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영훈 Jan 24. 2024

자본은 어떻게 자본이 되는가-북클럽 4권-고병권

동해선에서 읽은 책 76

수전노와 낭비가, 그리고 자본가

-알다시피 최소한 종교혁명 이전까지 돈으로 돈을 불리는 사람은 천박한 취급을 받았다. 그 유명한 <베니스의 상인>의 샤일록처럼 말이다. 유대인들이 이런 고리대금업에 종사했던 건 그들이 유럽 공동체의 외부인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조선시대의 백정처럼, 누군가는 해야 될 일이지만 아무도 하기 싫은 일을 천대하던 사람에게 맡겨놓고 더 천대해 온 것이다.


-십자군 전쟁 때, 원정대는 유대인들에게 돈을 빌리기도 했지만 비정규 십자군, 그러니까 군주나 기사에 소속되지 않고 그냥 영빨과 광기에 끌려 삼삼오오 모인 십자군들 중에선 이런 유대 공동체를 약탈한 무리있었다. 뭐, 뭔 얘기도 아니다. 불과 천여 년 전 이야기...


-이전까지 돈을 써서 돈을 만든다는 개념보다는 돈을 그저 "쟁여"놓는 개념이 더 강했다. 우리가 잘 아는 스쿠루지 영감이 그런 케이스. 물론 이쪽도 욕을 먹긴 매한가지였지만 돈을 쓰고 굴려 돈을 더 만드는 자본가와는 욕의 결이 달랐다. 전자는 그냥 인색한 사람, 일종의 자기 착취에 빠진 사람, 돈을 사랑하고 돈을 소유하지만 돈 그 가치 자체를 훼손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 책 후반부 부록에 인용된 글에서 지젝이 말하듯이, 마치 라캉이 표현한 옛 기사도의 사랑과 유사하다. 환상이 실재가 되면 환상이 무너지기에 환상은 환상으로 유지하려는 강렬한 욕구, 그 환상의 유지가 곧 자신의 존재 이유가  되는 사람... 그래서 오히려 수전노는 종종 동정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반면 후자는 고리대금업자처럼 욕을 먹었다. 이들을 구원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종교 혁명... 그 유명한 칼뱅의 예정설, 여기에 일종의 설명서 역할을, 더 유명한 베버의 <프로스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 담당했다. 이후, 화폐는 쌓아 놓는 것에서 굴려 먹는 것으로 변환된다.


잉여가치(증가가치), 노동, 노동력

-저자가 마치 밀실살인의 방법과 범인을 추적하듯이, 그 추적의 절차처럼 서술한 내용들이 위의 내용이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자본가, 기업가는 분명 돈을 번다. 우리가 얼핏 아는 상식으로는 원자재로 새로운 가치를 가진 물건을 만들어 거기에 이윤을 붙여 판매한다. 이로 인하여 잉여가치가 발생하고, 그 잉여가치에서 기타 비용과 투자를 제외한 것이 자본가/기업가의 이익이 된다.


-그런데 마르크스와 저자는 원자재와 상품 사이에 존재하는, 아니 그 이후에 발생하는 잉여가치의 원인에 주목한다. 그래서 잉여가치라는 말 대신 증가가치라는 말을 써서 무엇이 이 증가분을 만들었는지, 그 마술 같은 일의 원인을 추적한다.


-그것은 당연하게도 노동이다. 그리고 노동은 다시 노동과 노동력으로 구분되고.... 이 차이는 사실 마르크스의 중요한 발견 중 하나다. 노동자의 노동력의 가치보다 노동의 가치가 적을 때, 그 차이에서 증가가치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뭐, 간단하게 설명하면... 노동자가 하루 노동력을 유지하는 비용이 있다. 그걸 최저임금이라 부를 수 있다. 그래서 최저임금은 뭔가 후한 대접이 아니다. 그저 노동자가 노동자 구실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유지비용인 것이다. 그러니까 노동자의 노동력 유지, 그 이상으로 할 수 있는 자본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 다시 돌아가자. 그 비용, 그러니까 노동자가 노동력을 유지하는 비용이 곧 노동력의 가치인데, 실제로 일해서 받는 노동의 가치는 이보다 적을 때 증가가치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왜 그러냐고? 그건 5권에서 더 자세히 설명되는데... 뭐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당연한 거지.


-실제, 미국의 6,70년대 경기 호황을 생각해 보면 된다. A의 한 달 삶을 유지하는데 100만 원이 든다고 치자. 그런데 월급은 90만 원이다. 개인의 삶을 유지하는 비용이 100만 원인데 월급이 90만 원이라는 건 물가가 비싸다는 것이다. 즉 물가상승률과 임금상승률이 미스매치가 된다는 것. 이때, 전능하신 신용카드와 대출이 등장한다.


-미국에서 신용카드가 본격화된 것이 바로 저 시대였다. 그래서 소비는 백만 원, 임금은 90만 원, 빚 십만 원은 계속 시장을 떠돌고... 기업의 이윤은 계속 확보되고... 제품 가격을 더 올려도, 임금은 안 올려도 된다. 왜? 빚을 늘리면 되니까.... 그러다 이 미스매치가 심화되면 인플레이션.. 어느 순간 노동자들이 지갑을 닫기 시작하면 디플레이션... 뭐 그런 거다.


자유로운 시장, 자연스러운 착취

-3권에서 말했다시피 인간은 공동체에서 튕겨져 나오면서 한 개인으로서 자신의 삶을 온전히 감당하게 된다. 팔 수 있는 걸(저자가 말했듯이, 소유는 처분의 자유를 포함한다.) 팔면서 생계를 유지하다 결국 자기 자신을 판다. 문제는 이 팔려는 사람이 많아지면 자신의 노동 가치를 낮춰야 한다는 것. 그런데 낮춘 가치, 즉 적어진 임금으로는 기존의 노동력을 유지하는 비용을 감당할 수 없으니, 삶의 질은 떨어진다. 바로 이 부분, 그러니까 한 사람의 삶의 질을 훼손하는 부분을 마르크스는 착취로 본다.


-불과 몇 백 년도 안 된 자본주의 시스템, 이 자유로운 시스템이 만들어낸, 일종의 고도의 착취 시스템이다. 물론 아무도 강제로 나온 사람은 없고, 아무도 강제로 끌어낸 사람도 없다. 그래서 우린 마르크스와 저자의 지적대로 "시스템"을 봐야 한다. 시스템... 무엇이 이 사회와 개인을 피폐하게 하는가를....


사족...


1. 어제, 감독의 후배를 만났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데 광고 전략과 제작, 집행 등을 상의하고 싶다고 해서 함께 갔다. 참고로 감독의 후배는 여자였는데..... 어제, 아내에게 말했다시피... 최근 몇 년 동안 본 사람 - 여자, 남자 포함해서 - 중에서 가장 화려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돈의 냄새가 풍겼다. 오른손에 팔찌, 왼손에 여성용 롤렉스(또는 그와 비슷한) 시계, 샤넬(또는 샤넬풍의)의 트위드 원피스, 흰색 스타킹, 화려한 하이힐, 샤넬 향수.


오는 길, 감독에게 그랬다. 돈을 써야 돈을 번다는 말이 실감 난다고... 우리? 우리는 이 날 오전 잠깐의 촬영이 있었다. 둘 다, 늘 입고 다니는 그런 차림새였다. 우린 둘 다 돈을 버는 재주는.....


2. 이 4권, 상당히 재미있다. 다른 권도 마찬가지지만 이 4권도 구조가 탄탄한데, 약간 범인과 동기를 추적하는 구조여서 더 재미있게 읽었다.


3. 이 시대에 왜 마르크스고, 자본론인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는데... 저자가 말했듯이 마르크스는 세상에 이미 존재하는 현상을 당연시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는 "새로운 것을 창조한 사람이 아니라 기존의 것을 새롭게 보게 만든 사람"이고 "새로운 기호를 추가한 사람이 아니라 기존의 기호를 완전히 새롭게 해석한 사람"이다.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이 세상을 당연하지 않게, 다르게 보기 위해서 필요한 하나의 자리와 위치, 하나의 렌즈... 이 시대에도 여전한, 마르크스의 가치 아닐까?


#성부와_성자와_자본은_어떻게_자본이_되는가

#북클럽_자본_4권

#고병원

#동해선에서_읽은_책

매거진의 이전글 현대사상입문 - 지바 마사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