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채는 폰이 두 개였다. 하나는 입학하면서 사준 키즈폰, 다른 하나는 엄마가 쓰던 스마트 폰. 키즈폰은 폴더폰이라고 하기에도 스마트폰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그야말로 초등학생을 위해 만들어진 휴대폰이다. 마치 스포츠 세단이 스포츠카도, 세단도 아닌 애매한 제품인것처럼. 그래서 아마 키즈폰이라고 이름 붙였겠지.
스마트폰은 엄마가 쓰던 폰이지만 충분히 현역으로 뛸만한 버전과 사양이다. 은채는 그 폰으로 와이파이를 잡아 이런저런 놀이를 했다. 사진 찍은 어플이 그렇게 많은지 처음 알았다. 스마트폰 하나로 그렇게 다양한 놀이를 할 수 있는지도. 가끔 은채 성화에 못 이겨 이상한 앱으로 필터링된 투 샷의 모델이 되어 줘야 했다. 드라큘라가 되기도 하고 못 생겨지기도, 때로는 주변에 폭죽이 터지기도 한다. 또 닮은꼴 연예인을 찾기도 하고.
스마트폰을 2G 폰처럼 쓰는 아빠
난 스마트 폰을 쓴 지 4년 정도 됐다. 그전까지는 당연히 2G 폴더폰을 썼다. 번호도 011이었다. 딱히 아쉬울 게 없어서 스마트 폰의 필요를 못느꼈는데 딸이 학교에 들어가니 학교와 교육청 등에서 보내는 정보를 받기 위해선 스마트 폰이 필요했다. 또 이상하게 은채가 학교가 들어가고 난 후부터 우리 팀의 일이 많아졌다. 안 그래도 나이 들수록 기억력이 떨어지는데 일정과 프로젝트를 기억하고 체크하고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카피 한 줄을 메모할 일이 점점 늘어난 것도 스마트폰 개통의 또 다른 이유가 됐다. 더불어 또 은채의 스케줄도 내 평범한 기억력으로는 헛갈리기 일쑤였고.
이런저런 구체적인 필요로 개통한 스마트폰이다 보니 사용하는 애플리케이션도 뻔하다. 일 때문에 카카오톡은 놀고 있는 아내의 스마트폰으로 대략 5,6년 전부터 해 왔다. 유일한 SNS는 지역의 관련 업계나 평소 관심 있는 출판사나 작가들과 간접으로나마 소통하고 싶어 사용하는 페이스북뿐이다. 여기에 불과 몇 개월 전에 가입한 브런치와 설거지할 때 음악을 듣거나 쉴 때 스포츠 하이라이트를 보기 위해 사용하는 유튜브, 한 6~7년 해 온 네이버 블로그 사용, 여기에 운동할 때 사용하는 운동용 인터벌 애플리케이션이 내 스마트폰 사용의 대부분이다.
스마트폰으로 쇼핑을 한 적도 없고 당연히 사람 만나는 애플리케이션이나 주문하는 애플리케이션도 사용해 본 적 없다. 당연히 셀카도 찍지 않고 인증샷 같은 것도 찍지 않는다. 카메라 애플리케이션으로 제일 많이 찍는 것은 서점 사이트에서 책을 찾은 뒤 기억하기 위해 그 화면을 찍을 때, 감독과 로케이션 헌팅이나 가족 여행을 갔을 때 찍는 풍경이나 건축물, 평소에 관심 있는 꽃이나 새를 찍는 게 전부다. 그나마 좀 창의적인 사진을 굳이 꼽으라면 브런치에 <영화의 위로>를 연재할 때 주제에 맞는 이미지를 올려야 그나마 예의가 아니겠나 싶어 찍어 올린 사진들이 전부다.
딸이 보여준 신세계
그러나 앞서 말했듯, 딸에게 스마트 폰은 나와는 차원이 다른 도구다. 사고 싶은 상품을 검색하고 가격도 비교하고 파는 곳도 알아본다. 대부분은 슬라임이나 자잘한 장난감들이지만 은채는 열심히 들여다본다. 엄마가 퇴근하면 자신이 찾은 상품을 보여주며 상의를 한다. 엄마는 함께 쇼핑하는 친구처럼 아주 진지하게 봐준다. 가장 싸게 파는 쇼핑몰을 찾고, 이 물건이 꼭 필요한 것인지도 따져본다. 때로는 맞장구를, 때로는 반대와 항의가 엇갈리며 두 사람은 모바일 쇼핑을 한다. 나중에 택배를 받아서 뜯어보면 이게 그렇게까지 심사숙고하며 고를 물건인가 의심스럽기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쉰인 아빠의 생각이다. 아빠에게 온라인 쇼핑은 물론이고 거의 모든 쇼핑이 성가신 일이니까.
EBS <보니하니 쇼>에 참여하기도 했다. 엄마에게 무슨 애플리케이션을 깔아달라며 몇 주 동안 실랑이를 하더니 이 TV 프로그램을 본방 사수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 방송은 재방송이 없는, 매일매일이 라이브다. 한가한 낮 시간에 다시 해주는 저녁 정보 프로그램과는 그 희귀성에서 차원이 다른 것이다. 광고가 나올 때부터 출석 체크하라는 공지가 우상단에 뜬다. 은채는 애플리케이션을 띄우고 출석 체크를 한다. 별 거 없다. 자기 별명과 짧은 인사말을 쓰는 게 다다. 그러나 이 들 중 한 명을 뽑아 매일매일 선물을 준다.
학교를 못 가던 2학년의 5월 중순, 은채는 이 출석체크에서 당첨이 됐다. 은채가 열심히 출석 체크를 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데 방송을 시작하자마자 두 어린 MC들은 출석 체크 해준 몇몇 친구들의 사연을 재빠르게 읽어나갔다.
“큐티 은채님, 고마워요.” 은채와 난 깜짝 놀랐다.
뒤이어 “오늘 선물 받을 친구는 바로 큐티 은채님.”
선물은 안타깝게도 공룡 변신 로봇이었다. 그러나 그 실물로 현존하는 선물보다 자신의 이름이 불리어진 바로 그 순간이 은채에겐 5월의 가장 큰 선물이었을 것이다.
우리 때는 라디오 방송국에 엽서를 보내야 했다. 나도 <배철수의 음악캠프>의 <긴 곡 코너>에 사연을 보내 당첨이 된 적이 있다. 그때 아마 에릭 클랩톤의 <Unplugged>에 실린 <Old love>를 신청했을 거다. 선물은 지금은 없어진 티피코시라는 의류 브랜드의 상품권이었고. 그러나 이젠 사연을 보내고 며칠을 기다리던 시절은 끝났다. 그걸 머리로만 알다가 막상 현실로 목격하자 놀랍기만 했다.
은채는 자신에게 필요한 도구와 정보라면 주의 깊게 살피고 세심히 사용 요령을 익혀 제 것으로 만든다. 이런 성격이 나쁜 쪽으로 쓰이면 부모 입장에선 아주 피곤하겠지만 다행히 아직은 긍정적으로 쓰이고 있다. 자신이 정보를 찾아 자신이 스스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부모의 도움이 필요할 땐 도움을 받아 자신만의 세계를 조금씩 넓혀가는 것. 이 또한 어쩌면 아이에서 소녀로 가는 또 하나의 계단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