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주도성과 존중 3 - 꿈과 미래

아빠 품에서 시작하는 문해력 수업 19

by 최영훈

노동 환경의 변화

앞선 글에서 문해력 자체가 삶의 가능성을 열어주던 시대, 그 시대를 살아냈던 어른들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식이, 앎이, 학력이 인생의 가능성을 열어주던 시대의 이야기를 말이죠. 그 시대의 부모님들은 이 가능성을 자식에게 주기 위해, 역설적으로 산업 사회의 노동자로 종일토록 예외 없는 노동을 해야만 했습니다. 장소도, 시간도 온전히 조직과 회사의 것이었죠.


자크 아탈리가 일찍이 말했듯이 이 시기를 지난 후 등장한 이들은 디지털과 지식으로 무장하여 붙박이처럼 자기 자리에서 노동하던 시대의 종말을 앞당긴 호모 노마드, 지식 유목민, 유목민적 노동자가 됐습니다. 자신이 일할 시간과 공간의 선택, 그 자유가 주어지기 시작했죠. 설령 회사에 출근을 하더라도 자리와 시간 선택의 재량권이 주어졌죠.


현재는 더 많은 가능성이 열린 시대입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 공간과 시간의 제약은 더 많이 풀렸고 AI 시대를 맞아 일하는 시간은 줄어들고 생산성은 높아지는 시대가 열렸죠. 역설적이게도, 그 때문에 많은 사람의 일자리가 위협을 받기도 하죠. 때문에 이 시대의 인재의 핵심 능력 중 하나가 자기 삶의 통제력일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정한 공간, 자신이 정한 시간에 자신이 하고 싶고 해야만 하는 일, 혹은 작업을 온전히 에너지를 쏟아서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대죠.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런 시대, 우리나라에서 좋은 대학을 가는 인재들은 철저히 부모의 통제 하에 교육받습니다. 소위, 의대 루트를 밟기 위해 이르면 네 살 때부터, 늦어도 초등학교 때부터 철저히 짜인 코스와 스케줄대로 살죠. 공부하는 시간과 장소도 부모의 통제를 받죠. 물론 입고 먹는 것도요. 다른 명문 대학 진학을 위해 공부하는 학생들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그러니까 대치동의 소아정신과가 성업 중인 것이겠죠. 나이는 들었는데, 공부 외에는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아이와 그런 아이의 상태가 자신이 설계한 자식의 인생 프로그램 완성을 달성하기에는 훨씬 좋다고 하는 엄마가, 어느 순간 마주하게 될 인생의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가족들이 점점 더 많아질 테니까요.


나를 일으키는 근본적인 힘

인생의 가장 근본적인 동력은 자기 자신입니다. 이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죠. 최초의 내 편이자, 최후의 내 편도 자기 자신입니다. 아무리 부모 형제라도 평생을 같이 있어 줄 수 없고 모든 걸 도와줄 수도 없으며 매 순간 함께 할 수도 없습니다. 부모가 죽고 형제, 자매가 결혼하면 혼자 남게 됩니다. 인생의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해야만 하죠.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이런 상상을 하지 못합니다. 아니, 할 수 있더라도, 거부하죠. 가족의 죽음을, 공백을, 부재를 누가 쉽게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설령 한 나라에, 아니 한 도시에, 심지어 이웃에 더불어 산다고 해도, 아니 한 집에 함께 산다고 해도 혼자 결정해야만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부모는 부모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그 나름의 세계가 있고, 그 세계가 주체에게 던지는 고유의 문제들이 있으니까요. 물론 가족이기에 각자의 문제조차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는 것이 많이 있지만 최종 결정자는 자기 자신일 수밖에 없는 문제들이 있죠. 때문에, 결국, 다시 말하지만, 인생의 가장 근본적인 동력도, 최후의 동력도 자기 자신일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나를 일으켜 세워야만 할 때가 오죠.


공부를 밀고 가는 힘의 원천

앞선 글에서 전 스위치에 대해서 얘기했습니다. 은채에겐 다양한 스위치가 있습니다. 공부뿐만 아니라 연예인이나 콘텐츠, 친구, 선생님 등 뭔가를 좋아하게 되고 빠져들게 하는 스위치들이죠. 당연히 관심이 식어 그 스위치를 끄는 것도 은채만이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스위치에는 당연하게도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빈집의 스위치는 그저 플라스틱 조각에 불과하죠. 저는 은채의 이런 수많은 스위치 중에서 공부 스위치를 작동시키고 유지시키는, 그 에너지가 무엇일지 생각해 봤습니다.


엄마, 아빠에게 칭찬을 듣기 위해서일까요? 친구들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해서일까요? 학교와 학원에서 그야말로 에이스로 칭송받기 위해서일까요? 전 이 모든 것이 에너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부의 동기부여가 되기에 충분하죠. 앞서 언급한 개그맨 오정세 씨의 둘째 딸도 학원에 성적 우수자로 자신의 이름이 붙은 걸 보고 갑자기 공부에 매진했다고 하죠. 선생님의 칭찬 한마디로 인생이 바뀐 이야기는 흔합니다. 저 또한 중학교 시절, 영어 선생님의 칭찬을 아직도 마음에 두고 있으니까요. 이 자리를 빌려, 선생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에 대해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는 가장 강력한 에너지는 자가발전입니다. 스스로, 자기로부터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것이죠. 다들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무한동력의 가능성은 오직 인간에게만 있는지 모릅니다. 스스로 자신에게 임무를 준 뒤 그에 걸맞은 능력을 스스로 쌓게 하여 그 임무를 달성하게 하는 존재가, 이 지구상에 인간 말고 또 있을까요?


은채는 초등학교 5학년, 사회 교과서에서 처음 헌법을 접한 뒤 품게 된 법조인의 꿈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국내 법조인이 아니라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일하는 것을 꿈꾸기에 학과 공부는 물론이고 외국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죠. 그 꿈은 부모로부터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권유한 사람도 없습니다. 국제사법재판소는 고사하고 주변에 아는 변호사 한 명 없습니다. 아니, 법무사도 없고 법원에서 일하는 지인도 없죠. 순전히 은채 스스로 발견한 꿈이고 키워가고 있는 꿈입니다.


그 꿈을 가진 뒤, 어느 정도 공부를 해야만 그 꿈에 다다를 수 있는지 스스로 조사하여 알아냈고, 어느 정도 대학에서 어떤 전공을 하고, 유학은 어디로 가면 유리한지도 스스로 찾아냈습니다. 그렇게 자신이 길을 정하고 경로는 정한 뒤 차근차근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와 아내는 그저 부모로서 도와줄 수 있는 걸 최선을 다해 도와줄 뿐입니다.


부모의 자리는 조수석

어느 드라마의 한 장면이 생각납니다. 찾아보니 <남이 될 수 있을까>라는 드라마군요. 그 드라마에서 이혼 위기를 겪고 있는 딸이 엄마에게 의견을 구하자, 엄마는 딸에게 이런 말을 해줬습니다.


“부모는 조수석에 앉은 사람들이야. 네 인생의 운전자는 너야. 아무리 엄마가 중간에 내렸어도 그리고 아빠가 옆에서 아무리 시끄럽게 하고 방해를 해도 운전대를 절대 놓치지 말고 네가 원하는 목적지까지 네 힘으로 가야 돼.”


딸은 9월 중순, 지역 기초 단체에서 개최한 영어 스피치 대회에서 중등부 최우수상을 받았습니다. 딸이 학교에 붙은 공고문을 본 뒤 참가 여부를 저울질했고, 마침 그때 영어 선생님이 참가를 권유했죠. 집에 와서 얘길 꺼내기에 스트레스받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 우리 부부는 찬성도 반대도 바로 못했습니다. 그 며칠 후, 딸이 결심을 했고, 우린 응원하고 돕기로 했습니다. 며칠 후, 딸은 원고를 써서 절 보여줬고, 전 몇 마디 조언만 했습니다. 이후 은채는 혼자 번역을 했고 학원과 학교의 원어민 선생님에게 원고를 보여줬습니다. 괜찮다는 말을 듣자, 이후 연습에 박차를 가했고, 저희 부부는 예선 때도 못 본 스피치 모습을, 몇 주 후 열린 결선에서나 볼 수 있었죠. 우린 그야말로 조수석에 앉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스스로 만든 에너지이니 어쩌면 스스로 꺼질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목표를 바꾼 뒤 다른 에너지를 만들어 낼지도 모르죠. 그러나 걱정은 안 됩니다. 딸은 언제나 자기가 가야 할 곳을 알았고 그 방법도 찾아냈습니다. 그 여정에 필요한 것들도 찾아내어 지금 갖고 있는 것과 앞으로 갖춰야 할 것도 가려냈습니다. 앞으로 갖춰야 할 것을 어디서 어떻게 구하는 지도 스스로 찾아냈죠. 혼자 찾기 어려울 땐, 언제나 엄마 아빠, 삼촌, 선생님들에게 도움을 청했고, 어른들은 함께 찾아줬죠. 인생이라는 탐험을, 그 길고 험난한 여정을 먼저 가 본 사람이 해줄 수 있는 것은 그뿐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물론 외롭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늦게 본 딸의 인생에서 저희가 있는 시기보다 없는 시기가 길다는 걸 알기에 우리는 조수석에 내리는 시기조차 최대한 앞당겨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씩씩하게 자기 길을 가고 있는 딸을 최대한 도우며, 격려하며 우리는 함께 가고 있습니다. 짐을 좀 덜어주고 지칠 땐 가끔 그 마음을 달래고 업어주기도 하지만, 그 이상은 안 합니다. 우리가 모르는 세계, 우리가 살아볼 수 없는 미래로 가고 있는 중이니까요. 다만 지금, 부모로서, 아니 부모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랑을 무한히 쏟아주고, 응원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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