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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비에 젖은 석류 꽃잎에 대해...-이성복

동해선에서 읽은 책 134

by 최영훈
“어디에서 이야기를 시작할까. 책들, 어둔 밤의 먼 불빛처럼 오랜 세월이 지나도 기억 속에 지워지지 않는 책들, 발갛게 달아오르는 화톳불처럼 망각의 한편에 묻혀 있다가 아주 얕은 숨결을 불어넣기만 해도 되살아나는 책들, 혹은 눈의 결정체처럼 육각형의 무늬로 남아 있거나, 초등학교 방학 책의 사슴이 끄는 눈썰매와 종과 브로치 같은 빨간 열매들과....... 그런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아 있는 책들. 그래, 그런 책들이 있었다. 내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있었다.” P.40,「기억 속 책들의 눈빛」 중에서.

<나는 왜 비에 젖은 석류 꽃잎에 대해 아무 말도 못 했는가>

브런치북, <그날의 시로 너를 위로한다. 2>에서 이성복 시인의 시를 다뤘었다. 2003년에 나온 여섯 번째 시집, <아, 입이 없는 것들>들에 실린 시들이었다. 온라인 서점의 책 소개를 보면, 이 시집은 1993년에 나온 다섯 번째 시집 <호랑가시나무의 기억> 이후 십 년 여 만에 나온 것이었다. 이 산문집은 두 시집 사이에 놓인 십 년 여의 세월 동안 시인의 고뇌와 반추와 회환이 담겨 있다.


이 책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회상이 주를 이룬다. 2부와 3부는 저자의 문학론(文學論,) 시론(詩論)이다. 4부는 당시 저자가 공부하고 있던 유교 사상, 특히 공자와 맹자의 생각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 5부는 인물에 대한 추억이 담겨 있는데, 각각 시인 기형도, 소설가 이인성, 문학평론가 김현에 대해 쓰고 있다. 저자에게 기형도는 후배이며, 이인성은 동료이자 친구, 김현은 스승이다.


“지금부터 20여 년 전 나는 거기 있었다. 지금은 돌아가신 선생님들과 직장에서 중견이 된 친구들과 사십 대 아주머니가 된 여학생들과....... 그때 우리가 지금의 우리를 만나면 알아볼까. 그때 우리는 지금의 우리와 같은 사람일까. 같은 사람이 아니라면 그사이 죽음이 있었던가.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우리가 죽어갔던가. 그토록 많은 죽음에 우리는 잠시라도 애도한 적이 있었던가.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삶은 순간순간 새하얀 죽음의 눈밭에 묻혀 가는가. 그때 우리가 지금의 우리를 애도하지 못한다면, 지금이라도 애도해야 할 것인가.(P.51)”「동숭동 시절의 추억」중에서.


반성 - 얼음 같이, 칼날같이

결론부터 말하면, 이렇게까지 자신에 대해 냉정하게 돌아보는 글을 본 기억이 없다. 또 한편으론, 자신의 청춘을 이렇게까지 회한이 가득하게 돌아본 글을 본 기억도 없다. 두 글 모두, 현재 자신에 대한 정직한 평가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기에 쓰기 어려울 것일 테다. 생각해 보면 과거를 돌아보는 글들은 과장 아니면 연민이 담겨 있지 않던가. 보통은 자신의 과거를 화려하게 포장하거나 그렇게 보이는 과거만 세상에 내놓는다. 동정을 바라며 아픈 기억을 꺼내 놓고 그런 기억이 없다면 아프게 포장하여, 하다못해 눈물과 피를 묻혀 세상에 내놓는다.


저자에겐 둘 다 없다. 1990년에 1994년 사이에 내놓은 글이다. 1952년생이니 저 즈음엔 마흔 언저리였다. 학벌도 좋다. 시집도 몇 권 냈고 당시엔 대학에서 교수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의 문학과 시를 돌아보는 그의 시선은 냉정하다 못해 냉혹하다. 90년대 등장한 새로운 시와 시인들에 대한 당혹감도 숨기지 않는다. 그들의 시에 비해 자신의 시는 어떠한지, 여느 평론가 못지않게 비판한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다.


생각해 보면, 많은 이들이 과거의 영광에 젖어 산다. 그의 수상경력을 이 책이 나오기 전까지만 추려보자. 1982년에 제2회 김수영 문학상, 1990년 제4회 소월시문학상을 받았다. 이후의 수상경력은 또 어떤가. 2004년 제12회 대산문학상, 2007년 제53회 현대문학상, 2014년 제11회 이육사시문학상을 받았다. 그의 첫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가 나왔을 때, 문단에 충격을 줬다고 한다. 황지우, 최승자와 함께 한국 현대시에 방향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이 정도면 과거에 취해 살만하지 않나.


그의 이런 돌아봄이 더 서슬 퍼렇게 느껴지는 건 과거에 취해 사는 이들이 워낙에 많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전국 각지의 연극영화과 교수로 있는 이들 중엔 세상에 딱 한 편, 많아야 두 편 정도의 영화를 내놓고도 그 교수 자리를 유지하며 과거의 영광을 되새김질하는 이들이 있으며 필자가 전공한 분야에서도 왕년에 대박 카피 하나 쓴 걸 강의 때마다 두고두고 자랑하는 이들도 있다. 정치, 행정 분야의 교수나 겸임교수들의 청와대 시절, 공공기관장 시절 자랑 질이야 워낙 흔하니 말할 필요도 없다.


그의 반성은 시대의 변화를 몸소 겪으며 그 변화를 따라가고 있는지, 혹은 그 변화에 휘말리지 않을 만큼 나만의 문학세계가 견고한지를 따져보는, 자기 성찰에서 출발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걸어온 길, 현재 자신의 위치, 동시대를 함께 헤쳐 나가는 동료 및 선후배 문인들에 대한 평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문학이라는 신세계에 대한 모색과 두려움이 담담하면서도 냉철하게 이어진다. 다시 말하지만, 이렇게까지 솔직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다.


4부가 의외로 재미있다. 논어와 맹자의 구절로 글을 풀어 가는데, 전개에 무리가 없어 쉽게 읽히고 깊이가 있다. 특히 「차(車)에 관한 단상」은 절묘하다. 마흔이 넘어 운전은 배우고 차를 구매한 시인은 차의 작동법, 운전면허 시험, 운전하는 법, 운전 예절 등에 삶의 지혜를 녹여낸다.


“그가 우리 세대가 만날 수 있는 뛰어난 시인들 가운데 하나이며, 다음 세대가 필연적으로 경유해야 할 이정표 같은 존재임을 깨닫게 된 것은 유감스럽게도 그가 죽은 다음이다.”, P.241. 「맑고 정결한 눈송이」중에서.
“아직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몇 컷의 필름을 조심스럽게 인화하는 일은 그러나 언제까지고 미루어둘 수는 없다.”, P.251. 「크고 넓으신 스승」중에서.


큰 스승, 짙은 아쉬움

인물에 대한 회상 중 시인 기형도와 평론가 김현에 관한 글이 와닿았다. 특히 후자의 글을 읽을 땐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이토록 깊었던 시절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솔직히 부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김현은 1942년생으로 시인보다 열 살 많다. 1990년에 돌아가셨으니 쉰을 다 못 채운, 독자와 학계, 문학계에 두루 아쉬움을 남긴 죽음이었다. 솔직히 난 김현의 글을 읽어본 적이 없으나 주변의 문학도들, 국문과 학생, 국어교육과 학생은 다들 알고 있는 이름이었고 80년대 학번들은 전공을 가리지 않고 인문/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이라면 다들 읽었고 그래야만 했다고 전해 들었다.


그런 이의, 그야말로 직계 제자로, 또 조교로 곁에서 모셨고 스승의 소개로 일자리는 물론이고 문단에 데뷔도 할 수 있었으니 저자의 안타까움은 더할 것이다. 그 마음이 회상과 상을 치르는 날의 교차편집 속에 절절히 표현된다. 저자는 마지막 염을 할 때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스승의 마지막 모습을 끝까지 지켜본다. 그 시선에 스승의 마지막 모습을 사진 찍 듯 기억해 두려는 제자의 결심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앞서 다른 글에도 말했듯이, 난 저자의 글 일부를 중학생 딸에게도 보여줬다. 그만큼 간결한 글이자 쉬운 글이면서도 깊은 글이다. 어려운 단어, 복잡한 문장을 구사하지 않아도 충분히 깊은 마음과 다른 생각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본보기라 할 수 있다.


저자의 책을 신형철이 자신의 책에서 소개하여 찾아 읽었다. 뭐, 신형철이 읽을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 지면을 빌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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