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시로 오늘의 너를 위로한다.>의 연재 완료 후, 글이 뜸했습니다. 핑계를 대자면, 그 사이 몸이 좀 안 좋았습니다. 뭐, 대단한 건 아니고 나이가 드니 무리를 하면 몸이 놀라는데, 그 후유증 정도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덕분에 술을 줄였습니다. 우선순위의 재배치라고나 할까요. 사적인 맥락에서의 즐거움의 순위는 맥주-수영-독서-글쓰기 순이었는데, 아프면서 이 순위를 바꿨습니다. 수영-독서-글쓰기-맥주 순으로요.
이 글을 보시는 분 중에 ‘아니 어떻게 책과 글쓰기가 수영 따위에 밀릴 수 있냐.’며 화를 내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일단 어떤 운동이든 일정 기간 이상 해 오고, 어느 수준 이상으로 할 수 있게 되면 삼시세끼 먹는 것만큼 일상이 되게 됩니다. 그러니까, 그걸 하지 않는 나를 상상할 수 없게 되는 거죠. 그래서 마라톤 하는 사람들은 달리기 때문에 당한 부상을 빨리 치료해서 (같은 부상을 또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달리려 하고 배드민턴이나 테니스를 하는 사람들은 그거 때문에 나간 팔꿈치와 손목을 빨리 치료해서 다시 그걸 하려고 합니다. 덕분에 정형외과와 통증의학과, 재활의학과가 돈을 버는 것이죠.
아, 얘기가 좀 벗어났군요. 이렇게 재정립한 순위를 마음에 담은 채 남은 오십 대를 살아가기로 했습니다. 물론 제 다른 글을 읽으셨던 분 중에는 “그럼 섹스는 어떻게 된 거냐?”하고 궁금해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그건 일종의 명예 회장, 고문, 바지 사장 역할로 위치 이동 시켰습니다. 분명 1순위는 1순위인데, 뭐랄까, 실효성이 없는 1순위라고나 할까요? 뭐, 분명 하긴 하는 데 젊었을 때처럼 못해서 안달이 나던 시기는 끝난 것 같습니다. 그 결과, 주어진 일 없이 출근하면 그저 사무실 한편에 앉아 신문이나 읽고 바둑이나 두는, 퇴직을 앞둔 고위 임원처럼, 가끔 조용히 옛 일을 떠올리며 가끔 뜬금없이 미소 짓는 음흉한 존재로 남겨 뒀습니다.
연재 예고
자, 자, 이 얘기를 하려던 건 아니었죠. 새 연재 예고였죠. 몇 가지 기획안을 두고 검토 아닌 검토를 하다가 얼마 전 결론을 내렸습니다. 두둥. 우선 지난 몇 년 간 <영화의 위로>와 함께 모 온라인 매체에 연재해 온 글이 있습니다. <최카피의 딴생각>이라는 제목으로 말이죠. 대충 7,80편 되지 않을까요? <최카피의 딴생각>은 사회와 경제, 각종 이슈를 카피라이터의 시선으로 읽어낸 글입니다. 그래서 최근 몇 년 간 우리 사회를 관통했던 사건이나 키워드에 대한 제 나름의 생각이 담겨 있죠. 뭐, 그렇다고 엄청나게 시사적인 건 아니고요. 그저 카피라이터로 오랫동안 밥 먹어 사람의 입장에서 다르게 본 “무엇”이 담겨 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이건 이미 써 놓은 글이라 화요일 오전에 이렇다 할 사진이나 이미지 없이 글만 업로드하도록 하겠습니다.
두 번째 기획안은 꽃 이야기입니다. 좀 생뚱맞죠? 그런데 이게, 딸을 키워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딸을 키우다 보면 꽃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말을 하기 시작하면 이게 뭐야,라는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하는데, 근처 공원이라도 가면 눈에 보이는 꽃의 이름을, 정말 보일 때마다 묻거든요. 전 정말, 그전까진 동네의 작은 공원 안에 그렇게 다양한 꽃이 피고 나무가 자라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꽃마다 멈춰서 물어보는 딸에게 답을 해줘야 하니 열심히 사진을 찍어서 검색도 해보고 찾아도 봤죠. 또, 딸이 초등학교에 들어간 이후엔, 집에서 학교까지의 통학로 주변에 정말 엄청나게 많은 꽃나무들이 있는 덕분에 딸과 함께 꽃을 보며 계절을 맞고 보내왔습니다. 딸과 함께 보낸 계절 이야기를 하면서 꽃이 빠질 수 없고, 꽃 이야기를 하면서 딸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는 이유죠.
이런 이유로, 딸과 함께 본 꽃에 관한 이야기, 꽃을 함께 본 딸의 이야기, 내년이면 중학생이 되는 딸과 다시 본 꽃들의 이야기를 써 볼까 합니다. 지난 10여 년 간, 그러니까 딸과 함께 꽃을 볼 때마다 찍어놓은 사진도 곁들이려 합니다. 글의 제목은 담백합니다. 예전에 기획안에 써 놓았던 제목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려 합니다. <딸과 함께 꽃을 보았네.>. 이 연재는 계절의 변화와 시간의 경과에 따라 피는, 부산, 그것도 저희 동네에 피는 꽃을 따라 쓰는 글이기에 그야말로 라이브 한 글입니다. 매주 목요일,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두 글의 연재기간은 대략 1년으로 보고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 <최카피의 딴생각>도 7,80개가 되고, 찍어놓은 꽃 사진도 2백 여 장 되기에 각각 50여 개 정도의 글은 무리 없이 연재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각자의 취향에 따라, 꾸준히, 재미있게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이 밖에도 매거진에 비정기적으로 올려 온 글들도 써지는 족족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동해선에서 읽은 책>, <수영장에서 건진 생각>, <영화의 위로 4>, <꼰대와 베테랑, 그 사이>, <진지하게 야한 농담들>, <딸 바보의 시간이 끝난 뒤> 등등에 말이죠. 흠........ 생각보다 많군요. 부담 없이, 부정기적으로, 무작위적으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중 특정 매거진에 애정을 갖고 있는 독자분이 계시다면, 막연하게 기다리게 하는 것에 대해, 이 자리를 통해 사과의 말을 미리 드립니다.
소망, 그리고 소망
한 해 잘 보내셨나요? 올 상반기 우리 팀은 좀 어려웠습니다. 우리 업계 전체가 불황이었죠. 그래도 그럭저럭 굶지 않고 살아서 이 소란스러운 연말을 맞이했습니다. 크게 아픈데도 없이 말이죠. 연초에 계획했던 것이라고는 오십 권 이상의 책을 읽자는 것뿐이었는데, 그 소박한 계획조차 물 건넌 간 듯합니다. 잘해야 마흔 권 좀 넘지 않으려나. 내년엔 저녁에 맥주를 마시는 대신 책을 좀 더 자주 읽을 터이니 좀 늘어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뭐, 여전히 이런저런 소망을 희미하게나마 갖고 있습니다만, 대부분, 이건 좀 분에 넘치는 욕심 아닌가 싶어 안으로 삼켜 넣은 뒤 담담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기저기 쓴 글들을 모아 종이로 된 책을 냈으면 좋겠다, 읽은 책과 품어 온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이십 년 넘게 해온, 카피라이터라는 업을 통해 얻은 기술이라면 기술을 젊은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싶다, 뭐 이런 자잘한 소망들을 갖고 있습니다만, 이루기 위해 애를 쓰고 있진 않다는 말입니다.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도 너무 분에 넘치는 복이 아닌가 하고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내고 있거든요.
아내는 곱게 나이 들고 있고 딸은 예쁘게 크고 있습니다. 철없고 능력 없는 남편이자 아빠를 무던하게 견뎌주고들 있죠. 그 점에 대해 깊은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이 가장 큰 복이라 생각해서 다른 걸 기대하는 건, 욕심이라 여기는 모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전에 얘기했던 그런 소망들은 가슴 한쪽에 두고 있습니다. 인연이 닿으면, 기회가 닿으면, 사람과 운을 만나면 언젠간 되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날이 빨리 오길, 언제까지 되길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저, 다만, 한 시간 이상 서서 강의할 수 있는 체력이 사라지기 전에, 이런 소망들이 이뤄지길 바랄 뿐입니다. 부산은 동백이 한창입니다. 이 겨울, 나라는 소란스럽지만 가정은 평안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