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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사람은 사랑에 이르다.-박나은

동해선에서 읽은 책 94

by 최영훈

낯선

다른 글에 썼듯이, 인스타그램을 시작한 이유 중 하나는 책과 관련하여 더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기 원해서였다. 그 "원함"엔 크게 두 가지 배경이 있다. 우선, 워낙에 신간을 읽지 않는 데다가 읽는 분야와 작가도 좁혀서 읽는 터라 책을 좋아한다고 자처하는 사람치고는 책의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너무 모르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앞의 이유로 인해 내가 사랑하는 책과 작가로 만든 세상에 갇혀 요즘의 독자들이 만든 세상과 담을 쌓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약간의 걱정도 들어서였다. 이런 이유로 인스타그램 시작부터 알고리즘을 관리하여 뭘 해도 책과 관련한 것들만 뜨도록 애를 썼고, 그 덕에 책 세상의 이런저런 면면을 엿보고 있다.


그렇게 엿보다, 서평단에도 신청을 했다. 신청의 기준은 간단했다. 나와 가깝거나 아주 멀거나. 가깝다는 건, 결국 출판사 이름이 익숙하고 분야도 익숙함을 의미한다. 멀다는 건 출판사도 분야도 멀고 멀다는 걸 말한다. 이 책은 멀고, 멀고, 또 먼, 그런 출판사의 그런 책이었다.


“세상이 만들어준 틀에 나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 영혼의 모양을 알아내고 그 모양에 맞게 세상을 창조하는 게 삶이다.”, P13


제 때

이 책은 8월 17일, 토요일 오후에 도착했다. 그때, 난 광안리의 처남 집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다섯 시에, 광안리의 작은 식당에서 내 생일을 기념하여, 전날 저녁, 처가식구들과 이른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그 몇 시간 전에 가서 맥주로 목을 축이고 있었던 것이다. 책은 그렇게 제 때 왔다. 토요일 저녁부터, 생일인 일요일에 걸쳐 이 책을 읽었다. 음력 7월 15일, 백중. 불교에선 석가탄신일 다음 가는 기념일이다. 달은 1년 중 가장 밝고 하야며 밀물은 어느 때보다 높이 들어와 백중사리라고 부른다. 뭐, 그렇다는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이 책을 십 년 전에 읽었다면 삶의 의지도, 인생의 목적도 없는 젊은 여자가 방황의 전형적인 루트를 따라 헤매다가 안정적인 남자를 만나 겨우 정착한, 그저 그렇고 그런 이야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올해 생일을 막 넘겨, 쉰두 살에 읽으면서 든 생각은 “애썼다.”였다.


아내와 종종 하는 얘기가 있는데, 모든 것엔 총량이 있다는 것이다. 인생의 답을 찾기 위한 방황에도 총량이 있다. 그 방법에 따라 들이는 시간이 달라질 뿐, 들여야 할 질과 양은 동일하다. 그러니 방황하지 않고 나이 들면 늦바람처럼 “늦방황”이 찾아온다. 아내의 주변에도, 내 주변에도 그렇게 뒤늦게 방황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니 지금 방황하는 청춘은 치러야 할 값을 치르고 있는 것이고 거쳐야 할걸 거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사춘기나 성장통처럼 말이다.


내 방황은 늦은 편이었고 그 방황의 방법은 사유와 책, 그것도 라캉에 관하여 읽으며 사유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막연하고 길어질 수밖에 없었는데, 그 와중에 “소울메이트”를 만나 내 안에 있는 야성, 길들여지지 않았던 광기를 다 꺼내어 볼 수 있었다.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래서 내 안의 그 “짐승과 괴물”을 다 꺼내어 만날 기회가 없었다면 내 방황은 쉰이 넘어서도 계속되고 있었을 것이다.


작가는 내가 독서와 분출의 경험을 통해 오십이 다 되어 겨우 찾은 것, 아니 엄밀히 말하면 겨우 감을 잡은 인생의 비밀을 이십 대 중반에 알아챘다. 문제의 봉착에서 해답을 찾기까지, 자신을 죽음의 문턱까지 몰고 간 뒤 구원의 사랑을 찾기까지, 작가는 그 여정에 기꺼이 몸을 내던졌다. 오체투지를 하는 순례자처럼 말 그대로 몸을 던져 답을 찾았다. 은유가 아니다. 다시 말한다. 몸을 던져 답을 찾았다. 책상도 아니고, 강의실도 아니고 책 속에서도 아니다. 몸을 던져 답을 찾았다. 세월을 낭비하지 않는 비법이다.


“몸 안에서 뜨거운 피가 끓는 것 같았고 온몸에 찌르르 전기가 흘렀다. ‘전기가 통한다.’라는 말이 상투적인 말이 아닌 실족하는 감각에 대한 정확한 묘사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이 사람을 사랑해야겠어. 이 사람이라면 나를 끝까지 붙잡아 줄 거야.’”, P19
"남편이 나이가 많아서 그렇게 재밌는 걸 오래 못하면 어떡해요? 만약 누군가 그렇게 묻는다면 나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사람들이 평생 살면서 한 번도 느끼기 어려운 최상의 오르가슴을 수백 번 느껴봤어. 그걸로 충분해. 어젯밤에도 하다가 죽을 뻔했어. 근데 이 순간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미 나는 세상에 가장 큰 사랑과 기쁨을 느껴봤으니까 후회가 없어.” 자랑이 너무 길었나?”P.47


어쩌면 마지막...

생일 오후, 후배 민우가 부산에 온 김에 날 보러 왔다. 살을 좀 빼서 보기 좋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잔소리와 당부가 섞인 말을 했다. “내가 왜 이렇게 수영을 열심히 하는 줄 아냐? 한 바퀴도 안 쉬고 말이야. 올해 초인가, 작년 말이었나... 빡세게 강습 시간 꽉 채워 수영을 한 뒤에 회원들 얼굴을 봤는데, 벌겋게 달아올랐더라고. 그때, 내가 든 생각이, 야~ 이거 몇 살까지 이렇게 할 수 있겠나 싶은 거야. 그런데 이런 생각이 섹스할 때도 들어. 야~ 이거 몇 살 때까지 할 수 있으려나 싶은 거지. 그래도 한 육십까지 하지 않겠냐? 그럼 뭐, 몇 년 안 남은 거지. 야, 근데, 다행인 건, 얼마 전에 건강 검진했는데, 심혈관 나이는 열 살 어리다더라.”


그러자 민우가 말했다. “그럼, 한 칠십까지는 수영할 수 있으신 거 아니에요? 그리고 남자는 그게 서기만 하면 뭐, 어떻게든 된다던데...”, 그 말을 받아 내가 말을 이었다. “이게 말이야. 수영이든 섹스든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데로 하는 것엔 차이가 있어. 전자는 그냥 하는 거고, 후자는 그야말로 분출이지. 야성의 그런.”

한다고 다 같은 경험을 하는 건 아니다. 한다고 다 같은 함이 아니다. 같은 걸 하더라도 특정한 어떤 “함”을 기준으로 그 행위의 질과 성격이 달라진다. 당연히 인생도 달라진다. 가치관이 송두리째 흔들리기도 한다. 심지어 나도 달라진다. 이후의 나는 그 “함”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 행위가 무엇이든.


결국, 수영을 하든, 섹스를 하든, 그 “함”의 형질 전환이 이뤄진 이후부터는 언제나 마지막인 것처럼 최선을 다하려 한다. 오늘의 이 기운찬 수영은 내 남은 인생, 최고로 전력을 다한 수영임을 스스로에 자신 있게 말하려 한다. 오늘의 이 뜨거운 섹스 또한 마찬가지다. 지지부진한, 그저 그러한 지속과 연명은, 그런 절정이 없는 지루한 연쇄는 저 활화산 같은 경험 한 번과 비교할 수 없다. 다시 말하건대, 그 경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이전의 나는 거기 두고 왔다.


“어디에서도 나를 피할 수는 없었다.”, P78

“살아있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살아있다 보면 어느 날 이 긴 터널을 통과해 따뜻하고 환한 빛 속에서 쉴 수 있을 것이다.”, P.105


우선 내가 날 일으킬 것

작가는 자신의 우울과 무기력을 해결하기 위해 갖은 시도를 다한다. 절도 가고 교회도 가고 정신과도 가고... 여하간 할 수 있는 건 다한다. 학교를 그만두기도 하고 학과를 바꿔보기도 한다. 심지어 이 나라를 떠나기도 한다. 그러나 어디를 가든, 어데 있든 누구와 만나든 답은 없었다. 답은 자신에게 있었다. 자신의 몸을 일으켜 세워 움직이는 것. 그리고 그 부활한 몸과 정신을 통해 보내는 우주의 답을 따라 뚜벅뚜벅 전진하는 것. 그것뿐이다. 아니 그거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 자신을 일으키겠나?


그렇게 일어선 작가는 우주와 운명의 부름에 귀를 기울이며 앞으로 나아간다. 춤을 추고, 요가를 하고 배우가 된다. 그 사이 사내도 만난다. 이후엔 아이도 낳아 키운다. 삶의 힘을 주는 것도, 살아남아 남은 삶을 살아내는 것도, 끝끝내 살아내어 도래하는 삶의 기쁨을 만끽하며 사는 것도 결국 자신이다. 난 작가의 말에 공감했다.



“그에게 안기도 또 안기며 그 따뜻함 속에서 사랑이 무엇인지 처음으로 배웠다... 누군가를 붙잡아야만 일어설 수 있을 때가 있다.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다는 것이 삶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사랑을 찾아내야만 하는 사람이 있다.”, P.191


사랑, 채움

작가는 사물이 된 사람과 삶에 대해, 책 초반에 잠시 언급한다. 우리가 그런 사물화 된 삶과 사람에서 벗어나는 길은, 앞서 말했듯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는 것이 첫 번째다. 그다음으론 사랑을 만나는 것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나에 대한 사랑이 멈추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주는 사람의 사랑, 더 나아가, 하면 할수록, 살면 살수록 그 사랑이 더 커지리라 확신을 주는 사람의 사랑, 더 나아가 안기면 안길수록 몸이 열리고 우주가 열리고 새로운 환희의 섬광이 몸 어딘 가로부터 새어 나오게 해주는 그런 사람의 사랑.


작가에게 사랑은 주고받는 것이 아니다. 온전해지는 것이다. 철커덕하고 합이 맞아지는 것이다. 그 맞아 들어감 이후, 새로운 나로 변신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충전되고 새로워지고 성장하고... 봄에서 겨울이 됐다가 다시 봄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두려움이 없다. 겨울 같은 오늘이지만 봄이 온다. 다시 나를 피어나게 할 그 사람으로 인해 나는 또 봄이 된다.


“살아있길 잘했다. 끝인 줄 알고 죽었으면 이런 세상이 있는 줄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죽음을 생각하는 모든 이들이 죽지 말고 살아있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도망쳐서 숨어 살아도 되니까 제발 죽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끝인 줄 알았는데 계속 살아있다 보니 사랑하는 사람도 만났고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기쁨을 알게 되었다.”, P221


이윽고 만나지는 것들

“아무도 없는 곳으로 도망쳐서 숨어 살아도 되니까 제발 죽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구절을 읽으며 울컥했다. 영화 <파이란>도 생각났다. 살아있어야 만나고 싶은 사람도 만난다. 생의 굴곡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 행복과 기쁨도 만난다. 그러니 버티고 살아라. 버티기 위해, 작가처럼 운동을 하고 몸을 움직이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살아라. 남들과 같기 위해 애쓸 필요도 없다. 편집된 나를 보여주기 위해 허둥댈 필요도 없다.

냉정하고 이기적으로 말한다면, 쉰이 넘은, 고향이 없는 사내의 생각을 담아 말한다면, 거기에 작가의 생각을 덧붙여 말한다면 우주는 나고, 나는 우주다. 나의 소멸은 나라는 태양계의 소멸이다. 그러니 나를 보존하고 건강하게 유지시키기 위해 갖은 애를 써라. 그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세상을 누리고 사랑을 누리고 그 사랑하는 타자의 탐닉을 한껏 누려라. 그렇게 누리고 누려도, 만끽을 잔이 넘치도록 누려도 하루는 짧다. 생은 짧다. 죽음은 서서히 다가온다. 그러니 버티고 살아라. 작가의 마지막 당부다.


사족

1. 다시 말하지만, 작가는 내가 쉰이 다 되어 받아들인 인생의 비밀과 교훈을 젊은 날, 온몸으로 부딪혀 살아내면 알아냈다. 만약 이 책을 읽으며 작가의 여정이 상투적이라고 느낀다면, 한가하고 무책임한 청춘의 좌충우돌의 기록에 불과하다고 느낀다면 당신은 아직 당신과 마주한 적이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작가의 여정이 상투적인 것은 순례자의 여정이 대개 비슷한 것과 같다. 이슬람 신자의 성지를 가는 여정은 출발지는 달라도 종국에는 비슷해진다. 크리스트교도, 불교도 그러하다. 어쩌면 저마다에겐 나름의 순례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그 요구로 인해 다들 그 여정이 비슷한지도 모르고... 그러나 그 여정을 걸었다고 해서 다 신의 뜻을 헤아리는 것은 아니다.


2. 폰트가 특이하다. 종이의 질도 남다르다. 그래서인지 읽는 내내 눈이 피곤했다. 내가 읽어온 책들이 얼마나 비슷비슷한 폰트를 사용하고 종이의 질에 무신경한지 새삼 깨달았다. 자연광 아래, 읽기 딱 좋은 책이다. 해가 빨리지는 10월의 늦은 오후에 어울리는 책이다.


3. 페이지가 맞물리는 곳이 붉게 물들어 있다. 그 결과 당연히 책머리와 책발의 안쪽도 붉게 물들어 있다. 책을 펼칠 때마다 그 물들여진 곳을 봤다. 연인의 다리를 벌려 그곳을 물끄러미 보는 느낌도 들었고, 그래서 에로틱하기도 하고 신성하기도 하고 한 여름의 꽃무릇 같기도 하고...


4. 마지막 사족... 출판사 이름이 페르아미카실렌티아루네다. 최소한 내가 아는 한, 이것보다 더 긴 출판사 이름은 없다. 이것보다 외우기 힘든 출판사 이름도 없고. 이건 일종의 배짱 아닐까? 우리는 모두에게 말을 걸고 싶지는 않다.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5. 진짜, 마지막 사족 -작가의 인스타그램을 보니 아이 둘을 낳고 잘 살고 있다. 작가의 말처럼 같이 사는 사내의 나이를 가늠할 수가 없다. 나잇값에 신경 안 쓰는 사람은 세상이 눈치챌 수 없게 나이가 든다. 작가가 활약했던 극단은 현재도 창원에서 활동 중이다. 그렇게, 작가의 삶은 진행 중이다. 이 책은, 수영으로 말하면, 스타팅 블록에 불과한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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