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유혹
나는 오랫동안 예수님을 믿어오면서도, 죄에 대해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제법 착한 사람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내 행동과 생각 속에 죄가 별로 없다고 강하게 자부하며 살아왔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살인을 저지르지도 않았고, 강도 짓을 한 적도 없고, 사기를 친 적도 없었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죄라는 것은 법정에서 심판받는 어떤 범죄, 그 정도로만 생각하며 나름 자유롭게 살아온 것 같습니다.
죄는 나와 무관하다는 착각 속에서
나는 수없이 많은 설교를 들었고, 말씀을 읽어왔지만, 죄란 다른 사람이 짓는 것이지, 나와는 무관하다는 무모한 믿음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내가 저지르는 사소한 잘못들에 대해, 나는 얼마나 관대했던가?
“이 정도는 괜찮아.”
“이건 흉악한 죄도 아니고, 그렇게 심각하지도 않아.”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니, 내 기준에서 죄란, 법을 어기거나, 살인을 하거나, 도둑질을 하거나, 사기를 치는 정도여야 비로소 ‘심각한 죄’였습니다.
이런 잘못된 기준으로 신앙을 하고, 교회를 다니고, 그렇게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최근에, 나는 죄와 그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죄에 대해 너무나도 무지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거의 2년에 걸쳐 『각 시대의 대쟁투』를 묵상했습니다. 2,000년에 걸친 세월 동안, 사탄의 모든 행각이 낱낱이 기록된 그 책.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자기 인생을 걸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따른 사람들의 미래와 사탄의 최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천년 동안의 고립, 그리고 마지막 기만
선과 악의 대쟁투 끝, 1,000년 동안 사탄이 지구에 고립됩니다.창세 이래 단 한 번도 반성할 기회가 없었던 존재, 사탄. 그의 일대기는 쓸쓸하고 황량한 지구에서 그 어떤 생명체도 없이 천 년을 떠돌아다니는 모습으로 기록됩니다. 그런데, 그 천년의 침묵이 끝난 후, 사탄은 예수님의 대관식을 위해 내려오는 도성을 향해 마지막 총력을 기울이며 진격합니다.
바로 이 장면에서, 나는 사탄의 또 다른 기만을 발견하고 경악했습니다.
이때 죄인들이 둘째 부활을 하게 되는데 사탄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 천년의 고독한 세월을 잊고 다시 그의 본색을 드러냅니다. 부활한 죄인들에게, 사탄은 자신이 사탄이 아니라고 기만하며 속입니다. 다만 예수님께 자기의 모든 권리를 빼앗긴 억울한 존재라며 호소합니다(쟁투, 663). 그렇게, 6,000년 동안 인간의 삶을 기만하며 망쳐 온 사탄. 그는 결국 마지막 속임수를 시도하다 최후를 맞이합니다. 나는 여기서, ‘속이는 것, 기만하는 것, 유혹하는 것’ 그것이 곧 죄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매일매일 사탄의 유혹에 고꾸라지고 있는 모습이 훅 하고 다가왔습니다. 그 기만과 속임 속에서, 나는 얼마나 무방비하게 넘어지고 있었는지요.맞습니다. 죄는 유혹이었습니다. 죄는 우리가 예수님을 생각하지 않는 그 모든 순간에 우리 곁에서 우리를 점점 더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존재로 만들어 갑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그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오셨고, 우리 삶 속에서 그 죄를 씻어주시며, 사탄의 유혹이 더 이상 없는 곳으로 우리를 옮기시려 했습니다. 그리고 그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저는 그동안 말씀을 읽으며 많은 것을 깨달았으면서도, 십자가는 여전히 저와 거리가 멀었습니다. 신앙의 중심은 십자가인데, 저는 그것을 놓치고 있었습니다.
물론, 십자가의 고통을 상상하며, 예수님의 찔림과 수치를 떠올리며 더러 눈물을 흘린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쩌면 한 인간의 비참한 종말을 향한 동정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오랜 기간 말씀을 묵상했고, 책도 내고, 이렇게 글도 쓰면서도, 여전히 예수님의 ‘언저리’에서만 머물고 있었습니다.
저는 드라마를 보며, 다른 사람의 상처를 보며 눈물을 흘리면서도, 정작 예수님의 긍휼과 동정의 마음은 없었습니다. 저는 늘 냉정한 마음으로, 손해 보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입으로는 “예수님의 생애를 닮겠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제 삶에는 그 사랑이 없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안타까운 사람이 바로 저였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데 최선을 다하면서도, 매일매일 사탄의 유혹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꽁꽁 숨겨온 저의 시간들이 이제야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날 때부터 죄인이기 때문에 인간은 대체로 이기적이다.’
우리는 이 말로 스스로를 속이며 살아갑니다. 수많은 작은 죄는 그냥 안고 살아가면서도, 자기 죄에 대해서는 너그럽기만 합니다.
그리고 변명과 타협으로 스스로를 다독이며 살아왔습니다.
죄로부터의 구원, 그러나 닫혀 있던 나의 귀와 눈
예수님께서는 가시는 곳마다, 하시는 말씀마다 죄로부터의 구원을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저의 귀는 막혔고, 눈은 감겨 있었습니다.죄란 무엇입니까? 천 년 동안 반성할 기회를 주어도, 유혹할 대상을 발견하면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사탄의 정신입니다. 그런 사탄이 우리를 예수님에게서 떼어놓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건만(소망, 238) 우리는 너무나 무방비 상태로 살아갑니다.
매 순간 우리를 유혹하는 셀 수 없이 많은 요인들, 이를테면 핸드폰, TV, YouTube, 자기를 사랑하는 것, 돈 버는 것, 자랑거리들, 각종 중독과 몹쓸 습관들… 이런 유혹의 홍수에 허덕이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대부분의 시간입니다. 그러나, 이런 유혹 속에서도 생수와 빛이 되시는 그분께서 우리를 만나 주십니다.
늦었지만, 저는 고백합니다. 이제야, 죄에서 구원하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음을. 그리고 감사합니다. 이런 저를 만나 주심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