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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자 있는 인생

그래서 나는 오늘도 수영장에 간다.

by 최영훈

1번의 치명적 단점

앞선 글에도 말했지만 우리 반의 1번은 오리발로 수영하는 수요일, 핀 데이엔 좀 뒤에 선다. 그 스스로, 자신의 발차기에 문제가 있어 1번을 설만큼 속도가 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수요일엔 나와 젊은 아빠 회원, 넉살 좋은 부산 사나이가 번갈아 1번을 맡는다. 우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뒤에 서는 1번에게 핀을 좋을 걸로 바꾸면 달라질 거라 얘기하는데, 그는 그렇게 바꿔도 잘해야 3, 4번이 적당할 거라고 주장한다. “킥을 바꿔야 하는데 안 바뀌어.”라는 멘트를 꼭 덧붙이면서.


그의 말이 맞다. 중급반, 혹은 교정반에서 바꾸지 못한 잘 못 된 자세, 버리지 못한 나쁜 버릇을 고급반, 혹은 마스터반에서 바꾸거나 버리는 건 어렵다. 솔직히 불가능에 가깝다. 그가 인정하듯, 요령이 생기면 스트로크를 중심으로, 킥은 그저 거들기만 하면서도 자유형을, 심지어 다른 사람보다 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킥이 주 동력이 되는 핀 수영에선 그게 안 통한다. 그도 알고 나도 알고 모두 안다.


이번 주에도 그가 그런 너스레를 떨기에 내가 그랬다. “아유. 다 뭐, 하자가 있지. 하자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맞다. 맞아.”하고 그가 맞장구를 쳤다. 내가 뒤이어 말했다. “마, 하자 없으면 우리가 선수했지.”, 그러자 웃으며 화답했다. “맞다. 맞아.”, 샤워실에 있던 남자들도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하자를 안고 사는 삶

사실, 다 하자가 있다. 하자(瑕疵)의 하는 매끄러운 옥에 있는 티끌과 흠을, 자는 병석에 누울만한 몸의 흠과 결점, 더 나아가 질병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우린 다, 다시 말하지만 하자가 있다. 흠과 결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던가.


흠과 결은 타고난 것과 살면서 얻어지는 것이 있다. 타고난 것은 주로 신체적인 것이어서 바꾸기 어렵다. 물론 의학을 비롯한 여러 기술로 슬쩍 바꾸고 고치기도 하나 대부분은 그냥 산다. 그냥 사는 이유는 의외로 단순한데 그 흠과 결이 사는 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흠과 결이 직업과 인간관계와 같은 내 삶을 구성하는 것들에 장애로 작동하지 않을 때, 우린 그 흠과 결을 인식할 수 없다.


신체적인 것도 마찬가지다. 특정 운동을 하기 전까지, 내 신체의, 내 운동신경의 장단점을 파악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내 아내는 꽤 오랫동안 자신이 달리기도 잘하고 순발력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20대 중반, 스쿼시를 배우면서 자신의 순발력이 평균 이하라는 걸 알았다고 한다.


실제로 마라톤을 해보면 걷고 뛸 때의 잘못된 버릇과 그 버릇을 유발하고 종국에 그 버릇을 몸에 박이게 한 발의 모양과 하체 관절 및 척추의 흠과 결을 알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처음 마라톤을 시작할 때 발에 맞는 신발을 찾는 것이 중요하고 훈련을 시작할 때 체형과 몸의 상태에 맞는 주법을 제대로 익히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다른 운동도 마찬가지다. 해 봐야 내 몸의 어느 근육이 약한지 알고 어느 부분의 유연성이 떨어지는지 알게 된다.


수영이 폭로한 하자

수영도 그런 운동 중 하나다. 수영의 가르침은 우선 나도 모르고 있던 물 공포증과 자신의 형편없는 심폐지구력을 사무치게 깨닫게 해주는 걸로 시작한다. 자유형과 배영을 배울 때는 내 왼쪽과 오른쪽의 힘의 균형이 이렇게까지 다른 지, 할 때마다 비스듬히, 혹은 기우뚱하게 가는 걸로 가르쳐 준다. 평영을 배울 때는 내 골반과 발목의 뻣뻣함, 그리고 몸을 들어 올리지 못하는 부실한 허리힘을 철저하게 알게 해 준다. 접영? 하~ 말이 필요한가? 내 손과 발이 이렇게까지 서로 비협조적인지, 정수리에서 발끝까지 한 흐름으로 움직이는 것이 이렇게까지 불가능한 것인지, 강사가 보여주는 웨이브는 왜 내게 불가능한 댄서의 동작처럼 보이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네 가지 영법을 다 할 수 있게 되어도 하자 있는 몸뚱이는 계속 수영의 발목을 잡는다. 이것만 되면 완벽한데, 저것만 되면 좀 수월할 텐데 하는 생각은 하지만 고치는 게, 맘처럼 되지 않는다. 완벽을 향해 애는 쓰나 완벽은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다. 아마도 이렇게 될 듯, 될 듯하기에 나와 우리 반의 동료들이 그렇게 매일 수영장에 나오는 것 일 테다. 내일은 좀 나아지겠지 하는 소망을 갖고 말이다.

결국, 매일 배신을 당하면서도, 속을 걸 알면서도 약속을 하는 것이다. 반복하여 기대를 걸고 실망하길 반복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인생의 본질 중 하나이지 않을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나에게 기대를 걸지 않으면 누가 나에게 기대를 걸겠나. 나를 일으켜 세우는 것은, 우선은 자신인 것이다. 매일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하자 있는 폼으로 수영을 하는 것도 나지만 그것을 조금씩 개선하여 더 나아진 자신을 만날 수 있게 하는 것도 결국 자기 자신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수영장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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