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외면
나는 매일 정해진 말씀을 읽고, 몇몇 사람들과 그 말씀을 나누며, 적당히 감당할 만한 일들을 되풀이하면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너무 분주하지도 않고, 너무 무료하지도 않은, 적당한 긴장 속에서, 늘 만나는 사람들을 만나고, 가고 싶은 곳을 가며, 감정의 요동 없이 살아가는 것. 그것이 평화이고, 화평이라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점점 그런 삶을 로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진정 평화로운 삶일까요? 요즘 들어 의문이 듭니다.
도전이 찾아왔을 때, 가장 먼저 양보한 것
나는 정해진 루틴을 따르며, 어떤 큰 도전이나 변화 없이, 때때로 내 시간 속으로 밀려 들어오는 새로운 일들을 심란하고 성가시게 여기며 밀쳐내며 겉보기에 평화롭고 안전하게 늙어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새로운 도전을 맞닥뜨린 순간, 나는 갈등했고, 그 짧은 기간 동안 제일 먼저 양보한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말씀을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부끄럽고, 놀랐습니다. 도전을 받아들이기 위해, 잠시 갈등하는 그 순간, 나는 말씀을 등한히 하고 있었습니다. 그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시간이 좀 더 필요했습니다. 한마디로 매우 바빠졌다는 것이지요.
평화로운 일상 속에서 말씀에 젖어 사는 삶을 로망 하였건만 오랜 시간을 내려놓지 못하고 그토록 바라던 새로운 도전이 내 앞에 제시되었을 때, 안타깝게도 내가 제일 먼저 양보하고 있었던 것은 말씀이었습니다. 그 바쁜 와중에 며칠을 허둥대며, 기도도 건성으로 드리며, 또다시 계획을 세우고 짜여진 일상을 조절하다 보니 “지금 바쁘니까 나중에 읽어야지.” 그리고 그 ‘나중’이 되어도, 또다시 다음 ‘내일’로 미뤄졌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 내일이 다시 다음 내일로, 말씀은 그렇게 점점 더 멀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였다면, 나는 앞으로 몇 년 동안을 그렇게 살아야 했을 것입니다. 말씀을 등한히 하며, 매일 허둥거리며, 내 소중한 것들을 양보하는 대신, 아마도 명예와 경제력을 얻게 되었겠지요. 몇 년이라도 더 젊었다면, 나는 분명 그 길을 선택했을 것입니다.
늘 열정이 과했던 나. 아마도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칭찬받을 만큼 완벽하게 그 새로운 도전에 임했을 것입니다.때로는 잃고, 때로는 얻으며, 곤고한 시간을 보내게 되더라도, 몇 년만 더 젊었다면, 그것도 괜찮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은혜와 지혜’를 붙들 나이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과 씨름하며 쌓아온 경험과 연륜의 시간을 통해 비록 활력은 다소 잃어버리게 될지라도 특별한 은혜와 지혜를 주신다”는(행적, 573 참조)
이 말씀을 붙들고 싶은 나이가 되어버렸습니다. 어쩌면, 새로운 도전을 피하고 싶은 나의 용기 없음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말씀을 읽을 시간을 양보하고 있는 나를 호되게 질책했습니다. 그리고, 나름 과감한 선택을 해버렸습니다.
1년 전부터 대한민국은 한 살씩 젊어졌습니다. 이제 나이를 물어보거나 대답할 때, 이전보다 한 살씩 내려서 이야기합니다.그렇다고 갑자기 1년이 뒤로 돌아간 것도 아니고, 신체적으로 1년 더 젊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저 공식적인 나이가 통일되었을 뿐.
그런데 어찌하다 보니, 나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나이 계산법을 적용해도, 어느덧 ‘인생 60’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는 노인(?)으로 향하는 길목에 서 있습니다.
이렇게 나이 들어가는 것을 의식하게 되니, 문득 노인 우울증이라도 걸릴까 싶어 염려되지만, 오히려 나는, 감사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하나님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멋지게 나이 들어가는 방법
나는 말씀 속에서, 멋지게 나이 들어가는 방법을 찾으며 살기로 선택했습니다. 말씀이 있어서, 이 선택이 얼마나 합당한 핑계가 되고, 또 얼마나 당당한 선택이 되었는지요. 그래서 감사합니다.비록 ‘용기 없음’으로 결론지어질지라도, 너무 바쁜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지 않기로 한 나의 선택. 우문(愚問)일지 몰라도, 나는 오늘, 그 선택을 한 나 자신을 칭찬해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연로하고 연단을 받은 교역자들이 그들의 자리에 서서 죄악의 물결에 휩쓸려 내려가지 않도록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그들의 소임을 다하기를 바라시며, 당신께서 벗으라고 명하실 때까지 그들의 갑주를 입고 있기를 바라신다”(행적, 574).
이렇게 살라고 알려주십니다.이런 화평스러움 속에서, 하나님과 함께 끝까지 걸어가는 멋진 삶을 꿈꿉니다. 바쁠 때 양보하는 것이 말씀이 되지 않기를 소망하면서, 평화로운 시간과 무료한 시간을 구분하는 지혜를 주시기를 간구하면서 말입니다.
나이가 들면, 현직에서 물러나게 되고, 경제력도 예전 같지 않을 것이며, 건강도 당연히 약해질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큰 걱정을 몰고 오지만, 진정 걱정해야 할 것은 따로 있습니다.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잊지 않는 것.말씀을 등한히 하여 믿음이 적어지는 것.이 두 가지야말로, 인생 최대의 염려여야 하지 않을까요?
개인적으로, 바쁠 때 가장 먼저 양보하는 것이 다름 아닌 말씀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바라고 원하며 소망하던 이생의 자랑. 이제는, 그 미련까지도 주님 안에서 용감하게 떨쳐버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