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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Sep 07. 2024

회가 싱싱하면 초장은 필요 없다.

수영장에서 건진 생각 73

유행하는 수영복

8월 둘째 주였나? 초급반 강사가 몸이 안 좋아서 그 옆, 우리 레인의 고급반 강사가 며칠 강습을 했다. 어느 날, 세트가 끝나고 잠시 한숨 돌리는데 초급반 레인에서 회원들을 봐주고 있던 우리 강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다들 수영복이랑 장비는 고급반이시네.”, 그러자 여자 회원들이 웃음 터뜨렸다.      


어딘가 썼는지 모르지만 요즘 여자 회원들 사이에선 J 브랜드와 F 브랜드의 수영복이 유행이다. F는 호주가 고향인 브랜드인데 화려한 프린트와 다양한 구성으로 초급자부터 고급자까지, 남녀 회원 모두에게 사랑받고 있다. J는 미국, 그것도 캘리포니아가 고향인 브랜드다. 이 브랜드는 강렬한 색감과 과감한 디자인이 강점인데, 재미있는 건 오직 여자 제품만 있다. 당연히 여자 회원들 사이에선 J 브랜드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그것이 J브랜드인지는 나중에 알았다. 색감이 좋고 디자인이 과감해서 딸한테 사주고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입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초급에서 고급반까지 한 레인에 두세 명씩 눈에 띄었다. 내 앞 시간, 열 시 반 여자 회원들도 많이들 입고 있었다. 같은 브랜드라는 걸 알아채는 건 어렵지 않았다. 허벅지 커팅 라인과 허리 라인 경계에 네 개의 끈이, 마치 아디다스 로고처럼 매듭처럼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이 브랜드를 입은 여성 회원들은 다 이 라인을 입고 있었다.      


나중에 남자용도 있나 그 브랜드의 사이트에 들어가 보고 알았다. 그 브랜드엔 앞서 말했듯 남자 수영복은 없고 아디다스 로고를 닮은 네 개의 끈 매듭이 없는 제품 라인도 있다는 것을, 그 매듭이 없는 라인은 요란한 무늬들이 있는 제품군이어서 화려한 색과 디자인을 자랑하는 매듭이 있는 라인만 유독 여자 회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더불어, 옆에 그래픽만 좀 다른 하얀색 바탕의 수모가 수영장에 흔해진 것도 여성 회원들이 그 브랜드의 수모까지 편애하기 때문이라는 것도 말이다.   

  

매일 펼쳐지는 수영복 패션쇼

사람마다 다르지만 보통 여자 회원들은 일주일에 두세 벌의 수영복을 번갈아 입는다. 우리 반엔 매일 다른 수영복을 입고 오는 사람도 있다. 나? 나는 매일 같은 수영복에 같은 수모를 쓴다. 대체로 남자 회원들은 비슷하다. 우리 반의 새로운 1번과 2번 주자, 그리고 나, 내 뒤에 서는 두세 명의 남자 회원들은 수모도, 수영복도 매일 같은 걸 착용한다. 물론 가끔 다른 걸 착용하기도 하는데, 그마저도 갖고 있는 것과 비슷한 것이어서, 솔직히 다르다는 느낌은 없다.     


물론 이런 남자 회원들도 새 수영복을 살 때가 있다. 아무리 잘 만든 수영복도 입다 보면 늘어난다. 특히 수영 실력이 늘수록 타이트한 사이즈를 선호하다 보니 아무리 늘어나지 않는 소재로 만들었다는, 소위 “탄탄이”를 구매해 입어도 짧으면 6개월, 길면 1년 정도 되면 느슨함이 느껴진다. 그제야 슬슬 수영복 사이트를 들락거린다. 반대로, 앞서 말했듯, 여자 회원들, 특히 나보다 어린 회원들은 수영복이 여러 벌이다. 오히려 늘 같은 수영복, 혹은 바꾸더라도 같은 색과 디자인의 수영복만을 고집하는 회원이 독특하게 느껴질 정도다.   

   

매일 다른 수영복을 입고 오는 여성 회원은 화요일과 목요일엔 더 화려해진다. 종종 방수가 되는 투명 플라스틱 백이나 수영장 전용 메쉬 백을 들고 들어올 때도 있다. 대체로 화요일과 목요일에 그렇다. 이 날은, 다른 글에도 썼듯, 뒤 시간에 프로그램이 없기 때문에 우리 시간 대 사람들이 십분 쯤 더 연습을 하거나 수다를 떨거나, 심지어 수영을 하는 모습을 촬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회원이 주축이 되어 다른 여성회원들과 함께 촬영하는 모습을 두 번 정도 목격한 적이 있다. 전해 듣기로는 화요일과 목요일엔 종종 이런 일이 있었다던데 난 두 번밖에 보질 못했다. 로비에 있는 정수기에서 물을 마시고 있을 때, 로비와 수영장을 막고 있는 큰 창을 통해 이들의 모습을 봤다. 이들은 우선 스마트폰으로 수영 모습을 찍었다. 영법을 바꿔가면서 말이다. 어떤 회원은 판초 우의를 닮은 스윔 가운을 입고 모델처럼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난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꼰대처럼 중얼거렸다. “수영을 그렇게 열심히 해봐라.”     


진지했던 시간

아마 나이 탓일 것이다. 수영을 더 잘하고 싶은 욕심 때문일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걸,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함께하는, 동료라면 동료가 그것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은근히 화가 나곤 하는 성격 때문일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축구를 할 땐 그걸로 먹고 살 생각이 없으면서도 더 잘하기 위해 고민하고 연습했고, 농구를 할 때는 AFKN에서 토요일마다 중계해 주던 NBA에서 본 마이클 조던과 레지 밀러의 슛 자세를 머리에 담아 연습했다. 마라톤을 할 때도, 사이클을 탈 때도, 스포츠 클라이밍을 할 때도, 등산을 할 때도, 그야말로 진지했다. 마라톤을 할 때는 부산의 달리기 연습 코스를 검색하여 찾아, 두루 뛰어 봤고, 스포츠 클라이밍을 할 때도 그에 적합한 몸을 만들기 위해 고민했다.      


마흔 즈음에 일 년 정도 빠져 있던 수영을 십 년의 세월이 훌쩍 흐른 뒤, 오십이 넘어 다시 시작했다. 그 후 3년째로 접어들고 있다. 제일 잘하는 반에 들어가기 위해 다시 시작하자마자 열심히 했고, 그 반에 들어가서 적응하기 위해 더 열심히 했다. 2년 차에는 좋은 강사를 만나 새로운 수영, 내 몸을 제대로 사용할 줄 아는 수영에 눈을 떴다. 3년 차에는 그 강사의 가르침을 머리에 넣은 채 더 실력을 향상하기 위해 영상도 보면서 이런저런 궁리를 하고 있다.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현재, 난 진지하다.


살다 보면 진지함도, 전력의 에너지도 없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뭔가를 하는 것보다 그 하는 데 필요한, 또는 그렇다고 판단되는 장비나 의상, 분위기, 도구 등을 더 중요시하는 사람이 있다. 그 뭔가의 전후의 이벤트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예를 들면 등산 후의 막걸리 한 잔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서 등산 코스를 체크하기 전에 먼저 근처 막걸리 맛 집부터 검색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이런 사람은 주변에 흔하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딸 친구 중엔 공부하기 전에 우선 펜을 고르는 데 아주 공을 들이는 친구가 있다. 요즘엔 인스타그램용 사진 촬영을 위한 6홀이나 8홀짜리, 심지어 한 홀짜리 골프장도 있다. 이런 골프장에선 매 홀마다 바꿔 입을 수 있도록 여러 벌의 의상을 준비하고 그에 맞는 골프화도 준비한다. 당연히 골프 카트도 준비되어 있다. 이런 사람은 골프의 실력보다 골프를 했다는 사실의 과시가 더 중요하다. 골프 채널을 볼 때, 미모의 여성 프로 골퍼의 티칭보단 그 의상에 눈길이 간다.      


수영장에 올 때마다 수영복이 바뀌고 방수가 되는 스마트 워치를 차고 역시 방수가 되는 골전도 이어폰을 끼고 오는 사람도 있다. 앞서 말한 여성 회원도 그렇다. 수모와 수경, 수영복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운동인 것이 수영의 매력이라면 매력인데, 이런 사람들이 수영을 패셔너블한 자기 과시로 바꿔버린다. 강사의 주문이 안 들려 앞사람에게 꼭 다시 물으면서 말이다.


본질에 집중하고 싶을 때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난 나이가 들수록 곁가지를 쳐내려 애쓰고 있다. 물론 처낼 가지도 별로 없지만 말이다. 여하간, 좋아하는 거 몇 가지에 집중하려 애쓰고 있다. 딸과 아내에게 더 집중하려 한다. 언제까지 카피라이터를 할 수 있을지 모르니 그 노릇도 더 잘해보려 이런저런 궁리를 계속하고 있다. 브런치의 글을 꾸준히 읽어주는 독자 몇 분이 있기에 그분들에게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겠다는 작은 욕심이 있어, 비록 취미의 성격이 9 할인 글쓰기이지만 더 잘 쓰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것이 적절한 예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부에 와닿는 예라 생각되기에 글을 더 이어보겠다. 회를 먹을 때 물고기가 싱싱하면 초장은 필요 없다. 난 부산에 살기 시작한 후, 그러니까 서른이 넘어서야 이 사실을 알게 됐다. 회를 좋아하고 잘 아는 사람이라면 고추냉이만 살짝 얹어 먹을 때 그 싱싱함이 고스란히 전해진다는 걸 알 것이다. 쇠고기나 돼지고기도 마찬가지다. 싱싱한 것을 잘 구우면 이것저것을 넣고 이름도 모를 채소로 휘감아 먹을 필요가 없다. 그저 소금장에 콕 집어 먹으면 된다. 정말 중요한 것이 그 노릇을 제대로 하면 나머지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그야말로 곁가지이고 양념이다.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상관없는 것들이다. 없어도 좋다면 본질에 집중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누군가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을 타자가 가볍게 생각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내가 수영과 맥주, 책과 글쓰기를 진지하게 생각한다고 해서 다른 걸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그 사람의 진지한 것을 함부로 대해선 안 된다. 이럴진대, 하물며 내가 진지하게 생각하는 뭔가를 함께하는 사람이 그것을 가볍게, 대수롭지 않게, 그 본질보다 곁가지와 양념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그 사람에게 약간의 분노를 느끼는 것이 당연한 거 아닐까?     


살아야 할 시간도, 사랑할 시간도, 갖고 있는 에너지도 한정되어 있다. 와인을 사랑한다면 거기에 어울리는 치즈를 찾느라 세월을 낭비하는 실수를 하기엔 우리의 삶은 너무 짧지 않나? 치즈가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것이라면, 우리는 눈앞에 있는 와인 한 잔이 전하는 향에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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