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카피의 딴생각 07 (칼럼 155)
지난 칼럼에서 텍스트 힙의 열풍을 다뤘었다. 이 열풍에 노벨문학상의 여파까지 밀어닥친 출판계는 모처럼 호황의 기대를 품고 있다. 더불어 이 열풍이 금세 식지 않고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도 갖고 있다. 때문에 출판계는 물론이고 이제 막 책을 집어든 사람도 어떻게 하면 책을 계속 읽히고 읽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지 않을까? 필자 또한, 그 덕분에 다양한 출판사가 줄지어 탄생해서 더 재미있고 깊이 있는 책들이 세상에 나오길 소망하고 있다. 이런 모두의 소망이 현실이 되길 바라며 그야말로 지속가능한 독서의 가능성, 그 방법에 대해, 수영과 비교하여 생각해보려 한다.
얼마 전 일이다. 경주시의 공무원이랑 점심을 먹다가 느닷없이 수영 얘기가 나왔다. 그 과의 계장이 내게, 스트레스를 어떻게 푸는지 물은 것이 시발점이 됐다. 담담히 “수영을 합니다,”하고 답했다.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감독이 “우리 작가님이, 고급반 터줏대감입니다.”하고 자랑을 했다. 마치 “S대생 엄마”임을 자랑하는 스티커를 자동차에 붙이고 다니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 말을 들은 공무원은 부러움을 숨기지 않았다. 마침 그 이도 수영을 하는 데, 접영은 고사하고 이제 겨우 평영을 배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평영을 배우고 나면 접영으로 넘어갈 텐데, 그 이는 왜 날 부러워했을까?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수영을 시작한 사람의 7,80%는 접영을 배우기 전, 혹은 접영 정복에 실패하며 관두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이 필자가 수영과 독서를 비슷하게 보기 시작한 지점이다. 더불어 몇 가지 공통점을 더 나열해 보자.
우선 시작이 쉽지 않다. 약간의 결심이 필요하다. 앞선 칼럼에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했던, 운동화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다는 달리기의 장점과 정반대다. 수영복과 수경, 수모를 사야 하고, 가까운 실내 수영장을 찾아 대학교 수강신청만큼 어렵다는 등록에도 성공해야 한다. 출근 전에 하는 새벽반에 등록했다면 잠과의 싸움도 벌여야 한다. 그야말로 “수영할 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책도 마찬가지다. 필자가 딸과 함께 쓰는 공부방엔 제법 많은 책이 꽂혀 있지만 아내는 도통 관심이 없다. 회사와 관련 전문가들의 모임에서 함께 읽겠다고 공동 구매한 책도 거실 귀퉁이 책꽂이에 꽂힌 지 몇 달이 됐지만 새것 그대로다. 학교를 졸업한 성인이 공공 도서관을 이용하는 것도 큰 결심이 필요하다. 필자가 사는 동네의 공공도서관은 집에서 걸어 십오 분 정도 걸린다. 황령산 밑에 있기에 도서관에 다다를 즈음엔 백여 미터의 오르막길까지 올라야 한다. 그렇다고 주차장이 넓은 것도 아니다. 게다가 대출증도 만들어야 한다. 원하는 책, 읽고 싶은 책은 직접 찾아야 하고 대출과 반납도 기계로 스스로 해야 한다. 빌린 책은 반납해야 하니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반납일 전에는 책을 반납하러 또 도서관에 가야 한다. 어떤가? 이 정도면 “책을 읽을 결심”도 필요하다 말할 수 있지 않나?
책을 읽다 보면 수영의 접영과 같은 난관을 만날 때가 있다. 몇 권 읽다 보면 조금 어렵고 두꺼운 책을 읽고 싶은 욕심이 생기곤 한다. 독서가 취미라는 말을 들은 지인이나 선배가 선물한 책이 어렵고 두꺼워서 난감할 때도 있다.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딸과 그 친구들의 독서 역량의 강화 과정을 보면 답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초등학교가 그렇겠지만 딸이 다니는 초등학교는 독서교육 특화 초등학교인가 그렇다. 그래서 1학년 때부터 아주 체계적으로 독서 교육을 시키는데, 책의 내용과 난이도는 물론이고 두께와 한 페이지 안에 담긴 글자 수와 크기를 감안하여 책을 정한다.
당연히 학년이 올라가면 난이도, 두께, 페이지 당 글자 수의 양도 늘어난다. 내용은 어렵고 글자 크기는 작아지며 두께는 두꺼워진다는 말이다. 그러나 모든 아이들이 같은 수준의 책을 읽지는 않는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수준을 살펴 완독 할 수 있는 책을 권한다. 아이들은 자기 수준에 맞는 책을 골라 완독의 권수를 늘려가고 그 과정에서 책 읽기의 자신감과 재미를 붙인다. 성인도 마찬가지다. 갑자기 책의 수준과 두께를 점프하듯, 월반하듯 뛰어넘을 수는 없다. 쉽게 읽히는 책을 완독 하는 기쁨을 많이 경험한 뒤 그보다 살짝 어려운 책을 추천받아 꾹 참고 완독 하고, 그렇게 그 완독의 독서 체력을 바탕으로 서서히 난이도를 높여 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책을 밥 먹듯이 읽게 되면 어떤 효과가 있을까? 수영과 같은 운동처럼 효과가 있을까? 책의 유행인 시대에 책의 효과에 대해 똑 부러지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문해력 증가라는 가시적 성과도 있지만 그보단 뭔가 더 차원 높은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 사실이다. 책의 효과는 언제, 어떻게 드러날까?
다시 그날, 경주시 공무원과의 대화로 돌아가 보자. 수영 이야기를 한 날, 필자는 생전 처음 듣는 말을 들었다. 수영 이야기를 하고 운동 경험을 나누던 와중에, 그 공무원에게 “운동 좋아하시는 줄 몰랐다.”, “숨쉬기 운동만 하실 줄 알았다.”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젊은 시절엔 운동 잘하게 생겼다, 무슨 운동하느냐는 소리를 주로 들어왔던 터라, 신선하기까지 했다.
필자는 위와 같은 말을 들을 정도로 마른 체형이지만 꾸준한 수영 덕분에 그럭저럭 아직은 봐줄 만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 심박수도 평온할 때는 운동선수 수준에 가까운 57~60 bpm 사이를 오간다. 올해 받은 정기건강검진에선 심혈관 나이가 제 나이보다 열 살가량 어리다는 결과도 받았다. 이런 효과들은 겉으로 봐서는 알 수 없다. 가끔 아내와 등산을 하거나, 딸의 운동을 도와주거나 할 때를 제외하면 수영으로 쌓은 체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은 거의 없다. 몸매는 말할 필요도 없다. 같이 사는 사람만 좋다고 할 뿐이다.
책 읽기의 효과도 비슷하다. 독서로 인생이 바뀌었네, 연봉이 올랐네, 성장을 했네, 하는 말들을 하는데, 진짜 효과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예상치 못한 순간에, 책이 없는 곳에서 드러난다. 애서가이자 교육학자인 사이토 다카시의 책 제목처럼 “책 읽는 사람만이 닿을 수 있는 곳”이 있다. 술 마신 사람 옆에 가면 술 냄새가 나듯 독서가와 애서가의 곁에 가면, 그런 이와 얘기하다 보면 책을 읽어 온 사람만이 풍기는 다른 향이 나게 되어 있다. 그 다른 향을 다른 이가 눈치챌 때까지, 우선은 읽어야 한다.
주변에 물어보면 배영까지 배우다만 사람들이 제법 있을 것이다. 내 주변에도 두 명이나 있다. 함께 일하는 PD와 감독이 그들이다. 독서도 그렇다. 늘 처음 몇 페이지만 읽다가 마는 사람들이 있다. 유튜브로 책의 요약을 “듣는”사람도 있고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서평을 읽는 것으로 대체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면 끝끝내 접영을 배워야 하는 것처럼 책의 매력에 끌리기 시작했다면 완독을 향해, 독서가 일상이 되는 인생을 향해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접영은 배우기 까다롭지만 일단 제대로만 하면 이보다 우아한 영법이 없다. 당연히 접영만큼 전신 운동이 되는 영법도 없다. 그야말로 수영의 꽃인 것이다. 책도 인생의 꽃일까?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인생이라는 정원을 아름답게 해주는 무엇임에는 틀림없지 않을까? 꽃도, 잔디도, 멋진 석상도 아닌 작은 벤치일지라도, 그 벤치가 없이는 정원이 완성됐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처럼 독서가 우린 인생에서 차지하는 역할도 그런 것이지 않을까? 물론 누군가에겐 꽃일 수도 있겠지만.
(2024년 10월 15일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