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해력이 실력이 되는 순간 3. 중학생의 글쓰기

아빠 품에서 시작하는 문해력 수업 15

by 최영훈

두각을 나타내는 이유

투병으로 인해, 딸은 친구들보다 한 달 늦게 학교에 갔습니다. 첫 등교를 하기 전, 딸은 조용히 지낼 거라고 했습니다. 건강이 완전히 회복이 안 된 탓도 있지만 조용히 공부에 전념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목표로 하는 고등학교와 그 이후 생각하는 진로를 생각하면 더 열심히 공부해야만 한다고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죠. 때문에 등교를 시작하자마자 수학 학원에 보내달라고 하고 다녔던 영어 학원에도 복귀한 것이었고요.


실제로 한 며칠은 조용히 다니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며칠 안 갔습니다. 선생님들이 이미 은채가 시의 영어 영재라는 걸 알고 있었고 수업 태도가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도 알고 있었죠. 이중 가장 먼저 은채를 알아본 건 수학 선생님이었습니다. 다들 앞에 나와서 한 문제씩 풀어보는 상황에서 은채의 순서가 돌아왔죠. 은채는 쉽게 풀었고 그렇게 풀고 들어가려는 은채에게 선생님은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설명을 시켰습니다. 은채는 설명을 했고 선생님은 아주 흡족해하셨다더군요.


이후로 다른 과목의 선생님들도 은채의 이름을 기억해 두기 시작했습니다. 단순히 문제를 잘 풀고 수업 태도가 좋아서만은 아니었습니다. 언제나 핵심 사건은 글쓰기였습니다. 수행 평가를 위해 글을 써야 할 때마다 은채는 다른 아이들과 차별화되는 글을 써냈습니다. 국어는 물론이고 사회, 정보와 같은 과목에서도, 심지어 감상평을 적는 음악과 미술에서도 눈에 띄는 글을 제출했습니다.


두 종류의 글쓰기

우선은 사회나 정보와 같은 과목에서는 여러 텍스트를 관통하는 하나의 이슈를 발견하고 그 원인과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과제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경제 지표 하락, 원도심의 빈집 문제, 출산율 감소와 같은 뉴스 자료를 보고 부산의 고령화와 청년 인구 유출이라는 문제를 도출해 내고 가능한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식이었죠. 음악에서는 대취타를 듣고 감상평을 적었고 미술에서는 르네상스 미술을 보고 역시 감상평을 적는 것이었습니다. 이 두 종류의 글을 통해 은채는 전혀 다른 성격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었죠.


우선, 전자의 글쓰기는 분석 능력과 문제 유추 능력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이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2차 문해력이죠. 1차 문해력이 글로 적힌 것, 글 그 자체를 읽고 이해하는 것이라면, 2차 문해력은 글로 적혀 있지 않은, 숨겨진 의미, 진짜 의미를 파악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전자의 문해력이 객관적인 정보에 대한 수용과 이해를 위한 기본적인 능력이라면, 후자의 문해력은 그야말로 메타 인지와 해석을 위해 필요한 능력이죠.


예전엔 행간을 읽어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군사정권 시절, 신문 기사들이 일일이 사전 검열을 받아야만 했을 때, 신문에 실린 기사를 읽으면서 권력에 의해 삭제되고 누락된 것, 숨겨진 기자의 의도를 읽어내어 기사를 독자가 완성하라는 의미였죠. 즉 기사를 “제대로” 읽어낸다는 것은 그 숨겨진 의미까지 읽어내는 걸 의미했습니다. 조금 뒤에는 맥락과 Context라는 말이 유행했죠. 하나의 텍스트가 다른 텍스트와 조화를 이뤘을 때, 혹은 시점과 상황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으니 텍스트 그 자체와 함께 써지고 읽어지는 여러 배경과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읽으라는 말이었죠.


사실 전문가들이 말하는 독해력에도 이와 비슷한 구분이 있습니다. 관련 전문가들에 의하면 독해력은 크게 사실적 이행 능력, 추론적 이해능력, 비판적 이해 능력, 창의적 이해 능력이 있습니다. 사실적 이해능력은 글에 나타난 사실의 판단입니다. 가장 기초적인 능력이죠. 추론적 이해능력은 앞서 언급한 글에 드러나지 않는 의미를 파악하는 능력입니다. 여기에 글의 영감을 받아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다양한 관점에서 의미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능력을 창의적 이해능력이라 하고 마지막을 글에 담긴 입장과 견해의 옳고 그름, 다른 의견의 가능성을 검토하고 제시하는 능력입니다. 그야말로 논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능력이죠.


두 번째의 글쓰기 능력은 어휘의 문제이자 자기 성찰의 문제입니다. 음악과 미술을 감상하고 자신이 느낀 감정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는 능력이 우선 있어야 합니다. 이런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볼 수 있는 능력은 앞선 글에서 썼듯이 다양한 문화, 예술 체험으로 형성됩니다. 더불어 가족과 긴 대화를 자주 하고 자신의 감정에 대해 과장되지도, 그렇다고 숨기지도 않은 채 그저 담담히 말하는 경험으로 형성됩니다.


여기서 더 중요한 능력은 어휘입니다. 음악 시간에 대취타를 듣고 그 웅장함과 화려함, 개별 악기가 가진 개성을, 그 음악을 듣지 않은 사람, 들어본 적 없는 사람에게 마치 들은 것처럼 그 감상의 느낌을 전달하는 능력은 감상 능력보다는 오히려 어휘에 달려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름답다.”, “웅장하다.”, “신비하다.”와 같은 진부한 표현이 아닌 그야말로 그 순간에 죽비처럼, 번개처럼 내려치는 감동을 단어로 포착해내야만 하죠.


중학교만 올라가도 이 두 가지 능력이 필요한 글쓰기가 수행평가로 이어지고 이것은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으로 이어집니다. 이런 글들의 분량은 주제만큼 그 폭이 넓습니다. 한 문단 정도의 글에서부터 한 장 정도, 심지어 몇 장을 넘어가는 경우도 있죠. 때문에 초등학교 시절부터 국어는 물론이고 문해력 관련 학원에 다녔지만, 짧은 지문을 주로 읽고 문제집이나 풀어 왔던 아이들은 정작 학교에서 해야 하는 글쓰기 앞에서 무력감을 호소하곤 합니다.


문해력만큼이나 글쓰기 실력도 하루아침에 느는 것이 아니기에 아이들의 무력감은 부모의 안타까움과 공포로 전이되곤 하죠. 다음 글에서는 차곡차곡 쌓아 온 문해력이 어떻게 글쓰기 능력으로 이어지는지, 무심히 참여했던 다양한 활동들이 어떻게 글쓰기 실력으로 이어졌는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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