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차 현상 2. 공부를 대하는 마음가짐

아빠 품에서 시작하는 문해력 수업 21

by 최영훈

주중에 학원가에서 볼 수 없는 아이들

저와 아내가 은채의 공부를 위해 해주는 건 뭘까요? 입히고, 먹이고, 재우고, 학교와 학원에 보내고 그 필요에 따라 가방과 학용품, 책과 참고서를 사줍니다. 함께 여행을 하고 감성과 지성에 도움이 될 만한 장소와 공간을 찾아다녔습니다. 이게 다입니다. 아이의 국어, 영어, 수학을 비롯한 대부분의 과목 성적에 어떤 도움을 줬는지, 딱 꼬집어 말할 수 없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한 게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야말로 아이가 공부로 이룬 성과에서 저와 아내의 지분은 그다지 크지 않다고 봅니다. 공부 그 자체로는 말이죠.


앞서 다른 글에서 썼듯이, 결국 공부는 아이의 것입니다. 모든 수고와 노력도 아이가 하는 것이고 그걸 통해 얻은 성취와 영광과 환희 또한 아이의 것입니다. 저와 아내는 그저 뿌듯해하고 기뻐할 뿐입니다. 성취를 바탕으로 아이의 목표가 더 높은 곳을 향하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도와줄까 고민할 뿐입니다. 건강을 위해 먹는 것에 신경을 써주고 체력을 위해 좀 더 휴식 시간을 확보해 주기 위해 자는 시간과 일어나는 시간을 신경 쓸 뿐입니다.


아마 서울의 소위 학군지에 있는 학원가들의 사정도 비슷할 텐데, 현재 학원을 열심히 다니고 있는 학생은 일반고 학생과 재수생이 대부분입니다. 외고, 국제고, 과학고, 심지어 자사고와 전사고 학생들은 학원에 다니지 않거나 다니더라도 주말에 다닙니다. 이유는, 아시다시피 이들 대부분의 학교가 기숙사를 운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죠. 이 학생들을 선발하는 전형의 이름 자체가 <자기주도학습 전형>입니다. 그러니까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지거나 없는 학생은 애초에 이런 학교에 들어가기 힘들고, 들어가더라도 버티기 힘든 겁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앞서 말했듯, 기숙사 생활을 하기 때문에 방과 후 학교 밖에 있는 학원에 다닐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건 표면적인 이유이고 더 큰 이유는 학기 중에 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단순히 교과 공부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연구 과제도 있고 독서와 글쓰기 과제도 많습니다. 심지어 대학처럼 학술제도 준비해야 하죠. 그것도 많게는 세 번까지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학교의 입시에선 학생의 자기소개서와 면접이 중요한 판단기준이 됩니다. 중학교 때 성적은 다들 우수하니 결국 그 성적이 어떻게 형성된 것인지를 보는 것이죠. 만약 그 성적이 끊임없는 학원 순례로 형성된 것이라면 국제고, 외고에서 버티기 힘들기 때문이죠. 그래서 학생의 자기 주도 공부 경험을 세세하게 묻는다고 합니다. 그렇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이를 통해 무엇을 성취했고 앞으로 무엇을 성취해 나갈 것인지, 제법 자세하게 묻는다고 하더군요.


우수한 학생의 마음가짐

당연하게도, 부모들은 자녀가 이런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지, 진학해서 잘 버틸 수 있을지 궁금해합니다. 이런 부모들을 위해서 관련 학원에서 만든 설문 진단표를 본 적이 있습니다. 성적에 관한 질문은 1/3 정도였습니다. 국어, 영어, 수학을 비롯한 주요 과목의 성적을 물었죠. 1/3은 자기주도 학습의 경험과 구체적인 방법이었고 나머지 1/3은 자기 회복 능력이었습니다. 소위 회복 탄력성에 관한 질문이었죠. 즉 학업 중에 안 좋은 결과가 나왔을 때 얼마나 빨리 훌훌 털어내고 심리적으로 회복할 수 있느냐를 묻고 있었죠. 그런데 이 문항보다 제게 더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이 설문을 만든 원장의 말이었습니다.


업무상 그와 대화를 하던 중, 그는 우수한 학생들이 공부, 그 자체를 대하는 자세에 대해서 말을 했습니다. 그는 지역에서 제법 유명한 국어 강사이고 현재는 학원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그동안 소위 명문대와 의대 진학에 성공한 많은 학생들의 공부 여정을 지켜봤죠. 그런 그가 “공부를 정말 잘하는 애들은 공부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라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예를 들어, 등교를 했는데 몸이 안 좋습니다. 그런데도 말하지 않고 있는데, 선생님이 눈치채고 조퇴를 권합니다. 그러면 이 학생은 조퇴를 한 뒤 가까운 병원에 가서 진료를 보고 처방을 받아 약을 탄 뒤 다시 학교로 돌아온다고 합니다. 만약에 감기와 같은 전염이 염려되는 질병일 경우엔 마스크를 끼고 복도에 책상을 갖고 나가서 끝까지 수업을 듣는다고 합니다. 학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고1 때, 고1, 고2, 고3 모의고사를 봐도 다 1등급이 나오는 학생에게 더 이상 학원에 나올 필요가 없다고 말하면, 그냥 이렇게 나와서 선생님 강의를 듣는 것만으로도 제가 모르고 있던 것, 더 알고 싶었던 것이 채워진다며 꾸준히, 묵묵히 나옴 답니다.


이런 대화 끝에 그는 한마디를 덧붙였습니다. 공부를 정말 잘하는 학생의 가정의 특징이 있는 데 부모는 자녀에게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하지 않고, 오히려 건강과 정신적 여유를 위해 공부를 말리기까지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실제로 명문대나 의대를 보낸 학부모에게 예비 고3 학부모를 대상으로 강연을 요청했을 때 자신은 한 것이 없다며 완곡히 거절당하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했습니다.


삶에 대한 진지함

여러분도 저처럼 몇몇 유명인들이 떠오를 겁니다. 삼 형제를 다 서울대학교에 보낸 가수 이적의 어머님인 여성학자 박혜란 여사의 교육법이 우선 떠오릅니다. 주말에 공부를 해야 한다는 아들을 주말 농장에 데리고 가는 이상한 아빠 정은표 씨도 생각납니다. 그 아들, 정지웅 군도 서울대학교에 들어갔죠. 큰 딸을 과학고에 보낸 개그맨 오정세 씨도 생각납니다. 물론 좋은 대학에 간 아이들 중 상당수가 강압적인 교육, 쉴 틈 없는 사교육을 중심으로 공부를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학생들이 일주일 내내 이 학원 저 학원을 다니면서 내신 관리와 입시 준비를 하고 있죠. 그러나 정말 공부를 제대로 하는 아이는 스스로 공부를 하는 아이입니다. 이런 아이들이 우리가 소위 말하는 명문고에 진학을 해서 수준 높은 아이들과 자신의 힘으로 경쟁을 하죠. 그 경쟁의 성공도, 실패도 다 자신의 자산으로 만들면서 말이죠.


전 이때까지 딸에게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한 적이 없습니다. 그건 아내도 마찬가지죠. 저 같은 경우는 가끔, 요즘 무슨 책을 읽느냐고 물어볼 뿐이고 아내는 딸의 피부와 헤어 상태를 관찰하고 그 관리법을 놓고 잔소리를 가끔 할 뿐입니다. 공부하고는 전혀 관계없는 잔소리들이죠. 물론 은채가 좀 특이한 경우이긴 합니다. 투병의 시간이 있었기에 공부보다, 진학보다, 대학보다 건강이 가장 우선시되는 아이이죠. 그러나 돌이켜보면 은채는 언제나 알아서 했습니다. 해야 될 숙제를 했고 해야 될 연습을 했습니다. 그게 주산 대회가 됐든, 줄넘기 자격증 시험이 됐든 하기로 했으면 성이 찰 때까지 연습하고 준비했습니다. 학습지를 한 번도 거른 적이 없고 학교 숙제를 밀린 적도 없습니다. 전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학생들이 갖추고 있어야 할, 갖추고 있는 기본 소양이라고 생각했죠. 저도, 아내도 딴 건 몰라도 성실함은 있었으니까요.


진지함의 결여

그러나 은채가 중학교에 올라간 후,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학교에서는 과제나 숙제를 안 하거나 미루는 애들이 많았습니다. 부산에서 제법 우수한 애들만 모아놓은 영어 영재 교육원에서도 마감 기일을 넘겨 제출하거나 심지어 열흘, 보름이 지나도 제출하지 않는 애들도 많았습니다. 제출하는 아이들 중에선 형식과 기준에 맞지 않거나 미달인 것을 거리낌 없이 제출하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이건 성실함의 문제일까요? 단순한 게으름이나 부주의의 문제일까요? 전 이건, 앞선 글에서 말한, 태도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진지함의 결여라고 생각합니다.


공부를 대하는 마음가짐은 삶을 대하는 마음가짐과 연동됩니다. 자기 인생과 가족의 인생, 자신의 미래와 우리 가족의 미래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아이는 지금 하는 공부의 가치를 알고 있습니다. 좋은 성적을 거둬 1등을 하고 칭찬을 받고 대우와 대접을 받는 기쁨 때문에 공부를 하는 아이들도 어느 순간에는 더 궁극적인 공부의 가치를 알게 됩니다. 책을 왜 읽어야 하고 숙제를 왜 제 때 해야 하며 제시된 기준과 수준에 맞게 프로젝트를 해내는 것이 왜 중요한지,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알게 됩니다. 만약 그걸 모른다면, 그런 진지함이 결여되어 있다면 어느 순간 성적은 떨어질 겁니다. 공부에 대한 열정도 사라질 겁니다. 삶의 목표가 사라지면 삶의 의미가 함께 사라지는 것처럼 말이죠.


말을 물가에 끌고 갈 수는 있어도 물을 마시게는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부모들이 끌고 갈 뿐만 아니라 물까지 마시게 합니다. 심지어 그 양과 때와 장소까지도 정해주죠. 당연히 끌려가는 말과 같은 처지인 아이들은 처음에 편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 가는 여정에 대한 고민과 물 앞에서 마셔야만 하는 이유에 대한 생각을 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갈증을 느끼기 전에 알아서 때가 되면 마시니 당연히 갈증의 고통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는 속담처럼 우리가 뭔가를 하는 데 있어서 자발적인 동기부여는 중요합니다. 필요의 절박함과 성공에 대한 간절함이 더 깊고 넓은 우물 파기를, 그 힘든 일을 하게 하는 것이죠. 어쩌면 공부도,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은채는 원래 진지하고 생각이 많은 아이입니다. 그래서 아이돌을 좋아하고 요즘처럼 F1에 갑자기 빠져서 이런저런 정보를 찾아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오히려 마음이 놓일 정도입니다. 여느 또래의 애들 같아서요. 하지만 은채의 내면엔 삶에 대한 진지한 뭔가가 있습니다. 투병 이후 그것이 더 단단해진 것 같습니다. 때문에 종종 무리를 합니다. 평소 자던 시간보다 한 시간 정도 늦게 자거나, 아니면 평소 기상 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나서 학원 숙제를 하거나 책을 읽곤 합니다. 우리 부부가 잠든 뒤, 혹은 아직 깨기 전에 해야 혼나지 않기 때문에 종종 이러는 것이죠. 그때마다 조용히 자기 침실에서 나와서 공부방으로 스며듭니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세 번 중 두 번은 엄마에게 걸리죠. 그럼 또 잔소리를 듣습니다. 무리하지 마라. 정신이 있는 거냐 없는 거냐. 너한테 지금 중요한 게 뭔지 아느냐........


끝으로, 진지한 아이들은 혼자 있는 걸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왕따이거나 친구들을 업신여기거나 친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리 지어 다니는 데서 어떤 심리적 위안을 얻지도 않고 어디 소속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소외감을 느끼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혼자만의 시간과 장소에서 뭘 해야 하는지도,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도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다음 글에선 이것에 대해서 더 길고 깊게 다뤄보려 합니다. 혼자 있는 것을, 혼자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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