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우리 아이의 글쓰기

아빠 품에서 시작하는 문해력 수업 24

by 최영훈

읽기와 글쓰기의 차이

앞서, 읽기와 쓰기의 차이에 대해 말했습니다. 읽기는 노력의 영역이고 쓰기는 재능의 영역이라고 말이죠. 사실입니다. 읽기는 누구나 노력만 하면 자기가 원하는 수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개인 역량에 따라 시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마음만 먹으면 가능합니다. 어부 김기택 씨가 그 산 증인입니다. 김기택 씨는 동서양의 인문 고전을 모아놓은 한길 그레이트 북스 196권을 다 읽었습니다. 첫 권부터 시작해서 150번까지 읽는 데 3년 반이 걸렸다더군요. 그분은 그야말로 독서가 중에 독서가로서 이십여 년 간 2천5백 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그분이 공업고등학교가 최종학력인 바쁜 어부임을 감안하면 정말 놀라운 양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반면 쓰기는 재능의 영역입니다. 문학 분야의 글은 두말할 것도 없고 실용적인 글 또한 그렇습니다. 특히 서평, 에세이, 카피라이팅과 같은 실용문의 생산능력은 그야말로 재능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 오랜 시간의 숙련이 있어야 하죠. 때문에 지금도 저에겐 하루에 두세 번씩 “고수”를 찾는다는 알람이 옵니다. 혼자서는 독학할 수 없고 독파할 수 없는 세계가 글쓰기의 영역이라는 걸 알고 있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겠죠.


책을 많이 읽으면 글쓰기 실력도 늘까?

그렇다면 당연히 이런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초중등 학부모들이 갖고 있는 질문 또한 유사합니다. “우리 애는 책을 많이 읽는 데 왜 글쓰기가 안 될까요?”와 같은 유형의 질문이자 의문이죠. 이 질문을 더 솔직하게 표현하면 “그럼 독서 학원을 다닌다고 글쓰기 실력이 느는 건 아닌 건가요?”가 되겠네요. 맞습니다. 독서를 많이 한다고, 관련 학원에서 체계적으로 독서를 한다고 해서 글솜씨가 느는 것은 아닙니다. 책의 투입이 글의 생산량으로 직결되는 건 아니라는 것이죠.


알다시피, 작가들 대부분이 독서가이지만 독서가의 대다수는 작가가 아닙니다. 독서가의 상당수가 작가가 됐다면, 읽은 양의 비례하여 글솜씨가 좋아졌다면 출판계의 지형은 지금과 달랐을 것입니다. 베스트셀러 작가의 명단도 지금과 달랐겠죠. 극단적인 예를 들면, 일반 축구팬의 축구 애호도가 그의 축구 실력과 정비례 관계가 아닌 것과 같은 것이죠. 취미로 하는 수준이라면 몰라도 선수 수준은 될 수 없죠. 어느 분야나 애호가와 전문가의 간극은 이렇게나 먼 것입니다.


글쓰기 실력 향상의 조건들

제가 여러분께 반문을 하겠습니다. 독서는 글쓰기에 도움이 될까요?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습니다. 되는 경우를 먼저 보죠. 저도 그렇지만 많은 글쟁이들은 선망하는 작가가 있습니다. 닮고 싶은 작가, 추구하는 작가의 문장이 있죠. 심지어 당사자 모르게 그 작가를 스승으로 삼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가 존 맥피를 그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죠. 아이들이 그런 열망이 있을까요? 책을 읽으면서 그런 마음이 들까요?


그런 마음이 들려면, 우선 좋은 문장을 가려낼 줄 알아야 합니다. 이건 책을 많이 읽은 어른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책을 많이 읽은 성인이라도 미문(美文)이 거의 없는 자기 계발서나 실용서만 읽은 이라면, 또는 한 작가의 작품만 읽어서 작가들의 문장 간 대조를 해 본 적이 없다면 좋은 문장을 가려내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좋은 문장을 가려낼 수 있으면 그런 문장을 바로 쓸 수 있을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흉내는 낼 수 있을지 몰라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아니 애초에 흉내 내기에 불과하니 자기 것이라는 말도 성립할 수 없죠. 특히 문학에선 더 그렇습니다. 시인과 소설가들이 자기만의 문체를 찾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는지 잘 알 겁니다. 저널리스트들도 깊이 있는 글을 쓰기 위해 신입 기자 시절, 간단한 사건 기사부터 쓰기 시작해서 데스크라 불리는 부장의 위치에 올라 사설을 쓸 때까지 긴 세월 글을 제련(製鍊)하고 정련(精鍊)합니다. 거듭 말하지만 글쓰기는 이와 같이 길고 긴 숙련의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부모님들이 던질 수밖에 없는 질문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글쓰기 실력은 어떻게 닦을 수 있을까요? 언제부터 쌓아야 할까요? 그 실력은 언제 필요할까요? 질문의 역순으로 답을 해보겠습니다. 중학교만 올라가도 아이들의 글쓰기 능력은 성적에 직결됩니다. 수행평가의 상당수는 글쓰기와 연관됩니다. 독후감은 기본이고 서평도 써야 합니다. 감상문도 수시로 있습니다. 연구보고서, 탐구보고서, 기사 분석 및 비판, 그야말로 끝도 없죠. 딸처럼 영재교육까지 받는다면 한 달에 쓰는 글의 양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이때를 위해서 아이는 언제부터 준비해야 할까요?


두 번째 질문의 대답으로 이어집니다. 한글을 익힌 후 글을 쓸 수 있기 시작할 때부터 글을 쓰게 해야 합니다. 사실 이때부터 아이들은 제법 많은 글을 씁니다. 편지도 쓰고 생일 카드도 씁니다. 방학 숙제로 독후감도 쓰고 여행기도 쓰죠.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글쓰기를 지겹고 힘들어합니다. 당연합니다. 연필로 꾹꾹 눌러 글을 쓰는 행위는 일단 육체적으로 힘든 일입니다. 더불어 그렇게 열심히 시간과 힘을 들여 글을 썼다고 해서 이렇다 할 보상이나 기쁨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받아쓰기라면 점수라도 받지만 여타 다른 글쓰기는 목전의 보상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서서히 글쓰기를 멈춥니다. 부모님들이 마지막으로 생일 편지나 카드를 받는 그 시점이 바로 글쓰기를 멈추기 시작하는 시점일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써야 하기에 가장 절박한 질문이 첫 번째 질문입니다. 무책임한 답인 것 같지만 열심히 쓰게 해야 합니다. 책을 많이 읽는 건 기본입니다. 그 후 책을 소재로, 그것과 연계하여 다양한 길이의 글을 써봐야 합니다. 글을 읽고 쓰면서 스스로 좋은 글, 효과적이면서 효율적인 글을 가려낼 줄 알아야 하고 분량과 집필 시간과의 관계도 감을 잡아야 합니다. 또, 글을 고치는 법도 익혀야 합니다. 문장 안에서 주어와 목적어, 서술어의 배치를 바꿔보는 연습을 해야 하고 문단 안에서 문장의 위치와 순서를 재배열해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이어서 하나의 글 안에서 단락의 이동을 통해 얻어지는 효과도 느껴봐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글에 대한 태도는 진지하되 접근은 좀 가벼웠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이 글을 “잘” 써야 한다는 강박을 갖지 않았으면 합니다. 앞서 썼듯이 요구되는 글의 성격과 분량에 딱 맞출 만큼의 글을 써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썼으면 합니다. 내 생각과 철학을 최대한 정확하고 담백하게 표현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썼으면 합니다. 선생님을 비롯한 어른들에게 글을 잘 썼다는 칭찬을 받을 필요는 없다고, 그저 주어진 과제를 성실히 잘 해내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썼으면 합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지금의 교육 환경에서는 아름답고 멋있는 글을 쓰는 것보다는 글 자체의 생산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이에게도, 부모에게도 그나마 스트레스가 적으리라 생각됩니다.


짧은 후기, 그리고 약속

전 이번 연재를 하는 동안 커리어의 전환을 겪었습니다. 연재가 시작되기 전인 7월 중순에 맞은 카피라이터 경력의 종착역은 아이들에게 독서와 글쓰기를 가르치는 강사라는 출발역으로 전환됐습니다. 이제 막 새로운 커리어가 시작됐습니다. 그 시작이 이번 연재의 끝과 맞물리게 됐습니다. 마치 디젤 엔진 시대의 기차가 달려왔던 노선에서 다른 노선으로 옮겨가기 위해 특정 역에서 레일을 바꾼 뒤에 출발하는 것처럼 말이죠.

후에 다음 연재에 관해 더 긴 글을 올리겠습니다만, 그전에 마무리 인사를 겸해 짧게 언질을 드리자면, 에리히 프롬과 한병철의 책을 소재로 연재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또, 본격적으로 아이들의 글쓰기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글의 연재도 구상하고 있습니다. 어떤 내용이든, 연재는 내년쯤에나 시작하려 합니다. 그때까지 종종 매거진을 통해 독자들과 만나겠습니다.


문해력의 공포를 겪고 있는 아이들과 그 부모님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연재였습니다. 많은 분들께 실질적인 도움이 됐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아빠 품에서 시작하는 문해력 수업>을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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