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시작2. 문해력 이전에 청해력

아빠 품에서 시작하는 문해력 수업 03

by 최영훈

읽기, 쓰기, 듣기, 말하기

영어 학원에서 상담을 받아본 부모라면 알겠지만 어떤 영어 학원이든 읽고 쓰기, 듣고 말하기를 강조합니다. 심지어 수능 영어에서도 듣기 평가가 있으니까요. 이를 위해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있고 “원어민” 선생님도 있다고 강조하죠. 이 네 가지가 두루 되어야 모국어는 물론이고 외국어도 유창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저 같은 사람은 반쪽짜리입니다. 대학원에서 원서를 읽으며 광고와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했던 저는 읽기와 듣기는 잘 하지만 쓰기와 말하기는 그저 그렇죠. 대화를 할 일이 거의 없고 영어를 쓰는 사람들 속에 있어본 적도 없으니까요. 그래서 원어민 선생님과의 수업이 중요한 것이고, 그런 선생님이 있는 영어 유치원과 학원에 보내기 위해 부모들이 애를 쓰는 것이겠죠.


이 중 말하기, 특히 모국어의 경우엔 흉내로부터 시작합니다. 나를 둘러싼 어른들의 대화를 듣고, 또 어른들의 발음을 따라 하면서 “말”로서의 모국어를 습득하는 것이죠. 이런 이유로 형제가 있는 애들이 말이 빨리 늘고 누나가 있는 남자아이들이 말을 잘한다는 속설이 진리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이 진리를 뒤집어 말하면 대화를 많이 하는 가정, 약간 수다스러운 식구가 있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가 말을 빨리, 잘한다는 얘기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 온 집안이 침묵에 싸여 있다면 아이는 어쩌면 말을 늦게 배우거나 심지어 못할지도 모릅니다. 또 만약, 온 집안에 고함과 욕설과 비난이 난무하는, 싸움판인 가정이라면 아이의 언어 또한 그렇게 형성되겠죠. 그 반대로 어른들의 대화가 자주 있고 긴 데다가, 주제도 풍성하면 아이의 언어 또한 그렇게 되겠죠.

말 전에 있는 것

그런데 여기, 이 지점에서 우리가 종종 놓치고 가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듣기죠. 아이는 우리의 대화를 들을 줄 알기 때문에 그것을 자신의 언어로 만듭니다. 잘 들을 줄 아는 아이가 결국엔 말도 잘하는 것이고, 말을 잘하는 아이는 결국 잘 듣는 아이죠. 대화의 기본 중에 기본입니다. 이 듣는 능력을 청해력, 우리가 흔히 쓰는 말로는 말귀라고 합니다. 말귀에는 사전적으로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말이 뜻하는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남이 하는 말의 뜻을 알아듣는 총기, 총명함, 슬기를 뜻합니다. 그러니까 말귀는 말의 내용이자, 그 말을 들어 내용을 알아 “먹는” 능력인 것입니다.

이게 왜 중요할까요? 전해 들은 정보를 집에 정확히 전달하는 것은 아이의 두뇌 발달에 상당히 중요합니다. 또 학교생활에서도 중요하죠. 그래서 은채가 다녔던 어린이집에서는 5세 반부터 언어전달이라는 걸 했습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하루에 있었던 수업 내용이나 사건 중에서 중요한 내용을 문장으로 만들어 집에 가서 엄마나 아빠에게 얘기해 주면 됩니다. 5세 반 때는 비교적 단문이었습니다. 주어와 서술어 밖에 없었죠. 예를 들면 “친구는 소중합니다.”와 같은 문장이죠.


이러다 6세 반 때부터는 목적어가 추가 됐습니다. “우리의 물건을 아껴 씁니다.”처럼 말이죠. 7세 반부터는 목적어나 동사, 서술어를 꾸미는 부사, 형용사가 붙었습니다. “우리의 소중한 자연을 보호합니다.”와 같이 말이죠. 막상 어린이집을 다닐 때는 이것이 어떤 학습 목적이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초등학교에 다녀보니 은채가 기억하고 전달해야 하는 정보의 양은 상당했습니다. 수업의 분량뿐만 아니라 선생님이 당부하신 말씀, 정해주신 규칙, 준비물 등이 있었죠.


초1 담임 선생님의 의도

은채가 초등학교 입학 후, 첫 번째 체험 학습을 갔을 때, 선생님이 아이들의 듣는 능력을 높여주기 위해서 얼마나 신경 쓰시는지 새삼 알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 써 놓은 글을 보니 그 해 4월엔 비가 잦았던 모양입니다. 은채가 당일의 날씨를 물었더군요. 선생님은 날씨까지 염두에 두고 아이들에게 구두로 준비물과 옷차림을 지시했습니다. 물론 학교 앱을 통해 알림장이 왔지만 선생님은 꼭 부모님께 전달하고 연습하라고 신신당부를 하셨습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준비물도 아주 구체적이었습니다. 일단 비닐봉지 세 개를 가져오라고 했는데 하나는 만에 하나 멀미를 할 경우 구토에 대비한 것, 하나는 밥 먹고 발생하는 쓰레기를 수거해 오는 용도, 마지막 하나는 가져가는 우산을 사용할 경우 우산에 남아 있는 빗물이 가방을 적시지 않게 하는 용도였습니다. 선생님의 구체적 지시는 또 있었습니다. 돗자리는 꼭 1인용이어야 했습니다. 이 돗자리를 네 명이 붙여 앉아 밥을 먹는다고 했습니다.


돗자리를 접었다 폈다 하는 것도 혼자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접었다 폈다 하는 걸 집에서 다섯 번 이상 연습하라고 했답니다. 은채는 실제로 집에 있는 몇 개의 1인용 돗자리 중에서 하나를 고른 후 그것을 폈다 접었다 하는 것을 몇 번 연습했습니다. 또 혹시 올지 모르는 비를 대비해서 접는 우산도 가져오라고 했는데 그것도 폈다 접었다 하는 것을 연습했죠.


선생님은 옷차림도 구체적으로 말해주셨죠. 밝은 색의 활동하기 좋은 옷으로 입고 오라고 말이죠. 아이들이 눈에 띄는 색을 입어야 다른 학교 아이들과 섞여도 찾기 쉽다고 그 이유까지 설명해 주셨다고 합니다. 물론 밝게 입어야 사진도 잘 나오지만 말입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준비물과 그것의 구체적 목적과 용도를 정확하게 이야기해 주셔서 아이들이 집에 가서 각 준비물에 대해 세세한 설명을 스스로 할 수 있길 바라셨습니다. 아이 스스로 정보를 기억하고, 전달해서 부모와 함께 준비하는 경험을 통해 듣는 능력의 향상과 그 능력을 위한 집중력 향상도 도모하신 것이죠.


학습의 기본 능력

듣는 능력은 대화와 학습의 기본 능력입니다. 학교에서의 수업 시간에도 선생님의 말을 듣고 이해하는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죠. 이 잘 듣는 능력 향상에는 평소의 대화에서 사용되는 어휘의 수준, 주제의 다양성이 큰 영향을 미칩니다. 당연히 집에서 얼마나 좋은 대화를 들었는지가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죠. 부모가 얼마나 많은 단어와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하는지, 그 과정에서 서로의 말을 경청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죠. 결국 대화가 많은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당연히 말을 잘할 뿐만 아니라 잘 듣는 아이가 됩니다. 잘 듣기 때문에 상대방과 대화도 잘하는 것이죠.


앞서 말한, 우리가 흔히 아는 속설이 하나 있죠. 누나 있는 집 사내아이가 말을 잘하고 여자 아이들이랑 잘 지낸다는 거요. 경험상, 사실입니다. 은채랑 친하게 지낸 남자아이들은 언제나 누나가 있는 애들이었습니다. 어린이집에서 단짝 친구였던 승유는 은채랑 대화하면 가슴이 뻥 뚫린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은채랑 대화하는 걸 좋아했고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친구로 지내는 온유는 은채랑 책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하는 친구죠. 아, 그리고 은채랑 대화하는 걸 좋아하는 외삼촌도 누나가 두 명이고 외할아버지는 여동생이 세 명이나 있네요. 역시 대화 많은 집 남자들이, 설령 경상도 남자라 하더라도 상대방의 말을, 특히 여자의 말을 듣는 훈련이 잘 되어 있나 봅니다.


문해력 이전에 청해력입니다. 가정에서 많이 대화하세요. 대화가 많아지는 비결, 다양한 주제로 대화가 끊이지 않는 가정을 만드는 저만의 비법은 다음 화에서 연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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