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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의 의미는 - 조앤 디디온

동해선에서 읽은 책 129

by 최영훈
“작가라는 직업의 특별한 점은 자신의 말들이 활자로 인쇄된 것을 봐야 한다는 씻을 수 없는 치욕을 피하고서는 작가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조앤 디디온, 「마지막 말」중에서, <내 말의 의미는>, P.190.


담긴 것들

1934년에 태어나서 1950년대부터 글을 쓰기 시작한 작가의 책으로, 여러 매체에 실린 그의 글 중에서 책으로 엮어 나오지 않은 글을 모은 책이다. <베들레헴을 향해 웅크리다>와 <상실>, <푸른 밤>에 이언 네 번째로 읽은 그의 책이다. 이 책의 특별한 점은, 1968년부터 2000년도에 걸쳐 여러 곳에 실린 글을 모았다는 점, 덕분에 40대, 50대, 심지어 70대의 생각도 엿볼 수 있다는 점, 그래서 주제도 다양하다는 점, 당연하게도 인물들 또한 그 시대를 풍미했을 뿐만 아니라 훗날에도 두고두고 얘기됐던 그런 이들이라는 것이다. 내가 아는 인물만 추려보자. 낸시 레이건, 마사 스튜어트, 어네스트 헤밍웨이 등이 있다. 여기에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 등장하는 506 연대의 모 사단인 101 공수 사단 등이 있다.


그가 다루는 사건, 또는 현상들은 현재까지도 존재한다. 도박 중독을 위한 모임, 개성과 입장이 명확하지 않은 언론(그래서 뭘 읽어도 딱히 상관없어져 버린), 위대한 부자와 작가가 남긴 유산과 그 유산을 망자의 뜻과 상관없이 처리하는 후손들, 특별한 수업에 참여한 학생 중 나만 가장 능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는 두려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을 때의 절망감, 소화하기 어려운 철학을 비롯한 사상과 이론 앞에서의 망연자실함 등.


이 책과 <베들레헴을 향해 웅크리다>에서의 그의 시선은 담담하다. 해석은 없다. 철학적이고 이론적인 분석도 없다. 60년대와 70년대라면, 그 시대의 미국 작가라면 막 수입되기 시작한 소위 프랑스의 현대 철학 이론들을 프레임 삼아 현상과 사실을 비판할 법도 한 데, 그는 하지 않는다. 그저 묘사하고 보여준다. 마치 종군기자의 카메라처럼 앵글과 각도를 바꿔가면서 찬찬히 담아낸다. 해석도, 분석도, 비판도, 그 후 생기는 감정도 독자의 것으로 남겨 놓는다.


"많은 면에서 글을 쓴다는 것을 ‘아이(I), 즉 나’를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행위, 다시 말해서 ‘내 말 좀 들어봐요, 내가 볼 때는 이러저러하니 당신 생각을 바꾸세요.’하고 말하는 행위이죠. 공격적인, 심지어 적대적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행위입니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 같은 책, P111.


담긴 생각

이 묘한 거리두기, 담담한 관찰자적인 글쓰기의 작가적 배경이랄까, 그 비슷한 것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에 나온다. 찾아보니 이 글은 1976년 12월 5일, 뉴욕 타임스에 실렸고, 원고의 초안은 강연의 원고로, 강연은 1975년 봄, 버클리 대학에서 열렸었다(일시를 특정할만한 정보까지는 찾지 못했다). 이 글을 읽다 보면 그의 성향, 작가로서의 성향을 짐작할 수 있다. 추상적인 개념이나 철학, 사상에서 글이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본 것, 주변의 사물, 찰나의 변화, 그 변화의 포착에서 출발하는 고유의 스타일의 기원을 말이다.


엄밀히 말하면, 그는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는다. 포착의 제시, 그뿐이다. 물론 그 포착의 시선은 작가의 것이고, 보지 않은 이에게 본 것을 제시하는 것임을 감안하면, 이 또한 강요라면 강요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도, 혹은 아무나, 혹은 누구나 볼 수 없고 보지 못했던 작가가 모두가 볼 수 있는 대상으로부터 좀처럼 보기 힘든 무엇인가를 포착하여 모든 이가 볼 수 있게 해 준다면, 그건 강요가 아닌 의무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즉 작가는 시대의 관찰자라서 그 소임을 다할 뿐, 해석과 분석, 의미 부여는 작가의 글을 보는 대중에게 달린 것이다. 심지어 그 글을 보는 것조차.


그런 면에서 그의 글이 가진 거리감과 현상을 바라보는 시선, 그 시선으로 선택하는 현상과 사물의 취향은 노먼 메일러, 존 맥피, 게이 털리즈 등이 이끈 뉴 저널리즘, 넓게는 헤밍웨이와 레이먼드 카버나 코맥 맥카시와 같은 미국 소설가들의 그것과 닮아 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한 없이 뜨겁기만 했던 미국 사회에서 이 “쿨”하고 시니컬한 작가들은 그 시대의 이면(裏面)을 냉담하기까지 한 거리감 있는 시선으로 포착한 뒤, 그것을 툭, 툭 미국 사회에 던지는, 외부자의 역할을 감당했다.


침묵은 불편할 뿐, 두렵지는 않다. 아웃사이더로 밖에 머무는 것은, 때론 춥고, 때론 외롭고, 때론 말 그대로 소외되어 있지만, 그런 존재가 되는 것이 두렵지는 않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그 시대의 작가들 아니었을까. 어쩌면 이 시대의 작가들도 이런 생각을 갖고 사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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