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엄마의 사무실에서 자란 아이들
어렸을 때 나는, 존경하는 인물이 딱히 없었다. 예전에는 "존경하는 인물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꽤 받았었다. 그럴 때마다 존경하는 인물을 찾아보는 것은 대략 난감한 일이었다.
아마도 위인전을 많이 읽지 않았던 탓 같다.
뭐든지 느린 나는 어른이 돼서야 존경하는 인물에 자유롭게 대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존경하는 인물은 바로 스티브 잡스(Steve Jobs)다.
이유는 간단하고 매우 단순하다.
내가 이 나이까지 직업을 갖고 경제 활동을 하는데
스티브 잡스처럼 영향을 준 사람이 달리 없기 때문이다.
그가 실리콘벨리 자신의 집 주차장에서 맥킨토시 컴퓨터를 만들었던 업적이 내 인생과 무관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과 한 입 베어 문듯한 로고의 애플사를 만들고 참신한 사업을 시작한 덕분에 내가 북디자이너로 유구한 시간을 살아가고 있으니 이만하면 나에게 존경받아 마땅한 인물이 아닌가? 이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편집디자인과 그래픽디자인에 최적화로 만들어진 맥킨토시 컴퓨터 덕분에 나의 직업이 생겨났다는 거다. 덕분에 북디자인을 하고 기타 편집디자인을 하며 살아간다. 아마도 많은 디자이너가 스티브 잡스 덕분에 날로 스펙이 좋아지고 있을 것이다. 나의 학생들에게 스펙 하나 더 채워주는 강의도 하면서 살아가니 이만하면 그의 업적은 내게 찐인 셈이다.
오랜 암투병 끝에 스티브 잡스가 잠들던 2011년 10월, 나는 일면식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서운했다. 그때 나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중이었고 맥킨토시의 역사를 자세하게 다루던 터라 더욱 안타까웠다.
나는 좀 컴맹이라 일반 컴퓨터는 익숙지 않다. 겨우 인터넷과 한글 정도만 사용한다. 그에 비해 맥킨토시 컴퓨터는 내가 좀 만만하게 사용할 줄 알고 그걸로 아직까지 돈 벌어먹고 살아가니 감사히 여길 수밖에.
그러고보니 나의 존경을 받던 그는 지금 내 나이만큼만 살고 떠났다. 나는 이 나이에 새로운 꿈을 시작할까 싶은데 그는 생을 마감하고 만 것이다. 그의 죽음은 지금 생각해도 안타깝다. 어쩌면 디자이너뿐 아니라 21세기 스마트한 현대인의 삶에 더욱 혁신적인 발전을 가져다주었을 텐데라고 생각하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아무튼 나의 존경하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학교에서는 아직도 학생들에게 존경하는 인물을 묻는다. 학교뿐 아니라 면접에서도 간혹 그 질문이 나오는 듯...
좀 놀랍게도 존경하는 인물을 선정하는 방법까지 알려주는 사이트도 있다. 질문의 요지는, 존경하는 인물 자체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왜 존경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듣기 위함이다. 그러니 존경하는 인물은 대부분 위인들이 선정되기 마련이다. 존경하는 인물이 응답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가 관건이다.
그런데 우리 딸, 고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 면담 차 학교에 갔더니
존경하는 인물을 엄마라고 했단다.
아이고... 선생님이 뭐라고 생각했을지...
위인전을 안 읽어서 그랬다고 생각하셨을까?
아무튼 우리 딸은 엄마를 존경하는 인물이라고 해버린 것이다.
나는 맞벌이를 하느라 아이들의 방과 후를 제대로 챙겨주지 못해 늘 미안한 마음으로 살았다. 학교 갔다 오면 집에서 맞이해 주고 맛난 간식도 만들어 주면서 숙제도 봐주고 준비물도 챙겨주었어야 하는데 그걸 못해주는 미안한 엄마였다. 출근하면서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수업이 마치면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우리 아이들은 내 사무실로 돌아온다. 그러니까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을 늘 사무실에서 맞았다.
학교에서 회사까지는 10분 거리... 딴짓하면서 걸어오면 20분도 걸렸겠지. 큰애가 4학년 되던 해에 나는 과장 승진을 했었다. 그때 나는 '트리안'이라는 잎이 작은 화초를 매우 애정 했는데 어느 날 큰 아이가 불타는 고구마 얼굴로 두 손에 소중하게 트리안 화분을 들고 사무실로 들어오는 게 아닌가? 얼굴에는 함빡 웃음을 풀풀 날리며 그 귀여운 얼굴로 눈에 사랑을 가득 담고서 말이다. 엄마 승진을 축하한다는 카드도 정성스럽게 써서...
세상에나...
나는 감동감동~~
세상에 그런 감동이 다시없을 만큼의 감동을 해버렸다.
나는 그때도 지금도 일하는 엄마다. 두 아이를 낳기 전날까지 출근을 했고 출산휴가가 끝나면 다시 일터로 돌아갔던 엄마였다. 그러니 우리 아이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줄곧 일하는 엄마만을 보는 안타까운 환경에서 자랐다. 게다가 초등학교 1학년 때는 대학원 공부까지 하던 터라 제대로 돌봐주지도 못했다. 학부형은 처음이었던 나는 수업에 준비물이 있는 줄도 모르다가 2학기가 되어서야 준비물이 있음을 알았다. 그러니까 가정통신문도 안 챙겼다는 것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두 딸은 일하는 엄마를 멋지게 봐주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어린이들이었다. 그때 준비물 안 챙겨간 아이를 엄마처럼 돌보아 주셨던 담임선생님께 무한 감사를 드린다.
그런 엄마였는데... 일밖에 모르는 엄마가 방과 후 집에서 맞아주는 다른 친구들의 엄마보다 더 멋졌단다. 아줌마 같지 않은 엄마라서 멋지고 자랑스러웠다고 말해주는 세상 고마운 딸들이다.
그런 딸애가 미대 입시 준비 중인 고등학교 때 전공이 같은 엄마를 기어이 존경하는 인물로까지 생각한 거였다. 감동 잘하는 나는 세상에 다시없을 만큼 또 감동을 했지.
존경하는 인물이 엄마라고?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도록 잘 기억해야겠다.
다 커버린 딸에게 또 묻는다. 딸!~~
이제 존경하는 인물은 누구야?
아직도 엄마야?^^