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해력이 실력이 되는 순간 4. 두 종류의 글쓰기

아빠 품에서 시작하는 문해력 수업 16

by 최영훈

좀 논쟁이 될 만한 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전 읽기와 쓰기는 다른 영역의 재능, 혹은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한 말 같죠? 좀 더 깊이 들어가 보겠습니다.


독서와 글쓰기의 차이

독서, 즉 읽기는 노력의 영역입니다. 문해력, 독해력은 꾸준한 독서로 얻어지고 그렇게 얻어진 능력은 다시 수준 높은 독서로 이어집니다. 들인 시간의 문제고 꾸준함의 문제이며 어찌 보면 열정의 문제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일종의 취미일 수 있는 것이겠죠. 생업과 생계에 도움이 안 되지만 돈과 시간을 들여 나름의 깊이와 실력을 갖추고 싶은 분야, 그것이 바로 취미의 영역이니까요. 얼마 전 만난 유명한 학원 원장은 부산에서 유명한 국어 일타 강사인데, 취미가 야구여서 더운 여름에도 두 시간씩 경기를 하고 출근을 하더군요. 이게 바로 취미의 영역입니다.


물론 취미도 실력이 되고 돈이 될 수 있습니다. 또 잘하기 위해선 나름의 재능이 필요하죠. 운동의 경우엔 운동신경과 유연성, 체력이 필요하고 독서라면 당연히 문해력, 독해력, 그리고 두툼한 책을 읽어낼 수 있는 인내력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어떤 천부적인 재능, 탁월한 능력이 요구되진 않습니다. 그런 능력이 있었다면 취미는 특기가 됐을 테고 특기를 가진 사람은 프로의 세계로 나아갔을 겁니다.


가끔 일 년에 백 권 이상의 책을 읽는 사람, 유명한 서평가들도 존재하지만 그건 누적의 영역이고 경험과 경력의 영역입니다. 오래, 많이, 꾸준히 하다 보면 자연스레 얻어지는 것이죠. 냉정하게 얘기하면 그들이 들인 수고와 그로 인해 형성된 통찰은 인정받아 마땅하지만, 그것 자체를 재능이라 말하긴 어렵다고 봅니다.


반면 글쓰기는 재능의 영역입니다. 이 재능은 크게 두 가지 능력으로 나뉜다고 봅니다. 하나는 창작의 능력이고, 하나는 생산의 능력입니다. 둘은 비슷해 보이지만 다릅니다. 글을 잘 쓴다고 할 때, 전자의 의미에선 훌륭한 작품을 쓸 수 있는 능력을 말하고 후자의 맥락에선 생산력을 말합니다. 그야말로 공장 돌아가듯이 글을 쏟아낼 수 있는 능력이죠.


글쓰기의 두 영역

먼저 생산의 영역에 대해 말해보죠. 카피라이터도 그만둔 마당이니 허심탄회하게 말하면, 전 이 일을 20년 넘게 하면서 단 한 번도 백지의 공포를 겪은 적이 없습니다. 100자짜리 20초 라디오 광고 카피부터, 한글 문서로 150장이 넘는 백서 작업까지 두려움 없이 임했습니다. 물론 데드라인과 선택의 공포는 어느 정도 있었지만 뭐가 됐든 마감일까지 써냈고 생산물은 고객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노하우는 의외로 간단합니다. 일단 쓰는 겁니다. 짧은 광고 문구 같은 경우엔 고객의 자료와 시장의 자료, 회의 자료, 대화, 메모 등을 기반으로 해서 생각나는 단어와 문장은 무조건 썼고 대안이 되는 시안을 생각나는 대로 썼습니다. 하나하나를 공들여 완성하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지금 당장 떠오르는 생각과 아이디어를 놓치지 않고 포착하여 백지에 쏟아내는 데 집중했죠. 맞춤법과 글자의 개수, 문법, 심의 규정에 대한 고민은 그다음이었습니다.


홍보영상 시나리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러닝타임과 담아야 될 내용, 전반적인 방향성과 콘셉트만 염두에 두고 일단 써 내려갔습니다. 내용들을 구분하여 덩어리 짓고 단락마다 소제목을 붙이고 그것들이 일관되게 기업과 지자체의 이미지, 슬로건, 콘셉트에 부합할 수 있도록 배열하는데 집중했습니다. 이렇게 쏟아내는 작업이 끝난 후에야 다듬고 고쳤죠.


대학원 동기로부터 칼럼 의뢰를 받았을 때도 별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쓰고 싶은 사회와 세상에 관한 주제와 소재는 넘쳐났고 영화 또한 차고 넘쳤죠. 심지어 신작을 보지 않아도 될 정도였습니다. 물론 돈을 받고 쓰는 것이라 제법 단어 선택과 문장 구성에 신경을 썼지만, 언제나 초고는 쏟아내듯 썼고 뒤에 퇴고를 아주 오랫동안 했죠.


특히, 쓰는 동안에도 불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단락도 일단 끝까지 쓴 뒤에 덜어내고 오려낸 뒤 따로 저장했습니다. 혹시 다른 글을 쓸 때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나중에 알고 봤더니 이렇게 쓰는 방식이 존 맥피라는 미국의 저널리스트가 쓰는 방식이더군요. 그는 심지어 그렇게 따로 보관해 놓은 단락들을 모아 새로운 글을 써서 책으로 냈을 정도입니다. <더 패치>라는 책이죠.


반면, 창작의 영역은 다릅니다. 소설, 시, 희곡 같은 장르 말이죠. 이 영역은 수련이 필요합니다. 관련 분야의 우수한 작품들을 공부하듯 읽어내야 하고 스승을 모시고 습작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평론도 마찬가지입니다. 엄격한 공부를 해야 하고 정말 공부를 하듯 문학을 읽어나가야 합니다. 재미로, 취미로 읽는 것이 아니라 정말 진지한 자세로 글자 하나하나를 읽어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실력이 쌓이면 데뷔라는 걸 합니다. 등단이라고도 하죠. 스승의 소개로 문예지에 한 편을 실어 등단을 하기도 하고 신춘문예를 비롯한 각종 문학상에 응모를 하여 그야말로 혜성처럼 데뷔를 하기도 합니다. 글을 잘 쓴다고 하더라도 일정 수준 이상의 경지에 다다르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그 실력을 인정받기까지 또 시간이 걸리는 분야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긴 수련의 시간이 필요한 영역이죠.


딸이 영재에서 배운 문학

은채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다양한 글을 써 왔습니다. 학교에서 다양한 글쓰기를 시켰죠. 독서 감상문을 쓰기도 하고 일기도 썼습니다. 전 그 대부분의 글을 보지 않았습니다. 딸이 보여줄 때만, 제 의견을 물을 때만 보고 말해줬습니다. 솔직히 얘기하면 딸은 글을 쓸 줄 알았습니다. 딸에게도 백지의 공포는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생산력이 좋았죠. 이건 어느 정도 타고난 부분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다 5학년 때, 지역의 창의 영재에 뽑혔습니다. 이때, 2년간 문학 영역의 글쓰기를 아주 체계적으로 배웠습니다. 강사들은 지역에서 아주 실력 있는 교사들이었고 특강을 온 분들은 다 현역 시인, 소설가였습니다. 그중엔 딸이 좋아하는 작가도 있었죠. 딸은 이 시기, 소위 창의적 산출물이라고 부르는 작품들을 묵묵히 써냈습니다. 시, 소설, 희곡, 에세이, 여행 기록, 여하간 글로 쓸 수 있는 거의 모든 걸 써 봤죠. 이때 너무 힘들어서 다시는 영재에 지원하지 않는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물론 다 알다시피 그 뒤에 시의 영어 영재에 지원해서 되어 버렸지만 말이죠.


글쓰기의 위력

저는 옛날 사람이라 문학이라는 영역을 신성시합니다. 아이들이 쓰는 작품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거나 천재가 나타났다며 호들갑 떠는 아빠는 아니라는 말이죠. 그래서 솔직히 이 시기, 쓴 작품들, 글쓰기 훈련이 아이에게 어떤 도움이 되고 어떤 영향을 줄지 전혀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그 효과는 금세 확인할 수 있었죠. 바로 영어 영재에서 말이죠.


앞서 다른 글에서 얘기했듯이, 영어 영재는 인문 영재입니다. 영어를 배우는 영재가 아니라 영어로 인문, 사회 과학을 공부하는 영재죠. 그래서 시험도 창의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문제가 영어와 한글로 출제 됐습니다. 이렇게 뽑힌 아이들 중엔 영어 실력“만” 뛰어난 아이도 있고, 공부 “만” 잘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이 아이들 대부분이 의외로 글쓰기 실력이 형편없어서 이 영재에서 내주는 과제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데드라인을 어기는 건 기본이고 제시된 분량을 못 채우는 아이들도 많았습니다. 반면 은채는 이 모든 걸 지켰죠. 자기가 늘 써오던 글을 영어로 쓸 뿐이니까요. 초등학교 시절, 많은 글을 써 봤던 경험이 은채의 저력이 된 것입니다.


글쓰기를 배울 수 있을까

글쓰기는 타고난 재능과 부단한 훈련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이중 제가 해 온 글쓰기는 재능과 경험과 경력이 바탕이 된 것인 반면, 문학을 위한 글쓰기는 뼈와 살을 깎는 고통이 수반되는 훈련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죠. 전자가 실용적인 가치를 지향한다면 후자는 예술적인 가치를 지향하죠. 그러나 공통점은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재능이 있는 사람이 유리합니다. 이런 사람이 심지어 많이 읽고 써보기까지 하면 그 재능을 꽃피울 확률도 높아집니다. 당연합니다.


이런 이유로, 전 독서 학원에 다니고 문해력 학원에 다니는 것이 글쓰기 실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글쓰기를 싫어하고 재능이 없는 학생이 책을 많이 읽고 문해력 학원에서 열심히 글을 읽고 문제를 푼다고 해서, 그 옆에 주어진 서술형 문제에 답을 쓴다고 해서 글을 잘 쓸 수 있는지 궁금하다는 말입니다.


글을 쓰는 건 힘듭니다. 저같이 키보드를 두드려 글을 쓰는 것도 나름의 수고가 드는데 종이 위에 연필과 볼펜으로 꾹꾹 글을 써나가는 건 더 힘들죠. 그야말로 육체적 수고가 동반되는 정신노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써 나가면서 수시로 지우개로 지우고 고쳐가며 쓰니 더 힘들겠죠. 그러니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에 관한 좋은 기억과 경험이 없다면, 자신의 글로 상을 받거나 칭찬을 들어보거나 다른 사람을 감동시킨 기억이 없다면 글쓰기는 계속 고역으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처음 글쓰기를 할 때부터 백지 앞에서 막연함을 가졌다면 더 그렇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쓰기는 필할 수 없습니다. 아니 어느 정도 잘해야 합니다. 특히 생산력적인 측면에서 말이죠. 중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만나게 되는 수행평가의 대부분은 글쓰기를 동반하고 각종 대회도 글쓰기와 관련 있습니다. 최근 은채는 지역 기초단체에서 주관한 영어 스피치 대회에 나가서 좋은 성적을 거뒀습니다. 중등부 최우수상을 받았죠. 전 이 날 미팅이 있어서 중등부와 고등부 결선만 들을 수 있었는데, 나이와 학년에 관계없이 원고의 수준이 뛰어난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이 좋은 성적을 거뒀죠. 영어로 말하는 건 연습만 어느 정도 하면 가능하지만 글쓰기는 단기간 안에 만들 수 없는 실력이니까요.


집에서 할 수 있는 방법

나중에 더 자세히 얘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여기서 잠깐, 아이에게 지속적으로 글쓰기를 하는 방법, 글의 생산력이 좋은 아이로 키우는 저 나름의 방법을 말하고 이번 편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우선, 성의 있게 쓴 글과 그렇지 않은 글을 구분하여 주셨으면 합니다. 분량의 많고 적음보다는 우선 그 점을 봐야 합니다. 짧은 글이라도 신경을 쓴 것이 역력한 글이 있습니다. 긴 글에도 그런 부분이 있습니다. 그 부분을 정확하게 칭찬해 주세요.


다음으로는, 한 번에 완성된 글을 쓰게 하지 말고 아이디어나 떠오른 문장을 메모하게 해 주세요. 특히 독후감 같은 경우는 책의 분량이 길면 길수록 이것이 중요합니다. 또 긴 글이 과제로 나왔을 때도 메모는 중요하죠. 전체적인 구성을 포스트잇에 메모한 뒤 책상 앞에 붙여 놓고 보면서 쓰면 분량을 배분하기에도, 글의 흐름을 조율하기에도 좋죠. 은채는 최근 영재 과제로 SF 단편 소설을 썼는데, 그때 이 방법을 아주 유용하게 활용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긴 글을 줄이고, 짧은 글을 늘이는 훈련을 지속적으로 해주세요. 이 방법은 카피라이터로 일하는 동안 꾸준히 했던 방법입니다. 백 자가 필요하면 이백 자, 혹은 그 이상을 쓴 뒤 백 자로 줄이곤 했죠. 딱 백 자만 쓰겠다고 하면 아이디어의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죠. 그래서 생각나는 대로 최대한 쓴 뒤 그 속에서 옥석을 가려내는 작업을 했던 것입니다. 반대로 간단한 메모, 이야기의 줄거리만 쓴 뒤 그것을 한 장이나 두 장, 심지어 열 장 정도의 글로 늘이는 것도 자주 했습니다. 뼈대만 있으면 살은 붙일 수 있습니다. 뼈대를 세울 수 있다면 살은 어떻게든 붙이고 채울 수 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지만, 글쓰기는 그것이 즐거운 사람에게도, 그것으로 돈을 버는 사람에게도 번거롭고 힘든 일입니다. 저처럼 컴퓨터로 글을 쓰는 사람도, 카페에서 노트북으로 글을 쓰는 사람도 마찬가지죠. 육필로 직접 글을 써야 하는 어린 학생들은 더 그럴 겁니다. 뭘, 얼마만큼 써야 하는지 모르는 학생들은 더 괴로울 겁니다. 조금이라도 어릴 때, 글쓰기의 즐거움을 알게 해줘야 합니다. 백지를 가볍게 채우는 경험이 반복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연습을 꾸준히 해야 합니다. 중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아이들은 백지의 공포와 마주합니다. 그전에 그 공포에 맞서 이길 힘을 만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이 책의 끝 무렵에 이 힘을 키우는 방법, 글쓰기에 관해서 더 자세히 얘기할 것을 약속드리며 이번 글은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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