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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Oct 06. 2024

내가 아는 나는 누구인가 -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

동해선에서 읽은 책 101

레퍼런스는 건질만하다.

대학원 시절 얘기다. 그야말로 사반세기 전의 이야기. 어느 교수가 강의의 부교재로 <미디어 디베이트>라는 책을 선택했다. 교수가 목록에 넣었으니 당연히 사야 되는 줄 알고 나를 포함한 동기들, 그러니까 막 대학원에 들어온 학생들은 책을 샀다. 우리뿐만 아니라 그 위의 기수들도 샀다. 그 책을 들고 강의에 들어간 날, 가장 위에 기수 선배가 책을 파라락 넘겨본 후 심드렁한 표정으로 한마디 했다. “레퍼런스 목록은 도움이 되겠다.”     

당시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런 책은 종합 선물 세트 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네가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다 넣어놨어.”하는 종류의 박스 말이다. 요즘도 그런 게 있는지 모르겠지만, 필자가 어렸을 적엔 “종합선물세트”라는 과자 박스가 있었다. 무슨 명절에만 특별히 구성되어서 판매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구성되어서 나온 상품이 있었다는 말이다. 그런 박스들은 과일 바구니와 함께, 아이가 있는 집에 방문하는 친척이나 지인이라면 의례히 하나쯤 들고 오곤 했다.


당연히 그 박스 안엔 다양한 맛, 다양한 형태의 과자와 사탕들이 들어가 있어서 어지간한 아이라면 다 만족시킬 수 있었다. 그 책은 그런 책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학자들의 참고문헌은 착실히 실어놔서 그나마 학생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맥락에서 그 선배는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더불어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이제 막 관련 공부를 시작한 학생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맥락에서도.    


책 고르기의 어려움

전공이 아니 취미로 책을 고를 때, 특히 특정 분야의 책을 고를 때, 우리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하나는 두루 알기 위해 그 분야의 지식과 정보를 일정 수준 안에서 모두 담고 있는 것을 고를 것인가, 아니면 그 분야의 특정 부분을 알기 위해 약간의 난해함을 무릅쓰고 깊이 있는 책에 발을 담글 것인가. 물론 여기엔 전제가 하나 더 있다. 이제 막 독서라는 취미에 발을 디뎠는가, 아니면 제법 긴 세월 읽어 왔는 지이다.   

   

만약 이제 막 독서라는 취미에 발을 들여놨기에 특별히 관심을 갖는 분야가 없다면 책을 고르는데 상당히 애를 먹을 수 있다. 관심 분야가 있다면 일은 약간 수월해진다. 예를 들어 인문학이나 철학에 관심이 있다면, 요즘 유행하는 쇼펜하우어나 니체의 책을 짜깁기해 새롭게(?) 구성한 책을 사서 읽으면 된다. 조금 더 깊이 있고 새로운 시각을 선사할 책을 고르고 싶다면 지바 마사야의 <현대철학입문>, 다카다 아키노리의 <나를 위한 현대철학 사용법>, 김재인 교수님의 <생각의 싸움>, 이진우 교수님의 <의심의 철학> 같은 책이 딱이다.      


새로운 것 없는 종합선물 세트

그럼 이 책은 어떤 종류의 책인가. 이 책은 새해 벽두에 출간되는 트렌드 책과 비슷하다. 트렌드 관련 책은 세상에 있는 현상을 찾아내어 이름을 붙인 뒤, 나름의 범주 안에 개별적인 것들을 한데 묶어 의미를 증폭시켜, 읽는 이로 하여금 마치 세상에 없던 뭔가를 알게 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즉 세상에 없던 뭔가를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있던 뭔가에 새로운 이름을 붙이고 새로운 범주로 묶어내는 것으로 책의 특별함, 상품성을 만들어내는 책인 것이다. 이 책도 이와 유사하다.     


저자는 칸트의 3대 비판서가 묻고 있는 세 가지 질문을 대목차 삼아 책을 전개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내가 희망해도 좋은 일은 무엇인가?”, 이 세 가지 질문을 토대로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나라는 존재에 대해 두루 살피려 한다. 그런데 그 대목차 안에 담긴 세부 목차가 너무 많다. 다루고자 하는 범위도 제법 된다. 철학은 물론이고 심리학, 뇌과학, 경제학, 사회과학, 의학과 생물학까지. 그래서인지 읽다 보면 제레미 리프킨의 책을 읽는 느낌이 든다.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지는 알겠는데 자기 생각을 논리 정연하게 말하기 보단, 엄청나게 많은 사례를 우겨 넣은 그런 책 말이다.      


뭔가 새로운 건 없다. 후지타 나오야의 <좀비 사회학>이나 히로세 준의 <봉기와 함께 사랑이 시작된다. - 세계를 전복하는 사상 입문>, 다카쿠와 가즈미의 <철학으로 저항하다.>, 아즈마 히로키의 <관광객의 철학>이나 <동물화 하는 포스트 모던>처럼 낯선 사물이나 현상을 열쇠 삼아 철학으로 들어가지도 않고, 그 반대로 익숙한 이론을 메스 삼아 이 시대의 새로운 현상을 분석하여 답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이런 입장과 저런 입장, 이런 연구와 저런 연구, 이런 방식과 저런 방식이 있다고 부지런히 찾아서 제시하긴 하는데 뭔가 새롭진 않다.      


물론 그 “그러모음”은 그 자체로 대단하다. 그래서 인간과 이 시대의 여러 이슈와 그 이슈의 이편과 저편의 입장을 알고 싶은 사람에겐 유용하다. 그 이슈 중 어느 한 편에 서고자 하는 사람, 그 입장의 토대가 될 만한 연구나 철학을 확보하고 싶은 사람에게도 유용하다. 그러나, 다시 말하건 데, 새롭진 않다. 재미있지도 않고. 입문서가 다 그렇지 않으냐 반문한다면 앞서 말한 몇 개의 책들로 대답을 대신하고 싶다. 독일에서 100만 부 이상 팔렸다는데, 철학의 나라 독일 국민들의 교양 수준이 우리가 기대했던 것보다 대단치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뭔가 다 알려고 하는 강박들이 있는 건 아닌가? 요즘 SNS를 들여다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얼마 전 인용했던 김재인 교수님의 말을 다시 인용하면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되, 감히 알려고”하는 자세가 인문학의 윤리이자, 어쩌면 우리가 책이라는 세계에 들어갈 때 필요한 자세일지 모른다. 여기에, 요즘 유행을 따라, “어설프게 많은 것을 알기보다는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게 더 낫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4부, 거머리 중에서)”는 니체의 말도 덧붙이고 싶다. 다시 말하지만, 어디 가서 광범위한 지식을 자랑하고 싶다면 읽어볼 만한 책이다.     


사족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을 때 좋은 점은 읽든 안 읽든 반납일이 정해져 있기에, 기왕이면 읽고 반납하기 위해 억지로라도 책을 읽게 된다는 점, 사려고 했었으나 막상 읽어보니 샀으면 후회했을 법한 책을 걸러낼 수 있다는 점 아닐까?


요즘 니체나 쇼펜하우어를 비롯한 유명 철학자의 문구를 자기 입맛대로 골라내어 편집한 책들이 많은데, 최소한 문장들의 출처라도 좀 정확하게 명기해 줬으면 좋겠다. 파편의 의미가 아니라 파편이 원래 박혀 있을 때 발휘됐던 진짜 의미를, 도려내어지기 전에 다른 문장들과 함께 만들었던 의미를 알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서. 그러면 최소한 레퍼런스는 충실하다는 말은 들을 수 있을 테니. 안 그러면, 어디 게시판에서 긁어온 거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러니까 긁어 붙인 걸 다시 긁어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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