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과 사랑(1)
뭔가 잘못되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크게요.
우리는 어려서부터 순종에 대한 잘못된 관념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순종’이란 그저 말을 잘 듣는 것, 즉 누군가가 말하는 대로 따르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정작 왜 순종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는 빠져 있었습니다. 우리는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른 채, 그저 무조건 순종해야만 한다고 배웠습니다. 안 하면 체벌과 불이익이 있을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순종했습니다.
150년 남짓한 한국 기독교 역사 속에서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온 지가 150년 남짓입니다. 본격적으로 기독교가 전파되어 사람들의 삶을 좌우한 지는 그보다 훨씬 더 짧습니다. 저와 같은 세대, 혹은 위아래로 서너 살 차이가 나는 연령대에서는 “말 안 들으면 혼난다”는 개념 속에서, 대체로 벌 받을까 하는 두려움 또는 구원받지 못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순종해 온 세대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사랑과 구속의 경륜을 이해하고 깨닫는 일이 얼마나 어려웠을지 생각해 보십시오. 피조물이 지은 죄로 하늘이 희생당했다는 것, 이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한마디로 말하면 잘못은 ‘을’이 했는데 그 용서에 대한 대가가 ‘갑’의 목숨 값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이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기 전에는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 아니겠어요?
저는 선악과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하와를 미워하고 아담을 원망했습니다.
“먹지 말라는 선악과는 왜 먹어서?”
“자기만 먹지, 왜 아담에게까지 줘서?”
하지만, 이런 저의 생각 자체가, 두려움에 근거한 잘못된 순종의 이유였음을 깨닫습니다. 사랑의 개념보다, 저는 두려움을 먼저 배웠던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아직 사랑이 없는 상태에서는 율법은 짐이고, 굴레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도 예외는 아니었겠지요. 사탄은 오랜 세월 동안, 하나님을 곡해시키고, 그분을 무자비한 분으로 가르쳐 왔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쫓아내신 하나님. 그분이 인류를 고생길로 몰아넣은 분이라면서 말입니다.
인류를 고통과 절망 속으로 밀어 넣은 장본인은 정작 사탄, 자신이었는데 그는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전가하며, 유혹과 위협을 섞어가며 6,000년 동안 쉬지 않고 활동해 왔습니다.
“아담의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사탄은 이런 방식으로 공작해 왔으며, 그는 그것으로 크게 성공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불신하고 그분의 지혜를 의심하도록 사람들을 유혹한다.”(부조, 55)
두려움으로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을 삶에 적용하려 하다 보면, 사랑은 온데간데없고, 부담스러운 행위만 남아 짐이 됩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신앙을 고행처럼 여기며 늙어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마음 깊이 자리 잡지 못한 채, 그분의 율법이 자유가 아닌 부담이 되어 버린다면, 우리는 정말 사탄의 기만 속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건강을 위해서 이것저것 가려 먹으라고 사랑으로 가르침을 주셨지만, ‘가려 먹지 않으면 구원 받지 못한다’고 배운 우리는, 그걸 자연스럽게 자녀들에게 대물림하며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할 이유를 제대로 배우지 않은 우리는 체험적인 사랑 없이 자기만의 순종의 잣대, 그 두려움으로 함부로 후대를 가르쳐 온 건 아닐지요. 그 결과, 우리는 사랑하는 자녀들의 마음에 짐을 지워준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잘못된 가르침을 이제라도 고뇌하며 돌이켜야 합니다.
후대에게 “이거 해라, 저거 하지 마라”라는 가르침에 앞서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가르쳐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섬세하고 동정심 많은 사랑, 그분의 참아 주고 또 참아 주는 인내, 그분의 한없이 자애로운 마음... 이런 것들을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에서 연구하고 또 연구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가르침을 주었어야 했습니다.
이제라도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한 후에 누군가에게 그 사랑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을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사랑’ 그 자체이신 분으로 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순종의 의미를 다시 생각합니다
저는 순종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벌 받지 않기 위해서, 구원받지 못할까 봐 두려움으로 하는 순종이 아니라, 온 하늘을 희생하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그 무한한 사랑을 헤아려보고자 기도합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의 심정도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죄가 처음 들어왔을 때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수많은 방법이 있었겠지만, 오직 사랑만을 해결 방법으로 삼으신 하나님의 참사랑을 깨닫고자 기도합니다.
우리는 각자 순종의 무게가 다릅니다. 순종의 무게는 사랑과 비례합니다. 즉,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달을수록, 순종의 무게는 더욱 무거워집니다. 아담과 하와가 깨달은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깨달은 사랑보다 더 크기에 그 순종의 무게가 무거웠을 것입니다. 우리는 꽃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슬퍼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성에 젖어 아름답다고 표현합니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는 꽃들의 죽음을 사람의 죽음보다 더 슬퍼했고 더 큰 충격이었다고 하니 그들은 얼마나 큰 순종의 무게를 안고 삶을 살았을까요?
가벼운 의무감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깨달음으로, 순종의 무게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삶. 이제, 저도 그런 순종의 무게를 가슴에 안고 살아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