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없는 고백

변명보다는 솔직한 고백을

by 사나래

"내 탓이요."로 시작했다가 "네 탓이요."로 끝나는 수많은 일에는 이기심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나는 언제나 우월한 존재니까요. 내로남불이죠. 잘못하는 사람은 언제나 "내"가 아니가 "너"니까요. 이런 마음으로 사랑이 가능한가요? 사랑이 걷도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마음이 상했을지라도 참된 회개로 겸손하게 된 사람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죄인을 사랑하시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그는 갈보리에서 지불된 값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죄를 진정으로 한탄하는 죄인은 죄를 고백할 것이다. 아이가 사랑하는 아빠에게 서슴없이 다가가는 것처럼 그 역시 하나님께 나아갈 것이다(생애의 빛, 103).


우리가 회개하고 죄를 포기하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고백을 받으실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면 먼저 회개하고 죄를 포기해야 한다는 말씀과 같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죄를 한탄하게 된다면 우리는 그제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했던 지난날의 과오를 멀리하고 버리게 될 거라고 알려줍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는 날마다 이것을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몰라서 못 하기도 하고 알면서 않 하기도 하죠.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고 나서 어떻게 하면 죽음을 피할 수 있을지만을 생각하면서 변명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랬기에 아담은 하나님과 하와를 탓했고 하와는 하나님과 뱀을 탓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먼 옛날 우리와는 관계없는, 우리의 시조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로만 여깁니다. 우리도 그와 같은 일을 날마다 반복하면서도 전혀 의심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많은 경우에 변명하고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남의 탓을 합니다.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쏙 빠져나가면서도 하나님께 영혼 없는 고백을 합니다. 그러니 이런 고백은 하나님께서 받아주실 수가 없는 것이지요.

성경에는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고백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윗이 죄를 지었을 때 그는 왕이었으므로 자신의 죄를 사소한 것으로 무시할 수도 있었어요, 그러나 다윗은 자신이 저지른 일을 회피하거나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진정으로 죄를 자복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으로 돌아가고자 했습니다. 또 한 사람,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죽이려고 몰두했던 자신의 죄를 고백했습니다. 바울 역시 자신의 죄를 작게 보이려고 애쓰지 않았어요.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했습니다.

다윗처럼, 사도 바울처럼 자신의 죄를 숨기거나 변명하지 말고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하시는 하나님의 용서를 체험하고 마음에 진정한 평화가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어떠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참고 기다려 주시고 용서하고 싶어 안달이신 우리 하나님께 모든 마음의 짐을 내려놓습니다. 저희에게 평화를 허락하옵소서.

매거진의 이전글상처를 보듬으며 하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