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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Feb 22. 2024

나를 별처럼 불태운 적이 있었다.

그날의 시로 오늘의 너를 위로한다 15

축제

    

죽는 날까지 우리는

축제를 찾아 나설 것이다

장미꽃 향기 흐르고

뜨거운 피가 육체를 휘도는 동안

세상의 노래방은 넘쳐나고

댄스 클럽은 흥청대겠지

축제란, 이 열정과 애욕의 시간이

우리를 끝내 놓지 못하도록

그 앞에서 목청을 다해 혼을 흔드는 것,

그래도 죽음의 손길은 어김없이 찾아와

우리의 묘비에 이렇게 쓰리라

몸 밖에서 축제를 구하던 자

여기 잠들다

파리 떼 날아들고 구더기와 온갖 벌레들

한바탕 노래하고 춤추나니

진정 그대가 찾던 축제의 장이

그대 몸에 임했도다


세기말의 천재들

천재들의 시대였다. 혜성 같이 나타났다는 말이 모든 분야에서 입버릇처럼 나왔다. 필자가 20대를 보낸 90년대는 그런 시대였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했고 신해철과 <무한궤도>는 그 특유의 전주만으로도 대상은 이 팀이라는 걸 예감케 했다. 스포츠에선 고종수와 이동국, 안정환 등이 여고생들을 축구장으로 불러들였고, LG 트윈스의 겁 없는 신인들은 팀에 우승을 안겼다. 심지어 이창호 기사가 등장한 시기도 이 시기였다.


영화계에 박찬욱, 김지운, 봉준호 감독이 데뷔한 것도, 시인이자 감독인 유하가 등장한 것도 90년대였다. 게다가 <씨네 21>의 창간도, 부산국제영화제의 시작도 90년대 중반이었다. 영화 같은 뮤직 비디오가 하루가 멀다 하고 등장했고 광고계에선 기존 문법을 뒤집는 광고들이 등장했다. 글 잘 쓰고, 영화 잘 만들고, 말도 잘하며 스타일도 있는 천재들의 시대. 나를 포함해 많은 이들이 이들의 글과 영화를 보며 꿈을 키웠다. 60년대 태어나서 80년대 대학을 다닌 후 90년대 재능을 꽃피웠거나, 나와 동시대에 태어나서 대학 때 재능을 보여준 천재들을 보며.     


그 천재와 작품의 숨겨진 진실이 나중에서야 폭로된 이도 있었다. 일본 대중문화는 90년대 들어 겨우 국경의 문턱을 공식적으로 넘었다. 내가 <공각기동대>나 <인랑>을 본 것도 90년대 초중반이었고, <카게무샤>나 <나라야마 부시코> 같은 영화도,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가 한국에 상륙한 것도 다 90년대 초중반이었다. 이렇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본 영화와 일본 음악을 쉽게 접하지 못할 때, 그 나름의 경로로 미리 접한 이들이 일본의 음악과 광고와 영화를 흉내 내어 창작이 아닌 창작을 했다는 내막이 뒤늦게 알려졌고, 그렇게 천재의 영광이 사라지기도 했다. 특히 음악은 그 정도가 심했다.     


이런 시대, 그러니까 진짜 천재와 남보다 앞서 접한 것을 자기 것인 양 포장하여 내놓은 가짜 천재가 공존하던 시기에 누구보다, 그야말로 르네상스적이고 다빈치 적인, 쉽게 말해 팔방미인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천재는 누구였을까? 자기만의 오리지널리티를 다방면으로 보여줬던 사람...


유하는 시집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와 동명의 영화로, 그야말로 X 세대의 대변인이자 세기말 감성, 그 자체, 아이콘이 됐다. 유하가 등장하기 전, 내게 있어 천재의 전형은 이상이나 랭보였다. 좀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고흐나 밀레, 더 거슬러 올라간다면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이가 천재라고 생각했다. 이 세상과 동떨어져 있거나 그 시대엔 이해받지 못하는 존재, 또는 시대를 현격히 앞서간 사람, 그 시대와 그 분야가 가진 통상적인 상식을 둘러엎어야만 천재라 불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유하는 동시대 사람이었다. 이게 가장 중요했다. 다가올 미래에 대한 예언을 하지도 않았고 지나간 과거에 대해 고리타분하게 얘기하지도 않았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고민과 삶의 찰나를 포착하여 시와 영화 속에 담았다. 물론 그도 과거를 말했다. 때로는 미래도 말했다. 그러나 그가 말한 과거는 우리가 함께 겪은 과거였으며 그가 말한 미래는 우리가 함께 기다렸던 미래였다. 그는 동시대적이었기에 모두에게 이해를 받지도, 모두에게 인기가 있지도 않았지만 그를 사랑하는 이에겐, “아이돌”이었다.      


별을 바라보라  

   

별을 바라보라

뜨겁게 자기를 불사르는 먼 곳의 별을,

그러나 저 별을 떠나온 빛은 이리도 차갑구나

별을 바라보라

지상의 연인들 눈 속으로

얼음꽃 같은 빛을 뿌리는

저 추억의 불덩어리를

     

나를 별처럼 불태운 적이 있었다

내 사랑이 나를

별보다 뜨겁게 타오르게 한 시절이 있었다

그후로 내 사랑의 불길로부터 도망쳐

나 세월보다 빠르게 여기까지 왔다

빛의 속도가 지금 그녀를 데려가버린 지금,

그 옛날 나를 태우던 불덩어리만 별빛으로 반짝인다

지상의 연인들이여, 별을 바라보라

눈 시리도록 차갑게 빛나는

저 열애의 흔적을     


꽃 피는 소리를 들어라     


꽃 피는 소리를 들어보라

만발한 장미, 그 붉은 입술의 아리아에

귀가 먹먹하지 않은가    

.....


삼킬 수 없는 노래     


시크리드라는 이름의 물고기는

갓 부화한 새끼들을 제 입 속에 넣어 기른다

새끼들의 안전한 보금자리로

그들은 자신의 입을 택한 것이다

어린 자식들을 미소처럼 머금은

시키리드 물고기     


사람들아, 응시하라

삼킬 수 없는 그 무엇인가를

머금고 있는 이들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눈물을 머금은 눈동자

이슬을 머금은 풀잎

봄비를 머금은 나무  

   

그리고

끝내 삼킬 수 없는 노래의 목젖,

나도 한세상

그곳에 살다 가리라


시가 보내준 순간, 시인이 남긴 부탁

내가 갖고 있는 그의 시집 <나의 사랑은 나비처럼 가벼웠다>에는 그 시대의 정서가 흐른다. 시오노 나나미가 등장하고 빌리 홀리데이와 찰리 파커의 음악이 흐른다. 이 시기에 등단했던 김영하의 소설 속 한 문장이 등장하고 클럽의 뜨거운 시간이 공존한다. 그의 시는, 그래서 어려운 말과 단어가 없다. 일부러 고상한 척하지도 않고, 과장된 우울도, 꾸며낸 희열도, 애끓는 그리움도 없다. 우리 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향 산천에 대한 애정,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아쉬움, 가난한 연인들의 애타는 마음도 없다. 그저 담담히 사랑을, 오늘을, 내일을, 그리고 청춘과 함께 했던 모든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의 시를 다시 읽어나가자 축제처럼 인생을 살아 내리라 다짐했던 시간들, 그 축제처럼 들뜨게 했던 사람, 그 사람과 함께 했던 뜨거웠던 추억이 과거로부터 달려왔다. 이제는 다 타서 재만 남은 나에게로, 시와 음악과 흐릿한 기억과 함께, 다시 찾았지만 세월만큼 낯설게 변해버린 장소를 찾아가 옛날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 번쩍하고 터지는 플래시처럼.     


그래도, 다 타버리고 남은 잔불 같은 삶이어도, 살아 있는 한 사랑해야 하고 축제처럼 살아야 한다고 시인은 말한다. 그렇게 살아야만 소리를 듣는다고 말한다. 꽃이 피는 소리, 열매가 익는 소리,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는 모든 것들이 내게만 들려주는 그 모든 소리를.


예수가 제자에게 깨어 있으라고 말한 건 그저 잠자지 말라는 게 아니었다. 귀 있는 자는 들을 수 있다고 말할 때의 그 귀는 눈에 보이는 그 귀가 아니었다. 삶을 사랑하고 사랑을 두려워하지 않고 낯선 것에 열려 있으며 불투명한 미래를 향해 한걸음 나아가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깨어 있음이 있다. 그런 사람만이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있고, 그런 사람만이 볼 수 있는 장면이 있다. 그런 사람만이, 시인의 부탁에 호응할 수 있다. 시인이 단호하게 부탁하는 그런 깨어 있는 삶을, 그런 삶을 살 수 있다.


학교에서 배운 것    

 

인생의 일할을

나는 학교에서 배웠지

아마 그랬을 거야

매 맞고 침묵하는 법과

시기와 질투를 키우는 법

그리고 타인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는 법과

경멸하는 자를

짐짓 존경하는 법

그중에서도 내가 살아가는 데

가장 도움을 준 것은

그런 많은 법들 앞에서 내 상상력을

최대한 굴복시키는 법   

  


시를 닮은 삶은 아니었다

천재도 만들어지는 시대고, 천재도 상품이 되기 위해선 가공의 시기를 거쳐야만 하는 요즘, 순수한 천재들과 동시대를 살았고 그 천재들이 거장이 된 지금, 함께 그들과 나이를 먹었다는 것에 대해 은밀한 뿌듯함을 느끼곤 한다. 우리의 응원이 만들어낸 천재, 우리가 읽고 본 천재, 우리와 함께 다녔던 학교에서 문학 소년이자 할리우드 키드로 불리었던 그 천재와 우리는 동시대를 살았다. 그 사실이, 나이를 먹고 나니 새삼 경이롭게 다가올 때가 있다.      


그러나 난, 시인이 바랐던 데로 살지 못했다. 배워야 할 것은 배우지 못했고 기억해야 할 것은 잊어버렸으며 소중히 간직해야 할 것은 잃어버렸다. 학교와 같은 세상을 살다 보니 그렇게 됐다. 시인은 축제처럼 살다가 죽을 때도 그야말로 온갖 만물과 함께 축제처럼 흩어져 소멸하라고 부탁을 했는데 잘해야 본전, 죽을 때만 그렇게 될 것 같다.


축제처럼 살던 시기도 있었다. 꽃 피는 소리를 듣고 흩날리는 꽃잎에도 마음이 베었던 적이 있었다. 아주 오래전 일이다. “아름다운 시를 보면 / 그걸 닮은 삶 하나 낳고 싶었다.(그 사랑에 대해 쓴다 중에서)”는 시인의 말처럼 읽은 시만큼만 살았으면 꽤 괜찮은 삶이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판본을 봤다. 1993년 3월 6일에 초판 1쇄가 나왔고, 난 3월 10일에 나온 2쇄를 샀다. 이 정도면 불티나게 팔렸다고 봐야겠지. 판본을 보다 그 위에 붙은 작은 우표만 한 종이가 눈에 띄었다. 자세히 보니 출판사 <열림원>의 직인이 찍힌 종이 위해 시인의 도장이 찍혀 있다. 도대체 이 시대는 독자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인가. 참고로 시집의 발문은 소설가 김영하 씨가 썼다. <꽃 피는 소리를 들어라> 외엔 전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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