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품에서 시작하는 문해력 수업 04
초등학교 입학 후, 친구네 집의 사정을 알아가면서 은채는 종종 놀라곤 했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당연한 일이어서 친구들이 오히려 우리 집을 이상하게 보는 것들이었죠.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저녁 식사였습니다. 우선 식사 시간이었습니다. 은채가 중학생이 되어서 학원을 마치는 시간이 늦어지기 전까지, 우리 집의 저녁 식사 시간은 늘 여섯 시에서 여섯 반 사이였습니다. 아내의 퇴근 시간이 다섯 시인 데다가 제가 일주일에 한두 번 출근하는 형태로 카피라이터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죠. 또 하나는 야식을 먹지 않는다는 것도 친구들은 놀라워했습니다. 열 시 반, 늦어도 열한 시면 잠에 드니 당연히 야식을 먹을 시간이 없죠. 때문에 친구들 집에서는 야식이 흔한 일이라는 걸 알고 오히려 은채가 더 놀랐죠.
그러나 친구들이 이보다 더 놀란 건 저녁 식사 시간 동안 TV는 물론이고 스마트 폰도 보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딸 역시, 다른 친구네 집에선 저녁 식사 때 TV를 보거나 스마트 폰을 본다는 사실을 가장 놀라워했습니다. 여기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제가 본격적으로 스마트 폰을 사용한 건 십 년도 안 됐습니다. 그전에도 스마트 폰을 만지작거리긴 했지만 카카오 톡 같은 메신저를 사용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아내가 쓰던 스마트 폰을 사용했을 뿐, 제 이름으로, 제 번호로 개통을 한 건 은채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쯤이었죠. 당연히 그때부터 SNS를 하기 시작했고 유튜브도 보기 시작했으며 브런치 스토리도 그때쯤 시작했죠. 아마 은채의 초등학교 생활을 돕는 데 있어서 스마트 폰의 비중이 크지 않았다면 그 사용이 좀 더 뒤로 미뤄졌을지도 모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은채가 태어난 후 집에서든 식당에서든 식사를 할 때 단 한 번도 스마트 폰을 보여준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식당에서 어른들이 편하게 밥을 먹기 위해 아이들에게 스마트 폰이나 태블릿 PC로 만화 영화를 보여주는 경우는 흔하게 있습니다. 당연하게 여길 정도죠. 저는 부산의 관광지이자 번화가 중 하나인 대연동이라는 곳에 사는 데, 이곳엔 다양한 식당이 몰려 있을 뿐만 아니라 지난 십여 년 동안 신규 아파트 단지가 속속 들어서서 다양한 연령대의 부부들이 살고 있습니다. 덕분에 미취학 아동, 영ㆍ유아 자녀에게 만화를 틀어주고 식사를 하는 장면을 아주 쉽게 접하죠. 그러나 우린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습니다.
은채는 어느 식당에 가든 자기 몫의 음식만 있으면 그 음식에 집중했습니다. 집에서 챙겨간 유아용 부스터 의자에 앉아 그 위에 놓인 음식을 천천히 먹었죠. 우리는 번갈아가면서 은채한테 밥을 먹였고 어떻게 먹는 건지 가르쳐주고 어떤 게 맛있는지 물었습니다. 사실 은채를 데리고 외식을 한 것도 두 돌 이후였을 겁니다. 그전까지는 집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이때도 식사를 하는 동안 TV는 물론이고 스마트 폰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좀 큰 후에는 보던 것을 멈추는 것에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저녁 시간, EBS에서 해 주는 프로그램들이 많았으니까요. 그러나 저녁 식사 시간만큼은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보던 프로그램의 종료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면, 차라리 그걸 다 보고 저녁을 먹었으면 먹었지 보면서 먹지는 않았습니다. 조금 더 커서 관심사가 다양해지자 보고 싶은 콘텐츠도, 미디어의 종류도 많아졌지만 규칙은 지켰습니다. 오히려 재방송도 많이 하고 유튜브로도 볼 수 있는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라면 더 미련 없이 끄고 식사를 할 수 있었죠. 그럼 왜, 저녁 식사 시간에 아무것도 보지 않는 것이 중요할까요?
대부분의 가정에선 식구들이 아침에 나가면 저녁이 돼서야 얼굴을 마주합니다. 아빠와 엄마의 퇴근 시간이 늦거나 근무 형태가 남다른 직장일 경우라면 이것도 쉽지 않습니다. 아이가 커서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어 학교와 학원을 다니다 보면 더 어려워지죠. 온 가족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짧으면 삼십 분, 길면 한 시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시간, 그런 기회를 일부러 마련하는 것은 절대로 쉽지 않습니다. 우리 부부는 그걸 알고 있었습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저녁 한 끼 같이 먹기 힘들 그날이 오기 전까지 저녁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기로 했죠.
그런데 이 때문에 은채만의 다른 장점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이야기꾼의 탄생, 수다쟁이의 탄생인 거죠. 한 직장을 삼십 년 넘게 다니고 있는 아내지만 직책과 직종의 특성상 매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납니다. 게다가 직장이 종합병원이다 보니 병원 밖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이런저런 일들이 매일 발생하죠. 아내는 그런 이야기를 저에게 들려줍니다. 저는 주로 걸어 다니기 때문에 동네에 새로 생긴 가게나 폐업한 가게, 집 앞에 있는 박물관에서 새로 마련한 기획전시, 수영장에서 있었던 일을 주로 이야기하고, 가끔 일 때문에 만난 특이한 고객과 조선소나 공장, 관청 같은 특별한 장소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은채도 할 이야기가 많습니다. 학교에 들어간 후부터는 더 많아졌죠. 배운 것도 많고 만나게 된 친구들도 많아졌으며 선생님들 또한 많아졌으니까요.
저녁 식사 자리에서의 대화는 왜 중요할까요? 문해력은 당연하게도 독해(讀解)로부터 출발합니다. 독해는 앞에 놓인 텍스트의 수용으로 출발하고, 수용은 텍스트에 대한 일정 시간의 집중력에 기반합니다. 즉 앞에 놓인 텍스트에 집중을 못하면 독해는 실패하고 독해가 실패하면 당연히 문해력이 생길 수 없죠. 관련 전문가들이 속독을 말리는 이유입니다. 텍스트는 단순히 글만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접하는 모든 정보는 해석을 요구하는 텍스트죠. 그렇다면 우리가 인생에서 가장 많이 접하는 텍스트는 뭘까요? 바로 사람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족이죠. 우리는 가족의 기분을 “살피고”, 눈치를 “보고”, 잔소리를 “듣고”, 속마음을 “알아채” 줍니다. 이런 해석은 어린 시절부터, 영유아기 시절부터 시작되죠. 저녁 식사 시간의 수다는 바로 이 독해 능력이 향상되는 첫 번째 교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화에 필요한 두 번째 능력은 기억과 기억의 언어적 전환입니다. 언어적 전환은 일종의 자기 텍스트화이죠. 친구와의 일, 학교에서 있었던 일, 이런 상황적 텍스트뿐만 아니라 책이나 영화와 같은 텍스트를 독해한 뒤 그것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글과 말로 보고 듣고 읽은 것을 옮겨보면 됩니다. 저녁 시간에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기 위해선 기억력도 좋아야 하지만 표현력도, 어휘력도 좋아야 하고 사건의 전개 과정을 시계열적인 위상에서 나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선 일상과 상황에 충실해야 하겠죠. 사건 하나하나에 집중하여 일상 속에서 이야깃거리를 포착해야 하고, 그 포착된 사건을 재해석하여 사건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일상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야 하겠죠. 그래야 상대방에게 그 이야기에 담긴 의미를 전달하여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테니까요. 결국, 집중하는 사람만이 텍스트를 독해할 수 있고 의미를 생산해 낼 수 있다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은채는 어린이집에서부터 중학생인 오늘에 이르기까지 학교생활에 집중합니다. 수업에도 충실하고 도움을 원하는 친구도 성실히 도와줍니다. 불합리하거나 불의한 상황이 있으면 유심히 보고 기억한 뒤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엄마, 아빠에게 말하여 의견을 묻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희의 의견이 첨부되어 본인의 경험과 생각이 훨씬 두터워집니다. 하루, 하나의 사건을 중심으로 의미가 층층이 쌓이는 것이죠. 결국 은채에게 매일 가는 학교지만 어제와 같은 학교가 아니고, 매일 보는 친구고 선생님이지만 매번 새로운 의미를 선사하는 존재로 여겨지고, 때문에 소홀히 넘기는 친구도, 태만히 임하는 수업도, 귓등으로 흘려듣는 선생님의 말씀도 없죠.
학교에서 재미있는 일, 신나는 일, 수업 중에 배운 새로운 지식, 새로 전학 온 친구에 대해 집에 가서 빨리 말해주고 싶은 아이로 키우세요. 사건과 사물을 자기만의 시각으로 보고 자기만의 의미를 부여해서 그것을 자기만의 언어로 만들어 가족에게 전달하는 아이는 이미 텍스트의 훌륭한 수용자이자 해석자이며 전달자입니다. 이런 아이는 문해력 향상의 출발선에서 앞설 수밖에 없죠. 다음 장에서는 재해석과 의미 부여, 그리고 그 전달의 중요성, 그것이 문해력, 특히 2차 문해력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