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해력이 실력이 되는 순간 2-초등학교 4~6학년

아빠 품에서 시작하는 문해력 수업 14

by 최영훈

과목 포기자들의 등장

은채의 수학 학습지 선생님은 전형적인 부산의 중년 여성이었습니다. 그것도 아들을 둔 엄마였죠. 그래서 목소리도 크고 말투도 시원시원했습니다. 아들만 두셔서 그런지 우리 은채를 정말 예뻐하셨죠. 은채가 초등학교 들어간 이후 종종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좀 있으면 아버님이 도와주시는 것도 어려울 겁니다. 3, 4학년쯤 되면 정답지 달라고 하실 걸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사실 지금도 어렵습니다. 문제가 장난 아니네요.”하고 답하곤 했습니다. 문제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요소가 숫자가 아닌 문장이었기 때문입니다. 숫자는 그야말로 문장을 거들뿐이었죠. 전 문제의 식을 생각해 내고 답을 내기 전에, 이 긴 문장에 놀라곤 했습니다.


문장이 길어진다는 건 이해력이 요구된다는 겁니다. 문해력은 이해를 위한 기본 소양이고요. 이 시기부터 그림보다는 글이 많은 책을 읽게 됩니다. 그야말로 소설 같은 소설을 읽고, 교양이 쌓일만한 인문서적을 읽게 되는 것이죠. 교과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전히 편집에 공을 들여서 다양한 시각적 요소고 곳곳에 배치되어 있지만 글의 양은 물론이고 지식의 양과 종류도 풍성해집니다. 사회라는 과목 속에서 역사, 지리, 문화, 사회, 심지어 법과 정치까지도 배우게 되죠. 이 시기부터 각 과목의 포기자들이 발생합니다.


전 사실 제가 수포자였기 때문에 수학을 포기하는 건 이해가 됐습니다. 그런데 그 시기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이르더군요. 학습지 선생님도 그렇고, 딸을 통해 전해 들은 이야기도 그렇고, 또 최근 교육 전문가들의 이야기도 들어보니 처음 수학을 포기하는 시점이 분수가 나오는 3학년 즈음이라고 합니다. 그러다 뒤에 도형이 나올 때 또 수포자가 대량 발생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사회와 국어와 같은 인문 과목의 포기자도 같은 시기에 발생합니다. 문장의 길이에 압도당하고 내용의 다양성에 놀랄 뿐만 아니라 어휘력의 부족으로 인해 문해력의 한계에 직면하면서 하나 둘 관련 과목을 싫어하는 아이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는 것이죠. 은채랑 친하게 지냈던 소년 중에 수학을 잘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정말 사회와 국어를 거의 혐오할 정도였죠. 도대체 문제가 뭘까요? 왜 이때부터 아이들은 정보량이 많은, 소위 글밥이 많은 책과 글을 읽기 싫어할까요? 왜 사회와 국어 과목에 대한 혐오가 시작될까요?


과정도, 결과도 더디다

우선, 과정도 느리고 결과는 너무 더디게 옵니다. 읽기의 결과, 공부의 결과가 너무 늦게 온다는 말이죠. 심지어 오지도 않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죠. 더 나아가 쓸모도 없는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의 수학은 식을 세우는 게 쉽고 풀면 답도 금방 나옵니다. 그런데 학년이 올라가면 수학 문제조차 글이 길어 식을 세우는데 애를 먹습니다. 식이 있으면 풀면 그만인 문제인데, 그전에 문제의 서술을 읽는데 시간을 다 보냅니다. 당연히 문해력이 낮은 아이일수록 수학 문제를 “읽는 것” 자체가 그야말로 문제, 그 자체죠. 그러니까 일종의 이중의 문제 풀이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니 인문 계열 과목은 오죽할까요. 지리, 역사, 문화, 정치, 법과 같은 과목은 개념의, 그야말로 잔치입니다. 개념은 다른 단어의 힘에 기대어 자신을 분명하게 드러내기에 단어를 많이 알아야 개념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소위 하위 단어를 모르면 상위 단어로 갈 수 없고 저차원의 단어를 모르면 고차원으로 갈 수 없습니다. 결국 아는 단어가 없는 아이들은 제풀에 지쳐버리기 마련입니다.


이런 과목의 시험은 당연히 개념의 파악 유무를 묻습니다. 5지 선다형 객관식도 아닙니다. 한 개념에 대해 서술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지금 말하는 것이 뭔지, 간단한 쪽지 시험을 보는 것입니다. 그래도 어려워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단어와 단어가 어깨를 맞대어 연결되어 하나의 개념을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휘력이 부족하면 글을 읽는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문해력이 떨어지면 인문 사회 관련 과목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죠.


은채는 이때부터 조별 과제를 하면 본의 아니게 리더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도 은채와 비슷한 아이와 함께 조별 과제를 하려 했죠. 그야말로 버스를 타려고 했던 것이죠. 아이들도 아는 겁니다. 조사와 분석, 뒤이은 글쓰기를 제대로 하는 사람은 몇 명 안 되니 최대한 그 아이들하고 함께 과제를 해야 한다는 걸 말이죠.


넓고 깊어지는 지식의 세계

사실 이 시기부터 아이들의 지식 세계는 급격히 확장됩니다. 처음 지리와 문화를 배울 때는 우리 동네에서 시작하지만 6학년쯤 되면 세계로 확장됩니다. 역사도 마찬가지죠. 선사시대에서 시작해서 단숨에 현대까지 도달합니다. 어른의 입장에서 보면 그저 요약에 불과하고 한번 훑는 수준이지만 아이들 입장에서는 정신없는 속도입니다. 부모님들 입장에서는 ‘아니, 학교 들어가기 전에 학습만화로 다 본 내용인데, 그게 어렵나?’하는 생각도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학습만화는 말 그대로 만화여서 글로 된 정보의 기억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죠. 거의 영화와 책의 차이정도라고 하더군요.


이쯤 되면 아이들 입장에선 무슨 생각이 들까요. 맞습니다. 이걸 내가 왜 알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새로운 지식에 대한 수용성이 급격히 떨어지는 겁니다. 아니, 더 엄밀히 말하면, 새로운 지식은 유튜브나 쇼츠로도 “볼” 수 있고, 모르는 건 AI한테 물어 “볼” 수도 있으며, 학교에서 모르는 건 학원에서 챙겨 “봐”주고 잘 설명해서 떠 먹여주는데, 굳이 지금 내가 왜 이걸 힘들게 읽고 이해해야 하나, 이 어려운 조별 과제를 왜 열심히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이건 새로운 지식에 대한 수용의 문제로 이어집니다. 다양한 경로로 정보는 많이 듣고 보지만 지적인 노력, 심지어 노동에 가까운 수고를 들여 얻는 새로운 지식엔 관심이 없고 심지어 수용하길 거부하기까지 하죠. 과정이 수고로우니까요. 이런 수고를 피하기 시작하면 당연히 긴 글을 읽는 어려움이 지속됩니다. 그러면 결국엔 긴 글 앞에서 자신감을 잃게 되죠. 글밥이 많은 얇은 소설을 회피하는 건 물론이고 약간의 부피가 있는 2,3백 페이지 정도의 책은 펼쳐볼 엄두도 못 냅니다. 결국, 독서의 질적, 양적 증가는 지체될 수밖에 없죠.

양적 증가의 예를 들어볼까요? 은채가 읽었던 책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겨울 방학 때 읽었던 <마법의 설탕 두 조각>은 90페이지 정도지만 2학년 겨울방학 때 읽었던 <푸른 사자 와니니>는 2백 페이지 정도 됩니다. 이후 초등학교 6학년 때 재미있게 읽었던 궤도라는 과학 유투버가 쓴 <과학이 필요한 시간>은 250페이지 정도가 되죠. 한 때 베스트셀러였던 <아몬드>가 250 페이지고, 김영하 작가의 <작별인사>는 3백 페이지입니다. 가장 최근에 읽은 유시민 선생님의 <청춘의 독서> 개정판은 350페이지 정도죠.


성인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의 적정 분량이 대략 250에서 3백 페이지 정도라고 보고, 현재 중학생인 은채가 일반 성인 수준 분량의 책들을 재미있게 읽어내고 있다는 걸 감안하면, 은채는 초등학교 1학년 때, 90페이지 정도 분량의 책을 읽은 뒤 몇 년에 걸쳐 그 양을 서서히 늘려가 지금의 수준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단숨에, 하루 아침에, 한 번에, 그야말로 벼락치기로 뛰어넘은 건 아니라는 말이죠.


문해력 학원이 가르칠 수 없는 것

앞서 얘기했듯이, 소위 “문해력 학원”에서 초등학생과 중학생만 가르치는 건, 문해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고등학생은 그 격차를 좁힐 방법이 없다는 말이 됩니다. 또, 다른 맥락에서 얘기하면 문해력과 독서력, 독해력은 벽돌을 쌓듯이, 계단을 밟아 올라가듯이 차근차근, 누적의 힘을 믿고 묵묵히 쌓아 올라가야 한다는 걸 의미하기도 하죠. 앞서 얘기했듯이 지름길도, 요행도 바랄 수 없다는 것이죠. 이건 다시 말하지만 단순히 글을 읽는 능력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일정 분량의 글을 집중하여 읽은 뒤 그것을 이해하는 능력을 의미하죠. 그리고 그 능력은 단순히 문해력의 문제가 아니라 오랫동안 쌓아 온 글 읽기의 문제라는 걸 의미하고요.


얼마 전, 그 예를 봤습니다. 올 여름, 중학교 1학년인 딸이 고등국어 독서 분야의 기출문제집을 사 왔습니다. 궁금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죠. 첫 챕터가 인문 분야였는데, 정말 유명한 철학자들이 줄지어 나왔습니다. 사르트르와 하이데거와 야스퍼스, 뒤이어 들뢰즈, 한나 아렌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맹자과 공자 등등. 이들 중에서 은채가 이름이라도 들어본 철학자는 아마 플라톤 정도 아닐까요? 그런데 대뜸 문제를 풀어보더군요. 지문 하나당 네, 다섯 문제가 딸려 있었는데, 거기에 제한 시간도 있었습니다. 은채는 그 제한 시간 안에 그 지문을 읽고 문제를 풀었고 심지어 대부분 정답을 맞혔습니다. 전 이걸 보고, 어떤 묘한 충격과 함께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국어 과목, 독서 분야의 문제는 수험생에게 어떤 철학자나 특정 과학 이론을 알고 있는지 여부를 가려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죠. 경제, 경영, 기술, 과학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배경 지식이 사전에 있으면 읽는 것도, 문제 풀이도 훨씬 쉬울 겁니다. 그러나 애초에 그런 지식이 없어도 지문을 제대로만 읽어내면 풀 수 있는 문제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중학교 1학년 학생도 풀었던 것이죠. 그야말로 지식의 유무보다 읽는 힘, 독해력과 독서력, 문해력의 유무를 판단하기 위한 분야이자 문제였던 겁니다.


스스로 쌓아가는 힘

이어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요즘 고등학생들이 국어를 어려워하는 이유는 결국 누적의 부재 때문이라는 겁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잠시 똘똘해 보일 수 있습니다. 고학년까지도 그럭저럭 버틸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벼락치기와 암기와 잔재주만으로 버틸 수 없는 순간이 옵니다.


실제로 저에게 논술과 독서(비문학) 과외를 요청하는 학생들의 대부분은 고등학생과 그 학부모입니다. 아직 이 바람에 호응을 하지 않아서 그 학생들의 사연을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저는 이들 대부분이 고등학생이라는 사실 자체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들도 늦었다는 걸, 학교와 학원과 학부모도 늦었다는 걸 인지한 그 순간에서야 글의 읽기와 쓰기의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는 데에 적잖이 놀라움을 느낀 겁니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초등학교 때는 탄탄한 계단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책상에 오래 앉아 있을 수 있는 인내심, 새로운 세계를 마주할 때 생길 수밖에 없는 두려움을 이겨낼 용기, 친구들과 협업할 수 있는 사회성, 필요한 정보를 찾아내는 집요함과 끈기, 자잘한 시험과 과제 속에서 받은 칭찬 및 기쁨이라는 심리적 보상의 반복 등이 있어야 합니다. 그야말로 아이 나름의 공부할 이유가 형성되는 시기인 것이죠.


이런 이유가 제대로 형성되면 부모가 잔소리할 이유가 없습니다. 열심히 공부하면 확실한 성과가 보장된다는 걸 아는 아이들은 부모의 성화가 있기 전에 책상에 앉습니다. 해야 될 걸 하고 읽어야 될 걸 읽습니다. 그 시기에 맞는 도전을 하게 해 주면서 동시에 조금 버거운 걸 향한 도전도 응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성공과 실패에 연연하지 말고 그 모든 과정 속에서 지적인 근육이 탄탄히 형성되는 걸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그 힘은 어느 순간, 서서히 발휘가 되니, 지금 당장 조바심 내지 않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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