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첫째 주 - 씨름을 할만큼 컸다.
일요일과 함께 12월이 시작됐습니다.
부산은 좀처럼 영하로 내려가지 않으니 추위 걱정도 하지 않고, 작은 식구라 김장 걱정도 안하니 연말이라고 부산스럽지는 않습니다. 그저 은채가 크게 안 아프고 1년여를 보냈고 학교에 잘 적응하면서 키도 훌쩍 컸다는 것이 감사할 뿐입니다.
일요일, 엄마는 병원에서 뇌사판정위원회가 열려서 낮에 잠시 출근했습니다. 코마 상태에 있는 환자나 뇌사 상태에 빠진 환자의 뇌사 여부와 그 이후의 일을 판정하는, 관련 전문가들이 모인 위원회입니다. 뇌사자의 장기 기증과 관련해서는 일반인들이 모르는 여러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상급 병원에는 이런 위원회가 있는데 아내는 의료사회복지사로써 병원 내부의 위원으로 참여합니다. 은채는 엄마 회사에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회의라는 것이 비교적 금방 끝나기 때문에 엄마 사무실에서 잠시 놀다가 엄마랑 이런저런 쇼핑을 하고 올 수도 있기 때문에 따라갈 줄 알았더니 은채는 아빠랑 놀겠다며 남았습니다.
은채는 일단 만화를 잠시 봤습니다. 그러더니 공부방에 들어와 놀아달라고 했습니다.
“그래? 뭐하고 놀까?”
“아빠, 돼지 씨름 알아?"
("알"을 "름"보다 훨씬 더 높게 소리 낸 후 "아"의 음을 급격히 낮춰야 부산 소녀의 말투가 됩니다.)
“돼지 씨름? 앉아서 하는 거? 알지.”
결국 우린 거실로 나갔습니다.
“은채야, 그 씨름하기 전에 진짜 씨름 한번 해보자.”
은채는 당황스러워하면서도 깔깔대며 아빠의 허리를 잡았습니다. 은채는 이미 제 명치까지 자랐고 몸무게도 삼십 킬로그램 언저리라 어깨를 겨룰 만 했습니다. 장난삼아 몇 가지 기술을 넣어 봤습니다. 안다리, 바깥다리, 들배지기 등등. 그러나 은채는 의외로 잘 버텼습니다. 힘도 좋고 아이답게 유연성도 좋으니까요. 기술 몇 개를 넣던 아빠가 먼저 지쳐서 앉자고 했습니다.
앉은 김에 돼지 씨름 몇 판을 했습니다. 처음 한두 판은 가볍게 아빠가 이겼습니다. 자기 또래하고는 다르게 아빠는 다리가 길고 힘이 더 세니까요. 그러나 서너 판 지나가자 은채가 적응을 했습니다. 은채는 알 수 없는 함성을 지르면서 아빠에게 적극적으로 덤벼들었습니다. 그 기세에 몇 판을 지고 이제 그만하자고 했더니 두 판 더하자고 조릅니다. 슬슬 아빠 체력이 바닥이 나고 있다는 걸 느꼈는지도 모릅니다. 어찌됐든 마지막 두 판은 박빙의 승부였습니다. 은채는 신체 균형 감각과 근성 넘치는 함성을 앞세워 아빠를 집요하게 공략했고 아빠는 긴 다리를 무기 삼아 버텼습니다. 마지막 판은 결국 은채가 이겼습니다. 머리는 산발이 됐고 얼굴은 상기 됐는데 뭐가 좋은지 깔깔대며 웃습니다.
엄마는 한 두 시간 만에 집에 왔습니다. 샤브샤브 거리를 장 봐와서 맛있게 점심을 먹었죠. 은채는 채소는 물론이고 소고기를 워낙 좋아하는데다가 아빠랑 그렇게 운동을 한 후인지라 그야말로 폭풍 흡입을 했습니다. 그렇게 먹고 나서는 엄마와 함께 미용실을 간다고 나섰습니다.
“아빠, 나 요만큼만 자를까?” 손날을 세워 귀 언저리에 갖다 댑니다.
“응. 은채는 단발도 잘 어울리니까.”
두 여자는 달라진 스타일로 집에 왔습니다. 엄마는 살짝 짧아진 숏 컷, 은채는 어깨 바로 위까지 오는 단발로. 단발일 때는 어떻게 헤어스타일을 할지 엄마랑 삔과 헤어밴드를 번갈아 착용해가면서 이런저런 궁리를 하는 것이 여대생 같아 보였습니다.
가끔 은채가 거실에서 뭘 할 때 전 주방 쪽이나 공부방 쪽에 서서 그 모습을 한참 물끄러미 보곤 합니다. 은채가 태어나자마자 산 매트도 기어서 못나가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이미 은채의 키는 이 매트를 종횡으로 가로지를 만큼 커졌습니다. 불과 몇 년까지만 해도 이 세상에 없던 예쁜 소녀가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집 거실에 앉아서 “아빠, 나 귤 좀 갖다 주라.”라고 엄마처럼 아빠를 부려 먹을 때는 묘한 기분이 들곤 하죠.
그러면 종종 묻습니다.
“요. 예쁜 아가씨가 어디서 왔나?”
“엄마 뱃속에서 왔지.”
은채의 대답은 늘 같습니다.
당연한 대답에도 불구하고 신비함은 여전히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적은 노력을 들였음에도 이다지도 큰 기쁨을 얻은 적이 있었던가? 스스로 이렇게 몇 번씩 묻습니다. 말귀를 알아들을 때부터 늘 강조하던 아빠의 소원-은채가 다치지 않고 아프지 않는 것-을 은채는 충실히 지켜주면서 예쁘게 컸습니다. 초등학교에 들어 가서는 자잘한 부상이 있었지만 큰 흉터 없이 나았고 말이죠. 은채는 튼튼하고 건강한 초등학교 1학년, 웃음 많고 부산 사투리 진해진 소녀로 자라났습니다. 키가 더 커야 한다면서 자기 전에 쭉쭉이 해달라고 벌렁 누워 있을 때는 영락없는 아기 같지만 말입니다.
12월 첫 월요일, 은채는 목도리를 두르고 티 위에 후드 풀오버를 하나 더 입고 갔습니다. 아무리 부산이어도 11월과 12월은 공기가 다르니까요. 은채는 괜히 교실이 썰렁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며 투덜대면서도 아빠가 입혀주는 데로 입고 등교를 했습니다. 장난스럽게 “안녕히 계세요.”라고 인사하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