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시작 5. 뉴스와 상식의 힘

아빠 품에서 시작하는 문해력 수업 06

by 최영훈

처음 만난 세계

돌이 지난 후부터 딸과 저는 동네 모험을 다녔습니다. 그전에도 엄마가 운전하는 차에 실려 이곳저곳 다녔지만 아빠가 밀어주는 휴대용 유모차에 실려 밖의 공기와 피어난 꽃과 달라진 날씨를 온몸으로 체감하며 본격적으로 다니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였죠. 그전에도 다녔을지 모르지만, 제가 찍은 사진들을 보니 이때부터 은채는 세상과 호흡하고 자연과 친해지며 열심히 걸어 다니기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이후, 어린이집에서 초등학교까지, 걸어서 통학했습니다. 유모차에 실려 다녔던 세 살, 네 살 때를 제외하면 말이죠. 그렇게 걸어 다니면서 사계절의 변화를 피부로 느꼈습니다. 계절마다 피는 꽃도 알아갔죠. 이 모든 것이 부산시립박물관과 유엔기념공원, 평화공원과 조각공원, 부산문화회관 등이 반경 1킬로미터 이내에 오밀조밀 모여 있는 동네에 살았기에 가능했습니다. 은채의 초등학교도 그 반경 안에 들어가 있고 현재 다니고 있는 중학교도 마찬가지죠.


커가면서 동네의 파악에 이어서 주변 지역까지 알아갔습니다. 부산문화회관 광장에서 보면 황령산과 멀리로는 광안대교까지 살짝 보입니다. 은채한테 동서남북을 알려주고, 우리 동네는 부산의 어느 쪽에 있는지, 광안리와 해운대는 우리 동네의 어느 쪽에 있는지, 우리 집을 중심으로 광안리에 사는 외삼촌과 서부산인 사상구에 사는 외가댁의 지리적 위치를 가늠해보게 했습니다. 나중에 황령산 정상, 봉화대에 올라가서는 시각적으로 그 위치와 방향을 알아보게 했죠. 여기까지 눈에 보이는 세계의 감각이자 형성입니다. 사투리가 자연스럽게 배어가는 것처럼, 은채는 성장하면서 부산을 알아갔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사는 동네 너머에도 있죠. 사건은 바다 건너 다른 나라에서도 발생하고요. 언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둘러싼 지리적 공간과 일상에서 사용되는, 필요한 언어가 있고 그 이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필요한 언어가 있죠. 나중에 자세히 얘기하겠지만 아이들이 3학년 이후 사회 과목에 있는 지리, 역사, 윤리, 철학과 같은 내용을 이해 못 하는 것도 자기 세계 밖으로 향하는 언어, 세계 밖에서 들어오는 언어를 이해 못 하는데서 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부모는 아이에게 더 많은 세계, 더 많은 분야의 언어를 소개해줄 의무가 있습니다.


뉴스를 보는 시간

앞서 다른 글에서 얘기했듯이, 은채가 중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우리 집의 저녁 식사 시간은 여섯 시에서 여섯 시 반 사이였습니다. 때문에 식사를 끝내고 못 다한 이야기를 마저 한 뒤 설거지까지 해도 채 여덟 시가 안 됐죠. 여덟 시가 되면 정리를 하고 뉴스를 봤습니다. 은채가 어렸을 때는 당연히 뉴스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은채도 함께 뉴스를 보게 됐습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질문을 하기 시작하더군요. 뉴스에 나오는 단어는 대부분 모르는 단어였으니까요.


물론 모든 뉴스의 모든 단어의 뜻을 묻지는 않았습니다. 뉴스를 보다 보면 며칠 동안 이어지는 뉴스들이 있습니다. 중요한 정치적 사건이나 강력 사건, 자연재해의 경우가 그런 뉴스들이죠. 그런 뉴스를 며칠 보다 보면 당연히 반복되는 단어가 등장하게 됩니다. 아무리 어려도 저 반복되는 단어가 제법 중요한 단어라는 것쯤은 눈치를 챕니다. 여기에 엄마, 아빠가 그 단어를 말하면서 심각한 표정으로 걱정을 하거나 의견을 나누면 그 단어가 궁금해지는 것은 당연하죠.


사실 뉴스에서 언급되는 단어들의 수준은 제법 높습니다. 경제 뉴스의 경우엔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을 마치 일상 언어처럼 말을 하고 심하면 스태그플레이션 같은 단어도 시청자 모두가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합니다. 그뿐인가요? 정치 용어인 진보와 보수, 극우와 극좌, 여당과 야당, 원내대표와 당 대표 등 의외로 다양한 용어들이 사용됩니다. 국제 뉴스로 넘어가면 난이도가 더 높아집니다. 중동 분쟁 뉴스가 나올 때마다 등장하는 수니파와 시아파, 탈레반과 원리주의, 팔레스타인과 하마스와 PLO 등이 언급됩니다. 심지어 왜 다들 그렇게 모든 종교에서 예루살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설명은 생략한 채 성지라는 말도 계속 반복됩니다. 당연히 순례라는 말도 나오죠.


이런 단어들이 쏟아지는 뉴스 프로그램은 또 있습니다. <특파원 보고 : 세계는 지금>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심층 취재 프로그램이면서 시사 해설 프로그램이기도 합니다. 세계 각지의 중요한 뉴스의 깊은 맥락을 현지 특파원과 전문가의 입을 통해 직접 듣죠. 그다음엔 스튜디오로 넘어와서 관련 전문가의 심도 깊은 해설을 듣습니다. 사실 양편을 대표해서 나온 패널들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정치 시사프로그램은 시끄럽기만 하지 건질 내용이 없습니다. 그에 비하면 이 프로그램의 전문가들의 지식수준과 분석과 해설 내용은 상당한 수준입니다. 게다가 이슈와 지역에 따라 등장하는 전문가가 추가되거나 바뀔 때도 있으니 매주 보다 보면 상식의 범위가 넓어지고 세계를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주말 밤마다 딸은 이 프로그램을 함께 보곤 했죠.


뉴스에서 쏟아지는 지식

앞서 말했듯이 아이의 지리적 영역은 자기가 사는 동네로 국한됩니다. 국내외로 여행을 다니면 지리적 인식의 영역이 넓어지고 지리적 감각이 높아질 것 같지만, 솔직히 지나가는 성인에게 나라 이름이 표시 안 된 세계 지도를 건네면서 베트남을 찾아보라고 하면 대강이라도 짚어내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말레이시아나 싱가포르처럼 위치가 애매한 나라는 더 어렵죠. 이러니 아이들에겐 해외는 고사하고 주변 지역이나 도시에 대한 지리적 인식과 지식을 기대하는 건 어렵습니다.


그런데 뉴스를 보다 보면 국내외 지명들이 쉴 새 없이 쏟아집니다. 분쟁 뉴스나 경제 뉴스, 국제 정치 뉴스, 최근 여름마다 일어난 산불 소식은 유럽 남부와 미국 서부의 도시들의 피해 상황을 반복해서 전하고, 날씨와 재난재해 소식을 전할 때면 국토 곳곳의 지명들이 속사포처럼 쏟아지죠. 당연하게도 아이에겐 먼 나라이고 낯선 도시입니다. 당연히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은채가 학교에 간 뒤, 친구의 집안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라서 집에 와서 얘기하곤 했다고, 앞선 글에서 말했었죠? 그렇게 놀란 것 중에 하나가 다른 집에선 뉴스를 안 본다는 것이었습니다. 보더라도 아빠 혼자 본다고 하더군요. 아이들은 학원에 있거나 집에 와도 혼자 자기 방에 있고 엄마는 다른 방에서 드라마를 본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자기 집에선 온 집안 식구들이 매일 나란히 앉아 뉴스를 보고, 심지어 아빠는 유일하게 보는 방송 프로그램이 뉴스이고 어쩌다 축구 중계만 보는 사람이니 당연히 놀랄 만하겠죠?


그런데 사실, 우리가 어떤 목적을 갖고 함께 뉴스를 본 건 아니었습니다. 아내나 저나 하루에 한 번은 뉴스를 봐야 된다는 주의고 특히 아내의 경우엔 다른 모든 직장 여성처럼 저녁나절이면 내일의 옷차림을 신경 쓰기 시작하고, 그걸 위해선 뉴스를 통해 일기예보를 봐야 했습니다. 심지어 출근을 준비하면서도 아침 뉴스를 틀어 놓죠. 은채가 TV로 유튜브를 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6학년 이전까지는 안방 침실과 거실에 있는 TV 모두 아침 뉴스가 틀어져 있었죠. 물론 요즘엔 거실 TV는 딸의 등교를 돕는 가벼운 도구가 됐지만요.


뉴스의 힘이 느껴진 순간

이런 지속적인 뉴스 시청이 아이의 학습에 도움이 된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3학년 사회부터 지리를 배우기 시작합니다. 먼저 우리 고장에 대해서 배우죠. 지역의 문화를 배우고 역사에 대해 탐구하는 시간을 갖죠. 4학년 때부터는 그 영역이 조금 더 넓어집니다. 지도를 보는 법을 배우기 시작하죠. 2학기 때부터는 어촌, 농촌과 같은 촌락을 배우고 경제의 기초 상식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5학년이 되면 국토로 그 범위가 확장되고 법과 인권이 등장하죠. 2학기엔 드디어 역사가 등장합니다. 6학년에 들어서면 정치가 등장하고 2학기엔 세계에 대해 배웁니다.


나중에 다른 글에 쓰겠지만 아이들이 3학년 들어서 당황하는 과목이 바로 사회인 이유는 완전히 새로운, 그전에 배운 적이 없는 분야의 지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매일 뉴스를 보는 사람이라면, 사실 상식에 가까운 지식이죠. 은채는 그 지식을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반복해서 접했습니다. 뉴스와 <세계는 지금>을 보는 도중, 엄마와 아빠의 짧은 토론을 수도 없이 지켜봤고 자기 질문에 자연스럽게 답해주는 부모 밑에 자랐죠. 집 앞에 있는 황령산을 오르거나 멀리 광안대교와 황령산이 보이는 부산문화회관으로 산책을 가면 우리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을 파악하고 우리가 사는 동네가 부산의 어디쯤에 있는지 파악해 보는 놀이를 하곤 했죠. 집 앞에 있는 박물관도 심심하면 갔으니 당연히 부산의 역사는 물론이고 한국의 역사도 대강은 알고 있었죠.


뉴스를 안 보는 세대

아내는 부산에서 손꼽히는 대형병원의 직원입니다. 다수의 부하직원과 함께 꾸려가는, 한 부서의 파트장이죠. 그 직원들과는 많게는 열몇 살, 적어도 열 살 이상 차이가 납니다. 다른 부서의 사무직 직원들, 특히 신입 직원들하고는 거의 스무 살 가까이 차이가 나죠. 종종 아내가 집에 와서 탄식을 하는 내용이, 젊은 직원 중에서 세상 돌아가는 걸 전혀 모른다는 겁니다. 신문은 당연하고 TV 뉴스도 안 본다는 거죠. 보더라도 짧은 동영상으로, 화제가 되는 뉴스만 보는 거죠.


돌이켜보면, 예전엔 거의 모든 집이 종이로 된 신문을 봤습니다. 전 아주 가난한 집에서 성장했지만 우리 집도 신문을 봤습니다. 이웃집이 본 신문을 보거나 부모님이 밖에서 들어오시면 종종 신문을 가져올 때도 있었죠. 제가 어린 시절엔 신문에 한자 사용이 많았기 때문에 신문을 보기 위해서는 당연히 한문을 좀 알아야 했습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제가 대학 들어갈 때쯤, 그러니까 1990년대 이전까지는 심지어 거의 모든 신문들이 세로 쓰기를 했었습니다. 그러다 완전히 한글로, 가로 쓰기로 바뀌었죠.


재미있는 건, 이때쯤부터 소위 NIE라고 불리는, 신문을 활용한 교육(Newspaper In Education)이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그러나 알다시피 불과 십여 년 후, 인터넷 시대가 열리고 이천 년대 들어서 유튜브와 같은 동영상 플랫폼 등 온라인과 모바일의 시대가 펼쳐지면서 서서히 가정에서는 종이 신문이 밀려나기 시작했죠. TV 뉴스도 마찬가지여서 종편이 등장한 2010년대 이후 뉴스를 볼 곳은 많아졌는데, 뉴스를 보는 사람은, 그러니까 뉴스를 그야말로 본방 사수하는 사람의 절대적 숫자는 줄어드는 시대가 됐죠.


문해력과 상식의 관계

문해력은, 한편으론 상식의 문제입니다. 알아야 될 것의 범위를 넓고 깊게 잡은 사람은 당연히 상식이 많을 수밖에 없죠. 은채가 초등학교 3,4,5,6학년 때 사회 과목에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았던 건, 그 과목에 나오는 지식이 자신에겐 상식의 수준이었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집에서는 이 모든 지식들이 거의 매일 다뤄지는 것들이었죠. 몇 해 전, 우연히 사십 대 감독의 차를 얻어 탄 적이 있었습니다.


이동하던 중, 정치 얘기가 나왔는데, 그 감독이 저한테 아주 충격적인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신의 아내가 야당과 여당도 구분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전 농담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는 아주 진지하게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자신의 친구들 중에서도 그런 사람이 있고 여당과 야당은 알아도 당대표와 원내대표의 차이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했습니다. 최근에,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딸을 통해서도 들었습니다. 자기 반 친구들이 세월호 사건은 물론이고 이태원 참사도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뉴스를 보지 않으니 어느 동네에 많은 비가 와서 재해가 났는지도 모르고 지금 대통령의 이름을 모르는 친구도 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지만, 문해력은 텍스트를 이해하는 힘의 문제이지만, 한편으로 상식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한 사회, 한 시대를 살아가는 한 명의 동시대인이 당연히 갖춰야 할 지식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죠. 더 나아가 흔히 말하는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 세계인의 덕목 문제이기도 하고요. 최근, 딸은 사회 선생님에게 들은 말을 전해줬습니다. 세계 지리를 배우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누가 투정을 부렸나 봅니다. 그러자 사회 선생님이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너희들이 글로벌 기업에 들어갔다고 해보자. 거기서 다른 나라에서 온 직원과 대화를 하게 되면 당연히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묻게 된다. 그때, 그 사람이 자신의 조국과 출신 도시를 말했을 때 네가 모르면 거기서 대화는 끝난다. 그 사람이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겠냐.”


험한 사건도 다뤄집니다. 시끄러운 뉴스도 쏟아집니다. 그러나 나라의 사정과 사회를 이해하고 세계와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기 위해선, 역사와 정치, 사회와 문화 안에 담긴 모든 단어들을 상식으로 여기는 아이로 만들기 위해선 뉴스를 꼭 봐야 합니다. 이슈를 나누고 질문에 귀 기울이면서 “상식”의 넓이와 깊이가 남다른 아이로 만드는 첫걸음은 온갖 것을 다루는, 백 권이 넘아가는 학습 만화 전집이 아니라 매일 보는 뉴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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