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꼰대가 되는 중
어른답게 나이 들어가는 사람들이 은근 드물다.
직장 내에서도 이런 사람들이 꼭 있다.
한두 사람이면 그나마 다행, 결코 한두 사람에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그 나이, 그 자리에 올라서면 결과는 같다.
어른답지 않은 사람, 자리에 어울리지 않은 사람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만약 선배라면,
당신은 후배들의 의견을 경험치로 판단하는가 아니면 새로움으로 보아주는가.
다시 말해 경험이 없다고 그들의 의견을 무시하는가 아니면 그들의 신선한 아이디어에서 배우고자 하는가 말이다.
나는 신입에게도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하며 연차를 먹어왔더랬다.
특히 꼰대인 대부분의 선배들로부터 신물 난 경험을 해온 탓에 나만은 결코 그러지 말아야지를 가슴에 수도 없이 새겨 넣으면서
나는 꽤 괜찮은 선배가 되어가는 줄 알았다.
이런 생각이 들면 이미 위험 수위를 올라선 것이다.
사람이 잘못을 저지르면서 그것을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은 법,
나도 별 수 없었다.
내가 내 딸의 직장 상사가 되는 순간까지는 내가 잘하고 있는 줄 알았다.
딸아이가 나의 부하 직원으로 와서 짧게 6개월을 일하고 이직 하기까지 나는 내가 꼰대임을 모르고 지냈다.
그러나 6개월간 함께 일했던 그 기간이 내가 몰랐던 내 안의 꼰대 기질을 일깨워 주었다.
내가 내 딸에게서 배우지 않았다면 아이의 말을 새겨듣지 않았다면 아마도 나는 내가 경멸하던 그런 선배들과 별반 차이 없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라떼는 말이야”를 반복하는 꼰대가 되어가면서도 몰랐겠지. 미워하며 닮아간다더니 어느새 나도 그랬던 것이다.
사실 처음에는 은근 화가 났다. 아니 이것이... 이제 다 컸다고 엄마를 가르치려 들어?
그러나 자녀의 말을 곰곰 생각해 보니 엄마니까 그런 말을 해주는 거였다. 함께 일하는 내 딸 또래의 직원들은 나한테 감히 그런 말을 못 한다. 그러니 나는 영락없는 꼰대가 아니고 무엇?
직장에서 오래 근무하다 보니 이제는 자녀 같은 연령대의 직원들과도 함께 일한다.
그들은 내가 말하는 것을 경청한다. 게다가 그들 중 일부는 대학에서 내게 배웠던 제자들이다. 그러니 언감생심, 나에게 맞설 수 없었고 경청은 필수였던 것이다.
"엄마, 엄마 말을 경청한다고 해서 좋아하는 줄 알고 자꾸 말하면 안 돼요.
직원들은 할 수 없으니까 들어주는 거예요"
아니... 그동안 나는 까맣게 몰랐다. 나름 나도 잘하고 있다고 믿었고 그들도 그저 잘 들어주니까 내 얘기가 흥미 있는 줄만 알았지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얼굴이 뜨뜻했다.
생각해보니 그들은 내 말을 들어줄 수밖에 없는 구조적 제약을 받고 있다. 내 말을 고개를 끄덕여가며 듣지 않으면 안 되는 상하 구조에 그들이 놓여 있음을 나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어쩌면 가족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우리이기에 여기서 행복해야 한다고 말만 하면서... 그러나 직장은 직장일 뿐. 아무리 가족 같은 분위기의 회사여도 사석이 아닌 다음에는 사적 대화는 삼갈 일이었다.
좋은 직장 상사는 어떤 사람일까.
유즈키 아사코의 소설 <나는 매일 직장 상사의 도시락을 싼다>는 독신인 여자 상사 구로카와 부장과 일하는 신입사원 사와다 미치코가 진정한 직장인으로 성장해 가는 이야기이다. 직장 상사의 횡포를 다룬 듯한 제목의 책이지만 사실 그 반대이다. 부하 직원에게 도시락을 싸오라는 주문은 고질적인 직장 상사의 갑질 횡포 같아 보이나 부장은 직원에게 점심때마다 새로운 요리와 경험을 제공해준다. 직장에서 보이는 스트릭 하고 범접할 수 없는 부장의 모습이 전부가 아님에 주목. 부하 직원에게 잔소리로 가르침을 주는 대신 선배로서 세상을 헤쳐가는 방법을 따뜻하게 이끌어주는 츤데레 직장상사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모습이다.
구로카와 부장은 우리나라 꼰대들이 하는 방법으로 이끌어가지 않는다. 여성 직장 상사의 새로운 롤모델을 제시하는 이 책은 사실 내가 직원에게 못마땅한 점이 있어 카리스마를 좀 배우려는 심산으로 읽게 된 건데 읽고 나니 내가 바뀌어야 할 일이었다.
출간하자마자 10만 부가 필린 이유는 어쩌면 앗코짱(구로카와 부장) 같은 여성 직장 상사에 대한 기대감과 더십을 배우고자 하는 많은 직장 상사들이 있어서가 아닐는지...그렇다면 일 맛 나는 세상이 멀지 않았다는 것.
그렇게 6개월을 나의 직원으로 있다가 딸은 이직했다.
이직한 회사에서도 직장 상사는 비슷한 모양이다. 엄마네 회사가 분위기는 참 좋았다고 한다.
이것은 위로인가, 아니면 그 무엇?
요즘같이 변화무쌍한 세상에서는 자녀에게 배울 점이 많다. 꼰대가 되지 않는 가장 쉬운 방법은 자녀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다. 자녀와는 연령 차이가 대개 20~30년은 되니까 그간의 세대 차이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나쁘지 않다고 본다. 자녀는 부모이기에 진심으로 직언을 할 수 있다. 직언뿐 아니라 스마트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자녀만큼 좋은 스승은 없다고 본다. 부모 세대는 자녀 세대로부터 새로운 세상을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자신의 경험치를 극존중하는 "라떼는 말이야"가 아무 때나 튀어나오면 바로 꼰대 인정.
나는 직원들이 행복한 사무실 분위기를 만들고자 무던히 노력했다. 실수를 한 직원들도 어지간해서는 스스로 깨닫기를 바랐고 선배라고 해서 나무라거나 가르치려 들지 않으려 애썼다. 한마디로 꼰대 소리는 듣지 않기 위해, 그리고 직원들이 마음 편히 일하도록 하는 바람막이 역할이 내 몫이라 여기며 나름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었다. 그러면서 허허벌판에서 장렬히 전사했던 경험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한 번은 "부장님 같은 직장 상사는 처음이에요."라는 직원의 말 한마디에 그간의 힘들었던 설움이 밀려가버리기도 했다. 그리고 나를 로망으로 여긴다는 후배의 말은 몇 년이 지나도 내게 힘이 된다. 나는 큰소리치면서도 마음이 무지하게 여린 타입이다. 이런 사람 좀 위험해... 한번 상처 입으면 오래가거든.
사실 회사에서는
직원들이 문제가 아니다.
요즘 직원들은 대부분
열심히 공부하고 여러 스펙을 갖춘 후 입사를 한다.
그들의 능력을 끄집어내는 것이 직장 상사들의 몫이다. 그러기 위해 우선할 일은 기득권을 내려놓는 일이다.
이것은 웬만하면 자신의 경험치에 기대지 말아야 한다는 말.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상사들은 직원들이 문제 있는 줄로 안다. 왜냐하면 결정권자들은 본인들의 문제를 인정 안 하지. 자신들이 다 잘하는 줄 알기 때문이다. 경험치로 판단하여 인성 문제 있는 그들의 꼰대 기질이 바뀌지 않는 것이 가장 고질적인 문제라고 본다. 나는.
세상이 변하였고 변한 세상에는 젊은 직원들의 순발력이 필요하다.
나 때문에 혹 나의 갑질 때문에 상처 받는 사람 없도록 적어도 우리 부서 직원들만큼은 그리되지 않도록 오늘도 나의 꼰대 성향을 꼼꼼히 살핀다.
이제는 앗코짱 같은 멋진 부장들이 많아져야 일 맛 나는 직장이 되지 않을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