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차려 더 맛있는 밥상

학교 밖 청소년들의 무료식당, 노원 러브투게더 현장을 가다

by Joseph Cho

함께 차려 더 맛있는 밥상
- 학교 밖 청소년들의 무료식당, 러브투게더 현장을 가다


“가출한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혹시나 딸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PC방에서 지내는지, 찜질방에서 지내는지 걱정했는데, 딸이 따뜻한 밥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보니 안도가 됐습니다.”

먼발치서 숨어 딸을 바라보던 아버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한참동안 딸의 얼굴을 쳐다보다 발길을 돌리던 그는 상담원들의 설득으로 용기를 냈다. 아버지와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던 딸은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부녀의 맞잡은 손에 상담원들은 미소를 지었다.

청소년 밥퍼 현장에서 만난 한 부녀의 이야기다. 청소년들의 마음이 열리고 가족이 회복되는 곳. 지난해 12월 4일, 러브투게더의 청소년 밥퍼 봉사 현장을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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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보건소 앞 공터에 들어선 푸드트럭. 자원봉사자들이 푸드트럭에서 음식과 식자재를 나르고 있다. (이하 사진 제공: 박창현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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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워진 천막기둥에 바람막이 천을 둘러서 완성된 식당.



“오라이, 오라이” 저녁 6시 30분. 푸드 트럭 한 대가 노원구청 보건소 앞 공터로 들어섰다. 기다리고 있던 십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졌다. “하나, 둘, 셋, 하면 폅니다.” 구령과 함께 텐트를 양 옆으로 잡아당기자 50평 남짓 천막이 쳐졌다. 기둥만 있고 비어있는 공간들은 사람들의 바쁜 움직임으로 금세 하나하나 채워지기 시작했다. 식자재, 책상, 의자, 난로를 놓고 바람막이 천으로 두르니 10분도 안돼 한눈에 보기에도 근사한 식당이 뚝딱 완성됐다.

“축복합니다. 사랑합니다. 하이파이브!” 이현우 목사 (상계교회부목사·러브투게더 사역담당)의 힘찬 구호와 함께 러브투게더 식당 문이 활짝 열렸다. 노원구청 보건소 앞마당에는 매주 금요일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길거리 청소년을 위한 심야 무료식당이 차려진다. 구청에서 장소를 제공하고 노원상계교회 자원봉사자들은 식사를 준비한다. 노원경찰서 학교전담경찰관들이 함께 밥을 먹으며 청소년들의 말동무가 되어주고, 노원구에 사는 음악가들의 재능기부 공연으로 식당 분위기를 더한다. 지난해 11월 6일 1주년을 맞은 이곳에는 매주 평균 50-60명의 청소년들이 다녀간다.


께하는 따뜻한 밥 한 끼, 청소년들에게는 큰 힘이 돼


“이 시간엔 집밥 보다 여기서 먹는 밥이 더 맛있고 따뜻해요. 부모님이 맞벌이하셔서 제가 차려먹어야 되거든요.”

김수지(가명·16)양은 지난해부터 이곳을 꾸준히 찾고 있다. 친구들과 함께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기 때문. 김양처럼 집에서 저녁을 혼자 해결해야하는 학생부터, 가출 등 학교 밖 청소년들이 이 곳의 단골 손님이다. 이젠 입소문을 타고 노원구 청소년들 사이에서 하나의 ‘밥문화’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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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메뉴 – 과일샐러드, 된장국, 돼지불고기, 김치, 부식으로 제공된 건빵과 귤


입맛에 딱 맞춰진 반찬도 청소년들의 발걸음을 끊이지 않게 하는 비결이다. 이날 식판엔 돼지불고기, 과일샐러드, 김치, 우거지 된장국이 올랐고 건빵과 귤이 후식으로 제공됐다. 청소년들의 한 끼 식사를 위해 상계교회 조리팀은 당일 새벽 장을 보고, 10여명의 봉사자들이 함께 모여 오후 3시부터 요리를 시작한다. 3첩 반상을 차릴 요리가 완성되면 푸드 트럭에 실려 오후 6시경 현장으로 배달된다. 조리팀, 이동팀, 배식팀, 상담팀, 설거지팀 등 각자 맡은 역할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여유 있게 100인분의 식사를 준비하지만 먹성 좋은 아이들의 배를 든든히 채우려면 모자라다. 여분의 라면과 밥을 항상 준비해두는 이유다. 한 주 식비로만 50만 원이 사용되지만, 입소문을 듣고 온 지역 주민들의 십시일반 기부와 봉사로 러브투게더 청소년 심야식당은 1년 넘게 유지되고 있다.


찰아저씨와 함께 식사하는 학교 밖 청소년들


이곳엔 함께 밥을 먹어주는 경찰관이 있다. 제복을 입지 않아도 이 동네 아이들은 누가 경찰관인지 한눈에 알아본다. 매주 함께 밥을 먹는 식구이기 때문. “아저씨 다음주에 경찰서 구경가도 돼요?” 식사를 끝낸 친구들이 경찰관이 앉아 있는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태호(가명)는 왜 안왔어?” “집행유예 받았어요.” “집행유예가 아니라 선고유예 아니야? 보호관찰 받는 중인 것 같은데.” “두개가 다른 거에요?” “10시나 11시에 전화 와서 어디 있냐고 확인하는 거 있잖아.” “아 정민이 처럼요” “그래 2년동안 확인하는거.”…“아저씨 다음주에 경찰서 구경할 수 있어요?” “금요일 날 점심 때 올래? 친구들도 같이 데리고 오렴.”]

러브투게더 시작부터 참여해온 문정호 경사(노원경찰서·46)의 휴대폰엔 60명이 넘는 아이들의 전화번호가 입력돼있다. 매주 이 시간 문정호 경사를 비롯한 12명의 학교전담경찰관(SPO)은 팀을 이뤄 아이들을 만난다. 경찰관들은 상담과 고민을 들어주는 멘토 역할부터 천막설치, 길거리 러브투게더 홍보까지 도맡아 하고 있다. 경찰서에서 담당했던 사건의 아이들을 이곳으로 초대하기도 한다. “한번 사건이 종료되면 연락하는 것이 쉽지 않아요. 그런데 이곳으로 초대해서 함께 밥 먹으면서 잘 지내는지 격려도 해주고 도움도 줄 수 있게 됐어요.” 학생들과 한참 이야길 나누던 문 경사는 “아이들이 이렇게 된 것은 우리 어른들의 책임도 있다”며 “청소년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서 따뜻하게 품어주는 것도 자신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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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경찰서 학교전담경찰관, 12명의 SPO가 돌아가며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왼쪽부터 윤원상 경장 문정호 경사 장재성 경위



역사회가 함께해 더 풍성해진 밥상


교회, 경찰, 구청, 시민들이 협력해서 청소년을 위한 밥상을 차리기 시작한 것은 2014년 11월 7일 부터다. 상계교회가 구심점이 되어 시작한 일에 경찰서와 구청, 지역주민과 청소년 유관단체가 힘을 더했다. 시작은 서길원 상계교회 담임목사의 비전이 계기가 됐다.

“어느 날 교회에서 아이들이 하룻밤을 자고 간 흔적이 발견됐습니다. 담배꽁초와 위장약봉투가 남아있었죠. 아이들이 가출하면 끼니를 자주 걸러 위가 상해 위장약을 먹는 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서 목사는 함께 할 기관들을 찾기 시작했다. 노원구, 경찰서, 청소년 쉼터, 대안학교 등 다양한 기관들이 그의 뜻에 함께했다. 서 목사는 “교회가 단독으로 하지 않고 지역사회와 힘을 합친 덕분에 훨씬 더 큰 시너지 효과를 얻었다”면서 “종교 색을 내지 않아 참여하는 사람들의 거부감이 줄었고, 지역 유관기관과의 협조가 수월해졌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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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 오후 3시부터 시작되는 조리- 조리봉사팀이 상계교회 주방에서 100인분의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경찰업무에도 많은 이점이 있었다. 김영범 과장(노원경찰서 여성청소년과·46)은 “청소년들과 직접 만나 정확한 실태파악을 할 수 있고, 아이들과 신뢰를 쌓을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점”이라고 밝혔다. “학교 밖 청소년을 청소년기관에 인도해주는 정책은 있지만 도와주고 싶어도 아이들의 동의를 얻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러브투게더를 통해서 신뢰가 생기니 아이들이 선도 프로그램에 연결되는 비율이 높아졌습니다.” 범죄를 저질렀던 청소년을 지속적으로 만나게 되면서 재범 예방 및 관리도 가능해졌다.

장소는 구청이 제공했다. 노원구청에서 비어있는 보건소 앞 공터를 내놓은 것. 교회, 경찰서, 구청의 삼박자가 맞아떨어지자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노원 주민들도 적극 팔을 걷고 나섰다. 지역 음악학원 선생님들과 음악가들은 소문을 듣고 찾아와 재능기부 연주 자원봉사를 자청하고 나섰다. EMA(음악전문기업)는 러브투게더 후원을 위한 자선 음악회를 자발적으로 열기도 했다. 동네 태권도 관장, 헤어디자이너들은 이곳을 찾아와 학생들에게 진로상담을 도왔다. 지역 상인들도 도움의 손길을 자처하고 나섰다. 인근 설렁탕 집 사장은 몇 달 째 과일 서너 박스와 음료수 등을 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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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A(노원지역음악가)의 재능기부로 식당의 분위기를 더하고 있다.





지역사회의 끈끈한 협력 덕분일까. 이곳을 찾은 학교 밖, 비행, 범죄, 가출 청소년들이 노원청소년지원센터(나우학교)를 비롯한 노원지역 청소년 유관단체에 연계되어 도움을 받고 있다. 자퇴한 청소년들은 검정고시와 취업준비과정에 연계됐고, 가출 청소년이 집에 돌아가 가정이 회복되는 이야기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서 목사는 “꼭 밥퍼 때문은 아니겠지만 노원구 경찰서장이 러브투게더 이후 청소년 범죄율이 떨어졌다며, 감사장을 보내주셨다”면서 “노원구의 협력모델이 전국적으로 퍼져나가 전국에 청소년이 희망을 되찾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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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과 자원봉사자들로 가득 찬 청소년 심야식당 러브투게더

글/조은총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 4기)

기사출처/더나은미래(www.betterfuture.kr)

* 이 글은 더나은미래 청년세상을담다(4기)에 게제됐었던 글입니다.


청년세상을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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