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품에서 시작하는 문해력 수업 18
류한욱 씨의 말 중에서 또 한 가지 인상 깊었던 건 잠자리의 문제였습니다. 대치 키즈의 경우, 아이가 초등학교 3, 4학년, 심지어 그 이상이 되어서도 엄마 옆에서 자는 경우가 흔하다는 겁니다. 뭐, 긍정적으로 보면 엄마와의 관계가 좋은가 보다, 좀 각별한 사이인가 보다 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냉정하게 보면 멈춘 겁니다. 아이와 부모의 심리적 성장이 멈춘 것이죠. 특히 아이의 경우엔 정신적, 육체적 독립이 멈춘 것이죠.
저는 어린 시절을 미군 부대 앞에서 보내서 미국 가정의 육아를 일찍부터 엿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의 육아 중 가장 특이했던 건 아기 일 때부터 자녀를 따로 재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인 엄마와 미군 아빠 사이에선 이 문제를 두고 실랑이가 벌어지곤 했죠. 한국인 엄마 입장에선 어느 정도 나이가 될 때까진, 옆에 끼고 자는 것이 당연하고 미국인 아빠 입장에선 아기 일 때부터 따로 침대를 쓰고, 심지어는 방을 따로 쓰는 것까지도 당연하게 생각하니까요.
물론 저희 집도 은채를 옆에 재웠습니다. 태어나서 쭉 은채의 잠자리는 엄마 옆이었습니다. 엄마의 왼쪽인지 오른쪽인지만 바뀔 뿐 거의 일 년 내내 엄마 옆에서 잠들었죠. 물론 가끔 제 옆에서 자기도 했습니다. 안방, 그러니까 세 식구가 자는 침실은 단출했습니다. 은채가 태어나기 전부터 아내와 제가 자던 커다란 라텍스 매트리스만 깔려 있었죠. 가구는 없었고, 옷도 다 옷 방에 걸어 놨었죠. 그러다 은채가 태어나고부터는 안방에 은채의 잠자리를 마련해 줬습니다. 돌이 지나면서부터는 잠자리가 고정됐죠. 제가 매트리스에서 혼자 자고, 은채는 엄마와 함께 새로 잠자리를 만들어서 자기 시작했죠. 그렇게 어린이집 시절까지 보냈습니다.
그러다 일곱 살이 되자, 은채는 혼자 자고 싶어 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그랬습니다. 당시 아내는, 주중에는 엄마가 아침 일찍 출근을 해서 옷 방을 새벽부터 써야 하는데, 그러면 네가 너무 일찍 일어나게 되니 주말에만 한번 자보라고 설득했죠. 그렇게 은채는 일곱 살, 몇 번의 주말을 혼자 옷 방에서 잤습니다. 작은 잠자리를 깔고서요. 그러나 잠시 뿐이었고 다시 엄마 곁으로 와서 일곱 살을 마무리했죠. 초등학교 진학이 가까워 오자 은채는 본격적으로 자기 방을 만들어 달라고 했습니다. 아내는 결국 초등학교 입학 후, 엄마의 두 번째 육아 휴직이 시작되면 방을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엄마와 은채는 아주 긴 협상 끝에 그 마감 시간까지 못을 박았습니다.
당시, 아내는 정말로 3월이 되자 이것저것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안방과 옷 방의 도배, 옷 방에 있던 옷을 옮겨 넣을, 안방에 설치할 붙박이장도 알아봤습니다. 도배 날짜가 정해졌고 우리 부부는 안방과 옷 방에 있던 모든 짐들을 꺼내어 공부방과 거실, 베란다에 옮겨 놨습니다. 도배는 하루 만에 끝났지만 접착제 냄새가 빠지고 마르는 시간을 고려해서 이틀 밤은 인근에 있는, 은채가 주말마다 놀러 가고 싶어 하고, 자고 오고 싶어 하는, 대구로 출장 가서 마침 비어 있는 광안리 외삼촌 집에서 잤습니다. 그 주 목요일쯤엔 붙박이장이 설치 됐고 은채와 우리 부부는 주말 내내 집을 정리했습니다.
은채는 그 주말부터 방에서 혼자 자기 시작했습니다. 아홉 시가 넘으면 이빨을 닦고 잠잘 준비를 하고 자신의 휴대폰으로 기상 알람을 맞춰 놓고 아홉 시 반이면 잠들었습니다. 아내와 전 여섯 시면 일어나 움직이면서 은채가 정말 알람에 맞춰 혼자 일어나는지 궁금한 마음으로 일곱 시를 기다렸습니다. 휴대폰 알람의 울림이 은채 방문 밖으로 두세 번 새어 나오면, 이내 알람은 멈췄고, 바로 은채가 방에서 나왔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혼자 잠들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종종 은채가 잠들기 전까지 은채 옆에 누워서 같이 수다를 떨다가 나오곤 했죠. 은채는 어린 시절부터 그랬듯이 정말 잠이 하나도 안 오는 것처럼 수다를 떨다가 갑자기 푹 잠이 들곤 했죠. 그 후, 아내는 살며시 방을 빠져나왔고요. 우리 부부는 은채가 또 알람에 혼자 벌떡 일어날지 궁금해하며 하루를 시작하곤 했고, 은채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게 부스스한 얼굴로 방문을 열고 나왔습니다. 그렇게 은채는 혼자 자고, 혼자 일어나는 씩씩하고 독립적인 초등학생이 되기 위한 발걸음을 크게 내디뎠죠.
이후, 초등학교 4학년 때, 대대적인 인테리어 공사를 하여 은채 방의 위치를 바꿔주고 공부방을 따로 마련해 줬습니다. 그러니까 자는 방과 공부하는 방을 따로 꾸며준 겁니다. 이때부터 은채는 두 공간을 완전히 분리해서 사용했습니다. 침실에서는 공부를 하지 않았고 공부방에서는 딴짓을 하지 않았죠. 현재는, 공부방을 같이 쓰는 저도, 은채가 공부를 하기 시작하면 그 기세에 눌려 조용히 방을 빠져나와야 할 정도가 됐습니다.
분리된 공간은 스위치 역할을 합니다. 공부방에 들어가면 공부의 스위치가 켜집니다. 침실에 들어가면 휴식의 스위치가 켜지죠. 아니, 엄밀히 말하면 일상의 스위치가 꺼진다고 해야겠군요. 거실과 주방은 가족의 공간입니다. 함께 먹고 웃고 떠들고 가끔 투닥거리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주말에 딸이 공부하는 동안 아내는 거실에서 조용히 TV를 볼 때도 있고 노트북이나 휴대폰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혼자 공부하는 것이 안쓰러워 보여 가끔 등 뒤에서 책을 읽곤 하는 데 그마저도 지치면 베란다에 앉아 책을 보곤 합니다.
공간이 만든 스위치의 힘은 강합니다. 그 스위치는 작심의 스위치이자 의지의 스위치입니다. 자기가 스스로 켠 것이기 때문에 끄는 것도 스스로 합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이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고 공부방에 들어갔기 때문에 자기가 마음먹은 만큼, 계획한 양만큼 공부를 하지 않으면 절대 그 스위치를 끄지 않죠. 그 스위치가 은채에게 있으니 우리도 끌 수 없습니다. 당연히 켤 수도 없죠. 투병의 기억이 있는 부모 입장에서는 무리를 말리고 싶어 걱정스러운 얼굴을 방에 들이밀어 보지만, 은채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세 시간은 기본이고 네 시간, 다섯 시간도 묵묵히 앉아 있습니다. 그러다 다 됐다 싶으면 스위치를 끄고 거실로 나와 어리광을 부리며 배고프다고 합니다.
여기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이 공간 분리의 스위치가 자신에게 있으면 시간도 자신의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아침부터 잘 때까지, 주어진 하루의 시간을 자신이 계획한 대로 사용할 수 있죠. 스위치를 마음대로 켰다 껐다 할 수 있으니까요. 학교에 가서 쉬는 시간마다 책을 읽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그렇게 됩니다. 쉬는 시간마다 학원 숙제를 하거나 영어 단어를 외우겠다고 작심하면 그렇게 됩니다. 반 친구들도 은채의 이런 성향을 알게 되면서 방해하지 않고 있죠.
물론 아무것도 안 하는 날도 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과 연예인 얘기를 하고 화장품 얘기를 할 때도 있습니다. 어제는 친구가 수학 문제집을 골라달라고 부탁을 했다더군요. 또 어떤 때는 친구의 학원 숙제를 도와줄 때도 있습니다. 특히 수학과 영어요. 전, 친구가 문제를 물어보면 최대한 자세히, 친절하게 가르쳐주라고 했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이 얼마나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테니까요. 이런 이유 때문인지, 쉬는 시간이 되면 종종 친구들이 문제집을 들고 온다고 합니다.
전 다음 글에서 앞서 말한 스위치의 근본적인 전원, 동력원에 대해 말하려 합니다. 그 동력원이 아이에게 있을 때, 아이의 공부를 대하는 자세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말이죠. 또 그렇게 되면 부모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하는지도 말이죠. 이를 위해 서두를 잠깐 풀어놓겠습니다. 문해력의 본질이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힘에 있듯이 공부의 본질 또한 같은 것입니다. 온전한 주체가 낯선 세상과 싸워나가며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 나가는 힘, 바로 이것이 공부의 본질입니다. 그 힘에 대해, 스위치를 만드는 동력원에 대해 다음 편에서 더 자세히 말할 것을 약속하며 이번 글은 여기에서 줄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