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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라이터의 일 - 오하림

동해선에서 읽은 책 138

by 최영훈

딸이 되려고 하는 직업은 카피라이터와 아무 상관이 없다. 나 또한 전혀 기대하지도, 바라지도 않는다. 아빠의 직업을 자랑스러워하지도 그렇다고 부끄러워하지도 않기만을, 그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꾸역꾸역 20년 넘게 해 온 그 시간의 무게에 대한 약간의 존중만을 기대할 뿐이다.


이런 이유로 이번 주에 대출해 온 이 책은 의외였다. 자기 말로는 글쓰기를 더 잘하고 싶어서 빌려 왔다는데, 카피라이터의 책이 글쓰기에 관한 책일 확률은 백종원이 채식에 관한 책을 내는 것만큼 희박하다. 얇고 가벼우니 들춰봤다.


먼저 고백건대, 난 이 책을 정독하지 않았다. 아침에 내린 커피를 들고 베란다에 앉아 잡지를 읽듯이 파라락 넘겨가며 봤다. 당연하게도 십 년 차가 조금 넘은, 그 유명한 무신사와 29cm의 카피라이터로 일한 젊은 카피라이터는 자신의 책에 후배들을 위해 여러 노하우를 잘 담았다.


특히 마지막 3부는, 이 직업을 꿈꾸는 이들이 한 번쯤 읽어 봤으면 한다. 일의 입문부터 권태기, 버티기, 매너리즘, 심리적 문제, 동기 부여를 하는 방법들이 담겨 있다. 다른 부분보다는 오히려 이 부분이 내겐 더 실질적으로 다가왔다.


참고로, 이 일과 관련하여 책 몇 권을 추천하라면 다음과 같다. 이 중 일부, 어쩌면 대부분은 절판됐을지도 모르겠다. 우선은 마케팅과 경제학 관련 책을 읽어봤으면 한다. 이런 책들은 보통 입문 전이나 학창 시절 읽고 공부하는 것이 대부분인데, 켈로그 경영대학원의 교재를 번역한 <마케팅 바이블> 같은 고전적이면서도 교과서적인 책은 물론이고 그 유명한 <포지셔닝>, <디퍼런트>, 그리고 지금은 없지만 세스 고딘과 케빈 로버츠의 책도 자주 들춰봤다. 요즘은 더 좋은 책들이 많이 나왔을 것이다.


카피 쓰기의 고전으로는 미국의 유명한 카피라이터들의 인터뷰가 실린 <광고 글쓰기의 아트>, 고전인 헬 스테빈스의 <카피 캡슐>, 노무현 대통령의 광고를 담당했던 송치복 씨의 <생각의 축지법>, 일본 광고회사 덴츠의 카피라이터들이 사보에 기고한 칼럼을 모아놓은 <카피 100>, <워딩 100>, 카피라이팅 교과서들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우에조 노리오의 <카피 교실>등이 있다.


이 외에도 카피라이터의 일이나 글쓰기, 또는 아이디어와 관련해서 자주 들춰봤던 책으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잡문집>, <소울메이트>, 요즘엔 필요 없어졌지만 관련 콘텐츠가 찾기 힘들었던 시절엔 이 일의 백과사전 역할을 했던 장수연의 <카피라이터가 되씹는 카피들>이 있다. 최근엔 덴츠의 카피라이터인 다나카 히로노부의 <글 잘 쓰는 법, 그딴 건 없지만>을 재미있게 읽었고, 글쓰기와 단어의 선택에 관해서는 <동사의 맛>의 저자인 김정선의 책과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어감 사전>과 <우리말 어휘력 사전>이 있다.


이 외에도 서동욱과 신형철의 글은 읽을 때마다 많은 영감을 주는데, 특히 신형철의 글은 다른 훌륭한 문학작품, 특히 시에 대한 글이 많다 보니 더 도움이 된다. 당연한 말이지만 좋은 글을 읽어야 자신의 글의 처지를 알게 된다. 그 글과 내 글의 간극을 단박에 좁힐 방법은 없고 설령 그 방법이 있더라도 좁혀지기 어렵지만 최소한 자기 글에 대한 냉정함은 가질 수 있다. 덧붙이자면, 요즘 서점엔 정철, 김민철, 유병욱 같은 카피라이터들의 책들이 많이 나와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들춰 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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