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을 이해하는 배려

순종과 사랑(2)

by 사나래

예전에 내가 어린이반 교사를 할 때, 그러니까 거의 40년 전쯤아이들에게 가르쳐주던 노래 중에 이런 가사가 있었습니다. “나 살짝 숨어 나쁜 일을 몰래 할 때에, 엄마는 보지 못해도 하나님 보셔요.” 아마도 영아반 율동곡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곡이 예뻐서 자주 흥얼거리기도 했었지요. 그런데, 이 노래가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차 싶습니다.

이 노랫말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쁜 짓을 할 때,엄마도 못 보는 것을 하나님은 보신다.”즉, “나쁜 짓은 하지 말아라.” 하는 좋은 뜻이 담긴 노래였습니다. 그런데, 혹시 아가들이 하나님을 무서운 분으로 배웠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훗날, 저 역시 이 노래를 저의 자녀들에게도 가르쳐 주었습니다. 솔직히, 이 노랫말은 엄마들 입장에서는 참 좋은 노래였습니다. “엄마 대신 하나님께서 혼내주세요.” 특히 저와같이 맞벌이하는 엄마들에게는 출근하여 아이와 떨어져 있는 순간에도, 아이들을 감시할 수 있는 감사한 노래였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하나님을 ‘나쁜 짓 할 때 혼내주는 무서운 분’이라고 사랑하는 자녀에게 노랫말을 통해 가르쳤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행히, 한동안 이 노래를 듣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노래는 사라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니까요. 우리 아이들이 하나님을 사랑으로 만나길 바라니까요.이 무책임한 교육은, 어쩌면 사랑하는 자녀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지름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사탄이 알려주는 방법, 즉 사랑이신 하나님을 두려운 분으로 여기게 하는 방법을 배워 왔고, 그대로 가르쳐 왔던 것 같습니다.하나님을 믿으면 지켜야 할 것투성이, 하고 싶어도 하지 말아야 할 것들, 먹고 싶어도 먹지 말아야 할 것들, 우리는 이런 제한된 일상을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가르쳐 왔습니다. 그러나, 사랑이신 하나님을 먼저 만나게 해야 했습니다. 그분을 기쁨으로 경험하게 해야 했습니다. 순종의 무게는, 두려움이 아닌 사랑의 무게여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을 깨달은 만큼 말입니다.


첫 번째 불순종, 그리고 깊어지는 이해

순종의 의미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인류 최초의 불순종을 했던 아담과 하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수많은 원망을 의복처럼 입고 살아야 했던 그 첫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이것은, 저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해의 깊이가 더 깊어졌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가장 무거운 순종의 무게를 안고 살아간 사람은, 아마도 아담이었을 것입니다. 천 년 가까운 세월 동안, 자신이 저지른 잘못의 결과를 매일 눈으로 확인하며 살아야 했던 사람. 그는 아마도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각고의 노력으로 살아갔을 것입니다.

자녀가 살인을 저지르고, 사랑하는 아들이 죽고, 남은 아들마저 멀리 추방되었을 때… 아담의 마음은 찢어지고도 남을 만큼 아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죽음을 가져온 형벌을 가슴에 안고 살면서, 아마도 단 한마디의 불평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할아버지로서 손주들이 태어나는 것을 보고, 기뻤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그 사랑하는 손주들이 급속도로 죄악에 물드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는 슬픔과 좌절 속에서 긴 시간을 살아야 했을 것입니다.


그 당시는 창조 직후라 사람들의 지능은 매우 높았다고 합니다. 그 좋은 머리로, 그 뛰어난 기억력으로 시도 때도 없이 할아버지인 아담에게 와서 이렇게 원망했을 것입니다.

“할아버지, 왜 선악과를 먹었어요?”

“당신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고생하는 거잖아요!”

아담은 사건을 만회하려고, 훈계하고, 하나님을 직접 본 영광스러운 경험을 이야기해 주었겠지만, 아마도 그가 전한 메시지는 반만 전달되지 않았을까요?


“자주 그는 자기 후손들에게 이와 같은 재난을 초래한 죄를 범한 데 대하여 통렬한 비난을 받았다”(부조, 82).


아담의 1,000년, 그리고 하나님의 자비

아담은 1,000년 동안이나 죄의 결과를 목격하며 그렇게 비탄과 겸비와 통회의 생애를 살았습니다. 고통과 슬픔의 생애를 끝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자비임을 뼛속 깊이 느낀 슬픔의 생애를 살아간 사람, 아담. 구원이 이루어진 먼 훗날 하늘에서 아담을 만난다면 나는, 뒤늦게나마 아담의 마음을 이해했노라며, 얼마나 힘들고 고단한 삶이었냐며 우리의 시조에게 위로를 건네주고 싶습니다. 창조주로부터 창조의 역사를 배운 그는 930년 동안이나 그의 살아있는 지식을 후손에게 최선을 다해 나누어주는 삶을 살아내고 하나님의 자비를 느끼면서 삶을 내려놓았습니다.

아담의 배움을 받아들여, 순종하며 살았던 후손 에녹은 경건한 삶을 살며 하나님의 사랑을 오롯이 깨닫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일생을 살다가 결국 하나님의 곁으로 올라간 영광스러운 인물이 되었습니다. 아담이 훗날 그토록 회복하고자 했던 하나님과의 관계를 손주 에녹이 이뤄낸 것을 알게 되면 얼마나 기뻐할까요? 또한 그의 수고가 6천 년 동안을 이어졌고 그 사이 그리스도께서 죄의 창시자 사탄을 이겨내신 영원한 승전보와, 오늘날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순종의 무게를 안고 살아가고자 애를 쓰는 우리의 삶을 얼마나 대견스러워할지… 아마도 하나님의 마음과 조금은 견줄만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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