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축구도, 인생도 계속된다.

최카피의 딴생각-칼럼 157

by 최영훈

독자들도 알다시피 이 온라인 뉴스 매체(이코노믹톡 뉴스)에는 스포츠 뉴스가 없다. 필자가 종종 누구나 알법한 스포츠 이야기를 해도 제법 재미있게 읽히지 않을까 하는 헛된 기대를 품곤 하는 이유다. 그 기대를 발판 삼아 이번에 할 이야기는 스포츠 이야기 중에서도 가장 독한 이야기, 가장 사연 많은 이야기, 유독 올해 더 드라마틱한 이야기, 프로축구 승강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끝까지 뛰는 이유

혹시라도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승강제를 간략히 설명하면, 상위 리그에서 못하는 팀은 하부리그로 내려가고, 하부리그에 잘하는 팀은 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모든 프로 스포츠에 승강제가 있는 건 아니다. 필자가 아는 한 프로 스포츠 중에서 세계 공통적으로 승강제를 도입하고 있는 종목은 축구뿐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타 종목 프로 리그의 하위권 팀들의 경우엔 시즌 말미가 되면 한 시즌을 마무리하고 선수 보강이나 감독 교체 등을 위한 물밑 작업을 하면서, 잔여경기는 선수들의 개인 기록 관리를 위한 기회로 활용하곤 하지만 축구는 다르다.


압도적인 성적으로 한 팀이 1위를 시즌 내내 독주를 해도 시즌의 열기는 유지된다. 영국 프로리그처럼 맨체스터 시티가 몇 시즌 연속 우승해도, 스페인 리그처럼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가 우승을 주거니 받거니 해도, 독일 리그처럼 바이에른 뮌헨-작년 시즌엔 드디어 레버쿠젠이 우승했지만-의 우승을 당연시해도, 심지어 우리나라 프로리그처럼 울산 HD가 세 시즌 연속 우승을 해도 그 열기는 시즌 종료까지 지속되는 것이다. 물론 승강제가 그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우선, 시즌 막바지에 받아 드는 순위 자체가 다음 시즌 구단 살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유럽이든, 아시아든 순위에 따라 리그가 소속된 대륙의 축구연맹에서 주최하는 챔피언스 리그에 나갈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이중 가장 큰 동기부여 요소는 당연히 승격과 강등이다. 승격과 강등은 하위권 팀들을 시즌 막바지까지 달리게 한다. 축구를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이 승격과 강등의 중요성을 몇 가직 맥락에서, 피부에 와닿게 말하면, 우선 하위 리그로 강등이 되면 중계가 거의 되지 않는다. 공중파는 당연하고 유력 스포츠 채널에서의 중계도 쉽지 않다. 당연히 중계권료도, 협회로부터 나오는 지원금도 큰 차이가 있다.


게다가 강등이 되면 그 팀의 우수한 선수도 그 팀을 떠나고 싶어 하고 다른 팀, 다른 나라의 우수한 선수는 입단을 꺼려한다. 반면 승격을 하면 이 반대의 경우가 발생한다. 중계권 수입도 늘어나고 관중도 늘어나며 우수한 선수들도 입단을 바란다. 당연히 좋은 감독 모셔오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1부 리그에서 성적을 유지하면 도시의 이미지도 좋아질 뿐만 아니라 해외에 팀과 도시를 알릴 수도 있다. 불과 몇 년 전 2부 리그에 있던 광주 FC가 1부 리그에 승격이 된 후 국가대표가 배출되고 해외 리그에 진출하는 선수들이 나올 뿐만 아니라, 최근엔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에서 일본의 강팀까지 연달아 꺾으면서 아시아 축구팬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낯선 팀과 광주 FC가 유명해지면서 덩달아 광주도 해외 축구팬의 주목을 받게 됐다. 이 모든 것은 팀과 선수, 팬과 도시의 영광이자 미래의 자산이 된다. 이러한 명예와 부의 이동 여부가 전부 달려 있는 것이 승강제이기에 하위권 팀들은 시즌 막바지까지 갖은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11월의 승강 전쟁

올해 강등 된 인천 유나이티드도 마찬가지였다. 몇 시즌 동안 강등의 위기에서 극적으로 탈출해 축구팬들로부터 “생존왕”이라는 불리는 인천 유나이티드는 올 시즌을 대비해 간판 스트라이커였던 무고사를 일본에서 다시 불러들였다. 심지어 시즌 중에 감독도 바꿨다. 그야말로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고 볼 수 있다. 시즌 후반, 구단도, 선수도, 팬도 설마, 설마 했을 것이다. 생존왕이라는 별명답게 이번 시즌에도 잔류를 이뤄 내리라 일말의 기대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37라운드, 시즌 마지막 한 경기를 앞두고 벌어졌던 그 경기에서 전북이 대구를 이기고 인천이 대전에 지게 되면서 2부 리그 팀과 플레이오프도 못해보고 최종전 이전에 “디렉트 강등”이 확정됐다. 인천 구단 역사상 처음, 시민구단 중 단 한 번도 강등된 적이 없다는 자존심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강등이 확정된 순간 2부 리그에서 5년 간 고생을 해봤던, 원정팀 대전 시티즌의 서포터들은 “인천 강등”이라는 구호를 신나게 외쳐댔다. 인천 서포터들을 자극하는 문구가 담긴 긴 걸개를 내건 채 말이다.


승강 전쟁은 하부리그에서도 벌어졌다. 승강 플레이오프, 그러니까 상위 리그의 하위 팀과 하부 리그의 상위권 팀들이 승강을 두고 한 판 격전을 벌이는 자격을 얻기 위한 경쟁도 치열했다. 승, 무, 패의 엇갈림에 따라 어떤 팀은 그 단판 승부의 기회도 얻지 못하는 형국이었다. 팀의 운명을 건 K2 리그의 최종전은 세 팀의 희비를 갈랐다. 작년에 강등된 수원 삼성은 먼저 시합을 끝낸 터라 전남 대 서울 E랜드, 부산 아이파크 대 부천 FC의 경기를 지켜봐야 했다. 이 두 경기에서 전남과 부산이 각각 비기거나 지거나, 또는 두 팀 중 한 팀이 지거나 비기거나 하면 수원 삼성은 플레이오프 진출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반면 두 팀, 전남과 부산 아이파크가 모두 이기면 수원 삼성은 2부 리그 잔류가 확정되는데, 전문가들의 예측으로는 그 확률이 11퍼센트에 불과했다. 결론적으로 수원 삼성은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전남 드래곤즈가 서울 E 랜드를 4:0, 부산 아이파크가 부천 FC를 3:1로 이겼기 때문이다.


더 재미있는 건 이다음이다. 서울 E랜드를 대파한 전남의 이장관 감독이 한국 프로스포츠에서는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독설을 방송 인터뷰에서 남겨 수원 삼성 팬들의 속을 뒤집었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옮겨보자.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불편함이 있어, 사실 수원이 탐탁지는 않았다. 이적 시장부터 다 말할 순 없지만 그런 부분이 있다는 걸 이해해 달라. 수원을 우리 밑으로 떨어뜨렸다는 게 속 시원하다. 요즘 술을 잘 안 마시는데, 오늘은 소주 한잔해야 할 것 같다." 이 인터뷰 덕분에, 만약 전남이 플레이오프에서 져서 2부 리그 잔류가 확정된다면, 다음 시즌 두 팀의 대결은 말 그대로 전쟁이 될 것이다.


축구도 인생처럼 계속된다.

강등 팀이 있으면 승격하는 팀이 있다. 올해의 주인공은 안양 FC다. 그야말로 지자체와 시민의 십시일반으로 창단한 지 11년 만에, 현 FC서울이 안양이라는 연고지를 등지고 서울로 떠난 지 20여 년 만에 1부 리그의 승격을 이뤄낸 것이다. 당연히 안양 전체가 떠들썩했다. 부천과의 경기에서 비기기만 해도 남은 경기와 상관없이 1위를 확정 지을 수 있었던 안양은 무승부를 이뤄냈고 자동 승격의 자격을 가져갔다. 이날 밤, 부천에서 안양으로 재빨리 이동한 서포터들은 안양의 경기장 앞에서 선수들의 버스를 기다렸다. 입구에 버스가 등장하자 서포터 리더가 붉은 불꽃과 연기를 일으키는 홍염을 터뜨렸고, 이것을 신호로 서포터스의 열렬한 환영 행사가 시작됐다.


유명 OTT를 뒤적이면 축구 관련 영화나 드라마, 다큐멘터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죽어도 선더랜드>는 영국 프로축구 리그의 선더랜드의 강등과 승격을 향한 몸부림, 팬들의 애증이 고스란히 담겨 있고, <웰컴 투 렉섬(Welcome to Wrexham)>은 미국의 영화배우 라이언 레이놀즈가 영국 5부 리그의 팀을 인수해 운영과 승격에 도전하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영화 <뎀드 유나이티드(The Damn United)>에는 70년대 영국 프로축구의 전설적인 감독이었던 브라이언 클로프의 이야기가 실감 나게 그려져 있다.


이 외에도 축구를 다룬 영화와 다큐멘터리, 책은 넘쳐난다. 세계인이 축구에 열광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인생과 축구가, 축구와 인생이 닮았기 때문이다. 누군가 웃으면, 누군가는 운다.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축구는 계속된다. 계속해야지만 다시 성공할 수 있고 다시 웃을 수 있다.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결국 포기하지 않고 살아내는 사람만이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보는 것이다. 11월, 프로축구의 승강 플레이오프를 지켜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희비가 엇갈리는 순간, 그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기쁨도 슬픔도 훌훌 털어내고 다시 출발하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기 위해. (2024년 11월 15일 송고)


모든 스포츠가 그렇겠지만 축구 또한 직접 해보면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 실감이 나는 스포츠입니다. 둥근 공은 어디로 튈지 모르고 승부의 향방은 마지막까지 어디로 기울지 알 수가 없죠. 때문에 잘 나가던 선수나 팀도 알 수 없는 이유로 부진하거나 연패를 당하곤 합니다. 최근의 맨체스터 시티처럼 말이죠. 새해를 앞두고 있습니다. 전, 딸의 항암치료 첫 주간이 시작된 관계로 연말연시를 병원에서 보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함께 하는 건 변함없죠. 인생은 축구와 비슷합니다.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습니다. 또, 어제의 강팀이 연패의 기간을 맞고 강등의 수모를 겪기도 하며, 약팀도 연승과 승격의 기쁨을 맞기도 하죠. 새해에는 구독자분들 모두, 연전연승, 승격의 기쁨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트럼프는 왜 학교를 닦달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