곽이 좀 더 선명하게 보인다고나 할까. 이해하는 힌트를 얻었다고나 할까. 이제 더 두 책, 특히 앞의 책으로 다시 돌아가볼까... 생각 중이다.


아, 그리고... 표지가 너무 조잡하다. 뭘 그렇게 구구절절 써 놨는지.. 아니 뒤표지에 저런 것까지 쓸 필요 있나? 이게 무슨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을 받은 일본 신인 추리소설 작가의 소설도 아니고...... 어차피 그렇게 오사카의 도톤보리 옥외광고처럼 현란하고 화려하게 문구를 크게 써 놔도 <역행자>나 <세이노의 가르침>을 읽을 사람이 이 책에 눈길을 보낼 리는 없잖아?



매거진의 이전글 봉기와 함께 사랑이 시작된다 - 히로세 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