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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Feb 29. 2024

나는 심장을 바치러 온다.

그날의 시로 오늘의 너를 위로한다 16

나는 심장을 바치러 온다 - 문태준  

   

 나는 심장을 바치러 온다

 호두나무 잎에 어둠이 뭉쳐 있을 때 그 끝에서 새벽을

기다리는 외로운 산까치처럼 나는 살아왔다

 거친 꽃을 내뱉으며 늙은 영혼의 속을 꺼내 보이는 할

미꽃처럼 나는 살아왔다.

 그러나,

 허물을 벗어놓고 여름을 우는 매미처럼

 하나의 열망으로 노래하리니

 꾹꾹 허공에다 지문을 눌러 찍으며 물결쳐가는 노래여

 절절 끓는 아랫목으로 불 들어가듯 가는 노래여

 더 슬픈 노래여

 나는 이제 심장을 바치러 온다


난 문태준을 잘 모른다. 아니 전혀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다른 작가처럼 그에 대해서도 아는 게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집 두 권이 있다. 이름만 대면 우리 국민 누구나 알만한 유명한 시인도 아닌데, 왜 난 그의 시집을 두 권이나 사들인 것일까? 무슨 이유로, 왜 샀는지 알 길이 없다. 사물마다 사연이 있고 책마다 들여놓은 이유가 있을 텐데 그것들을 기억하기엔 사물도, 책도 쓸데없이 많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이유로 샀는지, 혹은 누가 어떤 날, 어떤 일을 기념하여 내게 선물하였는지, 기억할 수 없는 옷과 물건과 책들이 허다하다. 옷과 물건, 책을 볼 때마다 사람과 장소, 이야기가 따라오는 것만 남겨두면 그 삶은 얼마나 간소해질 것인가.     


이 시집들은 2006년 즈음에 산 것 같다. 저 시가 실린 <맨발>이 아닌 다른 시집 <수런거리는 뒤란> 맨 뒷장에 경성대학교 인근, 면학서점의 직인이 찍혀 있다. 직인이 2006년 7월 27일에 샀음을 말해준다. 아마 <맨발>도 몇 주나 몇 달 터울로 샀을 것이다. 2006년 7월, 난 뭘 하고 있었을까? 결혼한 지 두 달쯤 지났을 때였다. 신혼이라고 마냥 기분이 들떠 있지도 않았다. 오래 연애했고, 결혼 전에 이미 같이 살다시피 했기에, 그래서 살면서 겪을 여러 문제들의 교통정리는 물론이고 같이 산다고 해서 상상하는 것만큼 일상이 뜨거워지지는 않는다는 걸 미리 알았기에 결혼 뒤에도 덤덤했다.


게다가 난 당시, 그저 그런 영상 제작사를 다니면서 겨우 밥벌이나 할 때였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지만, 당시 아내는 유부녀가 됐다는 이유로 종합병원 원장 비서실에서 타의적으로 나와 다른 비영리 단체에서 일해야 했다. 아내가 다시 그 병원 재단 소속의 다른 병원으로 복귀한 건 그 후 몇 년 뒤였다. 여하간, 이렇게 그저 그런, 일상 속에서도 동네에 있는 서점에 들렀고, 그 서점에서 시집을 샀다. 아마 <시인을 찾아서> 2권을 읽은 후였으리라.     


그때, 그러니까 이 시집을 처음 들췄을 때 들었던 그 첫 마음 또한 알 길이 없다. 그저, 명색이 카피라이터인데 마케팅 책만 읽을 것이 아니라 시도 좀 읽어야 하지 않나 하는 강박 끝에 집어 들었는지, 그도 아니면 시집 하나 끼고 다니는 행색을 자랑하기 위해 샀는지, 시집은커녕 책 한 줄 읽을 시간도, 그런 여유도, 솔직히 책에  관심도 없는 아내와는 다른 종류의 인간이라는 걸 과시하기 위해 샀는지, 정확히 알 길이 없다.      


기억이라는 괴물은 기억하고 싶은 건 먹어치우고 기억하기 싫은 건 토해낸다. 그래서 나쁜 기억은 오래 남고 좋은 기억은 흐릿해진다. 분명 좋은 기억들도 있었을 신혼이었을 텐데 아무리 기억해 봐도 생각나는 게 없다. 그즈음 아내랑 북해도에 여행을 갔던 것 같고 제주도에도 갔던 거 같다. 그러나 신혼집에서의 기억은 거의 없다. 영화 <지독한 사랑>에서처럼 밥을 먹다 말고 상을 밀어내고 갑작스레 섹스를 한 기억도 없다. 소리를 지르고 육탄전을 마다하는 싸움이 빈번히 일어난다는, 신혼 시기의 주도권 다툼에 대한 기억도 없다. 애초에 “주도적”인 여자와 결혼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일까?


여하간 뜨거웠던 기억도, 싸웠던 기억도 없다. 결국, 결혼하지 이십 년이 다 되어가지만 술자리에 안주 삼을만한 사건이 없다. 기억이 없다는 건 무탈하고 평온하다는 거다. 아픈 사람도 없었고, 죽은 사람도 없었으며 해고를 당하지도 않았으며 야망도 절망도 없었다는 거다. 그러니까 이렇게 한가하게 시집이나 읽었을 지도. 결혼하지 몇 년 후, 아내가 아이를 갖기로 결심하지 않았더라면 이 무난하고 평탄하며 무탈한 결혼 생활을 감사하기는커녕 오히려 지루하다는 이유로 끝냈을지도 모른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누구나 허황된 꿈을 꿔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제법 오랫동안 노래를 했었다. 제법 깊이 음악을 공부하기도 했다. 아직도 그때 썼던 곡들을 갖고 있다. 오선지 위에 연필로 그린 음표들. 기타와 심플한 건반으로 쓰고 불렀던 노래들. 대학원을 마치고 부산으로 내려오면서 음악에 관련된 거의 모든 것들을 교회 후배들에게 주고 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악보는 여전히 갖고 있다. 직접 쓴 가사와 멜로디, 그 위에 삐뚜름하게 써진 코드들.      

모든 걸 토해내듯이, 속에 있는 마지막 쓴 물까지 다 끌어내어 사는 것이 청춘이라면, 난 그런 적이 없다. 마지막까지 깨어 새벽의 외로움을 기다리는 사람이었던 적도 없고, 내 영혼의 민낯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예술가처럼 산적도 없다. 매 순간 전력을 다하지는 않았다. 마치 다음 회를 신경 쓰는 선발투수처럼. 그렇다. 오늘 이 순간에도 스펙 쌓기여 여념이 없고 하루에도 여러 곳의 회사에서 거절당하는, 정말 발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니는 청춘들에겐, 정말 미안하지만 난, 뭐 하나에 전력을 다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인생 전체를 마무리 투수처럼 살 수는 없다. 9회 말, 한 점 이기고 있는 상황, 투아웃, 주자 2,3루에서 당연하다는 듯 무표정하게 공을 건네받는 오승환이나 마리아노 리베라처럼 살 수는 없다는 말이다. 우리는 대체로 5회는 물론이고 더 나아가 완투를 목표로 하는 선발투수처럼 살고, 또 그렇게 살아야 한다. 그러나 어느 한순간, 선명하게 기억되는 그 순간이 있다면 그 순간만큼은 마무리 투수처럼 산 것이다. 공 하나하나에 전력을 다해 던지는 마무리 투수처럼.     


기억을 더듬어 보자. 그냥저냥 살아온 것 같은 나에게도, 신혼 시절조차 담담했던 나에게도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으며 살았던 시간들이 있었나? 그랬던 일과 공부와 여자가 있었나? 마지막 남은 에너지까지 쥐어 짜낸 뒤 껍데기만 남은 육신을 겨우겨우 거리로 끌고 나와 집으로 돌아가게 했던 적이 있던 가? 다른 타자라면 몰라도 이 타자만큼 삼구삼진으로 잡고 싶어 마음을 다잡고 강속구를 던지는 선발투수처럼, 일도 공부도 사랑도 그랬던 적이 있다. 기억에 남아 있다. 다행이라면 이 또한 다행이다.     


그러나 매 순간 전력을 다한다는 사람들에 비하면, 난 5회까지 어떻게든 버텨 넘겨보려는 너클볼 투수에 불과하다. 최고 구속은 겨우 80마일, 시속 130킬로미터를 겨우 넘는, 내가 던진 볼이 어떻게 날아갈지도 모르면서, 그래도 어떻게든 넘어서야 하고 이겨내야 될 상대를 향해 공기의 흐름에 그 변화를 맡기는 공이 주무기인 너클볼 투수, 그러다 가끔 뜬금없는 직구로 상대의 타이밍을 뺏는, 좋게 말하면 기교파, 나쁘게 말하면 승부구 없는 5 선발, 또는 중간 계투. 그런 삶이었다.


시인이 밝혔듯이 시의 제목이자 구절은 포르투갈어로 노래, <Yo vengo a ofrecer mi corazon>의 제목이자 구절에서 따왔다. 시인은 Marina Rossell의 노래의 구절이라 소개했는데 유명하기로는 Mercedes Sosa의 것인 듯하다. 노래도, 가수도 생소해서 찾아봤다. “온다.”라는 말이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온다.”는 건 있다가 갔다가 다시 “온다.”는 걸 의미한다. 떠나지 않았던 사람은, 이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 아니면 “온다.”는 말을 할 수 없다. 또 온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날 기다리던 사람에게로, 고향으로 온다. 가사의 앞줄, “누가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고 말했던가?”하고 말하며, 아직 내게 남은 것이 있다고 말하며.      


심장을 바치러 온다는 심정은 절박하면서, 동시에 희망적이다. 험한 인생을 살면서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잃었지만 아직 내게 남은 것이 하나 있다. 그걸 문자 그대로 심장으로, 마음이라 돌려 말해도 좋다. 내가 숨을 거두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펄떡대며 뛰고 있을 그 무엇, 아직 남아 있는 그 무엇을 너에게 주고 싶다. 주고 나면? 내가 소멸되어도 좋다. 너만 빛날 수 있다면, 너만 새 희망을 얻을 수 있다면, 너만 희망찬 내일을 볼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내가 가진 마지막 그것을 기꺼이 바치겠다. 그런 심정이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바칠 것이 심장 밖에 없는 절박함을 나는 다, 충분히 헤아릴 수 없다. 그런 절박함을 갖고 사는 삶 또한 내 삶과 다르다. 시인의 시를 읽고 공감할 수는 있어도 내 것이라, 내게 보내는 말이라 확언할 수 없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의 뒤에 길게 내 생각을 달아 붙이는 것은 바칠 것이, 줄 것이 그것밖에 없는 사람이 그 마지막 남은 것조차 타자에게 주려할 때의 그 간절함, 그것만은 어쩐지 이해가 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마음에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난 사랑이라 붙이고 싶다. 딸을 키우면서 든 마음이 어쩌면 약간은 더 절박함과 닮지 않았을까.      


허물을 벗은 매미는 열흘을 못 산다. 우리의 여름을 소란스럽게 만드는 매미의 울음은 열흘 치 울부짖음이다. 이 열흘 치의 소리엔 어떤 열망이 담겨 있을까? 그 내용은 몰라도 그 간절함과 절박함은 충분히 이해되지 않나? 아랫목으로 들어가는 불도 마찬가지다. 불은 빛을 동반하는데 아랫목으로 들어가는 불은 그 빛을 세상에 보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감수하고, 절절 끓는 아랫목으로, 타서 사라질 그 운명을 감수하고 들어간다. 다른 이의 밤을, 그렇게 따뜻하게 밤을 보낸 이가 맞을 새날의 햇빛을 위해, 자기는 세상에 보여주지 못했던 빛이지만, 자신의 열로 인해 누군가 새 기운을 얻고 새 빛을 향해 당당히 나갈 그 아침을 위해.


꽃 진 자리에 - 문태준   

  

생각한다는 것은 빈 의자에 앉는 일

꽃잎들이 떠난 빈 꽃자리에 앉는 일     

그립다는 것은 빈 의자에 앉는 일

붉은 꽃잎처럼 앉았다 차마 비워두는 일     


평소에 쓰지 않는 말로 써진 시는 별로 안 좋아한다. 어제 우리가 함께 썼던 말로 시를 써서 오늘을 사는 나에게, 편의점 점원이 영수증 건네 듯 무덤덤하게 건네지는 시를, 그런 시를 쓰는 시인을 좋아한다. 요란하게 포장된 꽃다발이라도 건네는 듯 호사스러운 말들로 가득 찬 시는, 어쩐지 불편하다. 물론 그 시대의 말과 오늘 내가 쓰는 말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뜻과 마음이 전해지는 시도 있다. 조선 시대 기생들의 시가 그랬고 백석과 이용악의 시가 그랬다. 앞서 소개한 미국 시인들의 시 또한 그렇다.      


문태준의 시는, 대체로, 아니 최소한 내가 좋아하는 그의 시는 덤덤하다. 당연하지만 잊고 있었던, 갖고 있어야 했으나 인생의 어느 순간 잃어버리고만 그 무엇을 "툭"하고 내놓는다. 잊고, 잃은 채 살아도 살아져서 그것이 그렇게 중요했는지도 모른 채 살아온 사람에게 “툭”. 그 상실의 기억을 상실한 사람에게 그 “툭”하고 던져진 시가 상실의 공백을 드러내 보인다. 오래된 흉터를, 등에 있어서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수영장이나 목욕탕에서 우연히 거울을 통해, 내 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에게 발견되는, 그 오래된 흉터를 보는 것처럼. 사선으로 내리꽂는 햇빛으로 인해, 그 빛이 새어 들어오는 엷은 문틈이 선명하게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그리움과 생각 또한 일상의 빈틈을 만든다. 살아져서 살아갔던 삶에 잠시 멈춤을 요구한다. 현재의 이 살아짐은, 어쩌면 온전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이 살아짐을 더 풍성하게 해 줄 뭔가가 있었고, 있을 수도 있었음을 깨닫게 해 준다.


그 사람이, 그것이 없는 지금의 삶은 온전하지 않다. 그 자명한 사실을 깨우쳐 주는 것이 그리움이다. 이 당연하고 안온해 보이는 일상이 정상일지언정 완벽하지는 않음을 깨우쳐 주는 것이 생각이다. 결국 그리움과 생각은 "없음"의 그 공백을 사무치게 깨우치는 행위다.      


그 공백의 알아챔은 우리로 하여금 “없음”의 소중함을 몸서리치게 느끼게 하여 그 자리에 우뚝 서버리게 한다. 난 누구를 다시 만나야 하나? 이제, 그래서, 어디로 갈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돌이킬 수 없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하나? 질문은 멈춰 선 채 이어지고 질문을 이어가기 위해 멈춤은 길어진다. 공백은 공백의 연쇄를 부르고 연이은 공백들은 질문을 부르기에 어쩔 수 없다. 삶도 세상도 계속 가라고 하는데 난 좀 더 서 있어야 한다. 더 확인할 것이 있다. 더 들여다봐야 한다. 더 돌아봐야 한다. 더 그리워해야 하고 더 생각해야 한다.  

    

멈출 새 없이 달려왔다. 완급의 조절 없이 전력을 다해 살아왔다. 마무리 투수의 긴장감을 가진 채 매일 살며 버텨 왔다. 잠시 멈춰라. 그리운 사람이 불쑥 기억을 헤집고 떠오르거든, 생각하지도 않았던 생각이 일상을 비집고 들어오거든 잠시 멈춰라.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책을 쓴 중은 풀소유한 사람이라 멈춰도 그럭저럭 일상이 돌아가겠다만 어디 바쁘게 사는 당신이 그럴 수 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 안에 있는 당신이 '우리 잠시 서자.' 하면 잠시 서라. 살아져서 산 것이지 살 수 있어서, 살만 해서, 살기 좋고, 그래서 정말 살고 싶어서 산 것이던가? 그렇게 신명 나게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카페에서도 쉴 새 없이 떠들고 노트북을 켜놓고 책을 펼쳐놓고 뭔가 하느라 바쁜 던데, 그리움과 생각이 보내준 곳에선 그러지 말고, 잠시 아무것도 하지 말고 있자. 그렇게 가만히.


두 시 모두 전문이다. 두 시는 <맨발>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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