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선에서 읽은 책 128
이 책은 1월 3일, 금요일 오전 열한 시 구 분, 알라딘 센텀점에서 조앤 디디온의 <내 말의 의미는>과 같이 샀다. 그 후, 다시 지하철을 타고 지금은 없어진 알라딘 동보서적점으로 가서 에밀 시오랑의 다른 책, <태어났음의 불편함>을 열한 시 오십이 분에 결제했다. 이후, 집에 왔다. 이 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12월 8일, 딸은 입원을 했고, 화요일에 수술한 뒤 일주일 뒤 퇴원했다. 그 뒤 집에서 체력을 만든 후, 12월 29일, 1차 항암 치료에 돌입했다. 일주일 입원, 두 주의 월요일마다의 내원 항암 주사. 이걸 한 사이클로, 총 네 차례의 항암치료가 시작됐다. 1월 3일은 딸의 1차 항암치료의 입원 주간의 금요일이었다.
낮엔 아내가, 밤엔 내가 딸의 곁을 지켰다. 입원해서 주사를 맞기 위한 포트를 설치하는 수술을 한 뒤 항암 주사가 시작됐다. 후유증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것보다 강했다. 어떤 음식의 냄새도 맡지 못했다. 간신히 누룽지만 먹을 수 있었다. 하루에 한 번 정도는 구토를 했다. 머리카락은 빠지지 않았지만 그전에 이미 삭발을 했기에 동그란 딸의 머리통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때문에 야위어가는 딸의 얼굴이 더 분명히 보였다. 눈 밑의 그늘도.
“고통은 객관적으로 평가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고통은 외부의 요인이나 신체기관의 동요가 아니라 우리 의식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느끼는 방식에 따라 측정된다. 그런 의미에서 고통의 크고 작음을 나누는 일은 불가능하다.”, P.19.
타인의 고통은 헤아릴 수 없다. 육적이든 정신적이든 타자의 고통은 내게 건너올 수 없다. 이해한다는 말은 교만하다. 더 나아가 거만하기까지 하며, 심지어는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고통을 나눌 수 있다면 나누고 싶은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인간은 한없는 무기력을 느낀다. 환자 보호자의 고통은 여기에 기인한다. 잠자리의 불편함, 맛없는 식사, 단절된 일상은 사소하다. 환자의 곁에 있으나 고통으로부턴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자각, 그리하여 그것을 개선도, 해소도 못한 채 있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지치게 한다.
1월 3일에 산 책을 한 달 이상 읽은 것은 아니다. 그의 문장은 독파나 완독을 강요하지 않는다. 고통과 절망, 사랑과 후회, 실패와 좌절, 그 외 인간으로 살아내는 일에 대한 그의 생각은 완전한 이해도, 빠른 독해도 바라지 않는다. 마치 공원 한 편, 텅 빈 벤치에 홀로 앉아 공원과 거리를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물끄러미 보며 반나절을 보낸 이, 그렇게 일상으로부터, 사람으로부터, 어쩌면 통상적인 인생이라는 것으로부터 떨어져 사는 이의 생각을 보는 느낌이다
그 생각의 봄도 마주 봄이 아니다. 그 생각이 낮은 목소리로 들린다. 둘 다 같은 방향을 보면서, 시선은 멀리, 얼핏 같은 걸 보지만 어느 대상에도 멈추지 않는 공허한 눈빛을 한 채, 상대에게 말을 하지 않는 것처럼, 아니 아예 상대가 없는 것처럼 생각이 쏟아진다. 구구절절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설득의 의도도, 납득의 효과도 바라지 않는다. 어차피 같은 풍경을 다르게 보고 생각하고 느낀 것이다.
"나는 피와 살의 자취를 품고 있는 사고를 원한다. 공허한 추상적 사고보다는 육체적 격정이나 신경의 파탄에서 오는 성찰을 백배 더 원한다. 피상적인 지적 유희의 시간은 지나갔다는 것, 절망의 외침이 치밀한 논리보다 훨씬 더 진실하다는 것, 눈물의 뿌리가 미소보다 더 깊다는 것을 사람들은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생생한 진실만이 갖고 있는 가치를 왜 우리는 거부하고 있는가?", P.39
그가 말하는 내면은 더 깊은 곳에 있다. 그가 말하는 절망은 더 숙명적이다. 그의 눈물은 더 느리게 흐르고 그의 진실엔 살점이 묻어 있고 피가 흐르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이런 이유로 그는 완전한 이해와 독해를 원하지 않는다. 산책을 좋아했던 자신처럼, 그 느린 발걸음에 맞춰주길 원한다. A에서 B로 가길 원하는 사람, 그 이동에 있어 가장 빠른 길, 가장 짧은 길을 찾길 바라는 사람, 긍정과 개발과 계발과 성공과 기쁨으로 가득 찬 것이 인생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그의 글을 읽을 수 없다.
텍스트와 텍스트 사이, 페이지의 여백, 제목, 제시되지 않은 결론에 그의 진의가 숨어 있다. 삶의 에너지가 꺼진 곳에서 텍스트의 불빛이 반짝인다. 희망의 단서가 사라진 곳에서 그의 위로가 드러난다. 하나마나 한 말들의 홍수 속에서, 배워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지식과 그 배움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전문가들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그의 무심한 말들이 힘을 발한다.
“할 수만 있다면, 나는 삶을 완전히 정화하기 위하여 세상 전체를 죽음의 고통으로 내몰고 싶다. 끈질기게 타오를 불을 삶의 뿌리에 붙이겠다. 태워 없애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수액과 열기를 전해주기 위해서. 내가 세상에 지피는 불은 폐허가 아니라 진정으로 우주적이고 본질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삶은 높은 온도에 적응할 것이고, 더 이상 세상은 졸렬한 사람들의 보금자리가 아니게 될 것이다. 이것이 실현된다면 죽음이 더 이상 삶 속에 내재하지 않게 될는지 모른다.(내 스물두 번째 생일인 1933년 4월 8일에 썼다. 그 나이에 죽음 문제 전문가라니 이상하다.)", P.27.
어제, 딸의 마지막이자 4차 항암 치료의 입원 주간이 끝났다. 이제 남은 건 두 주에 걸친, 월요일마다의 내원 치료, 그리고 주기적인 체크, 체력의 회복, 등교다. 내가 찍은 꽃 사진을 보니 벚꽃은 3월 20일 이후에나 한창이다. 지금은 매화가 겨울을 밀어내고 있는 중이다.
딸이 다닐 중학교의 뒷산은 내가 종종 운동하러 가던 곳이다. 사계절 꽃이 예쁘게 핀다. 체력이 회복되면 종종 그 뒷산으로 꽃구경을 다닐 생각이다. 그 산 중턱의 길을 통해 학교의 뒤쪽으로 바로 갈 수 있는 방법도 궁리해 보고.
딸이 겪은 고통은 여전히 딸의 것이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도 묻지 않았고 딸도 설명하려 들지 않았다. 난 지켜봤다. 바닥에 쏟아낸 것들을 치웠고 뒤척이는 딸이 만드는 병상의 작은 소음들을 들으며 잠을 설쳤다. 새벽 다섯 시 반, 나이트 반 간호사의 마지막 방문 이후엔 더 잠을 잘 수가 없어 책을 펼쳤다. 그때, 에밀 시오랑의 글을 몇 페이지 읽었다. 이후 차를 마셨다. 마지막 몇 페이지는 퇴원을 앞둔 이번 주 토요일 아침에 읽었다.
그는 아주 저명한 문학상을 두 번이나 거절했다고 한다. 문단과의 교류도 없었고 인터뷰도 거절했고. 인터뷰 거절 이유는 조용히 산책을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고. 잠깐 고등학교 철학 교사를 했던 것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직업 없이 글만 썼다고 한다. 루마니아 출신의 남자가 가장 프랑스적인 산문을 썼다는 평을 받고 있다. 1911년생, 1995년에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