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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

최카피의 딴생각(칼럼 172)

by 최영훈

더 반가운 올봄

모든 꽃이 일주일 정도 늦었다. 부산도 4월 첫 주에나 벚꽃이 얼굴을 내밀어 그 주말에 만개했다. 촬영 답사 차 그 주중에 경주를 방문하여 둘러보니 보문 단지 일부에만 벚꽃이 피었었다. 당연하게도 경주의 꽃은 부산보다 늦게 왔고, 꽃 소식은 그렇게 남에서 북으로 전달됐다. 꽃이 늦었다고 작년보다 소박할 리 없다. 벚꽃이 핀 경주의 명소마다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이 눈에 띄었다.


경주의 공무원이 추천한 벚꽃 명소로 이동하기 위해 보문단지를 빠져나가며 보니, <더 K 호텔> 앞 인도에는 황룡사의 9층 석탑을 모티브로 하여 만든 <황룡원>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는 청춘들이 유독 많았다. 만개는 고사하고 이제 막 그 분홍빛을 설핏 비췄을 뿐인데, 벚꽃은 그 등장만으로도 청춘들을 경주로 불러 모았고, 그렇게 모인 청춘들은 벚꽃 아래서 모처럼 설레어 보였다. 그 모습을 차 창밖으로 보고 있자니 괜스레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다들 겨울 동안 고생했구나 하는 마음 끝에 긴 겨울이 비로소 끝난 느낌도 들었다.


겨울은 원래 정리와 준비의 계절이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일을 반복할수록 세월의 무게는 더 무거워지고, 그 무게가 어른의 연륜으로 융해되는 나이가 되면 겨울은 더욱더 안으로 내실을 다지는 계절이 된다. 동면을 자는 동물처럼 새로운 봄을 준비하는 수련과 성찰의 계절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평소의 겨울이라면 연말연시를 따뜻하게 만들 훈훈한 뉴스가 이어지곤 한다. 한 해의 아쉬움을 새해를 향한 희망 속에서 갈무리하며 씩씩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뉴스도 자주 보인다. 각계각층에서 한 해를 정리하고 상을 줄 사람에겐 주고 칭찬해 줄 사람에겐 칭찬해 주는 그런 방송과 뉴스도 연이어진다.


그러나 지난겨울엔 심란한 뉴스가 많아 국민 모두, 마음을 가만히 두는 것이 쉽지 않았다. 정치는 혼란스러웠고 비행기는 추락했으며 두 개의 전쟁은 휴전과 종전의 희망을 완강히 거부하며 지속됐다. 심지어 그 겨울 끝에 겨우 맞은 봄도 봄 같지 않았다. 꽃샘추위가 물러갈 즈음엔 산불이 났고 이웃 나라에선 큰 지진이 났다.

봄이 오지 않은 사람들

많은 사람의 죽음과 나라 안팎의 시끄러움을 뒤로하고 거짓말처럼 봄꽃이 폈다. 사람들은 그 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그 꽃의 이름을 앞세워 축제를 열었고 마라톤 대회와 각종 행사가 이어졌다. 새로 온 봄과 꽃은 산 사람의 것이어서 그 만끽 또한 산 자의 즐거움이니 연이어지는 축제와 행사를 뭐라 할 수는 없다. 다만 봄에 취하고 꽃에 흔들리는 그 마음 한쪽에 지난겨울 먼저 간 사람들, 미처 꽃을 보지 못하고 꽃샘추위와 강풍 속에서 화마(火魔)와 싸우다 간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에 대한 기억의 자리가 있길 바랄 뿐이다.


이들의 기억을 평생 가슴에 묻고 사는 이들도 있다. 유가족과 이재민들이 그러할 테고 재난과 사고의 직간접적으로 연관 있는 이들 또한 그러할 것이다. 얼마 전 본, 무안공항 사고 100일 뉴스에서 그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뉴스에는 유가족들이 무안 공항 내에 있는 분향소 제단에 봄꽃으로 화단을 꾸미는 모습이 나왔다. 유가족 대표는 이 참사가 잊히는 것을 걱정하는 유족을 위로하기 위해 봄 화단을 만들었다고 했다. 흰색 국화 앞에 놓인 3백여 개의 색색 봄꽃에 유가족의 마음이, 이 좋은 계절을 나만 살아서 본다는 그 안타까운 마음이 담겨 있었다. 뉴스 화면에 비친 유가족의 편지에는 “봄이 너희들 있는 곳에 있다.”라고 쓰여 있었다.

사람과 기억의 힘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도 힘들게 하는 것도 사람이지만, 당연하게도 사람을 위로하는 것도 힘을 주는 것도 사람뿐이다. 서로의 사정을 깊이 헤아려 알게 모르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 또한 사람의 몫이다. 그런 위로의 뉴스들이 요즘 들어 더 눈에 들어온다.


다른 도시에선 뉴스 한 줄 나오지 않았겠지만 작년 말, 부산, 경남 지역민의 마음은 물론이고 그 회사의 신발이 세 켤레나 있는 필자의 마음 또한 불편하게 했던 뉴스는 향토기업인 트렉스타의 경영이 어렵다는 뉴스였다. 그런데 이 뉴스가 나오자마자 극적인 반전이 일어났다. 부산시와 시민, 경남도와 도민이 트렉스타 살리기에 적극 나섰기 때문이다. 그 결과, 올 들어 내수 매출이 전년 대비 140퍼센트 늘어났고, 온라인 구매실적은 260퍼센트 치솟았다. 그야말로 위기를 딛고 부활한 것이다. 이렇게 부활한 트렉스타는 그 고마움을 바로 표현했다. 산불로 피해를 입은 경남지역 이재민들에게 4천만 원 상당의 등산화를 기부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지자체와 정부가 발 빠르게 준비한 임시주택의 설치 부지를 선선히 내놓은 이의 뉴스도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이재민들의 임시 주택 20개가 들어갈 곳이 없다는 것을 알고 선뜻 자신의 양파밭을 내놓은 경북 의성군 단촌면에 사는 60대 A 씨가 이 뉴스의 주인공이다. 그가 제공한 밭의 규모는 1천983㎡, 약 600평 규모로 노인들의 사랑방 격인 마을회관과의 거리가 불과 20m 밖에 되지 않아 입지로서는 최적이다. 이 밭에는 시가 1천800만 원 정도의 양파가 자라고 있지만, 부지 마련을 위해 그는 그 양파를 모두 뽑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 빈 밭에서 설치되는 임시주택에서 이재민은 최대 2년까지 거주할 수 있는데, 밭의 주인은 그동안 양파 농사를 멈추거나 대체할 밭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 온정 넘치는 뉴스들을 보면서 꽤 오래전 읽었던 법정 스님의 법문을 모아 엮은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집에 아직 있어 동일한 제목의 법문을 찾아 펼쳐보니 스님의 말씀이 나왔다. “<화엄경> 법성계에 ‘일즉일체다즉일(一卽一切多卽一)’이란 말이 있습니다. 하나가 곧 전체이고 전체가 곧 하나라는 가르침입니다. 한 사람은 모두를 위하고, 모두는 한 사람을 위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곧 진정한 깨달음이고 진리의 세계입니다.”


이 문장을 읽은 뒤, 산청의 잔불이 채 정리되지도 않았는데 마라톤 대회를 강행한, 산청의 이웃 도시가 생각났다. 물론 다들 입장과 사정이 있다. 각자가 처한 생계의 곤란이 있다. 일 년에 몇 번 안 되는 축제에 생계가 달린 사람도 있다. 실제로 필자 주변에 있는 이벤트 업체와 행사 촬영 업체들은 줄줄이 취소되는 행사로 인해 큰 타격을 받고 있다. 나라 안팎으로 심난한 뉴스가 연이어지는 요즘, 꽃향기에 시름을 실어 보내고 싶은 마음도 이해 간다. 그래서 그리하여 꽃 축제가 열리고 꽃구경을 다니는 것도 이해 간다. 산뜻한 봄옷을 입고 봄나들이 나서는 것도 당연히 이해한다. 다만 그 와중에라도 기억의 틈과 짬이 있길 바랄 뿐이다.

일상을 유지하는 거리감

사건의 당사자가 아닌 이상 아무리 큰 사건이라도 시간이 경과하면 잊히기 마련이다. 나라를 발칵 뒤집은 뉴스도 시간이 지나면 더 이상 뉴스가 안 되는 것도 사실이다. 동네에서 사람하나 죽는다 한 들 우리는 슬퍼하지 않는다. 이웃 나라의 지진이 수십 층짜리 빌딩을 폭삭 주저앉히는 영상을 보면서도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


관계가 없는 타자와의 정서적 거리와 시간의 경과, 그리고 지리적 멂은 심리적 거리를 만들어 우리를 일상으로 돌아가게 하고 향유하게 한다. 만약 우리가 이 거리감 없이 이웃과 세계인의 모든 고통을 내 고통처럼 느낀다면, 타자의 고통을 내 고통처럼 껴안고 산다면 우리는 단 하루도 맘 편히 살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남 일처럼 여기는 것도, 잊히는 것은 잊히게 놔두며 사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재차 말하지만, 기억할 것은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그저 기억해 주는 것만으로도 그 사건의 당사자에겐 큰 힘이 되기에 일부러라도 기억의 끈을 놓지 않았으면 한다. 물론 쉽지 않다. 4월에서 5월까지 축제와 꽃의 시간이 연이어질 것이다. 대통령 선거에 미디어와 세상이 휘말려 들어갈 것이다. 트럼프가 일으킨 파도에 출렁이는 글로벌 경제 뉴스가 연이어 터질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고 정신을 쏙 빼놓을 것이다.


그러나 잠시, 일부러라도 기억의 시간을 갖자. 현충일이 있는 6월이 오기 전이라도, 새로운 대통령을 맞이하는 그 6월이 오기 전이라도, 지난겨울의 상처를, 여전히 추웠던 이른 봄의 상처를 안고 사는 이들을 기억하자.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 위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법정 스님의 법문을 마음에 되새기며 늦봄을 보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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