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렇게 내가 만나는 공간과 다르게 호흡한다.
“반자동문의 스위치를 눌렀다. 여느 때처럼 빵집의 홀은 사람들로 붐볐다. ‘어디에 놓으면 티가 덜 날까? ’
사람들의 동선과 스텝들의 행동을 살피며 눈치를 보았다. 그래도 빵이 진열된 전면 홀이 내가 하는 행위를 좀 더 덜 신경 쓰지 않을까?
다들 진열된 빵을 고르느라 진열장 쪽으로 시선이 몰려있을 터이니. 천정을 향해 방향을 정하고 약간 무릎을 구부려 바닥에 디지털 자 ( digital ruler) 놓았다. 사실 무척 쑥스러운 일이라 혹여 나의 행동을 의심해 물어보면 그때 이야기하리라, 조용히 디지털 자를 슬쩍 바닥에 놓았다. 디지털 숫자가 나타났다. 5m가 넘지는 않았다. 누가 볼까 얼른 디지털 자를 다시 가방에 넣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이제 나도 빵을 고르러 진열장으로 향했다“
이것은 내가 평소 좋아하는 공간 볼륨을 가진 카페 겸 빵집의 층높이가 궁금해서 매장 직원들 몰래 눈치 보며 했던 일화이다. 내 건물을 설계하면서 높은 층고의 공간들이 주는 기분좋은 적정 높이를 다시금 확인하고 싶었다. 그것은 평소 나를 기분 좋게 해주었던 공간을 찾아서 층높이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인간이 공간의 크기를 감지하는 느낌은 단순히 작동되지는 않는다. 가로세로 폭이 얼마냐에 따라 높이가 주는 감흥은 달라진다. 깊이, 폭, 높이의 비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이뿐아니라 그 공간의 재료, 조명, 색깔에도 영향을 받는다. 그곳에 놓여있는 가구에 따라서도 공간이 높아 보이기도 하고 낮아 보이기도 한다.
직업상 이런 작동요소를 잘 알지만 높이에 따라 달라지는 감흥의 느낌을 숫자로 확인을 하고 싶었던 거다. 설계도서에는 늘 ‘공간을 크기를 숫자로 표현‘해야 하므로, 심리적 공간도결국 전달은 숫자로 한다. 그래서 설계시 디자이너가 가지는 직관과 감각, 그리고 경험치가 중요해진다. 특히 공간의 높이를 높게 만드는 일은 경제적인 비용이 증가할 수 있다. 공간적 경험을 극대화하는 선택과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높이를 선정하는 그 경계점의 선택은 건축가라면 아주 신중히 선택하게 된다.
우리가 일상에서 주로 만나는 공간의 높이는 사실상 법적, 경제적인 이유로 대체로 3m 이내이다. 이 3m 높이도 슬라브 두께, 보 밑으로 각종 배관과 조명 시설, 기계시설들을 고려하면 2.4 m 높이가 나오기도 빠듯하다. 특히 다층의 건축물인 아파트나 근린생활시설 건물에서 실내 높이를 재어보면 실제 2.3m 천장높이도 나오기가 만만치 않다. (법적 문높이가 2.1 m 를 생각해보면 이 높이가 어느정도인지 가늠이 될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강요된 공간 높이에서 익숙하게 산다. 평소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가 높은 층고의 공간을 만나면 그제야 “아 ~ 공간이 높아서 기분이 좋다” 하면서 평소 기거하는 공간들의 높이를 거꾸로 제대로 인지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높은 공간은 우리의 사는 주거나 일터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으므로 발견되었을 때 그 감흥이 더 크고, 여러 각도에서 우리의 정서를 건드린다. 괜찮다고 많은 사람이 찾는 장소를 보면 좋은 전망과 함께 등장하는 것이 높은 층고의 공간들이다. 높은 공간에 대한 욕망은 이처럼 우리의 심리 저변에 깔려있다
사실상 효율 극대화, 기능주의가 극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근대 이후다. 그 이전의 건축물은 공간의 길이, 폭, 높이의 비례가 더 중요하게 다뤄졌었다. 예를들어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가 팔라디오의 건축에서나, 로마시대의 상류층의 주택, 도무스에서 보이는 것은 방의 가로 세로비를 2:3, 3:4 등으로 계획하고 높이는 폭과 깊이의 합을 반으로 나누어 결정하였다. 이 방식으로 보면 지금 우리가 흔히 접하는 공간 높이보다 훨씬 높다. 어쩌면 비례감이 중시되었던 시대적 산물로 건축을 보자면, 우리가 흔히 아름답다고 하는 유럽의 건축물들이 근대이후 만들어진 도시건물보다 좋아 보이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근대 이후 대도시의 건축물들은 다층, 고층으로 진화하면서 효율적인 높이에 대한 요구가 커졌다. 이에 더해 모든 건축물은 법적인 제한을 가지게 되었다.
기능성, 효율성이 강조되면서 높은 층고의 공간이 가지는 가치 있는 공간을 만드는데 더 전략적인 해법이 필요해졌다고 볼 수있다.
대지건물비율(*전체 대지에 건물이 차지하는 비중) 용적률(*대지대비 지상의 건물면적이 들어설 수 있는 비중) 밀도가 높은 도시에서 용적률에 관계되지 않는 지하층을 설치하는 것은 동일 대지면적에서 효율을 높이는 방법이다.이때 지하층의 층고가 전략적으로 구현되었을 때 활용도 뿐 아니라 건축적 환경도 좋아진다. 이것이 디자인적으로 잘 구현되면 부차적인 경제성도 낳는다.
좋은 공간은 내가 쓸 때도 좋지만 임대가치 또한 높아진다. 이를테면 지하에는 보통 빛이 들지 않기 때문에 일반적인 높이인 층높이 3m 정도에서 나오는 지하층은 더 낮고 답답하게 느껴진다. 이때 층높이를 적정하게 높이면 시원한 공간감과 함께 공간 가치가 높아진다. 여기에 덧붙여 1층과 연결될 수 있는 창, 선큰, 드라이 공기를 잘 이용하여 지하층에 채광을 넣어주면, 지하층의 공간은 예상외로 풍부해진다.
평소와 다른 공간에 들어섰을 때 사람들은 자신을 감싸고 있는 공간을 느끼는 순간이 찾아온다. 높은 층고의 공간에 들어갔을 때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감을 다르게 느낀다. 사람들은 일상에서 이제와 다른 자신을 발견하면서 감흥의 시간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이런 순간이 건축의 힘을 느낄 때이다.
높은 층고는 높이 쳐다볼 때만 공간감이 다른 것이 아니다. 내려다 보는 공간감 또한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이때 선행되어야 할 것은 공간의 높낮이 흐름의 조율이다. 낮은 공간이 무조건 무의미하고 나쁜 것이 아니란 사실이다. 우리가 주로 만나는 층고는 사실상 오랜 세월을 거쳐서 자리 잡은 효율적이고 기능적인 높이이다. 이를테면 침실의 높이는 적당하게 낮을 때 안정감을 느낄 수 있고, 집중도가 높아야 할 작업은 층고가 낮을 때 효과적이다. 이를테면 책상에 앉아 작은 스탠드만을 켜놓았을 때 더 집중이 잘되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스탠드 불빛이 작은 공간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많은 부분 층높이가 다 높다고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니다. 계속된 너무 높은 공간의 지속은 임계점을 지나 인간이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이를테면 아무리 좋은 향기라 해도 지속되면 그 향기가 주던 기쁨이 사라지는 것처럼. 적절한 공간 높이가 조율 되었을 때, 그 층고의 가치는 순간순간 빛을 발한다. 높이의 변화가 생기는 곳에서 사람들은 비로서 다른 세계로 진입을 인지하게 되면서 감흥이 이는 것이다. 공간의 긴장과 이완의 흐름의 적절할 때 각 공간의 가치는 커진다. 공간이 빌드업 되는 것이다.
새롭게 건축을 짓거나 리모델링을 할 때 건축가나 공간디자이너들이 드라마틱한 높은 공간을 만들고자 고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만약 내집짓기를 시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단 한공간만이라고 높은 층고의 공간의 가치를 넣어보라. 그곳 때문에 일상의 삶이 달라질 수 있다. 또한 내집짓기를 직접하지 않더라고, 어디에선가 높은 층고의 공간에 들어서면 잠시 눈을 감았다 눈을 뜨고 그 공간을 다시보길 바란다. 자신의 존재가 새롭게 느껴지는 순간을 맞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