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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전의 절망과 희망

최카피의 딴생각(칼럼 181)

by 최영훈

가장 화려한 도서전

그래도 명색이 다양한 형태의 글을 써, 소위 “글밥”을 먹는 사람이라 독서와 책에 대한 부채 의식이 있다. 읽는 만큼 쓸 수 있고 잘 쓰려면 읽어야 한다는 강박이 오래된 한옥의 별채 뒤 그늘에 조용히 똬리를 틀고 있는 구렁이처럼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이유로 가 본적도, 갈 생각도 없으면서 나라 이곳저곳에서 펼쳐지는 책과 관련된 행사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알고리즘의 인도로 관련 뉴스가 자주 뜨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 알고리즘이 6월 초, 서울국제도서전의 매진 뉴스를 전했다.


고백하건대, 집 근처에서 열린 <광안리 해변 도서전> 말고는 유사한 행사를 가본 적 없는 필자가 이런 행사에 관심이 없을 독자에게 그 행사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는 것이 맞나 싶지만 이 민망함을 무릅쓰고 소개를 하자면, 한마디로 한국에서 열리는 도서 관련 행사 중 가장 역사가 오래됐고 규모가 큰 행사다. 주최 측 홈페이지의 내용에 따르면, 1947년 교육박람회에 도서전시를 한 것이 시초라고 한다. 이후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부터 서울도서전이라는 이름으로 꾸준히 열어온 행사는, 1995년, 광복 50주년을 기념하여 국제도서전으로 그 위상이 높아졌다고 한다. 역사만큼 당연히 그 규모도 가장 커서, 올해 행사는 국외 106개사, 국내 429개사 등 17개국 535개 사가 참여했다.


매진 뉴스 뒤에 이어진 생각들

다시 말하지만, 필자가 이 행사에 새삼 주목한 이유는 입장 티켓이 조기 매진 됐다는 뉴스 때문이었다. 얼리 버드라는 말 들어보셨을 것이다. 이런 행사에 참여하고 싶은 관련 기업이나 관객에게 조기 예약을 유도하여 행사의 규모와 성공을 사전에 담보하기 위한 유인책이다. 이 행사 또한 얼리 버드 프로모션을 통해 입장 티켓을 온라인 판매했는데, 15만 장이 순식간에 완판 된 것이다. 이 완판의 뉴스를 본 후, 우선 궁금했던 것이 티겟을 산 사람들이 며칠 밖에 안 되는 행사 기간 안에 다 오는 건가였고, 두 번째는 국민의 독서율은 언제나 처참했고 때문에 새로 생기는 출판사의 그래프를 폐업하는 출판사의 그래프가 앞지르고 있는 상황에서 이 관람객의 숫자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가였다.


필자의 궁금증은 금방 풀렸다. 개막일부터 줄을 선 관객의 행렬이 폐막일까지 이어지면서 티켓 매진의 이유를 증명했기 때문이다. 이 관람객 숫자가 대단한 것이, 매년 2,30만 명이 찾는 부산 벡스코에서 열리는 게임 전시회인 G-Star를 제외하면, 인기 있는 박람회나 전시회라도 하루 관객이 오천 명을 넘기기 힘들고 총관객이 4,5만 명 정도만 되면 그야말로 최고 흥행 반열에 들어가는 행사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런 행사의 흥행은 행사 자체의 상품성과 함께 사회 트렌드와의 조응도 중요하다. 커피가 유행하며 커피 박람회가, 요트나 골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 관련 행사가 흥행을 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하여, 특정 행사가 몇 해는 물론이고 십 년이 넘도록 집객 능력을 유지한다는 건 사회와 소비자의 트렌드의 중심에 그 행사가 다루는 분야가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런 전제 아래 생각을 이어 쌓아 보면, 지금 한국 사회는 독서 열풍이 불어 마땅하며, 관련 업종인 출판사과 인쇄업계는 물론이고 관련 종사자들인 작가와 편집자, 디자이너들의 수입은 높아야만 하고 선망받는 직장이자 미래가 밝은 분야로 인식되어야만 한다. 물론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잠시 떠들썩했던 출판계는 다시 침체의 길로 들어섰고 여전히 성인 열 명 중 여섯 명은 어떤 형태 - 전자책, 오디오 북을 포함한 - 로든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으며 종이로 된 책에 국한하면 일곱 명으로 그 숫자가 늘어난다. 전자책과 오디오북이 독서율 통계에 합산되기 시작한 2013년, 한 권 이상 읽은 국민의 비율이 70퍼센트에 달했던 이 비율이 지난 십여 년 간 지속적으로 하락됐다는 걸 감안하면, 역설적이게도 서울국제도서전의 꾸준한 흥행은 행사계의 특이 케이스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15만 명의 명과 암

그렇다면 이 특이함을 설명할 수 있는 이유를 찾아봐야 할 것 같다. 더 나아가 그 이유에서 출판계의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찾아봐야 할 것 같다. 한 명의 독자로서 말이다. 우선 서울국제도서전 방문객의 90퍼센트 이상이 여성이고 그중에서도 2,30대 여성이 절대다수를 차지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물론 이 여성들이 다 독자는 아니다. 어쩌면 앞서 언급한 통계상에 잡히는, 일 년에 단 한 권도 읽지 않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행사를 찾았다면 분명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사실 어떤 판매 공간이나 상품은 그것 자체로 하나의 분위기와 감성, 차별화된 인식을 줄 수 있다. 현대백화점이 겨울마다 크리스마스 트리에 공을 들이는 것도, 스타벅스가 계절마다, 지역마다 색다른 굿즈를 준비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또, 여행지에서 기념품을 사는 것은 사라져 가는 추억을 붙들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다른 이에게 그 여행 자체를 과시하려는 목적도 있다. 어쩌면 서울국제도서전을 찾는 이유도 이와 비슷할 수 있다.


출판사 입장에서도 굿즈의 판매는 중요하다. 사실, 이 행사에 참여하는 대형 출판사들은 책만 팔아서는 이윤을 남길 수 없다. 부스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독립출판 및 아트북 생산자를 위한 특별 부스인 <책마을>에는 각기 책상 하나와 의자 두 개 놓을 공간이 주어지는데, 그 비용이 66만 원이다. 이마저도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선정되어야 한다. 일반 출판사들의 부스일 경우, 기본 가격이 2백 여 만 원 정도인데, 넓은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여러 부스를 산다면 당연히 그 가격이 올라간다. 더 부담되는 건 인테리어 비용이다. 부스를 찾아온 고객들을 책과 테이블과 의자만으로 맞을 수는 없다. 유명한 출판사일수록 고객맞이가 신경 쓰이게 마련이다. 결국 적게는 천만 원, 많게는 수천만 원의 비용을 들여 공들여 인테리어를 하게 된다.


이렇게 부스에 들인 비용을 회수하기 위해서는 책 보다 비싼 굿즈를 팔아야 한다. 굿즈가 매력적인 상품인 건 그 가격 탄력성 때문이기도 하다. 책 가격은 수요에 상관없이, 만드는 사람과 파는 사람, 사는 사람 모두 동의가 되는 소위 시장 가격이 있다. 그러나 특정 행사를 위한 스페셜 굿즈의 가격은 그와 유사한 제품의 기존 시장가격을 넘어서는 가격이 책정돼도 용납된다. 그러니 수익을 내야 하는 출판사 입장에서도, 또 한 해에 딱 한 번뿐인 대규모 도서전을 둘러봤다는 기분도 내고 자랑도 해야 하는 관람객 입장에서도 언제 어디서나 살 수 있는 책보다는 그보다 더 비싼 굿즈를 사는 것이 당연히 합리적이다. 어쩌면 이 지점이 출판계에겐 절망의 신호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대박은 언젠간 온다.

그러나 아직 희망을 잃기엔 이르다. 프로야구 흥행의 역사에 희망의 단서가 있다. 찾아보니, 한 시즌 야구팬이 5백만이 넘어섰다는 기사가 나온 것이 2008년이었다. 그 기사에서 분석한 흥행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여성 관객의 증가였다. 그 후 십몇 년 후, 2024년, 프로야구 시즌 관객은 천만을 넘어섰다. 이 흥행을 주도한 여성 관객들도 처음 야구장을 찾았을 때는 야구 그 자체보다 응원 분위기와 유니폼, 응원봉과 같은 굿즈에 끌렸을지도 모른다. 야구장 곳곳에서 파는 간식에 더 유혹됐을지도 모른다. 야구 규칙은 물론이고 선수 이름도 몰라 함께 온 남편과 남자 친구에게 질문 공세를 퍼부었을지도 모른다.


2008년, 혹은 그 이전부터, 여성 관중에 주목하여 여성 전용 유니폼과 굿즈를 개발하며 여성 고객 유치와 유지에 공을 들였던 구단 및 구장 관계자들은 십 년이 훌쩍 지난 후 성공의 열매를 수확하고 있다. 이제는 인천 청라 지구에 돔 구장이 새로 지어지고 있고 몇몇 지자체에선 프로야구단을 유치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덕분에 NC 다이노스는 연고지인 창원시의 홀대에 서운함을 표시하며 다른 곳으로 연고지를 이전할 수도 있다는 으름장도 놓을 수 있게 됐다.


그렇다. 두 해 연속 15만 명이 찾았던 서울국제도서전의 인기가 독서인구의 하락 그래프를 끌어올리기 위해선 좀 더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장담하건대 언젠간 프로야구처럼 그 열매를 수확할 시간이 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대형 서점을 유치하는 것이 지자체장의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고 대형 출판사의 본사 이전의 성공은 지자체장의 큰 치적 중 하나가 될지 모른다. 당연하게도 작가는 물론이고 출판 종사자들은 선망의 대상이 될지 모른다. 그때가 올 때까지, 출판인들이여, 굿즈만 많이 파는 이상한 도서전이라는 회의 어린 시선과 그것을 팔면서 어쩔 수 없이 들 수밖에 없었을 “현타”를 꿋꿋이 견뎌내시라. 그 15만 명이 출판 시장의 대박을 불러올 마중물이 될 그날까지.


이코노믹톡 뉴스에 실린 칼럼에 삭제했던 단락을 추가하고 몇 문장은 손을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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