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에서 건진 생각 77
이번 달, 중급반에서 한 사내가 고급반으로 올라왔다. 꾸준히 나오는 이라 라커룸과 샤워장에서 자주 마주치는 남자다. 하얀 피부, 작은 키에 통통한 체형, 금목걸이와 금팔찌, 적당히 나이 든 얼굴. 사십 대 중반쯤 되지 않았을까. 내가 그를 기억에 담아두는 건 그의 외모 때문만은 아니다. 각 반의 운동 템포와 양이 다르기에 우리가 잠시 쉴 때 딴 반은 운동 중인 경우가 있다. 우리가 쉴 때 다른 레인의 운동을 종종 보곤 하는데, 그 남자는 세트 중 한 바퀴나 반 바퀴를 쉬는 경우가 많았다. 대체로 우리 수영장의 모든 반의 앞쪽 순번은 남자 회원이 맞는다는 걸 감안하면 그는 특이하게도 뒤쪽에서 운동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우리 반에 올라온 것이다.
난 그를 6월 둘째 주, 월요일에 처음 봤다. 그는 자신 있어 보였다. 웜 업이 시작됐다. 자유형 250. 그는 두 바퀴에 접어들자 레인 끝에서 휴식을 취했다. 그 뒤로 이어진 여러 세트에서도 한 바퀴나 반 바퀴를 쉬었다. 그의 위치는 맨 끝이었다. 속도와 거리, 모든 면에서 수월한 위치다. 그러나 그는 힘들어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가 들어오는 타임이 점점 늦어져서 앞 번의 사람들이 대기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1번과 2번의 얼굴을 힐끗 봤다. 난감해하는 표정이 순간 스쳤다. 그는 무슨 생각으로 이리 넘어온 걸까? 힘들어하는 그를 보며, 그리고 최근 우연히 접한 사건을 들여다보며 월경(越境)과 주제, 이 두 개에 대해 생각을 했다.
우선, 월경은 선을 넘는 행위다. 직역하면 경계의 이쪽에서 저쪽으로, 국경의 이 편에서 저 편으로 넘어가는 행위다. 그 경계가 지리적일 때는 양쪽, 즉 있던 쪽과 갈 쪽의 허가가 필요한 행위이고 그 경계가 직업, 직종, 직무, 취미, 심지어 학문과 같은 전문 영역을 의미할 때는 이쪽의 경험을 뒤로하고 저쪽의 지식을 새로 배워야만 가능한 행위다. 그 경계가 시간과 시대의 영역일 때는 현재 있는 사람은 과거를 배워야만 가능하고 오래 산 사람은 시대의 언어를 배워야만 가능한 행위다. 결국, 어떤 형태의 월경이든 준비 안 된 그것은 실패하거나 무리가 되며, 자칫 잘못하면 과거의 것, 기존의 태도, 선험 되어 있는 무엇으로 현재와 미래의 것을 판단하고 지적하는 일종의 월권(越權), 주제넘은 짓이 될 수 있다.
주제라는 말이 나온 김에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주제 또한 앞서 월경처럼 여러 의미가 있다. 우선 텍스트를 함축하는 하나의 메시지를 주제라 부른다. 글이든 영상이든, 말이든 그림이든 그 안에 담긴 창작자의 메시지, 정신, 그 정수(精髓)이자 핵심을 주제라 부른다. 이것을 사람에게 적용하면 한 사람이 세상에 보여주는 잡다한 모습이 아닌 그가 살아온 인생, 경험, 경력, 지식과 지혜 등이 한데 어우러져 형성 된 내면의 단단한 심지를 그리 부를 수도 있다. 또, 가볍게는 그저 그가 사회나 직장, 조직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와 그에 따른 그의 능력과 실력 등이 미치는 범위 등을 주제라 부를 수 있다. 하여, 어떤 이에게 주제파악을 하라고 말하는 것은 한 사람의 주제넘은 짓에 대한, 상당히 준엄한 경고라 할 수 있다.
2월 말, 수영에 관한 짧은 글을 스레드에 올렸다. 별 내용은 없었고, 그저 "수영을 좀 더 잘하고 싶으면 근처 다이소에서 탄력밴드라도 사서 팔 운동을 좀 꾸준히 해보시라. 그러면 스트로크에 힘이 붙는 것이 느껴질 것이다.", 그런 내용이었다. 그런데 얼마 후, 한 사람이 내 글을 퍼간 뒤 그 아래 자신의 의견을 덧붙였다. 상체도 중요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하체다. 그러니 킥 연습을 정말 열심히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런 의견의 엇갈림이야 수영 동호인들 사이에선 흔한 일이니 그러려니 했다. 온라인상에서 유명한 수영 강사나 수영 관련 콘텐츠 생산자들은 속된 말로 스트로크 파와 킥 파로 나눠지고 그들의 추종자들에 따라 한 수영장 안에서도 그 파가 나눠지기 때문이다.
누가 이런 주장을 했나 궁금해 그 사람 스레드로 가봤더니 전직 수영 선수 출신인 조희연 씨였다. 그녀는 최근, 속칭 “뻥빡교 교주”라고 불리며 킥의 중요성을 설파하여 많은 추종자들을 이끌고 있었다. 조금 더 찾아보니 98년 아시안게임에서, 중3의 나이로 금메달을 딴 후 선수 생활을 이어가다, 그 이후 나름 험난한 인생 경험을 했고 인생의 막장에서 일어나, 다시 수영장으로 돌아와 자신과 미래를 찾은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인정해 줘야지, 하고 생각했다. 선수 출신일 뿐만 아니라 나름 인생의 파도를 헤쳐 온 사십 대라면 나와 반대되는 주장을 하더라도 살짝 긍정의 끄덕임 정도는 해줘야 되지 않겠나. 그것이 또 각자의 인생에 대한 예의일 테고 말이다. 게다가 그녀는 내게 허락 없이 리포스트 했다고 사과의 댓글을 달았고, 난 거기에 괜찮다, 누구나 나름의 철학과 교리가 필요하다는 말로 답을 달았었다.
그런 그녀가 뉴스의 인물로 떠올랐다. 5.18과 관련하여 자신의 주장을 거침없이 피력했던 것이 화근이 되어 일파만파 사건화 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스레드에 “제가 맨 날 하고 다니는 말. 5.18은 폭동이다! 반항정신으로 똘똘 뭉친 폭동! 데 무슨 헌법에 5.18 정신을 넣겠다느니 어쩌느니... 한숨만 나옴...”이라는 글을 썼다. 사건 초기, 그녀의 주장에 주의를 요하는 이들에게 그녀는 표현의 자유를 운운하며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았는데, 때문에 일이 더 커졌다. 관련법을 어겼다고 판단한 시민에 의해 고발을 당했기 때문이다. 이후 그녀는 온라인을 통해 사과를 했는데, 그 이후로는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전해진 바가 없다.
재미있다면 재미있는 것이, 그녀가 이렇게 뉴스의 중심이 선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략 십여 년 전, 박태환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면서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었다. 2014년 9월, 당시 박태환 선수는 세계반도핑기구(WADA) 검사에서 금지약물인 테스토스테론이 검출되는 바람에 국제수영연맹(FINA)으로부터 2016년 3월 2일까지 선수자격정지 징계를 받았었다. 세계반도핑기구(WADA)가 보낸 징계 내용에는 “규정 위반자가 속한 국가의 경기단체는 해당 선수에게 체육에 대한 재정지원 등 혜택의 제공을 중단할 수 있다.”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결국 이 문장을 근거로 대한수영연맹은 박태환 선수에게 공공시설물을 사용할 수 없다는 공문을 보냈는데, 문제는 당시 50m 레인 수영장의 전부가 공공 시설물이었다는 것. 결국 이 시기 박태환 선수는 25m 사설 수영장이나 다른 나라에서 훈련을 할 수밖에 없게 됐고, 그 어려움을 언론을 통해 호소했었다.
이 뉴스를 본 조희연 씨가 “나는 쥐가 나오는 25m 규격 지하 수영장에서 운동하면서, 비닐하우스로 비를 막은 국군체육부대(상무) 수영장에서 한 레인에 30명씩 들어가 훈련하면서도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다. 수영장이 없어서 훈련을 못 한다고? 말이야 막걸리야. 대중교통으로 새벽 및 오후 운동을 왔다 갔다 하느라 중간에 쉬는 시간도 얼마 없는 선수들이 정말 많다. 박태환은 자가용도 몇 대나 있으면서…. 복에 겨웠다. 복에…”라는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려 박태환 선수를 비난했었다.
두 개의 뉴스를 살펴본 후, 그녀의 경력을 다시 봤다. 1998년 이후, 이렇다 할 선수로서의 국제 대회 수상 경력이 없다. 중3 때 이후로 말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십 대 시절에 얻은 영광의 기억을 품은 채 이십 대와 삼십 대를 살았고 사십대로 접어들었다는 말이 된다. 1983년생이니, 박태환 선수를 비판했을 때는 삼십 대 초반이었다. 그 나이를 감안하면 참 꼰대 같은 비판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 또래의 남자가 “라떼”를 운운하여 꼰대 소리를 듣는 것도 한심한데, 하물며 삼십 대 여자가 그런 소리를 듣는 건 더 한심하지 않나.
게다가 삼십 대의 선배가 자신이 운동할 때의 환경과 크게 달라진 게 없는 운동 여건을 안타까워하지 않고 후배의 상황에 대해 아쉬운 마음을 표현하지도 않았다는 건 더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더 솔직히 말하면, 단적으로, 두 사람의 경력과 이력을 비교하면 저런 비판은 아무리 선배여도 주제넘은 짓이다. 그리고 그 주제넘은 짓이 정치와 이념의 영역까지 들어와 벌어진 일이 이번 5.18 논쟁이다.
같은 수영장이지만 초급반 레인과 중급반 레인 사이의 심리적, 실력적 거리와 벽은 높고 멀다. 중급반에서 고급반도 마찬가지다. 그 거리와 벽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뛰어넘을 만한 힘과 실력이 있어야 한다. 힘과 실력을 쌓기 위해서는 우선은 주제 파악을 해야 한다. 그 주제를 파악한 후 수련한 후에야 레인 하나를 넘을 수 있는 월경을 할 수 있고 월경 이후, 그 레인에서의 수영이 가능해진다. 하물며 같은 수영을 하면서 상위 레벨로 이동하기 위해서도 이러한 자기 판단이 필요한데 다른 영역로의 월경은 오죽할까.
앞서 정의한 월경과 주제의 정의를 상기해 보자. 내가 모르는 영역으로 넘어가기 위해선 자격과 능력이 필요하다. 더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열대 지방에 살아온 경험이 한대지방에서의 삶에 대한 자신감이 될 수는 없다. 홍범도 장군에 대한 국방부 브리핑에서 국방부 대변인을 혼낸 기자의 말처럼 역사와 이념 논쟁은 치열하고 섬세하게 해야 한다. 최소한 그 논쟁에 숟가락이라도 얹으려면, 평생 수영을 한 사람이 근대사의 비극적인 사건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한 뒤 그 논쟁에 참여하기 위해선 제법 길고 깊은 역사공부가 선행되어야 한다. 자기가 살면서 본 대통령을 순서대로 말하는 것 정도로는, 어느 집회에서 주워들은 선동적인 말만으로 그 논쟁에 끼어들 수는 없다.
이 당연하고도 자명한 사실을 평생 수영을 한 사람이 그 수영장과 그 안에서 벌어진 치열한 경쟁 속에서 얻은 교훈은 자신의 삶 전반에 적용하지 못했다는 사실아, 한 사람의 수영 동호인으로서 안타깝다. 어쩌면 그런 교훈을 얻기 전에 은퇴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번 일이 이제 막 사십 대에 접어든 그녀에게 타자의 세상, 미지의 영역에 대한 깊은 이해와 배움의 경험이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